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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진화(EC 1907): 중요 개념 설명
<창조적 진화, 방통태 영상 강의 원고 초고 입니다.
민폐를 끼지치 않으려고 여러 차례 읽고 35-40분에 맞게 줄여진 강의 원문은 첨부합니다.>
- 2021 04 28 오후 두시, 한국 방송통신대학 영상강의 .
- 아래 파일 중에서 둘째 것은 영상 강의 원고 입니다.
# 벩송 사상에 접근
예전에는 철학을 만학의 제왕처럼 이야기했습니다. 그 만학의 제왕이란 ‘제국 속의 제국’과 같은 것으로 모든 학문을 선도하며, 선전제로서 철학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서양 학문의 발달사로 보면, 만학의 제왕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상위에 놓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철학의 발달사는 과학사와 어깨를 견주며 나아가는데, 각 시대마다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생리학 심리학 등 개별과학의 발달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무너지는 또는 전복되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벩송은 개별과학의 정확성을 받아들이고, 개별과학이 멈춘 경계(페라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유해야 한다고 합니다. 벩송은 프랑스의 실증 과학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을 창안(창조)하였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철학자이며 벩송의 철학(1916)을 쓴 회프딩(Harald Høffding, 1843-1931)이 막 출판된 창조적 진화(1907)을 번역하겠다고 편지를 했을 때, 이 번역에는 수학자, 물리학자, 생물학자, 심리학자들과 함께 번역하기를 권하는 답장을 하였습니다. 창조적 진화를 읽기 전에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어 있는 “과학사”를 꼭 한번 읽기를 권합니다. 관심이 솟아날 때, 이 짧은 요약을 읽고서라도 진실로 부탁하건데 “과학사”를 읽어보고 다시 읽기를 바랍니다. 플라톤과 벩송을 평생 연구하신 박홍규 선생님은 연구방법으로써, 한번은 쭉 끝까지 읽고, 둘째 읽을 때는 그 문단이 어느 시대 어느 철학자들 겨냥했느냐를 탐색하고, 셋째로는 문단의 시대의 문화와 제도와 연관해서 탐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의 예를 들면, 선생님은 갈릴레이를 강조하면서, 그가 처음으로 고전 전통의 전복을 시도하여 학문 발달사의 전환하였는데, 데카르트의 좌표개념과 분석(해석기하학)은 갈릴레이의 상대성운동을 철학적으로 바꾸어 설명하는 것이라는 것을 읽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1632년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는 해, 데카르트는 자신의 첫 작품인 세계론의 발표를 포기하고, 크리스트교가 지배하는 프랑스를 떠나 망명 아닌 유랑의 길로, 들뢰즈 표현식으로 하면 탈주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은 한 권을 책을 이해하려면 최소한 세 번은 읽어야 하네, 한번은 전체의 흐름을 읽고, 다음 한번은 장과 절의 간격을 읽어내고, 셋째는 문단과 문단 사이를 읽어야 하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벩송의 책에서 각주가 없기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차이를 찾아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박선생님은 앵글로색슨의 철학은 논문쓰기 쉽지만, 프랑스 철학은 논문 쓰기 어려운데, 그 실증과학을 공부해야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보태서 길게는 문단과 문단 사이에, 짧게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즉 행간에는 여러 과학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파고들면서 읽어야 벩송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가지 덧붙이면 선생님은 서양철학에는 세 종류가 있는 운동과 정지를 함께 다룬 이는 플라톤이고, 정지측면에서 다룬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이며, 운동측면에서 다룬 이는 벩송입니다. 다른 철학은 없습니다 라고까지 합니다. (54OME)
1) 프랑스 사회 갈등 – 학문에서 심층과 상층의 차히
네, 벩송의 생애 부분에서 자주 받는 질문입니다. 소르본 대학에 1897년과 1898년 두 번이나 지원을 했는데 기존 교수들의 투표에서 졌습니다. 거부에 대한 견해가 여러 가지 이지만, 소르본 대학의 학풍에 맞지 않았다고 점에 거의 동의하고 있습니다. 소르본 대학은 문헌학과 신학이 중심이었습니다. 벩송이 명성을 얻은 물질과 기억(MM, 1889)은 의학, 생리학, 병리학, 심리학을 다루었는데, 당시의 분위기에서, 인간을 다루면서 병리학을 다루었다는 것이 거부반응이었다고 합니다. 요즘 편집증과 분열증을 다루면 인기 있었을 것인데, 당시에는 인간이 신에 가깝지 광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MM에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의식상태의 ‘직관’이 소르본 학풍의 “관념의 직관”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라고 합니다. 저로서는 다른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894년에 발생하여 1897년에는 여론이 분분하였던 드레퓌스 사건으로 카톨릭과 애국자들이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도 하겠지만, 좌파의 사상이 퍼져나가는데 대한 극우파의 반동이 더 컸다고 봅니다. 벩송은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의 ‘청원서’ 등 몇 차례의 청원서에 전혀 서명하지 않으면서, 학문에만 열중했다고 합니다. 강의 수강생이었던 샤를 페기 등이 질문한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동급생이었던 장 조레스에게 물어보라고 빗겨나갔습니다. 그러나 카톨릭 극우파들이 얼마나 과도했는지는 당대의 최고의 작가였던 에밀 졸라의 사건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망명 후 갓 귀국했던 에밀 졸라가 1902년에 어이없게도 가스중독사로 의문사를 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졸라처럼 당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카톨릭의 시각이 벩송의 유물론, 또는 자연주의가 카톨릭 신앙에 정반대였다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이유가 잘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플라톤 전공한 박홍규교수의 강의록에서, “철학에는 공간과 시간을 함께 다룬 플라톤 철학, 공간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시간을 다룬 벩송 철학, 이외에는 없습니다”에서 생각해보면 됩니다. 소르본 대학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즉 주지주의였는데, 시간을 다룬 철학을, 질료론 즉 자연주의를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이 정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뒤에 가서 말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보아도, 사문난적과 문체반정을 말하는 시기에, 야인 유학자들은 실학, 실증철학을 하면서 당연히 학계 바깥에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벩송은 교수자격 시험을 2등으로 통과할 정도로 뛰어났기에 대학이 아니라, 요즘은 더 높이 평가 하는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 강의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좌파와 우파의 기준은 지식론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눌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 현실에서 통용이 잘 안되지만, 근원에서 보면, 형이상학적으로 시간론과 공간론, 즉 운동론과 정지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2) 진화 - 자기 안에서 자기 창조
