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로만(Eric Rohmann)
2004. 5. 19 신 정희
유명한 화가이자 프린트메이커이면서 뛰어난 북메이커이다. 많은 어린이책에 그림을 그렸지만,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어린이 책은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열 개의 눈동자』『내 친구 깡총이』세 권뿐이다. 첫 책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은 1995년 칼데콧 아너 상을 받았고, 『내 친구 깡총이』로 2003년 칼데콧 메달을 받았다. 또한 『대초원 열차』(글 앙트완느 오플라타르타)로 황금박차상을 받았다. 에릭 로만은 미국 애리조나 주 주립대와 일리노이 주 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하였으며, 지금은 시카고 근처에 살고 있다.
작품소개
이상한 자연사 박물관(Time Flies)
천둥 치고 비 오는 오후, 작은 새 한 마리가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아무도 없는 건물 안으로 날아들어간다. 이곳은 공룡의 뼈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커다란 박물관. 작은 새는 탐색이라도 하듯 공룡의 머리 위를 배회하면서 이빨 위에도 앉아보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어느 순간 공룡들이 살아 깨어난다. 뼈에 살이 붙고 살아있는 모습으로 중생대 그들이 번성하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작은 새 역시 그 난데없는 시대로 뛰어들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익룡을 비롯해 커다란 공룡들과 조우(遭遇)한다. 커다란 공룡의 입 앞에서 깜짝 놀라 날개짓하는 작은 새와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나'하는 표정으로 작은 새를 쳐다보는 공룡의 표정이 재미있다. 결국 새는 무시무시한 공룡에게 꿀꺽 잡아 먹히는데 공룡의 입안을 통과하면서부터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공룡은 다시 뼈만 남은 화석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박물관에서 새는 자신이 머물곳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듯 다시 창문 밖으로 날아간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림만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책 표지의, 커다란 공룡의 눈이 작은 새의 눈과 마주치는 그림은 극적이고 환상적인 이 책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데, 말로 이해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현실과 환타지를 색채대비(붉은색->초록색)와 테두리 흰 여백으로 구분하였고 글이 없는 덕택에 이 책이 전해주는 분위기나 느낌은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열개의 눈동자(The Cinder-eyed Cats)
한 소년이 작은 배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어느 섬에 도착하는 그림이 처음 몇장에 걸쳐 그려져 있다. 글은 한줄도 없다. 그래서 그 소년의 모습과 하늘을 나는 배, 그리고 섬의 모양을 찬찬히 보면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과연 그 섬은 어떻게 생긴 곳일까 하고. ‘머나먼 섬’이라는 글과 함께 신비한 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년은 모래사장에서 커다란 물고기를 만들고 놀다가 잠이 든다. 그런데 밤이 되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열 개의 눈동자. 동시에 독자를 쳐다보는 눈동자. 독자가 소년이 되는 순간이다. 소년은 호랑이들과 친구가 된다. 소년이 만든 모래 물고기는 살아 움직이고, 바다 속 물고기들도 하늘로 솟아올라 소년과 호랑이들을 반기며 밤이 깊도록 멋진 축제를 벌인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모두 사라지고, 소년은 섬을 떠난다.
그림이 매우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읽는 이는 소년이 기대어 잠든 모래 물고기가 감고 있던 눈을 뜨는 순간 깜짝 놀라고, 소년과 호랑이들 주위에서 밤 하늘을 맴돌며 모닥불 위로 소용돌이를 그리는 온갖 물고기들의 움직임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한줄 한줄 리듬감 있게 이어지는 문장은 그림에 혹한 마음을 방해 할 만큼 많지도,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 할 만큼 적지도 않아 스토리를 잘 살려주고 있다.
내친구 깡총이(My Friend Rabbit)
2003년 칼데콧 상 위원회는 ‘내친구 깡총이’를 선정하면서 에릭 로만이 보여준 그림책 독자에 대한 존중과 디자인에 대한 명민한 이해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위원회는 "에릭 로만의 그림은 굵은 외곽선과 밝고 엷은 배경색, 강렬한 색채 사용으로 풍부한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 "검정색 페이지 틀도 등장 동물들이 굴러 떨어지고 내동댕이쳐지는 극적인 장면들에서 보여 주는 토끼의 열정을 결코 가두어 버리지 않는다" 고 평가했습니다.
'깡총이와 찍찍이의 장난감 비행기 구출작전' 이라는 간단한 스토리이지만, 펼친 면 위에 꾸밈없으면서도 재치 있고 긴장감이 녹아 있는 적절한 글과 탄탄한 구성, 시선을 사로잡는 세밀한 표현은 생동감을 더해 줄뿐 아니라 독자들을 압도합니다. 특히 각 페이지의 검정 색 틀과 여기에서 이어진 사건의 시작과 움직임을 알려 주는 굵은 점선, 사건의 진행을 암시하는 배경 대 캐릭터의 면 대비, 사건의 전환을 보여 주는 수평과 수직의 화면 분할은 신나고 유쾌한 사건의 전후 과정을 잘 표현해 줄 뿐만 아니라 수준 높은 그림책 구성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 깡총이와 의리파 찍찍이는 항상 뭔가를 끊임없이 하지만 실수하고 또 그것을 만회하려다가 또 일을 저지르는 우리 아이들, 또 친구들 생각하고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진 우리 아이들과 무척 닮아, 이 책을 접한 어린이들은 어느 새 자신의 이야기인 양『내 친구 깡총이』에 빠져들 것입니다.
동물들의 표정과 동작을 유심히 살펴 읽으면 책의 재미가 더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