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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少數民族)
당대(唐代)의 동아시아 지도 / 중국 고대의 지역구분 / 고구려 쌍영총(雙楹塚) 벽화<평남 용강>
중국은 면적이 959만 6,960㎢로 러시아, 미국, 캐나다에 이어 세계 4위이다.
인구는 중국정부 발표로 약 14억, 세계 1위로 그보다 더 많을 수 있는 것이 예전에 인구의 급증을 막으려 자녀를 1명만 낳도록 법제화하던 시절이 있어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인구도 많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황하(黃河)와 양자(揚子-長江) 두 강이 서쪽에서 동쪽 황해로 흘러드는데 황허 유역에 고대문명 유적이 발굴되면서 황하문명(黃河文明)이라 하였고 세계4대 문명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중국 인구는 대부분 한족(漢族)이고, 몽골(蒙兀/蒙古)족, 회(回)족, 장(藏)족, 묘(苗)족, 조선(朝鮮)족 등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소수민족은 전체 중국 인구의 약 7~8%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은 전체 면적의 약 50∼6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족(漢族)은 대륙의 동부 중심지역인 중화(中華-華夏)을 차지하고 소수민족들은 대부분 변경지역에 거주한다.
중국 한족(漢族)은 자기 민족만 문명족이고 주변의 민족들은 모두 야만인이라는 표현으로, 북쪽지방 민족은 북적(北狄), 남쪽은 남만(南蠻) 동쪽은 동이(東夷), 서쪽은 서융(西戎)이라고 했는데 적(狄), 만(蠻 ), 이(夷), 융(戎)은 모두 오랑캐, 미개인이라는 의미이다.
1. 중국 소수민족(少數民族)의 분포
몽골족 / 몽골 여인들 / 아이누족 / 아이누족 입술 문신(紋身) / 아이누족 / 조선족
중국 한족(漢族)은 예전 변방의 소수민족들을 모두 야만인들로 치부하여 중원을 중심으로 북쪽은 북적(北狄-북쪽 오랑캐), 남쪽은 남만(南蠻-남쪽 오랑캐), 서쪽은 서융(西戎-서쪽 오랑캐), 동쪽은 동이(東夷-동쪽 오랑캐)로 비하(卑下)했다.
오랑캐라는 말은 중국인들이 변방에 살던 소수민족을 미개한 종족들이라는,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서양세력이 밀려오자 서양(유럽) 사람들까지도 오랑캐라 부른다.
북적(北狄)은 ‘이리(狄)가 많은 지역’이라는 의미로 중국 북쪽 만주(滿洲)와 요동(遼東) 반도 지역을 말하고, 거란(契丹)족이 세웠던 요(遼)나라, 여진(女眞-靺鞨)족이 세웠던 금(金)나라, 몽골(蒙兀-蒙古)족이 세웠던 원(元) 등이 대표적인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수많은 작은 나라들도 있었다. 남만(南蠻)은 ‘벌레(蠻)가 많은 지역’이라는 의미인데 중국 남부지역과 동남아시아를 의미하며 윈난성(雲南省)의 따리국(大理國)은 타이(泰國)족이 세운 나라였고, 구이저우(貴州省)에는 이족(彝族) 족장 맹획(孟獲)이 세운 나라도 있었는데 제갈공명이 남만정벌(南蠻征伐)에 나서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어 7종 7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古事)가 생겼는데 너무도 유명하다.
서융(西戎)은 ‘깃발(戎)을 내건 종족’이라는 의미로 중국 서부 깐수(甘肅)성 서쪽으로, 텐샨(天山)산맥 인근 우루무치(乌鲁木齐), 타클라마칸 사막, 사하라사막, 쿠무타크 사막 등 메마른 땅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이곳은 위구르족(维吾尔, 일명 回纥族), 티베트족(土蕃國), 흉노족(匈奴族), 선비족(鮮卑族), 훈족(Hun), 돌궐(突厥, Turk)족 등이 살던 지역으로 고창(高昌)국, 교하(交河)국, 누란(樓蘭) 등 수많은 소수민족 나라들이 흥망을 거듭하던 곳이다.
동이(東夷)는 ‘동쪽의 주검(夷)과 같은 지역’이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중국의 동쪽지역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이다.
당시 우리 한민족은 스스로 환단족(桓檀族), 배달족(倍達族)이라 칭했지만 일본은 일본열도 원주민이었던 아이누(アイヌ, Ainu)족이 있었는데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종족이니 동이(東夷)는 우리민족 만을 일컫는 의미였겠다. 그런데 이(夷)는 <오랑캐 이, 평안할 이, 평평할 이> 등의 의미가 있고 글자를 보면 큰 대(大)자에 활 궁(弓)이 합쳐진 글자로 동이(東夷)의 의미는 ‘동쪽의 큰 활을 쓰는 민족’이라는 의미라 할 수 있다. 옛날 우리 민족은 실제로 다른 민족들보다 훨씬 큰 활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 영향인가 현재 세계 양궁(洋弓)대회에서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쓸어온다.
일본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한반도를 거쳐 들어간 북방(北方) 퉁구스계 종족과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온 남방계 주민들, 그리고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 등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민족으로 보고 있다. 현재는 일본 인구가 1억 2천만이 넘지만 16세기 에도(江戶)시대에 이르러 국가형태를 갖추고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
일본 아이누족은 북방민족으로 황인종에 속하는데 문화도 특이할뿐더러 그 수도 엄청나게 줄어들어 지금은 일본열도(주로 北海島)에 거주하며, 전체 숫자가 2만 명 남짓이라고 한다.