진화란 용어는 다윈 이래로 일상적 개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1859년 당시에는 크리스트교인에게는 거부반응이 컸습니다. 지금도 종교인은 창조론을 믿고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의 일부입니다. 이 진화론의 성립에는 고고학, 지질학, 생명발생학, 유전학들이 발달해야 하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하는 1900년에야 대중의 담론에 들어옵니다. 게다가 앞의 학문들이 성립하는 데는 마담 뀌리의 라듐의 발견으로 과거의 지층에 대한 연대측정이 가능했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박홍규의 말을 빌면, 학문의 자료의 총체에 대한 탐구이며, 벩송은 경험적 총체를 다룬다고 합니다. 경험적 총체란, 있어왔던 모든 것을 자료로서 검토하여 무엇인 기원이며 어떻게 변화하고 진행했는지를 다룬다는 것입니다. 서양학문에서 자료 총체를 실증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생각은 꽁트 이래로, 즉 1850년 이래로 얼마 되지 않지만, 서양학문은 두 번의 실험도구의 과정을, 즉 망원경과 현미경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번은 하늘에서 표면으로 다음 한번은 표면에서 내부로, 심층으로 탐구하였습니다. 벩송은 1903년에 “형이상학 입문”에서, 칸트가 코페르니쿠스 전회(사물이 도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돈다고)라고 하였지만 표면에 머물렀고 물자체를 포기했는데 비해, 벩송은 물자체(휠레)의 내부로(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새로운 형이상학이라고 했습니다.
진화란 내부에서 표면으로 그리고 표면의 확장과 같습니다. 즉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파악하기 위해 35억년을 시간의 불가역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지만, 생명의 연속성을 과정으로서 내부로부터 파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의 과학은, 원자에서 내부로 들어가 핵과 전자, 핵속에 양성자와 중성 등으로, 생명에서 생명체, 기관, 세포, 그리고 그 세포 내부에 핵과 원형질, 핵의 내부에 요즘말로 DNA; 원형질 내부에는 미토콘드리아, 소포체 등등으로, 들뢰즈가 말하듯이, 세포 내부에 무기물질, 인, 철, 마그네슘 등 안으로 들어가는 탐구가 지속되어 있습니다.
생명체가 현재로 만들어져 있는 것을 탐구하는데 머문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기원에 들어가는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그 생명체에 내재하는 생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 형이상학입니다. 이 형이상학에서 보면 기원에서 매우 사소한 것에서 그리고 단세포, 복합세포, 유기체, 현생 생물체라는 과정을, 즉 진화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태에서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도 진화하였고, 각 종들은 자기의 전략으로 자기 유전자를 전달하고 있기에 수억년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현재로 박테리아, 균류, 식물, 동물 등으로 분류하는 네 다발(벩송의 용어입니다만)은 수많은 가지치기의 다발들을 지성이 편리하게 분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다발의 수많은 가지들, 그 각각은 자기 진화를, 일반적 표현으로 종발생은 개체발생의 연속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벩송으로서는, 진화에서 종 각각은 자기전략(생명)이 들어 있고, 각 개체는 불연속 적으로 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진화는 개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종의 과정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진화의 가지들 중에 큰 한 다발이 포유류이고 그 중에서 한 부분이 인류이지요. 진화에서 외적 단절과 달리 내재적 생명의 연속성을 인정하게 되면, 그 연속성을 의식으로 발전시킨 것이 인간이며, 인간 만이 말과 글로 과거의 과정을 소통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지구의 대 격변이 온다면, 학자들은 박테리아사 살아남을 확률이 제일 크다고 하는데, 박테리아는 자기 나름의 의식의 소통을 가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이런 생명의 과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생명체이지만 그 흔적과 현상을 지니고 있는 것이 자연입니다. 벩송은 자연이 “자기 안에서 자기의 의한 창조”라고 부르는 것인데, 자연 대신에 신앙자들이 신을 넣는다 해도, 긴 시간을 사유해야만 할 것입니다. 벩송의 창조라는 단어는 자연의 자기 생산, 생성을 의미하며, 신자들이 신이 무에서 자연을 창조했다는 용어와는 전혀 다릅니다. 자연은 인간이 말과 글로서 신을 만들기도 전에, 지구 생성 45억년전부터 생성, 생장, 생산, 창조를 하고 있습니다. 진화는 과정이며, 철학은 무엇이, 왜, 어떻게(과정)를 탐구하는데 실증 과학과 더불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다윈주의자들과 벩송이 다른 점은 진화의 도식을 나무로 가지 번지기가 아니라 다발로 가지치기 한다는 것입니다. 굴드는 처음 나부가지 도표를 다양한 가지들에서 가각의 가지치기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생명은 하나가 아니라 다발이며, 회오리처럼 확장하며 나갑니다. 이런 비유에서 퇴화하거나 소멸하는 종에 대해서도 좀 더 근접하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3) 지속, 기억, 생명,
