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천계의 비밀
신성한 매실 758
경찰병원이었다.
최림은 사흘 만에 겨우 깨어났다.
눈을 뜨니 수애가 의자에서 졸고 있었다.
최림은 놈의 체포 작전 때문에 그녀에게 연락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수애를 살포시 들어서 자신의 침대에 눕혔다.
‘으응’
최림의 눈엔 자는 수애의 얼굴이 마치 천사 같았다.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곤 TV를 켰다.
뉴스엔 사흘 전 놈의 체포 작전에 관련된 사항이 나왔다.
‘사흘 전 전두태 회장의 체포 작전으로 수하들이 모두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헬기 추락 후 수상 보트를 타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이후 행적이 오리무중이라고 경찰은 발표하였습니다.
경찰은 오늘도 한강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습니다.’
자료 화면엔 헬기에 매달린 최림의 모습도 나왔다.
당연히 미오는 없었다.
뉴스 앵커는 최림의 활약상을 부각했다.
최림은 함께 공을 세운 미오가 TV에 나오지 않아 마음이 씁쓰레하였다.
그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는 듯이 미오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엔 빵과 우유가 들려있었다.
헐!
미오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침대를 양보했네?”
“미오누나?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요?”
“오늘 왔어. 대신 수애 씨가 사흘 동안 여기에 있었어.”
“네? 정말요?”
“그럼, 수애 씨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이걸 사 왔는데. 깨울까?”
미오의 말에 최림은 손사래를 쳤다.
“알았어. 근데 이제 괜찮아?”
“견딜만하네요. 그런데 미오누나.”
“왜?”
“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경찰은 한강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다던데.”
그러자 미오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짱, 황이야.”
“네?”
“전능하신 그놈이 아직 한강 일대에 있겠어? 경찰이 헛짚은 거야.”
최림도 미오의 말에 동의했다.
그날 헬기가 추락하자마자 경찰보다 앞서 수상 보트가 왔다.
그건 놈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조력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우리 ‘악령퇴치반’은 놈의 소재 파악을?”
“당근이지. 놈은 분명히 지가 처음 세력을 키운 곳으로 돌아갔을 거야.”
‘처음 세력을 키운 곳?’
그러자 최림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마을 말이에요?”
“그래, 정확하게 말하면 지리산 일대지.”
최림은 초조한 듯 물었다.
“그럼, 그 사실을 경찰에게 말하지, 그랬어요?”
미오도 답답한지 고개를 저었다.
“니네 형사팀장에게 몇 번이나 말했지.”
“그런데요?”
“우리 의견을 번번이 뭉갰어.”
“왜요?”
“뭐, 수사는 과학적이어야 한다던가? 한강 근처에서 목격자도 있다던가 봐.”
최림은 한편으로 팀장이 이해되었다.
처음부터 이 작전에 공조한‘악령퇴치반’을 세상에 밝힐 수는 없었다.
언론조차 체포 작전에 경찰의 활약상만 나왔다.
놈의 체포에 지대한 성과를 낸 ‘악령퇴치반’A, B조는 처음부터 없는 거였다.
“그렇다면 우리라도 움직여야죠. 얼른 지리산에 가야 하는 게 옳지 않아요?”
하지만 미오는 고개를 저었다.
“마이클이 반대해.”
“왜죠?”
“서울에 남아서 놈의 잔당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하거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잡초를 제거할 때 번지는 잔뿌리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저는 여기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넌 최소 한 달은 입원 치료해야 할 거야. 몸이 많이 망가졌어.”
미오의 말에 최림은 벽을 쳤다.
그 소리에 수애가 벌떡 일어났다.
“어머, 내가 왜 여기에 있담?”
“수애, 일어났어?”
“최림, 이제 괜찮은 거야?”
둘이 다정스럽게 대화하자 미오가 한 소리 했다.
“영화를 찍네. 그래, 마음껏 찍어라. 난 담배 한 대 피울 테니까.”
미오가 나간 뒤 둘은 서로서로 위로했다.
최림은 수애가 홀로 부모님 장례 치른 것에 마음이 아팠다.
수애는 부모님의 원수를 잡다가 최림이 다친 것에 미안해했다.
이후 수애는 최림이 깨어난 걸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소식을 들은 경찰서에서도 팀장을 비롯한 형사팀원들이 다녀갔다.
최림은 팀장에게 아까 미오와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팀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자기 의견을 툭, 하고 내뱉었다.
“정 그렇다면, 네가 퇴원 후 그곳으로 발령 낼게.”
“정말입니까?”
“그럼, 놈을 잡아야지. 우리는 이곳에서 넌 그곳에서. 물론 그게 사실이라면.”