이들은 수렵민족으로, 특징 중 하나는 여자들이 입술을 엄청나게 크게 보이도록 문신(文身)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서는 중공군(中共軍)과 북한 공산군을 오랑캐라 불렀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 데 초개(草芥)로구나. 나아가자 나아가 승리의 길로~~~~’
이 노래는 6.25 때 불리던 우리나라 군가(軍歌) ‘승리의 노래’인데 내가 어렸을 적에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때 팔짝팔짝 뛰면서 부르던 노래로 더 기억에 생생하다. <초개(草芥)-하잘것 없는 지푸라기>
2. 몽골족이 세웠던 원(元)나라
훈(Hun-匈奴)족 / 몽골(蒙兀-蒙古)족 / 튀르크(突厥)족 / 먀오(苗)족 아가씨들과
중국은 고대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족(漢族)들끼리도 수백 개의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변방의 소수민족들도 국가를 형성하여 한족과 맞섰던 나라들도 수백 나라였는데 그중, 몽골족 칭기즈칸이 세웠던 원나라는 손자인 제5대 황제 쿠빌라이 때 남송의 항복을 받아내고 중국 전체를 차지하였는데 1279년이다. 중국 전체를 점령한 것은 물론 유럽까지 세력을 펼쳤지만 1368년에 명(明)나라에 멸망하고 한족(漢族)에게 정권이 되돌아갔으니 중국은 79년간 변방의 오랑캐에게 전 국토를 내어주었던 셈이다. 대초원의 유랑민족이었던 몽골족은 칭기즈칸(成吉思汗)에 의하여 국가형태를 정비하는데 뛰어난 전술과 용맹성으로 전쟁마다 승리를 거머쥔 것으로 유명하다. 수차례에 걸친 유럽원정은 중동지역을 시작으로 동유럽까지 승승장구 쳐들어간다. 당시 중동지역에는 이슬람이 정권을 쥐고 있었는데 이슬람 종파 중의 하나인 시아파의 분파인 이스마일파는 어쌔신(Assassin)이라 불리는 암살파로 악명을 떨치던 교파였다.
총대장은 ‘산의 장로’라고 불렸던 ‘하산 이분 사바하’였는데 천혜의 요새로 알려진 알라무트 산꼭대기에 난공불락의 본거지를 차려놓고 젊은이들을 모아 암살훈련을 시킨 후 대마초(페르시아어로 해시시)를 수시로 흡입하게 하고 무자비한 암살을 일삼았는데 이들의 본거지를 ‘매의 둥지’라고 불렀다. 이들은 신출귀몰한 암살기술에다 마법사의 훈련도 받아 물속에서, 땅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솟아나와 암살을 하고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주변에 있던 중동의 제후들은 이들을 없애려고 매의 둥지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암살자들은 귀신도 모르게 제후들의 성으로 숨어들어 제후들을 암살해 버려서 아무도 이 집단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란(Iran) 셀주크 왕조(Seljuk 王朝)의 고위 재상과 장군 등 이들에게 희생된 고위직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이들은 간혹 붙잡히면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살해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도 몽골군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매의 둥지를 함락했고 곧바로 불을 질렀는데 일주일간이나 불탔다고 한다. 몽골군과 마주쳤던 사람들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몽골족에 치를 떨었고 ‘몽골군이 지나간 자리는 풀 한 포기,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중동지역과 유럽에서는 울던 아이도 ‘몽골군이다’ 하면 울음을 뚝 그치고 부들부들 떨었다고 한다.
3. 홍콩(香港)과 대만(臺灣-自由中國)
홍콩과 마카오 / 영국령 홍콩 국기(반환전) / 홍콩(香港) 국기(반환후) / 자유중국(臺灣) 국기 / 오성홍기(중국 국기)
가장 최근에 중국이 소수민족으로 문제가 되었던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우선 홍콩(香港)이다.
중국 대륙 동남부에 바다로 삐죽이 내민 구룡반도(九龍半島)의 끝부분이 홍콩인데 중국대륙을 청(淸)이 지배하던 시기, 세계 최대의 강국이었던 영국(英國)이 인도(印度)를 점령하고 인도에서 아편(阿片)을 생산하여 중국으로 들여와 팔아서 부를 챙기고 중국은 아편천국이 된다. 곧 영중(英中)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 바로 영국과 중국이 맞붙은 아편전쟁(阿片戰爭, 1839~1842)이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영국에 패하자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불한 것은 물론, 난징조약(南京條約)을 체결하며 홍콩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어 홍콩은 영국령이 된다. 중국은 청(淸)이 몰락한 후 명(明)나라 때 이르러 꾸준히 홍콩의 반환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결국 빼앗겼던 홍콩을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되었으니 155년 만에 돌려받은 셈이다. 그동안 영국의 통치 아래 서구의 민주화에 물든 홍콩주민들은 공산주의(共産主義) 정권인 중국 정부에 맞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다 중국 공안이 난사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태까지 터진다. 아직도 홍콩주민들은 중국공산당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갖은 악랄한 방법까지 총동원하여 홍콩주민을 짓누르고 있다니 가슴 아픈 일이다.
거기에 홍콩과 인접한 마카오(Macau-澳門)도 1888년 포르투갈이 점령하여 홍콩처럼 포르투갈령(領)이 되었다가 1999년 반환되었는데 이곳은 무역항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밀수(密輸)의 왕국, 도박(賭博)의 왕국이라 불릴 만큼 관광도시로 유명했던 도시인데 홍콩과 비슷한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홍콩(香港)은 홍콩특별행정구(廣東省 九龍半島)로, 마카오는 마카오특별행정구(廣東省)로 되어있다.
하나 더 부연하면, 1949년 중국 국민당(國民黨)의 장개석(蔣介石)이 공산당(共産黨) 모택동(毛澤東)과의 국공(國共)내전에서 패배하자 대만(臺灣)으로 피신하여 자유중국(自由中國)을 건설하나 지금까지도 중국에서는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영토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만은 자유진영에서 볼 때 공산정권인 러시아, 중국, 북한의 남하를 저지하는 ‘태평양 전선(太平洋 戰線)의 주요 길목이다. 유엔을 비롯하여 미국 등 서방의 모든 나라에서 자유중국을 옹호(擁護)하지만 중국은 대만해협을 봉쇄하고 군사력을 과시하며 대만을 괴롭히고 있다.