진화를 과정으로 생성과 생산(창조)이라고 하게 되면, 철학은 왜생성과 생산이 이루어졌느냐를 문제제기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최초의 생명의 발생을 설명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생명체에서 과정상 단세포에서는 기관이 없었는데, 연체동물에 와서야 기관이 생겼다는 것을 과학과 철학이 다루고 있습니다. 철학은 이 과정에서 지속하는 연결과 연관들에 대해 사유합니다. 단세포와 연체동물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쳤을 것입니까? 고생물학적 자료야 남아있는 것이 얼마되지 않지만, 과학은 불연속을 강조하고 새로운 창조라고 말하더라도, 그 창조는 그 생명체들의 연관들 속에서 다루어지는 개념일 뿐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건데 과학이 철학으로 전향했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철학은 과학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왜이런 의식의 분화 또는 발전이 있었는지를 묻습니다. 벩송은 처음부터 생물학자가 아니라 형이상학자로서, 의식의 발전을 우선 서양철학사에서 검토해 보았습니다. 퓌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 이래로 공간적 사고가 철학의 주류를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의 이면에는, 즉 내부에는 흐름의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첫 작품에서 찾아내고, 둘째작품에서 이 흐름의 내용을 심리학적으로 기억이라 하였는데, 앞에서 말하였듯이 생리학과 병리학을 탐구하면서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성찰하면서, 생물학적으로 지속하는 내재적 흐름으로 진화 또는 유전을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에서도 지속이 인간의 지속에도 마찬가지로 내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속하지 않고 단절되었으면 인간의 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간의 의식의 지속을, 생명의 지속으로 확장하여 사유한 것입니다. 벩송은 그가 창안한 개념이라기보다, 이미 의학과 생리학, 심리학에서 다루었던 ‘의식’을 인간의 의식에 한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그리고 자연에게도 적용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벩송의 자연 개념의 이중성은 박홍규의 논문에도 나와있듯이 대상으로써 자연이 아니라, 자연 자체의 자발성이 있다고 합니다. 이 후자의 자연 개념은 그리스 철학의 유물론자의 휠레(생성하는 물질) 개념에서 왔다고 봅니다. 자연이 자기 생산에서 여러 물체들도 만들었지만 생명체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자연이 생명체를 통해 자기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넘어가는 것이 벩송의 경험[질료]형이상학인 셈입니다. 그는 지속, 기억이라는 실재성을 먼저 다루고, 그리고 생명계 전체를 다루는 데로 확장하면서, 생명을 실재성으로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실재성에 대해서도 이중 의미가 있는데, 플라톤주의자 또는 주지론자, 특히 무한을 다루는 수학자들은 관념과 수학적 기호들이 실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벩송은 그런 것들을 다루는 것은 지성이며, 그것은 편리를 위한 기호(symbole) 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실재는 지속하는 의식, 생명이 실재성이라고 합니다. 철학은 실증 과학과 더불어 환원불가능한 실재성을 다루게 됩니다. 환원불가능이란, 간단히 살아온 것을 되돌아 살 수 없다는 것인데, 어느 생명체도 과거의 생명체와 동일반복을 하지 않고 이질반복을 한다는 점에서, 과정으로서 지속하며, 내재적으로 기억과 유전을 지니고 아직도 자기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생명입니다.
4) 진화론: 다윈과 라마르크
벩송은 저술에서 과학발전은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글을 쓰고, 참고문헌이 없기에 초보자들에게 쉽지 않은 부분이 많습니다. 라마르크와 변형설과 다윈의 진화론은 각각의 선학자들의 관점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변화’라는 측면에서 생명체의 표현 방식이, 린네의 경우와 뷔퐁의 경우가 달리 표현됩니다. 이 둘은 같은 해 1707년에 태어나 1788년 같은 해 세상을 떠났는데, 전자는 형상의 분류에 따라 체계를 세웠는데 그 방식으로 목적론에 이르는 것으로 나간 것이 다윈이라면, 후자에서는 원인에서 결과로의 과정에서 차이나는 생장에서 분류와 체제를 찾으려 했던 방식을 라마르크가 제자로서 따랐습니다. 다윈에 의해 “진화”라는 개념의 성립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의 자연도태 이론과 최적응자 이론은 선별된 결과를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계열로서 줄을 세워서 체계화한 것이고, 나아가 체계화의 끝은 최적응이 됩니다. 이런 체계와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에 대한 관점이 없어서, 공간적 나열은 이해되지만 내재적 연관은 잘 설명되지 않아 그 연속성을 설명하는데, 외적 신(deus ex machina)를 끌어들인 측면이 있다고 벩송은 봅니다. 이에 비해 무척추 동물의 생장을 연구했던 라마르크는 선별이 아니라 어떤 내재하는 힘이 그 노력의 과정에서 다른 결과로 나갈 수 있음을 제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용불용설이라고 하는 것은 학문이 요약적으로 설명했기에 오해가 많았습니다. 생명은 자기의 길을, 자연에서 의식의 확장의 길을 선택하면서 다른 개체의 모습을 만들어갑니다. 지금도 만들어가는 중이지 만들어진 형상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체는 없다. 이런 변화와 진화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앞에서 말하듯이 여러 계열의 다발들이 상호침투과정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산물, 즉 새로운 생명체를 생성 또는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은 어느 시기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니긴 시간이 필요하다. 연대추정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4,500만년전에 인류와 타마린(원숭이)의 공동조상의 시대 마지막이었다고 하고, 1,400만년전까지 오랑우탄과 같은 조상의 시기였고, 900만년전까지는 고릴라와 같은 조상의 시대였고, 600만년전야 침팬지 및 보노보와 결별했으며, 400년만전에 인간의 조상이라 추정할 만한 종이 성립합니다. 과정의 변화에서, 형이상학적으로, 형상이 먼저 결정되고 부분이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부분의 축적과 변형이 형상을 만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이는 아직도 논의되고 있는 부분과 전체의 문제거리인데, 공간론의 수학과 형태론인 물리학과 달리, 생물학에는 과정의 흐름에서 노력 또는 생명의 원초적 힘에 의해 부분이 전체를 바꾸어가면서 형태를 만들어 즉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이런 원초적 힘과 노력에 관한 논의는 20세기 후반에서 와서 생물학계와 심리학계 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체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형이상학적 관점의 차이는 생명진화에서 지성과 본능의 구별, 실증과학의 탐구방식에서 분석과 직관의 차이만큼 다른 것입니다. 이 저술을 읽은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런 관점을 주지주의에 대한 정확한 비판이라고 평했습니다. 물론 벩송에게서 다윈주의의 비판과 라마르크주의에로 경도된 사유가 진화론에 적합한지 의문을 제기하지만, 벩송도 설명했고, 또한 당대에 유행했던 생명종 계열들 각각의(달팽이 눈, 새의 눈, 인간의 눈)의 형성과정을 실례를 들면서, 변형과 진화 과정에서 벩송의 내재적 충력과 종의 노력이라는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들 합니다.
