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입동치성 태을도인 도훈
정성의 일관됨
- 태을도는 정성길 -
2021. 11. 7 (음 10. 3)
반갑습니다. 태을도인 새달입니다. 해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며칠전 내린 비와 그전에 찾아왔던 급작스런 추위로 나뭇잎이 단풍으로, 낙엽으로, 색이 바뀌고 떨어지느라, 주변 풍경이 완연히 달라졌습니다. 시골에서는 벼 타작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작년보다 소출이 훨씬 많다고 하니, 말 그대로 풍년입니다. 그리고 오늘, 겨울의 초입인 입동을 맞았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농부들이 지난 여름철 들인 정성을 생각하며, 정성의 일관됨을 가지고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며칠전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데 국으로 바지락칼국수가 나왔더라고요. 얕은 초등생 식판에 담긴 거라 면 가닥을 끊어가며 숟가락에 담아 먹는데, 문득 몇 년전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이 났습니다. 말년 무렵의 몇 해 겨울을 저희 집에 계실 때, 한 번씩 모시고 나가 중국집에서 푹 익힌 우동을 시켜서 드리곤 했습니다. 젓가락을 쓰지 않고 자꾸 숟가락으로 면을 떠서 드시려 하길래, 아예 잘게 끊어 숟가락으로 떠서 드실 수 있게 해드렸지요. 날이 따뜻할 때는 좀더 걸어가 멸치국수를 같이 먹었습니다. 어디를 가건, 효자 효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제가 한결같은 효부였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느라 곁에서 챙겨드리는 시간은 늘 적었고, 제 정성은 남편이나 시누이의 정성에 항상 미치지 못했습니다. 한결같이 정성을 드리지 못한 내가 뒤늦게 속상해서, 이제는 떠나고 안 계신 아버님께 너무나 죄송해서, 칼국수를 먹는 내내 눈물이 났습니다.
‘도는 일이관지’라, 공자가 말했지요. 중도에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고, 상제님과 고수부님께서도 서로 목에 칼을 겨누고 살벌하게 다짐을 받으셨습니다. 최수운 선생이 말씀하신 “오직 성경신 석 자라.”는 구절에서 왜 성이 경과 신에 앞설까 하는 의문도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발음하기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함축적인 뜻글자인 한자말을 단순히 발음만 생각해서 순서를 정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선경의 장모가 하운동에 살면서 상제님의 공사에 조력하여 49일간 떡을 쪘을 때에, 상제님께서는 그 정성의 감응으로 오색채운이 두른 달을 보여주었습니다. 말이 49일이지, 지금같이 가스불로 떡을 찌라 해도 번거로워서 하지 않을 판인데, 오로지 군불을 때서 밥을 해야 하는 그 시절에 49일간 매일 머리 빗고 목욕재계하며 쌀 씻어 불리고 갈아서 떡을 찐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겠습니까?
TV속 ‘생활의 달인’ 등에 나오는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들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정성으로 빚어낸 그 집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소위 비법이란 것이 오직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임에, 우리는 볼 때마다 탄복하면서 맛집이란 호칭이 그냥 붙은 게 아니구나, 그저 수긍하게 됩니다. 초심을 잘 유지하는 것도 정성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대순전경」 p331 참고). 정북창의 재주를 빗대어서 하신 말씀이지요. 모든 일에 있어 성공의 관건은 오직 한결같은 정성이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속 공경도, 믿음도, 겉으로 드러날 때에는 한결같은 정성스런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초심의 변함없는 정성이 성사재인하려는 우리 태을도인에게 요구되는 이유요, 또 상제님과 고수부님이 서로 목에 칼을 겨누고 약조를 받았던 까닭입니다.
한결같은 정성과 초심을 내 가까운 가족에게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제가 언급하기에는 사실 면목이 없지만, 그럼에도 누구도 예외없이 오직 정성길임을 깨쳐서 가야 하는 길이 태을도 길이기에, 추수를 끝내고 폐장으로 접어드는 입동절에 감히 말씀드렸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