아울러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를 더 꼽아보면 대만(臺灣)의 수도(首都) 타이베이(臺北) 시내 공원에는 ‘알알빠(二·二·八)’라는 기념공원이 있는데 장개석(蔣介石)이 처음 대만으로 와서 자유중국(自由中國)이라는 국가설립을 선포하자 대만거주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고 한다. 1947년 2월, 원주민과의 알력으로 전투가 벌어져 한 달여 만에 진정이 되었는데 희생자만 3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4. 티베트(吐藩)와 우루무치(乌鲁木齐)
티베트족(吐蕃族, 藏族) / 좡족(壯族) / 둥족(侗族) / 부이족(布依族)
티베트(Tibet)는 예전, 토번(吐蕃)이라 불렀는데 최초의 국가형성은 6세기, 송첸캄포(松贊干布)에 의해 정식으로 티베트왕조가 열려 국가형태를 갖추게 되며, 한때 막강한 세력으로 7세기 당나라의 수도인 낙양까지 점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1950년 10월 중국공산당 인민해방군은 티베트를 침공하여 점령하여 중국의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로 전락(轉落)되며 수많은 티베트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는 독실한 불교국가로, 티베트불교는 일명 라마교(Lamaism)라고도 불리는 대승불교 겔룩파(黃帽派/황모파)의 한 갈래이다. 밀교(密敎)로 분류되는 티베트 불교는 의식을 치를 때 스님들이 황색 법의(法衣)와 머리에 황색의 커다란 모자를 써서 황모파(黃帽派)로 불리기도 한다.
포탈라궁(티베트 수도 라싸) / 달라이라마 / 배리 커즌 / 오체투지(五體投地)
티베트인들은 티베트의 수도(首都) 라싸(Lasa-拉薩)에 있는 포탈라궁(Potala Palace-布达拉宫)과 티베트불교의 총본산(總本山)이라 일컫는 조캉(Jokhang-大昭寺) 사원 성지순례를 위하여 수천리 먼 고원지대를 몇 달씩이나 걸리면서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다녀가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부처님께 절을 올릴 때 두 무릎과 두 팔꿈치, 그리고 이마까지 다섯 부분을 땅에 대고 절을 올리는 예경(禮敬) 방식인데 성지순례 때는 세 발자국(三步一拜)을 옮기고 오체투지를 한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먼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짚은 다음 쭉 앞으로 내밀고 이마를 땅에 대야 하는데 손에는 나무판자로 대어 쭉 내밀 때 손바닥이 다치지 않게 한다. 또 무릎과 팔꿈치도 땅에 쓸려 상처가 나기 때문에 가죽으로 덧대는데 몇 개월 씩 걸리는 순례로 손바닥을 보호하는 나무판자와 가죽으로 만든 무릎보호대가 수십 개씩 닳아 없어져서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먹을 양식과 잠자리 천막 등을 손수레에 싣고 따라오는 사람과 동행을 한다. 티베트의 최고 통치자였던 티베트불교 제14대 달라이 라마(Dalai Lama-達賴)인 텐진갸초는 1959년, 중국의 침공으로 인도로 망명하여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록의 달람살라(Dharamshala)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현재까지 그곳에 거주하고 있다.
텐진가초(Tenzin Gyatso)는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으로 추앙받는 분으로 198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지만 중국 정부에서는 인정하지 않고 계속 비하하며, 제2 종파인 판첸라마를 내세우기도 했다.
옴마니반메훔(唵麽抳鉢銘吽-밀교 眞言) / 황모파(黃帽派) / 조캉사원 / 금강계(金剛界) 만다라(曼陀羅)
또 한 분, 미국인 배리커즌은 미국 버클리 대학(UC Berkeley)에서 철학, 남가주 대학(USC)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1986년 워싱턴 대학 의대에 재직 중 라마(티베트 승려)를 만나 티베트 불교에 입문하는데 1989년 달라이라마로부터 계(戒)를 받고 라마승이 되어 달라이라마(텐진가초)의 주치의(主治醫)가 되었다. 배리커즌(1946년생)은 달라이라마(1835년생)를 모시는 것이 너무 기뻐서 ‘스승인 달라이라마를 모시는 것이 너무 기뻐서 가끔 내 살을 꼬집는다.’고 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티베트불교는 밀교(密敎)에 속하는 교파로 어느 곳을 가든지 티베트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진언(眞言) 문구인 ‘옴마니반메훔(OmmanipadmeHum)’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옴(Om)은 우주의 소리(에너지)를 의미하고 마니(mani)는 여의주(如意珠)로서 깨끗한 지혜를 상징하며, 반메(padme)는 연꽃으로서 무량한 자비를 상징하고, 훔(Hum)은 우주의 소리를 의미한다고 하여 해석하면 『옴~, 연꽃 속에 있는 보석이여, 훔~』 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는 주문(呪文)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수리수리 마하수리』도 있는데 세간에서는 엉터리 마술사의 주문이나 장난스러운 주문(呪文) 등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이 말은 불교 ‘천수경(千手經)’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이 주문의 내재(內在) 된 의미는 ‘드디어 내가 깨달았다. 이제까지 골치 아팠던 모든 잡귀(雜鬼)는 모두 물러나고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리라는 믿는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천수경(千手經)의 첫 시작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입으로 지은 업(業)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참된 말(淨口業眞言)’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라는데 단어를 풀어보면 ‘수리’는 길상존(吉祥尊), ‘마하’는 크다는 뜻으로 ‘마하수리’는 대길상존(大吉祥尊)이라는 뜻이다. ‘수수리’는 ‘지극하다’의 뜻이고, ‘사바하’는 원만(圓滿), 성취(成就)의 뜻이므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본뜻은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원만, 성취하소서”가 된다. 이것을 세 번 연거푸 외우는 것으로 입으로 짓는 모든 업(業)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입을 깨끗이 정화(淨化)한 후 비로소 거룩한 천수경(千手經)의 내용을 읽기 시작한다고 한다.