5) 생명 도약(l’élan vital) : 내적 연속성과 외적 불연속
이제, 생명이 흐름이고 흐름의 과정에서 여러 생명종들이 생겨난다는 사유를 받아들이게 되면,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 과거의 오랜 과정을 통해서 지니고 있는 기억이 있듯이, 흐름이 어떻게 새로운 생성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문제로서 왜 생명이 나왔느냐는 문제가 있는데 아직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45억년 지구 역사에서 35억년전에 최초의 생명체가 있었다는 것을 고생물학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철학적 사유가 들어갑니다. 자연의 변화, 지구의 운동 등은 스스로를 재생산하고, 그 중에서 생명운동은 영양을 축적하고, 운동하기 위해 영양을 에너지로 바꾸어 폭발하는 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근원적 운동을 생명의 충력이라 했고, 이 충력은 스스로 운동하며 자기 생명력을 유지하는 흐름을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것입니다. 이 내적인 흐름을 생명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각 개체는 유한하여 새로운 개체, 자식을 만들고 소멸하고, 그 자식은 또 자식을 만들고 소멸하면서, 이어왔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재적 충력, 즉 생명력은 지속적으로 개체들에게 힘을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내적인 힘이 개체에서 물질과 연관을 맺었는가를 문제제기 할 수 있습니다. 생명력이 자유롭게 운동하기 위해 장치 또는 기구를 만들면서 더 확장된 영역을 활동하려고 했고, 그 활동이 아메바보다는 연체동물이 그리고 절족동물과 포유류로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생성과정에서 생명과 물질의 결합에서, 형이상학적으로는 운동과 정지의 결합에서, 운동하고자하는 (의식)경향은 지속적으로 확장하려고 하고, 정지해 있고자하는 물체의 경향은 감소하여 평준화하려고 합니다. 이 후자를 열역학의 제1법칙에이라 하는데, 제2법칙에서 모든 물체가 소멸로 간다고 가정하지만, 지구상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체에 의해 엔트로피법칙을 역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흐름은 자기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과정에서 일종의 타협안으로 생명체를 만들었고, 그것을 통해서 생명은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들의 창조, 종들 속에 다양한 개체, - 예를 들어 70억의 인구는 동일한 것이 없고, 과거에 비교해서 동일한 것은 없었으며, 미래는 아직 모릅니다만 동일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 개체들 각각은 기나긴 시간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했습니다. 내적으로 지속적인 흐름과 외부적으로 생장과 소멸을 겪으면서 동일반복이 아닌 새로운 반복으로 생산, 창조하였다는 의미에서 생명 도약입니다. 이것을 자연의 “자기 속에서 자기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제 이 말이 ‘얼마나 크리스트교 사고에 젖은 자들에게는 그들 자신들의 부정 또는 파멸’이라는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덧붙이자면, 이 말의 뜻은 ‘신은 죽은 것도 아니고 죽인 것도 아니며, 신은 없다’이고, 게다가 자연이 자기 창조하는 과정에서 미래의 인간의 형태도 없고, 나아가 미래에 간다고 하는 천국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유가 첫 작품과 두 작품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카톨릭 신앙자들이 벩송을 가만히 두었겠습니까? 사실 일차 대전이 벩송에게 다음 작품을 내기보다 정치적 외교적 활동으로 방향을 틀게 하였을 것입니다. - 이런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하기로 합니다.
