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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송호 (loomis@horrorexpress.co.kr) 웬 이상한 남자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 ‘자, 지금부터 여러분들을 제 방식대로 웃겨드리겠습니다’라며 작정하고 요상 야릇한 코미디를 해대던 장진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아는 여자>는 제목부터 조금은 다른 냄새를 풍긴다. 살짝 들춰 보면 주역들의 남녀 비중이 거의 동등하게 맞춰져 있고 여성 캐릭터가 보다 적극적으로 작품 속에서 돌아다니며, 처음으로 ‘화이’가 아닌 이름을 가진 주역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도 추가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아는 여자>는 ‘로맨스’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주었던 장진 감독의 작품 목록에서 여러 가지의 크고 작은 변화를 준 요상 야릇한(=장진 식의) 로맨틱 코미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마치 [파랑새]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교훈. 물론, 그것은 ‘사랑 = 행복’이라는 등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임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중요한 점은 확실히 사랑이라는 것은 멀리 있으나 가까이 있으나 그 본질을 명확하게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정의내린’ 사랑이란, ‘그냥 하는 것’,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 ‘살아 있을 때 가능한 것’과 같이 여러 명의 캐릭터들에 의한 각각의 짤막한 언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칫 혼란스러워 보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명확한 정의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일정한 범주에 가두어버리는 순간, 사랑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스페셜 피처의 ‘사랑에 관한 수다’ 코너를 보면 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전에 적힌 사랑의 정의에 X표를 치는 비주얼을 통해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장진 감독의 팬들은 아마도 ‘장진이 멜로를?’이라는 데 관심과 우려를 가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물은 예상 이상이다. <아는 여자>는 쿨하고 감정이 과다하게 흘러넘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의 심리를 묘하게 뒤흔들어 놓는다. 이 영화에서의 사랑은 꼬리를 요란하게 흔들면서 달려드는 강아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살금살금 발자국을 떼면서 조용히 다가오는 고양이 같다. 처음 예고편을 보았을 때 들었던 인상은 마치 엽기적인 스토커가 등장하여 요절복통한 상황들을 연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그렇고 그런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본편을 접해보면 한이연(이나영 분)의 ‘스토커’로서의 설정은 거의 퇴색되어 있고 그보다는 오랫동안 남모르게 짝사랑을 가꾸어 온 진솔함과 그러면서도 약간의 푼수끼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여자가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다소 남성 판타지적 설정이기는 하지만 한이연이나 동치성(정재영 분) 모두 스테레오타입과는 거리가 있는 등장인물들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감정이입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아는 여자>는 아마도 장진 감독의 작품에 익숙한 팬들에게는 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줄 것이며, 그렇지 않은 관객들 역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담백하고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장진 감독 특유의 뻔뻔하게 정색을 한, 웃긴 듯 웃기지 않는 듯한 요상 야릇한 대사와 상황을 여전히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디스크 1의 메뉴는 ‘치성 테마’로, 야구공으로 가득 찬 공치성의 두개골 X레이 사진과 함께 본편에서의 ‘종양’에 대한 의사의 대사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이연이 보낸) 하트가 종양처럼 치성의 머릿속을 차지한다는 설정의 애니메이션이 흐르며 본 메뉴로 넘어간다. 본 메뉴는 치성의 ‘분필 낙서’와 ‘골목’을 주된 컨셉트로 한 간결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디스크 2는 ‘이연 테마’로서 두 개의 카테고리로 구분된 부록을 이연 집에 있는 전등 스위치로 선택한다는 컨셉트이다. 극중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없었던 이연의 낙서 일부를 확인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전체적으로 두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작품답게 이들의 특징적인 캐릭터를 반영한 메뉴 테마와 깔끔한 디자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편은 로맨틱 코미디로서는 흔치 않은 2.35대 1 애너모픽 종횡비로 감상할 수 있다. 화질은 잡티나 스크래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파스텔 톤을 연상케 하는 은은한 색감이 인상적이다. 이것은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아라한 장풍 대작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을 통해 최근 한국영화 DVD 제작에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DI 작업의 결과로서 사물의 디테일 재현은 약간 두루뭉술하지만 오히려 부드러운 느낌의 화면을 만들고 있어 작품의 장르적 특성에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암부의 재현도 비교적 안정적인 편. 다만 본편과 의도적으로 색 보정을 다르게 한 극중 영화 <혈통 깊은 전봇대>나 본편 일부 커트의 배경에서 지글거림 현상과 미세한 블록 노이즈를 발견할 수 있으나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투명도도 높은 보기 편한 화질이다.