천수경(千手經)은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찬양하는 불교 경전으로 길상존(吉祥尊)이 곧 관세음보살이다.
또, 만다라(曼陀<茶>羅)가 있는데 만다라는 불법(佛法)의 모든 덕(德)을 고루 갖춘, 완벽한 경지를 일컫는 말인데 여러 가지 그림으로 나타낸다. 만다라는 원래 원(圓)을 상징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수십 가지의 종류가 있다. 그런데 금강계 만다라(사진)나 태장계 만다라는 네모형태를 이루고 있어 재미있다.
5. 옥의 길(Jade Road)과 비단길(Silk Road)
사막 캐러번 / 장건(張騫) 장군 기마상 / 양관 봉수대 / 투자(土家)족 소녀들 / 중앙아시아 지도
우루무치(乌鲁木齐)는 톈산산맥(天山山脉)의 북부 기슭, 중가리아(准噶尔) 분지(盆地)의 남단의 도시로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초지’란 뜻이라고 한다. 평균 해발 800m에 달하는 고산 초원 지대이며, 과거에는 위구르(维吾尔)족을 비롯해 이란(Iran)계 종족인 타지크(Tadzhik)족, 몽골계인 카자흐(Kazak)족, 몽골(蒙兀)족 등 다수의 유목민들이 살던 곳으로 ‘민족의 십자로’란 애칭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위구르(维吾尔)족은 예전 왕국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사람들의 생긴 모습을 보면 순수한 아시아계가 아니라 중동지역의 피가 섞여 있는 느낌인데 특히 여자들의 미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중국 중원에서 보면 엄청나게 먼 북방지역으로 BC 2세기,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때 장건(張騫) 장군은 이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흉노(匈奴)를 정벌하러 왔다가 오히려 포로가 된다. 10여 년간 볼모로 잡혀 있으면서 흉노(匈奴) 여자와 결혼을 하여 자녀도 있었지만 결국 탈출하여 한무제(漢武帝)에게 이곳의 지리와 풍습 및 군사현황을 상세히 보고하고 다시 군사를 몰과와 흉노토벌에 큰 공을 세운다.
또, 당시 중국의 서쪽 관문이었던 이곳에 양관(陽關)을 세우고 서양과의 문물을 교역하는 대상로를 열었으며 훗날 중국의 비단(Silk)을 싣고 가는 통로를 개설한 장본인이 장건(張騫)장군으로, 이 길이 곧 실크로드(Silk Road)이다. 실크로드(Silk Road)라는 말은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이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총 길이 6,400km(1만 6천리)에 달하는 실크로드는 중국 중원 지방에서 시작하여 깐수성(甘肅省)의 하서회랑(河西回廊)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북 도로를 따라 파미르(Pamir) 고원,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고원을 지나 지중해에 이르는 중국 비단을 싣고가던 길로, 최종 도착지는 소아시아반도 끝의 이스탄불(Istanbul)이었을 것이다.
양관(陽關)을 나서면 곧 광막(廣漠)한 타클라마칸(Takla Makan) 사막(沙漠)이 펼쳐지는데 사막을 건널 수 없으니 이곳 북쪽에 가로로 뻗쳐있는 천산산맥(天山山脈)을 중심으로 천산북로와 천산남로가 개설되고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쿤룬(崑崙)산맥의 북쪽 기슭으로는 서역남로(西域南路)도 있었다고 한다. 양관(陽關)은 글자 그대로 뜨거운 햇볕(陽)으로 가득 찬 불모(不毛)의 땅으로 이곳을 나서면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Takla Makan) 사막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타클라마칸 남쪽 히말라야산맥 기슭 칭하이성(靑海省) 호탄(和田/和闐, 일명 허텐)은 옥(玉)의 생산지로 유명했는데 이곳 양관을 통과하여 훨씬 쉽게 장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처음에는 옥의 길(Jade Road)이라 하다가 훗날 비단길(Silk Road)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천산산맥 북록(北麓)의 우루무치(乌鲁木齐)는 신장(新彊) 위구르자치구(维吾尔自治區)의 중심도시로 인구는 440만 정도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전체 면적은 중국 대륙 면적의 1/6, 인구는 2,600만으로 14억 중국인구의 1/60로 인구밀도는 낮지만, 중국 제일의 지하자원 보고로 석유 매장량 및 생산량은 중국 1위이고 석탄 등 지하자원 매장량도 무진장이어서 위구르인들이 독립을 요구하지만 중국정부에서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겠다.
이곳은 위구르족(45%), 한족(40%), 카자흐족(7%) 및 기타 몽골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언젠가 우루무치 시내 중심가에 세워져있던 모택동(毛澤東) 동상을 위구르인들이 쓰러뜨려서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내가 여행할 때도 밤에도 경비병이 지키고 있었고, 한족들은 위구르인들 매우 나쁘게 보는 듯 했다.