6) 다발의 분화(세분화)와 계통수 분화(미분화)
생명의 근원적 힘, 그리고 생명 도약이란 생물학적 형이상학의 개념을 깨닫게 되면 진화 과정의 세부적 설명은 간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생명은 처음부터 ‘하나’라는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질적 다양성을 지닌 자연이라는 단위에서 출발합니다. 그 단위체는 내부적 다발로 이루어져있고 이 다발들은 또 다른 다발들로 확장되어 갑니다. 수류탄이 여러 갈래로 폭발하고 그 파편들이 또 여러 갈래로 폭발한다는 비유가 있습니다. 진화에서 여러갈래, 즉 가지치기는 무수히 많은 가지치기이지만, 벩송은 당대의 실증과학을 빌어 식물과 동물, 그리고 동물에는 절족류와 포유류를 예로 듭니다. 수학과 물리학에서 자르고 쪼개서 남는 작은 부분의 설명으로 나온 미분화의 방식과 달리, 생물학과 심리학에서 의식은 충력이 자기 확장을 전체에서 부분의 활동으로 세분화의 방식으로 새로운 진화의 길을 모색합니다. 우리가 세분화라고 표현한 것은 1820년대 프랑스 생물학 논쟁에서 나온 개념이며,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1969)에서 다시 끌어내어 쓰고 있는 개념입니다. 부분의 활동이 확보되면 전체의 구조도 변합니다. 생명체의 구조와 형태의 변화들에는 지속하고 있는 생명충력이 언제나 내재되어 있고, 마치 개인에게 기억이 실재하며 내재해있듯이, 또한 각 생명체는 생명도약으로 분출, 또는 폭발을 끊임없이 실행하고 있습니다. 생명이 근원적 충력과 생명의 도약으로 나가는 길이, 벩송이 말하는 자유의 길인데, 생명의 확장과 새로운 길의 솟아남을 ‘분화와 발산’이라고 합니다. 의식의 정체성은 근원적 생명력에서 그리고 개인의 성장과 창발은 ‘분화와 발산’에서 이루어진다고 하고, 새로운 예술 작품, 학문의 이론, 과학의 발명 등도 충력과 도약의 예라고, 해석할 있습니다.
7) 본능 대 지성, 그리고 직관 대 지성
다시 미분화는 한 줄기에서 잔가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면, 세분화는 (여러가지의) 다발이 얽히고 섥히면서 또는 상호침투하면서 원초적 권능(충력)을 밀고 나가면서 여러 줄기들을 형성합니다. 벩송은 이런 비유에 한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총체적 줄기에서 나온 각각이 당시로서는 네 가지로 원생동물, 식물, 곤충, 동물이며, 벩송은 활동성을 기준으로 곤충과 동물에서, 곤충은 본능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동물은 지성을 발달시키는 쪽으로 향하였고, 곤충 중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벌과 개미의 본능적 활동에, 인간의 지성적 활동에 주목하였습니다. 전자의 예로, 나나비벌이 자기 새끼가 개미집에서 살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알을 개미집 입구에 낳습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늘을 나는 잠자리는 자기 새끼가 물속에서 자란다는 것을 인식하고 물속에 알을 낳는다는 것이 본능적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포유류에서는 자기 새끼에게 일정하게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보고 배우게 합니다. 이 두 관점에서 전자는 생명의 도약을 본능쪽으로 후자는 지성쪽으로 발달시켰다고 봅니다. 그러나 둘은 다른 인식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진화에서도 종차에서 분화를 하는 것은 사용하지 않았던 본능과 인식능력을 사용하면서, 노력하여 조금씩 바뀌었다가 종차에서 별개의 종으로 발전한다고 봅니다.
이처럼 지성과 대등하게 본능을 생명체의 중요한 인식능력으로 인정하였던 벩송은 여러 실증 사례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여기서 다 말할 수 없고, 인간의 경우로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포유류 중에서 인간은 지성을 계속적으로 발달시켜 도구적 인간으로까지 진화하였습니다. 인간에게서 원초적 충력에서 생명 도약을 계속하면서, 내재적 연속성으로 본능과 같은 인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내재해 있었는데, 도구적 사용의 편리와 안정으로 내재성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것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새로운 장애에 부딪힐 경우에는 다시 지속하고 있는 본능을 불러낸다고 봅니다. 물체의 저항을 도구로서 해결 할 수 없는 영역에서는 서 내재적 본능이 물질과 타협하여 자신의 형태와 변이를 만들면서 새롭게 활동할 수 있는 몸체를 만드는 데, 이런 진화를 겪어왔었습니다. 신체라는 도구 방식 이상으로 외부도구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마도 철기시대 이후에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면서도 내적 지속성의 인식이 망각되지 않고 여전히 현실에 직접 닿아있어서, 기억이 실재하며 현실에 닿아있고 미래를 잠식한다고 합니다. 이런 실재성 속에서 지속이 인간에게서는 직관입니다. 지성이 대상의 경계를 정하고 중요한 부분을 정식화 또는 법칙화하여 중심을 구성할 때, 직관은 그 구성보다 훨씬 넓은 비경계의 영역들을 감지하며 무매개적으로 의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물체를 다루는 것은 지성이고 경계없는 터전에 대해 교감하고 공감하는 것이 직관입니다. 지성이 막힐 때 직관이 나선다고 하는 것은 지성의 한계를 벗어나 사유하는 사람이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거푸집(주형)을 만들 줄 알아서, 다룰 대상의 경계를 확대하고 있다고 여기면서, 자연 전체를 도구로 삼는 오만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하여 본능을 곤충이나 하등동물의 인식으로 비하시키면서, 생명의 총체적 과정에 대한 인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살다가 소멸합니다. 문제는 사는 것입니다. 벩송이 산다는 것이 먼저이라고 할 때, 자연을 대상으로 삼아 경계 밖에 인간을 두는 것이 아니라(제국 속의 제국),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공감으로 살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생태계를 살리면서 살자입니다. 속좁은 지성의 발달이 망쳐놓은 길을 내재적인 본능을 일깨워,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깊은 직관을 창발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때라는 것입니다.