팀장은 아직도 긴가민가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최림은 이 정도 약속한 거에 대해 만족했다.
그날 밤, 최림이 잠들 때까지 미오가 남아 있었다.
밤이 깊자 미오는 나가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천계의 비밀을 오늘 알게 될 거야. 좋은 꿈 꿔.”
그리곤 누워있는 최림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한참을 기도했다.
“이건 뭐 하는 수작?”
최림이 비몽사몽간에 묻자 미오는 살포시 웃었다.
“곧 알게 될 거야.”
그녀가 나가자 이제 최림은 깊은 잠 끝에 꿈을 꾸기 시작했다.
천신과 주신 그리고 여신들이 사는 천계였다.
최림은 이곳에서 저승사자이자, 최고의 무장이었다.
또한 그는 천신의 딸인 여신(수애)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하지만 신분 차이로 인하여 대놓고 연애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 최림을 질투하는 한 주신이 있었다.
그는 천계에서 포악하고 성정이 사나운 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어느 한날, 천상의 꽃들이 만발하는 날에 수애는 최림에게 꽃놀이를 제안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천신이 최고 봉우리에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최림은 그 때문에 처음엔 거절했다.
하지만 수애의 계속된 부탁에 그만 부탁을 들어 주었다.
천신의 신변 경호관으로 자기 대신에 부하를 보내버린다.
그리곤 사랑하는 여인과 꽃놀이를 즐기고 만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주신도 제사에 빠졌다.
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최림과 수애를 찾아갔다.
주신은 최림에게 신분도 낮은 자가 여신을 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칼을 휘두르는 등 일대 소란을 벌인다.
결국 그 칼에 실수로 수애가 다치자, 이 사실을 안 천신은 격노한다.
천신은 최림과 수애 그리고 주신에게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것을 명령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기 잘못은 없다며 주신은 항변한다.
그러면서 계속 천계를 어지럽힌다.
이에 더욱 격노한 천신은 주신을 강제로 먼저 인간 세상에 보낸다.
그런 주신은 세상에서 천신에 대항하는 악령이 된다.
그런 후 최림과 수애 또한 그곳으로 보내졌다.
헉!
꿈에서 깨어난 최림은 자신이 천계에서 환생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수애 또한 천계에서 맺어진 연인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인연이 낯설지 않았다고 최림은 생각했다.
최림은 희미한 기억을 떠올렸다.
‘인간 세상에 있는 악령의 우두머리, 주신을 잡아 오라.
그러면 너와 내 딸의 죄를 용서하겠다.’
그건 천상 황제의 명령이었다.
‘그래서 미오가 나더러 천계에서 예비된 자라고 했구나.’
최림은 바로 이해되었다.
전두태, 놈은 천계에서 주신이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놈은 천상의 능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꾀한 거다.
그의 목표는 하나, 세상의 인간에게 짐승의 숫자 666을 새겨 포섭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놈은 성경의 요한 계시록을 이용했다.
이 땅의 기독교인 중 이단에 빠진 자를 집중적으로 포섭했다.
그들을 죽여 악령의 무리로 만들었다.
그래서 세력이 커지면 천계에서 천신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고 싶은 거였다.
최림의 부모 역시 그랬다.
이단에 빠져있던 그들을 죽이고 짐승의 숫자, 666을 새겨 자기 세력으로 삼았다.
수애 부모님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명목상은 놈의 신앙을 배교한 자들의 처단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뿐만 아니었다.
놈은 천계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위해 수애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수애의 거절로 놈의 복수의 차원에서 부모님부터 죽인 거다.
그렇다면 끝내 놈은 수애마저 죽일 작정이었다.
이제야 최림은 모든 스토리가 이해되었다.
이제 놈을 처단하지 않으면 수애도 위험하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최림은 머리가 쭈뼛거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간을 보니 이른 새벽이었다.
‘뭐야? 이 시간에.’
최림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화한 이는 수애였다.
“수애야 왜? 이 시간에.”
수애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고 있었다.
최림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런 거 아냐.”
“그럼, 왜 울고 있어?”
그런데도 수애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꿈을 꾸었어.”
“꿈? 무슨 꿈?”
“아니, 환상인 줄 몰라.”
“…….”
최림은 점점 기분이 묘해졌다.
“말 해봐. 그게 혹시 천계에 대한 꿈이었어?”
그러자 수애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계속 말해.”
“맞아. 천계의 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우리 둘이 사랑하던 꿈이야.”
최림은 이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둘을 방해하는 자가 나타났지?”
“그래, 주신이란 자가 우리 둘을 질투하곤 칼을 휘둘렀어.”
바로 그놈이 전두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