고창고성(高昌故城) / 교하고성(交河故城) / 파리쿤(巴里坤) 목장 승마체험 / 한혈준마(汗血駿馬)
나는 2010년 8월, 실크로드 기행 중 이곳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은 중국 소수민족들의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고 역사의 애환이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한도 끝도 없어서....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온통 메마른 황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곳이지만 고창고성(高昌故城), 교하고성(交河故城), 누란왕국(樓蘭王國), 2천 년 역사의 투루판(吐魯番) 지하수로(地下水路) 등 유적이 수없이 널려있고 명대(明代)의 작가 오승은(吳承恩)이 쓴 서유기(西遊記)에 나오는 하서회랑(河西回廊), 천불동(千佛洞) 계곡, 화염산(火焰山)을 비롯하여 한혈준마(汗血駿馬) 이야기까지, 너무도 신기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고창고성(高昌故城) 유적은 성벽(城壁)과 진흙 벽돌로 세운 벽들이 제법 온전히 서 있었다. 이곳이 투루판(吐鲁番)인데 돌궐어로 ‘풍요로운 땅’이란 뜻이고 당시 동서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손오공(孫悟空), 저팔계(豬八戒), 사오정((沙悟淨)을 데리고 인도(印度)로 불경을 가지러 가던 삼장법사(三藏法師)가 갖은 고초 끝에 이곳에 도착하는데, 이곳 고창왕(高昌王)은 삼장법사의 불법을 듣고 난 뒤 감동하여 계속 설법을 요구하며 놓아주지를 않는다.
고창유적의 한 건물에 들어서면 한쪽에 제법 높은 단이 보이는데 고창왕은 신하들을 모두 데리고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삼장법사가 들어오면 단 밑에 왕이 엎드려 법사가 등을 밟고 올라가도록 하였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1년 동안 잡혀있던 법사는 돌아갈 때 꼭 다시 들르겠다는 약속을 하자 고창왕은 앞으로 지나가는 모든 나라 왕들에게 삼장법사를 극진히 대접하라는 문서를 들려 보낸다.
당시, 이곳 고창국은 세력이 굉장히 강하였던 나라로 특히 이곳의 말을 한혈준마(汗血駿馬)라 불렸는데 하루에 천리를 달려도 지치지 않았고 붉은 피(汗血)와 같은 땀이 흘러서 한혈마(汗血馬)라 불렸다 한다.
당시 중국 중원의 강국이었던 한(漢)나라의 무제(武帝)는 이 준마(駿馬) 이야기를 듣고 사신(使臣)에게 돈을 두둑이 주어 한혈준마 암수 한 쌍을 사신(使臣)을 보낸다.
고창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을 하는데 한혈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명마로, 이 말이 불어나면 수도 한(漢)의 수도 낙양(洛陽)에서 이곳까지 천리(千里)지만 단숨에 쳐들어올 것이다. 이것은 우리 후손들에게 큰 재앙이 될 것이라는 신하들의 말을 듣고 고창왕은 사신(使臣)을 죽여 버렸다고 한다.
이 사실을 들은 한무제는 즉각 군사를 몰아 고창국으로 쳐들어와서 결국 고창국은 멸망한다. 인도에서 불경을 구해 돌아오던 삼장법사는 이 말을 듣고 고창국을 지나지 않고 빙 돌아 낙양(洛陽)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6. 누란(樓蘭)왕국과 누란의 미녀(美女)
누란(樓蘭)의 미녀 / 위구르(维吾尔)족 소녀 / 지하수로 측량 / 지하수로 흙 퍼 올리기
누란(樓蘭)왕국은 예전에 선선(鄯善)이라고 불렸던 나라로, 타클라마칸 사막의 언저리 고비사막 근처에 있던 왕국(王國)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누란왕국은 기원전 1,900년 경, 사막 가운데 로프노르(Lop Nor)라는 호수를 끼고 굉장히 번성하였던 왕국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사막화되어 그곳이 어느 곳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1927년, 스웨덴의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1863~1952)이 문헌 속에 나오는 신비의 고대국가 누란왕국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는데 기막히게도 1,500년을 주기로 흐름이 바뀌어 제자리로 돌아오는 하천이 딱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추어 오는 행운으로 그 유적(遺蹟)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는 하천 옆에서 도시유적과 묘지(墓地)도 찾아내는데 묘지가 작은 하천 옆에 있어 ‘소하묘(小河墓)’라고 명명했고, 이 유적이 문헌 속의 바로 그 누란(樓蘭) 왕국임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4,000년 전, 화려한 문화와 번영을 누렸던 누란(樓蘭) 왕국이 베일을 벗고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냈는데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한 여인의 미라(Mummy)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자그마한 키(155cm), 작은 머리에 오똑한 콧날, 치렁치렁 땋아 내린 검은 머리칼, 화려한 옷과 장식물로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의 미라는 건조한 사막의 모래 속에서 3,800년 동안 완벽하게 보존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옛 누란왕국의 영화와 번영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미라는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일명 ‘죽은 모나리자’, 또는 ‘누란의 미녀(美女)’라 불리게 되었다.
이 미라의 주인공은 누란왕국의 왕비거나 고위직 부인으로 보이는 45세 정도의 여인으로, 골격과 체형이 백인으로 보이며 그것도 서유럽 인종의 백인에 가까워 보이는데 현재 우루무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나는 이 우루무치 박물관을 둘러보며 고대 유물은 물론이려니와 수많은 다른 미라도 있었지만 다른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이 ‘누란의 미녀’를 보는 순간 이상한 감동에 사로잡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근처를 수차례 배회하며 설레는 가슴을 가라앉혀야만 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곳 투루판에는 역사가 2천 년이 넘는 지하수로(地下水路)도 있다. 건조한 지역의 분지인 투루판에서는 천산 계곡으로부터 땅굴을 파고 물을 끌어오는 수로를 건설하여 과일을 심어 가꿀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수로(水路)가 1천여 개, 길이는 짧은 것이 3km 정도에서 긴 것은 30k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수로를 건설할 때 파낸 흙을 퍼 올리기 위하여 수로(水路)마다 100여 개의 우물 형태의 수직 땅굴을 파고 흙을 퍼 올렸다고 하는데 그 유적이 현존함은 물론, 조형물까지 설치하여 놓았다. 어떤 수직 땅굴은 깊이가 100m가 넘는 것도 있다고 하는데 중국정부에서는 만리장성(萬里長城), 북경(北京)과 항주(杭州)를 잇는 1,500km가 넘는 대운하(大運河)와 함께 이 지하수로(地下水路)를 중국 3대 고대 건축물로 꼽는다고 한다. 우리가 이 수로를 관광하러 들어갈 때 관광객들의 소지품 검사를 일일이 한다. 혹시 독극물(毒劇物)을 수로(水路)에 풀까 하여 조사하는 것이라고....