8) 두 질서
많은 해설가들이 이 저술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 ‘무질서는 없고 두 질서가 있다’고 하는 이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질서가 있어서 무질서를 설명하는 것은, 마치 무가 먼저 있고 존재를 설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벩송에서는 인식의 측면에서 질서라는 고정성이 없고, 움직이는 활동성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첫째자연이라는 세계가 움직이지 않은 대상으로 먼저 가정(선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 착각이라 합니다. 자연의 이중성은 이미 첫 작품(1889)에서 말했습니다. 한쪽은 본질로서 인간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입장과 다른 한쪽은 자연이 스스로 자발성을 가지고 창발한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서 다시 크리스트교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창조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소르본 대학이 그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연이 통일성, 단일성, 제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은 다발이며, 덩어리이며, 마치 성운과 같은 회오리로 확장하는 어떤 것입니다. 둘째로 자연을 대상으로 다루는 인간의 인식이, 지성이든 이성이든, 자연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먼저 있다(선가정)하는 것도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자연에서 인식능력은 진화의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신체적 본능보다 대상을 도구화로 발전시킨 것이 지성입니다. 이 지성의 발달로 물질 속에서 물체를 대상으로 삼아 다루는 것입니다. 즉 지성은 인식능력의 발달 과정에서 나중에 출현, 창발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무질서가 아니라 두 질서인가? 이제 선가정의 착각을 벗어나면, 물질의 하강하려는 경향과 생명의 상향하려는 경향에서, 지성은 하강의 길을 택하였고, 직관은 상향하는 길을 택하였으며, 두 경향이 마주치는 상황 또는 기회에서 어떤 현존의 삶이 있습니다. 삶에서 이익과 편리를 위해 지성의 방식으로 물질을 고정된 물체로서 다루는 것인데, 그 지성에서 보면 물질의 자기변화는 무질서입니다. 생명의 직관에서 물질의 일부와 타협으로 새로운 생명체를 여러 가지치기로 만드는 것은 하나의 질서에 비해 무질서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지성입니다. 두 선전제가 인간 지성이 만든 ‘우화’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데, 벩송이 나중에(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1932)) 말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성이 ‘운동하는(움직이는) 자연’을 고정된 자연으로 기하학적으로 다루는 것에 너무나 익숙하여, 지성 자신이 모든 대상을 정지된 공간 위에서 다루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생명체 생장과 의식의 확장에서 상승하고 있으며, 정지된 것도 물체화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다루는 방식을 달리해야 하며, 직관을 통하여 합니다. 이처럼 벩송은 하강하는 질서로서 기하학적 질서와 상향하는 질서로서 생명적 질서 두 가지가 있으며, 열역학의 제2법칙으로 설명하면 한 방향이 다른 방향을 무질서하다고 간주하는 것입니다. 즉 질서가 먼저 있다는 입장은 지성의 입장으로서 다른 질서를 무질서로 간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종교적 신앙이 벩송의 철학적 입장을 무질서로 보는 것과 같습니다. 벩송에게서는 무질서는 없고 두 질서의 경향이 있으며, 산다는 것은 평준화, 수평화를 거슬러 올라 상향하는 운동 또는 질서라고 합니다.
9) 제4장
진화, 지성과 직관, 두 질서를 설명하고 난 뒤, 4장에서 철학사를 일별하면서 자신의 견해가 정당하다는 것을 알립니다. 철학사의 시작은, 물론 탈레스의 물활론인 유물론이 먼저입니다만, 서양철학사가 주지주의로서 2천5백년 동안 지성 또는 속좁은 이성의 역사로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존재론적 측면에서 첫 부분에서 “무”는 없고 현존이 있다는 긴 설명은 앞의 두 질서와 연관 있습니다. 첫째 무는 없고 현존이 있다, 둘째 무질서 없고 두 개의 질서가 있다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논리학적이고 인식론적 측면에서 셋째로 세계를 정지로서 파악하면서 언어적으로 명사, 형용사, 동사를 일정한 한계 안에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류라는 것입니다. 논리학적으로 용어를 고정된 것으로 법칙을 만드는 것은 논리학이 종과 종차에 의한 유적 개념을 다룬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성이 개념 또는 용어들을 경계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삶에서 사람, 붉음, 움직임은, 살아가고 있는 운동체이며, 변하고 있는 변화체이며, 걸어가고 있는 운동체입니다. 이런 생장, 변화, 활동을 다루는 방식으로 언어를 보면 세 가지 원초적 요소들이 있는데, 즉 세 가지만들어지고 있는(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의 현존이 있습니다. 철학은 이런 과정을 다루면서 과학과 나란히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대 과학을 다루면서, 고대 철학이 운동을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운동으로 보았던 것을 갈릴레이 이래로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면서 근세철학이 변화하고, 나아가 속 좁은 이성이 자연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시절을 지나, 생명체의 생장의 활동을 열역학에서, 물체의 고착적 원자들에서 내부의 전자의 운동을, 또는 빛의 입장에서 파동설 등을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철학은 운동하고 있는 사물과 자연을 주목하게 되어 있다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의 한계성, 운동의 고정성, 그리고 빛과 원자의 고착성을 넘어서, 벩송의 글 행간에서 페라스가 아니라 아페이론을, 정역학이 아니라 동역학을, 열역학에서 역엔트로피를, 게다가 원자모형보다 전자기장의 이론들을 수용하면서, 심층에서 상층으로, 내재적 충력에서 엘랑비탈로, 생명의 활동은 구체적이고 실재적인 과정을 겪으면서 진화해 왔듯이, 우리의 의식과 인식도, 지성에서 직관으로, 자발성을 통한 활동성의 자유로 나갈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작품의 자연의 자발성에서 ‘자유’를, 창조적 진화에서 창조로서 ‘자유’를 은연중에 끌어내고, 1932년 마지막 작품에서 사회 공동체에서 ‘자유’를, 만인의 자유를, 강조할 것입니다.