사운드는 돌비 디지털 5.1 및 2.0 트랙이 수록되어 있다. 대사와 상황으로 극을 이끌고 가는 로맨틱 코미디답게 서라운드의 적극적인 활용은 보여주지 않지만, 음악이 대단히 큰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중요한 장면에서 음악이 감상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5.1 채널 감상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외에는 야구 경기 장면에서 군중들의 함성 소리와 공이 공중을 날아갈 때 프론트에서 리어로 사운드의 이동감을 간간이 느낄 수 있는 정도다. 대사와 효과음도 시원스럽고 또렷하게 재생된다.
스페셜 피처는 2디스크 타이틀의 통상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다. 디스크 1에는 장진 감독과 주연 정재영, 이나영이 참여한 오디오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으며, 제작 과정을 다룬 나머지 부가 영상은 디스크 2에서 볼 수 있다. 오디오 코멘터리의 경우 초반에는 장진 감독 특유의 재담에 힘입어 거의 감독이 진행자 급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배우들은 마치 게스트로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들지만 3분의 1 정도가 지나면 함께 환담을 나누는 즐거운 분위기로 바뀌게 된다. 또한 극중의 캐릭터가 그대로 유지된 듯 어딘지 썰렁한 정재영과 약간은 상식 밖의 대답을 해도 매력적인 이나영이 감독의 유쾌한 멘트들과 의외로 잘 맞는 편이라서 시종일관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작품과 참여자들의 성격에 충실한 전형적인 음성 해설이다. 디스크 2에 수록된 스페셜 피처는 한국 영화 타이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화 속으로’, ‘영화 밖에서’의 구성으로 되어 있다 : 1. 영화 속으로 제목 그대로 제작 과정과 관련된 부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은 메이킹 필름인 <삼無, 삼有>(20분 37초)로, 영화 속 주요 장면들의 촬영 현장을 가볍게 스케치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관련 배우나 스태프들의 인터뷰가 삽입되어 있다. 뒤를 잇는 <‘그’와 그가 ‘아는 여자’>(14분 51초)는 주연 배우 정재영과 이나영의 인터뷰. 오디오 코멘터리와 마찬가지로 장진 감독이 진행을 맡고 있다.
극중 두 주인공이 극장에서 보게 되는 ‘영화 속 영화’인 <혈통 깊은 전봇대> 본편도 정재영의 내레이션과 함께 따로 수록이 되어 있는데, 4분 35초짜리의 짤막한 편집본에 가까운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애너모픽 지원에 음성 설정(무려 돌비 디지털, DTS, PCM, 음악 및 효과음 트랙의 4종류)과 챕터 선택, 메이킹 필름까지 따로 들어 있어 그 자체로 하나의 커다란 유머가 되어버린다. 본 타이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록이라고 할 만하다. <음악 이야기>(6분 45초)는 박근태 음악감독의 인터뷰로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사운드트랙에 대한 해설을 담고 있다. 장진 감독의 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컬곡들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객들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듯. 여기에 극장용 예고편과 TV 스폿이 영화 속으로 섹션을 마감한다. 2. 영화 밖에서 본 섹션에서는 개봉 후와 홍보에 관한 부록을 살펴볼 수 있는데, 예상대로 첫 번째 순서는 이 영화의 특별 시사회격으로 마련된 <키노 드라마>(11분 31초)에 관한 클립이다. 이것은 본편 중 내레이션과 음악 부분을 무대에서 따로 실연한 방식으로, 이 클립에서는 한국영화로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공연 방식답게 제작상의 난점과 시행착오를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에 대한 스태프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사랑’에 관한 수다>(6분 34초)에서는 영화의 테마이기도 한 ‘사랑의 정의’에 대해 배우, 감독 그리고 (시사회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는) 일반 관객들의 말을 들어볼 수 있다. <DI 제작 과정>(7분 23초)은 본 작품의 디지털 색보정을 작업한 스태프들의 해설로서 디지털 색보정의 개념과 해당 과정이 작품의 후반 작업에서 어떻게 기능하였는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뮤직 비디오>(4분 16초)에서는 Day Light이 부른 주제곡을 본편의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음악과 함께 진행되는 <스틸 갤러리>가 수록되어 있다.
<아는 여자>는 장진 감독의 독특한 영화 세계에 호감을 가진 영화팬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팬들에게도 권할만한 담백하고 귀여운 로맨틱 코미디다. DI 방식을 채택하여 깔끔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재현한 DVD는 극장에서 느꼈던 감흥을 잘 재현하고 있다. 사랑을 막 시작하려하는 신선한 커플들에게 추천할만한 타이틀이다. |
첫댓글 어딘지 썰렁한.........ㅋㅋㅋ 오라버니 참.........썰렁하신가? 흠......... 직접 보구싶네? 히히..
앗..雲님..이거 장사모에 퍼뜨릴 께요....정작 거기엔 없는 정보네요.....ㅎㅎㅎ....
네 얼마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