또, 이곳 오아시스 농원에는 포도원도 많은데 생산되는 포도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은데 말린 건포도를 시장마다 종류별로 엄청나게 많이 쌓아놓고 판다. 건조 방법에 따라 품질이 다르고 가격도 차이가 나는데 나무에 매달린 채로 말리는 것이 제일 상품이고, 송이로 따서 건조장에 매달아 자연풍(自然風)으로 말리는 것이 다음인데 한 달쯤 걸린다고 한다.
요즘은 약품처리로 일주일 만에 말리는 것도 있는데 제일 하품이고 인체에 유해하다고 한다. 이 부근은 가는 곳마다 흙벽돌로 구멍이 뻥뻥 뚫리게 지은 포도 건조장을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이곳 오아시스 농원의 포도는 당도(糖度)도 무척 높고 가격도 우리나라 포도에 비하면 무척 싸다.
7. 하서회랑(河西回廊)과 막고굴(莫高窟)
천산천지 유람선 / 하서회랑(河西回廊) 천불동(千佛洞) / 월아천月芽泉)과 월천각(月泉閣) / 막고굴(莫高窟)
그 옛날 대상(隊商)들이 낙타에 비단을 싣고 다녔고, 서유기(西遊記)에서 삼장법사 일행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통과하였던 하서회랑(河西回廊), 일명 하서주랑(河西走廊)도 있는데 깐수성(甘肅省) 란저우(蘭州)에서 둔황(敦煌)에 이르는 대협곡(大峽谷)으로, 총연장 길이 1,000km(2,500리)에 이르고 한낮에는 기온이 80도까지 올라가서 길 위에 달걀을 깨어 놓으면 곧바로 에그후라이(Egg Fly)가 된다는 곳이다.
이곳은 황허(黃河)의 서쪽에 있는 계곡길(溪谷路)이라 하여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투루판 동쪽의 허미(哈密)는 공업과 무역도시로 부상하고 있지만 하밀과(哈密果-멜론) 생산지로 유명하고, 텐샨(天山) 산맥에는 천산천지(天山天池)라 부르는 산 위의 호수(해발 2,000m)도 유명하여 관광객들이 몰리는데 내가 보기에는 백두산 천지(해발 2,700m)보다 못한데 중국 사람들은 더 높이 꼽는다고 한다. 이 천산천지는 중국인들이 ‘생명의 여신’으로 추앙하는 서왕모(西王母)가 수영을 즐겼던 곳으로 믿는다는데 크기는 남북 3.5km, 동서로 0.8~1.5km 정도의 호수(湖水)로 항상 유람선(遊覽船)이 떠 있다.
천불동(千佛洞)은 중국 남북조(南北朝)시기에 조성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모두 70여 개의 동굴로 고대 고창국(高昌國)의 사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하여, 훼손이 심하여 안타까웠다. 천불동(千佛洞)은 1,000명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동굴이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설악산에도 천불동 계곡이 있다. 바람이 불면 모래를 스치는 바람결로 음악소리가 난다는 명사산(鳴沙山), 그 아래 초승달 모양의 월아천(月芽泉), 그리고 그 옆에는 날렵하게 서 있는 월천각(月泉閣)도 이곳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인데 월천각에 올랐을 때 감회가 새로웠던 기억....
청해성(靑海省)의 돈황(敦煌)은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인 돈황(敦煌) 막고굴(莫高窟)로 유명한데 AD 4세기부터 건축되기 시작한 굴로, 이후 1,000여 년에 걸쳐 꾸준히 건축되어 동굴이 1,000개가 넘는다고 하며 이 또한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불리는데 두루 둘러 보았지만 그중, 특히 제17호 굴인 장경굴(藏經窟)이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 얽힌 이야기로, 당대(唐代)에 이곳 막고굴의 관리를 책임지고 있던 도교 태청궁(太清宮)의 도사(道師) 왕원록(王圓籙)은 일꾼이 제16호 굴의 벽이 조금 이상하다고 하여 벽을 두드리니 벽 뒤에 빈공간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벽을 헐고 찾아낸 것이 제17호 굴인 장경굴(藏經窟)이다.
그 방에는 경전(經典), 고문서(古文書), 서화(書畫), 공예품(工藝品) 등이 5만여 점이나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중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신라 혜초스님의 인도 여행기인 ‘왕오천축국전’ 원본이 발견된 것이다. 이 막고굴의 보물들은 세계 보물도둑들의 손에 거의 도둑맞았는데 우리 혜초(慧超) 스님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은 현재 프랑스의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8. 소수민족(少數民族) 자치주(自治州)
이족(彛族) / 이족(彝族) 전통춤을 함께 / 후이족(回族-이슬람족) / 하니족(合尼族)
중국에는 자치구(自治區)들이 있는데 신강위구르(新疆维吾尔)자치구, 티베트(吐蕃)자치구, 내몽골(內蒙古) 자치구가 그것으로 언어, 문자, 혈통, 복색, 관습의 차이가 크다. 그 아래 각 성(省)마다 다시 작은 규모인 자치주(自治州) 들도 있는데 같은 종족이면서도 각성(省)마다 여러 곳에 자치주가 흩어져 있다. 여러 소수민족 중에 가장 인구가 많은 족이 장족(壯族)으로 1,700만, 다음으로 만주족(滿洲族), 회족(回族), 위구르족(维吾尔族)이 1,000만 정도이고 우리 조선족(朝鮮族)은 200만 정도라고 한다.