10) 내재적 폭발 힘 - 에너지
11) 생명에서 본능과 지성 - 학문의 경우에 지성과 직관
진화를 다발의 가지치기,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회오리처럼 넓어지는 나선형, 포탄과 유탄의 분화 등의 비유는 생명이 오랜 기간의 자기 확장의 길을 갔다는 비유입니다. 비유에 너무 의존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생명은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근원적 힘, 자신을 확장하는 폭발력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과정상 언제나 에너지(영양)를 축적하고 그리고 생명 활동을 위해 에너지 사용(폭발)을 내내적으로 단절 없이 지속으며, 지금 지구상의 생명체들도 축적과 폭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생명체가 다양한 분기(가지치기)로서 다양한 것은 활동에서 자기에 맞는 물질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물질의 저항을 죽 받아왔습니다. 물질은 열역학적으로 서로 열을 이전하여 평준화하려고 하지만, 생명체는 물질과 반대방향으로 자기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에너지의 폭발이란 영양을 축적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활동에서 에너지 사용방식이 폭발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현재 과학이 말하기를 35억여년을 거쳐왔듯이, 그렇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 기나긴 과정에서, 단세포에서 두뇌를 갖는 동물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거쳐서,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달리 지성을 발달시킨 것은 저 긴 시간에 비해 거의 얼마 되지 않습니다.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이래로 지성의 발달이 외적 경험과 그 대상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학문을 해왔습니다. 그러한 학문에서 천문학은 지구가 정지해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고 했던 근세까지는 무려 2천년이나 걸려서야 하나의 새로운 사유가 등장합니다. 그 이후 근세철학이 정신과 물체 사이의 연관들을 논의하면서 여러 학설들을 제기 했지만 둘 사이의 연관이 평행도 부대현상도 아니라는 것과, 생명체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은 1830이후 현미경의 발달입니다. 갈릴레이의 물리학의 변환 시에서 생물학의 기초의 변환이 200년 정도입니다. 생물학을 이어서 의학, 생리학, 병리학 등의 발달은 인간의 고통이 신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학문적으로 다룬 것은 100여년 정도입니다. 과학의 발달에서 지금까지 지성의 범위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을 사유하는 철학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기에 과학은 자기의 한계(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전환 또는 확장의 길을 가고, 그 확장에서 검토와 반성으로 새로운 분출구를 만드는 것은 철학이 해왔습니다. 지금도 1953년 이래로 규소의 시대가 전개되었지만, 그 반도체가 탄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넘어서 다른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은 요즘 이야기입니다. 다른 방식으로 생태와 생명을 대하자는 방식은 철학이 해온 것입니다.
과학은 긴 기간사이에 연결성이 부족한 점에서 멈추어 있지만, 철학은 그 사이를 잇는 사유도 하였습니다. 상상이라고 비판 하겠지만, 공상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물질이 고정된 것으로 여긴 것은 원자론이었습니다. 물질이 운동중이라는 것은 원자의 내부로 들어간 연구가 1830년 이후입니다. 그 당시에는 원자핵와 전자 정도였습니다. 그 때도 과학은 원자핵과 전자에 머물렀지만 물질이 흐름일 수 있다는 철학적 사고의 영향으로 원자핵의 속으로 들어가 소립자 등으로 계속 파고들고 있습니다. 그 물질이라는 개념을 한계가 있는 입자로 간주하지 않고, 한계설정을 없이하는 사유는 철학자들의 몫이었고, 지금도 물질이 흐름이라는 관점 때문에 과학은 여전히 쿼크입자, 낯선입자들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입자들이 연구자들에게는 경계가 필요하지만, 1930년 이래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과학이 한계에 부딪힐 때, 철학이 오랫동안 사유하는 방식에 도움을 청합니다. 철학이 과학의 역할이 멈춘 곳에서 시작한다고 하는 것은 한계의 선은 아직도 넓혀지고 확장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현재 코로나19가 어떤 삶을 살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바이러스가 유기체를 숙주로 삼는다는 점에서 숙주를 삼는 종류들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총체적 경험(실험)을 통하여 새로이 이론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총체적 경험의 학이 벩송이 말하는 새로운 형이상학입니다.
12) 철학과 과학
13) 인간과 자연 현시대.
