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일>
크다고 크지 않아
작다고 작지 않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군중에게 하늘나라에 대해 세 가지 비유로 말씀하신다.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은 곧 하느님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다. 나아가 하느님에 대한 말씀은 곧 우리에 대한 말씀이다. 이를 떼어놓고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의미 없다.
첫 번째 비유는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뿌렸다는 이야기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는 원수가 있다. 원수가 아무리 설치고 다닌다 해도 추수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확하신다. 가라지는 벼와 비슷해서 처음엔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다 자라면 너무도 쉽게 식별할 수 있다. 문제는 세상 끝나는 추수의 시간 이전까지 우리 눈에는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죽음을 앞둔 시간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일지 몰라도 젊은 시절, 한창 의욕이 넘치는 시절에는 착오를 일으키기 쉬울 것이다. 좋은 씨와 원수가 뿌린 가라지를 잘 구분하여 살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마지막 날 하느님의 곳간으로 모아들이는 수확물이 된다면 좋으련만.
두 번째 비유는 겨자씨 이야기다. 잘 아는 바와 같이 겨자씨는 참으로 작다. 그 씨가 자라 어떤 나무가 될 수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보기와 달리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나무가 된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보기에는 작고 하찮아 보여도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우리의 삶은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절대 작지 않다는 것이다.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냐, 아니면 원수의 현혹을 따른 것이냐가 결정적이다.
세 번째 비유는 누룩 이야기다. 누룩은 반죽에 들어가면 더는 볼 수 없다. 반죽에 누룩이 들었는지 아닌지는 빵이 부풀어 오르는지를 통해 확인된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만 찾는다면 자칫 하느님을 놓칠 수 있음이다.
세 가지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 이야기는 곧 우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에겐 하느님의 선물로써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마지막 추수 때 그분께서는 수확하신다. 하느님께서 뿌린 좋은 씨를 받아들여 열매를 맺을지 아니면 비슷할 뿐 가라지로 끝맺을지 그것은 우리에게 유보되어 있다. 비슷하다고 하여 똑같은 것이라고 우겨서 될 일이 아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대충 대충하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뜨겁든지 차갑든지(요한묵시록 3:15, 참조) 않으면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
겨자씨와 누룩의 이야기도 실제로는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 그 나라 건설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다. 너무 작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갖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크게 자라는 나무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여 부풀어 오르는 빵의 누룩처럼 그렇게 하느님 나라는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사는 이미 시작되었고 그 역사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으로 이에 대한 응답은 우리의 결정에 유보되어 있다.
신앙인의 자아는 세속 사람들의 자아와 다르다. 제1독서는, 하느님은 관대하게 통솔하시는 분으로 당신 백성에게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분(지혜 12:18 이하)이라고 전한다. 하느님께서 관대하시어 우리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데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관대한가? 자신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을 단죄한 나머지 하느님의 초대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가?
신앙인에게 있어 행복은 세속 사람들의 행복과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데서 삶의 행복을 느낄지 모르지만, 신앙인은 다르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뜻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성령의 도우심(로마 8:26 이하)으로 그 뜻에 동참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다. 그러므로 신앙인 자아의 자존감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하늘나라의 백성인 것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다. 하늘나라의 백성은 세속적인 열등감이나 불신에 빠지지 않는다. 비록 육신의 부모 양육이 불완전하여 우리 내면에 여러 성격이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성인이 된 지금은 신앙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관대(제1독서)하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제2독서)하신다. 원수가 뿌리고 간 가라지를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며 마지막 날, 추수 때까지 기다리신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지혜 8:26). 우리가 세상에서 나의 자유의지로 뭔가를 할 수 있을 때 이미 시작된 하늘나라에 동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느냐?’고 또 ‘하느님께서 어떻게 살아계신 지, 눈에 보여 봐라!’ 하며 빈정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서 없는 것이 아니다. 부풀어 오르는 빵을 보라! 작은 씨앗이지만 다 자라면 많은 새가 깃들 수 있다. 아집과 편견으로 눈을 가리지 말고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나약함에 머물지 말자. 하느님께서는 관대하시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작은 일일지라도 기쁜 마음으로 소신껏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