청해성(靑海省)은 대부분 티베트(吐蕃)족과 회(回)족이 거주하는데 자치주 앞에 붙은 지명에서 ‘해(海)’는 청해호(靑海湖)를, ‘황(黄)’은 황하(黃河)를 가리킨다. 칭하이호(靑海湖)는 중국 최대의 내륙호(內陸湖)로 티베트고원 동부에 있는데 물이 짠 염호(鹽湖)로 제주도 면적의 2.3배나 되는 호수이다.
또 중국 남부 운남성(雲南省)은 이(彛)족, 바이(白)족, 다이(傣萌)족, 티베트(짱족-藏)족, 좡(壯)족, 먀오(苗)족, 리수(傈僳)족, 하니(合尼)족 등 소수민족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많은 소수민족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중국의 각 성(省)들 / 중국 서북부(西北部) 지도 / 중국 서남부(西南部) 지도
중국은 북쪽으로 몽골과 러시아, 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쪽으로는 네팔, 부탄, 방글라데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과 그리고 동쪽은 우리나라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산맥은 몽골과 접경지역인 신강위구르자치구 쪽에 동서로 뻗은 천산(天山)산맥이 있고 신강성(新疆省)의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에는 곤륜(崑崙)산맥이, 네팔(Nepal)과 접경지역인 남쪽으로는 세계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히말라야(Himalayas)산맥이 놓여있다. 중국에서 동서양(東西洋)을 잇는 도로로는 천산(天山)을 가운데 두고 비단을 실은 낙타가 다니던 실크로드인데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천산남로(天山南路)가 있고 타클라마칸 사막 남쪽 곤륜(崑崙)산맥 기슭으로 지나가는 서역남로(西域南路)도 있다.
또 히말라야 설산을 넘나드는 차마고도(茶馬古道)도 있었는데 중국에서 티베트(Tibet)와 네팔(Nepal)을 거쳐 인도(印度)에 이르는 험난한 계곡 길로, 중국에서는 주로 보이차(普洱茶)를 싣고 가서 팔아서는 티베트의 말(馬)을 사 오는 도로로 처음 시작되어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게 되었다.
이 차마고도(茶馬古道)는 두 갈래의 길이 유명했는데 첫 번째는 운남성(雲南省)의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출발하여 쓰마오(思茅)⇒따리(大理)⇒리장(麗江)⇒샹그릴라(香格里拉)⇒더친(德欽)을 거쳐 티베트와 네팔, 그리고 인도까지 가는 길이었고 또 하나는 쓰촨성(四川省) 아안(雅安)에서 출발하여 대도하(大渡河)⇒캉딩(康定)⇒더거(德格)를 거쳐 티베트와 네팔을 지나 인도(印度)에 도착하는 루트였다고 한다.
이 차마고도(茶馬古道)는 비단길인 실크로드(Silk Road)보다 200년이나 먼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해발 4,000m가 넘는 험준한 길과 눈 덮인 5,000m급 이상의 설산(雪山)과 협곡(峽谷)을 잇는 이 길을 통해 차(茶)와 말(馬)은 물론, 소금, 약재, 곡식 등 다양한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음은 물론 여러 이민족(異民族)의 문화(文化)와 종교(宗敎)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그 길이가 장장 5,000km에 이른다고 하니 1만 리가 넘는 길인 셈이다.
9. 이상향 ‘샹그릴라’와 모계(母系)사회 먼빠족(門巴族)
옥룡설산(玉龍雪山) / 샹그릴라 마을 / 모계(母系)사회 먼빠족(門巴族) 마을 / 먼빠족 여인
운남성(雲南省)에는 곤륜(崑崙)산맥의 끝자락인 옥룡설산(玉龍雪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이곳은 나시족(納西族)의 자치구로 최고봉은 5,596m나 되어 항상 흰 눈에 덮여 있어 설산(雪山)이라 불린다.
1933년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1900~1954)은 자신이 꿈꾸던 가상(假想)의 이상향을 설산(雪山) 속에 그려내는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발표한다.
작품 속에 샹그릴라(Shangri-La)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상향(理想鄕)은 티베트 곤륜산맥(崑崙山脈)에 있는 라마교 사원 공동체를 그려내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노화(老化)가 느려서 일반적인 수명을 넘어 거의 불멸(不滅)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샹그릴라는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모든 근심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평화로운 생활이 가능한 천국 같은 곳으로 그려진다. 2001년 중국 정부는 중국 정식명칭이었던 이곳 티베트 중뎬현(中甸縣, Zhongdian)이라는 명칭을 샹그릴라(香格里拉)로 개명하여 관광지로 개발하였는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히말라야산맥 끝자락 사천성(四川省) 서쪽의 오지인 고산(高山) 협곡에 여왕곡(女王谷)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먼빠족(門巴族)의 마을로 모계(母系)사회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일부일처(一夫一妻)가 대부분이고 드물게 일부다처(一夫多妻)로 남편 한 사람이 처를 여러 명 두는 것이 첩(妾)인데 여왕곡의 먼빠족(門巴族)은 일처다부(一妻多夫)로 여자가 가장(家長)이고 그 아래 지아비(남편)를 여러 명 두는 제도가 지금도 지속(持續)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성씨는 가장인 여자의 성을 따르게 되는데 이 부족은 예전부터 여자들이 자식을 낳으면 대부분이 남성(男性)이고 여성(女性)의 출생률이 매우 낮았다고 하는데 현재에도 거의 8:2 정도의 수준으로 남자가 많다고 한다. 가세(家勢)가 부유한 가정에서는 가장(家長)인 여인(女人)은 8~10명의 남편을 두게 되는데 남편이라야 그저 법적으로는 남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비(奴婢)나 다름없다고 한다.
가장인 여인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잠자리는 순번을 정하여 하룻밤에 4~5명이 되기도 하고...