철학은 주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원리와 공리로부터 연역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벩송이 말하듯이 과학의 성과와 인류의 삶의 종합하는 경험적 총체의 학문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과학의 실험과 성과가 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열역학의 절대온도든지, 대우주의 빅뱅이나 블랙홀은 지금까지의 과학적 인식자료들 중에서 몇 십 퍼센트 정도를 이용하여 만든 확률적 가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물학에서 생명종 중에서 인간이 가장 고등하다고 하는 것은 지성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것이지, 다른 종들은 자기 방식으로 인식이 없다는 가정입니다. 식물도 인식이 있습니다. 요즘 박테리아 연구가들은 박테리아 종류에서 그들의 표현으로 겨우 1/10 정도 알고 있다고 하며, 이런 가설을 말합니다. 지구가 마그마의 폭발이나 다른 행성과 부딪히는 대파국이 도래한다면, 그 중에서 살아남을 생명체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학자들은 당연히 박테리아라고 말합니다. 박테리아들은 박테리아들대로 인식기능도 있고 서로 소통하는 방식도 있으며, 그들 자신들이 가장 살아남을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여러 생명체들은 자기들의 전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미생물학자들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니체는 이성의 오만을 비판하면서 지구에 충실하라고 하였는데, 니체가 비판의 글을 쓸 때부터 1차 대전까지 서구가 식민지에서 오는 부를 누리면서, 얼마나 좋은 시절을 누렸기에 ‘벨 에포크’라고 했습니다. 영국은 해지지 않은 나라라고 했지만, 그들이 만든 지구는 병들고 피폐해졌습니다. 푸꼬는 저 이성의 오만의 시기를 “광기의 시대”라고 진단했던 것을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고 있고, 푸꼬에서 권력이 인민들 속으로 미시적 확대로 해석한 것도 지성의 착각일 것입니다. 벩송이 말한 지성의 착각, 속좁은 이성의 오만, 이성 권력의 확장이라는 광기라는 것을 말하는 이들은 인간이 행해야할 것은 항상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라고 합니다. 이런 철학자들은 현재까지 로는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 정도입니다. 벩송은 자연을 사랑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연 속에서 자연에 의해서 창조라는 말에서 자연도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진화는, 인간에게서 부분적으로 지성의 확장이지만, 자연 안에서, 의식 안에서 직관의 상호침투와 공감의 확장입니다.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현생인류에까지 관통하는 생명, 그 생명에 대한 직관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같은 경향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이제 자연, 생태, 지구를 이렇게 마구잡이로 대상화하여 도구로서 사용하는 방식을, 공감과 공명의 삶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벩송은 갈릴레이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운동을 내려오게 했을 때 그때, 바로 운동 안으로 사유했어야 했는데, 이성 또는 오성의 우월성을 믿었던 학자들이 인간의 지성을 통한 지구의 지배로 나간 것이 착오였다는 것입니다. 1903년에 “형이상학입문”에서 새로운 형이상학은 이런 착각, 미신에서 벗어난 사유, 즉 삶을 살려는 철학을 하자고 한 것입니다. 21세기에 바이러스19가 오만에서 정신 차리라고 경고함에도, 자본의 제국은 더욱 광기를 부리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벩송이 삶이 먼저다(primium vivere)라고 하고, 철학은 그 다음입니다 . 그러면 탐진치(貪瞋痴)를 벗어나려는 노력과 행동이 필요합니다. 漢昭烈(한소열)은, 물이선소이불위 물이악소이위지(勿以善小而不爲 勿以惡小而爲之 "선이 작다고 해서 아니하지 말고, 악이 작다고 해서 하지 말라." 이 어리석음은 인간 지성의 역사를 보듯이 길고 습관적이다. 공자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듯이, 삶이 먼저이므로, 조그만 일에서도 실천하면서[우공이산] 부지런히 익히고 새로이 접근통로를 찾는 노력에서 부분이 전체와 연관해서 변해 갈 것입니다. 그 변화가 몸체에서도 조직체에서도 공동체에서도 이루어질 때, 변혁 또는 창조인 것입니다. 벩송에게서는 원초적 충력과 생의 도약을 직관하여, 구체적 삶의 현실에서 예술가는 창조, 학자는 새로운 이론, 발명가는 발명, 그리고 사람들은 인성(즉 자연)을 발현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자고 하는 것이 그의 작품 전체에 일관된 사상입니다.
(11:29 54OME) (11:35, 54OMF)
강의 초고(긴글)
강의 원고(40분에 맞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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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 글: 글 수정 중에 들어온 소식을 들으면서,
플라톤에서 같잖은 생각(노토스: 같지 않은 생각, 달리 생각하기)과 유사한 생각을 한 윤여정에게 찬사를 보낸다.
윤여정(尹汝貞, 1947-) 기자회견 중에서 2021 04 26
- 배우 윤여정에게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최고의 순간은 없겠죠. 난 '최고' 그런 말이 참 싫어요. 영어 잘하는 애들이 나한테 충고하더라고요. 그렇게 경쟁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너무 '1등' '최고' 그런 거 하지 말고 우리 다 '최중'하면 안 돼요? 아카데미가 전부는 아니잖아요. 최고가 되려고 그러지 맙시다. 우리 최중만 되면서 살면 되지 않나요? 다 동등하게 살면 안 돼요?그럼나 또 사회주의자가 되나?"
- 어느덧 연기한 지도 50년째를 맞이하셨는데요. 처음 연기를 할 때와 비교해서 세월이 흐르며 달라진 연기 철학이 있을까요? [연납50년이라.. 불납에서 조실의 경지이네]
"연기 철학은요. 제 열등의식에서 시작됐을 거예요. 제가 무슨 연극 무대 출신도 아니고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다가 했기 때문에…. 그냥 제가 제 약점을 아니까 열심히 외우는 거죠. 열심히 대사를 외워서 남한테 피해를 안 주자가 처음 시작이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절실해야 한다는 건 알았어요. 연기를 좋아해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저는 절실해서 했어요. 정말 먹고 살려고 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대본이 성경 같았어요. 상 탔다고 너무 이상하게 멋있게 이야기하는 거 같네.(웃음)
그냥 많이 노력했어요. 많이 노력해요. 브로드웨이 명언도 있어요. 누가 길을 물었대요.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프랙티스(연습)'이라고 답했대요.“
- 앞으로 배우 윤여정의 계획, 인간 윤여정으로서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앞으로 계획? 없죠. 저 그냥 살던 대로…. 제가 오스카 탔다고 해서 윤여정이 김여정 되는 거 아니잖아요. 옛날부터 결심한 게 있어요. 대사 외우는 게 늙으니 힘들어요. 남한테 민폐 끼치는 거 싫으니까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이 일 하다가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벩송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한다. 그가 일차대전이 끝나고 다음 시대에는 어떤 소설이 나올 것 같으냐고 기자가 질문하니, 그걸 알면 내가 쓰겠다고 했다던가. (54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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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정이삭 감독은 수상의 영예를 안지는 못했지만 “영화는 삶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는다. 진정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스토리텔러는 늘 우리 자신에 뿌리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봉 감독의 육성으로 소개됐다. <2021-04-26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4OM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