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융이 말하는 ‘삶의 목표’
진정한 자기를 찾는 ‘개성화 과정’
융은 무의식이 의식의 일방성을 자율적으로 보완하는 작용을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수줍어하는 내향적인 사람이 매우 사교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사람으로 활동하는 상상을 하거나 그런 꿈을 꾸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내향적인 사람의 무의식이 의식의 열등한 외향적 기능을 보상해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의 무의식에 있는 외향적 성향은 의식의 열등한 외향적 기능을 자율적으로 보상하며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융은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의식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무의식의 자동적 보상 작용이 일어나는데, 의식이 무의식의 의도를 이해하고 무의식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의식과 무의식의 해리가 일어나 병적 증상을 일으킨다.
융은 자기실현이 삶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인 개성화(individuation) 과정을 강조한다. 자기실현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며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선 페르소나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열등한 면인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림자는 자신이 거부감을 느끼고 싫어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자기 원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림자 인식에 이어 내적 인격인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를 이해해야 한다.
자기실현은 궁극적으로 자기 원형을 깨닫는 것이다. 자기 원형은 신적인 존재, 불성(佛性), 노현자 등의 모습으로 비유되며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기중심적인 데서 벗어나 종교적 깨달음 또는 삶의 지혜를 얻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삶의 여정에서 종착역이 자기 실현이라면 각자 도달하는 역이 어디일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며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성격이 곧 운명이란 말이 있다. 융은 “어떤 내적 상황을 의식하지 못하면 그 상황은 반드시 밖에서 운명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즉, 자신이 알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성격이 곧 운명이 된다는 뜻이다.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얘기하는 다이몬(운명, 소명, 내면의 소리)도 평소 의식하지 못 하는 내면의 성격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성격은 그 사람 전체를 말하며, 성격을 알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 <계속>
글 | 김창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