집안이 부유하고 가장인 여인이 아름다우면 남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가려내느라 어렵다고 한다. 땅이 많아 노비(奴婢:일꾼)를 한명이라도 더 쓴다는 명목으로 한 두 명 남편을 늘리면 가장인 여자가 고역을 치르게 되었을 것이다.
임신(妊娠)하고 아이를 낳으면 어느 남편의 씨로 임신 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여자(엄마)의 성씨(姓氏)를 따른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모계사회(母系社會) 풍습에 거부감을 느낀 남자들이 인근의 티베트나 네팔 등지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부계사회(父系社會)에 적응하는 추세라 전전긍긍이라고 한다. 중국 정부에서도 부계(父系)사회로 돌리려 하였지만 먼빠족(門巴族)의 오래된 유습(遺習)이라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10. 우리 민족의 비극 ‘고려인 강제이주’
고려인 강제이주 경로 / 카자흐스탄 고려인 토굴집 / 광복군 단두(斷頭) 장면 / 끌려온 위안부 소녀들
중국 북동쪽에는 북쪽으로 삐죽이 내민 3개 성(省)을 북동 3성(北東三省)이라고 하는데 흑룡강성(黑龍江省), 길림성(吉林省), 요녕성(遼寧省)을 일컫는데 길림성과 요녕성은 우리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길림성(吉林省)에는 조선족 자치주가 있고 두만강은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바로 연해주(沿海州)이다. 우리 민족의 비극은 일제강점기, 일제의 만행을 피하려 중국 길림성의 간도(間島)와 소련(蘇聯)의 연해주로 피난을 가서 정착하는데 1937년, 러시아의 스탈린(Stalin)은 우리 민족(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시키는 횡포를 저지른다.
허허벌판 카자흐스탄의 불모지에 내팽개쳐진 우리 고려인들의 비극으로, 총 17만 명 정도가 강제이주를 당했고, 이주과정에서 2만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끝까지 살아남은 우리 민족(고려인)은 불모지를 일구어 곡창지대로 만들었다. 어디 그뿐이랴, 일제의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데 수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 광복군 포로의 참수(斬首), 어린 소녀들을 무조건 끌고 가서는 일본군 위안부(慰安婦)게 되게 하였다.
참고로 중국에 있는 각 성(省)의 소수민족 자치주(自治州)들을 열거해 본다.
①壯族(장족-雲南省:1천6백만) ②滿族(만주족-遙寧省:1천만) ③回族(회족-新疆省:9백8십만)
④苗族(묘족-湖北省,湖南省:8백9십만) ⑤維吾爾族(위구르족-新疆省:8백4십만)
⑥土家族(토가족-湖北省,湖南省:8백만) ⑦彝族(이족-四川省:7백8십만) ⑧蒙古族(몽골족-新疆省:5백8십만)
⑨藏族(장족,티베트족-四川省,靑海省:5백4십만) ⑩布依族(푸이족-貴州省:2백9십만)
⑪侗族(동족-貴州省:2백9십만) ⑫瑤族(야오족-廣東省,雲南省:2백6십만) ⑬朝鮮族(조선족-吉林省:1백9십만)
⑭白族(백족-雲南省:1백8십만) ⑮哈尼族(하니족-雲南省:1백4십만) ⑯哈薩克族(카자흐족-新疆省:1백3십만)
⑰黎族(리족-海南:1백2십만) ⑱傣族(다이족-雲南省:1백1십만) ⑲畬族(서족-折江省:7십1만)
⑳傈僳族(리수족-雲南省:6십3만) (21)仡佬族(거라오족-貴州省:5십8만) (22)東鄉族(둥샹족-甘肅省:5십만)
(23)拉祜族(라후족-雲南省:4십5만) (24)水族(수이족-貴州省:4십만) (25)佤族(와족-雲南省:3십9만)
(26)納西族(나시족-雲南省,四川省:3십만) (27)羌族(창족-四川省:3십만) (28)土家族(토가족-靑海省,甘肅省:2십4만)
(29)仫佬族(무라오족-廣西省:2십만) (30)錫伯族(시버족-新疆省:1십9만) (31)柯爾克孜族(키르키즈족-新彊省:1십6만)
(32)達斡爾族(다워얼족-新疆省,黑龍江省:1십3만) (33)景頗族(징포족-雲南省:1십3만)
(34)毛南族(마오난족-廣西省:1십만) (35)撒拉族(사라족-靑海省,甘肅省:1십만) (36)布朗族(부랑족-雲南省:9만)
(37)塔吉克族(타지크족-新疆省:4만) (38)阿昌族(아창족-雲南省:3만4천) (39)普米族(푸미족-雲南省:3만3천)
(40)鄂溫克族(어원키족-內蒙古:3만) (41)怒族(노족-雲南省:2만8천) (42)京族(경족-廣西省:2만2천)
(43)基諾族(지눠족-雲南省:2만) (44)德昂族(떠앙족-雲南省:1만8천) (45)保安族(바오안족-甘肅省:1만6천)
(46)俄羅斯族(러시아족-新疆省:1만5천) (47)裕固族(위구족-甘肅省:1만3천)
(48)烏茲別克族(우즈벡족-新疆省:1만2천) (49)門巴族(먼빠족-티베트자치구:9천) (50)鄂倫春族(어룬춘족-內蒙古:8천) (51)獨龍族(두롱족-雲南省:7천) (52)塔塔爾族(타타르족-新疆省:5천) (53)赫哲族(허쩌족-黑龍江省:4천)
(54)高山族(까오산족:4천) (55)珞巴族(쿼바족-티베트:3천)
중국 인구는 14억 4천 5백만 정도로 인도에 이어 세계 2위인데 인종을 보면 한족(漢族)이 92%, 55개 소수민족 총합계가 전체의 8% 정도라고 하며, 우리 조선족은 200만에 조금 못 미치니 순위로 따지면 13위 정도인데 소수민족 중에서 유일하게 대학(沿邊大學校)을 설립한 민족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