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자 ‘소년이 희망이다’ 첫회 소개된 경기도 부천역 ‘청개구리 밥차’ 거리. 청소년 사역자 이정아 사모가 운영하던 거리 청소년을 위한 밥차는 땅주인에 의해 철거됐다. 밤거리엔 여전히 밥 한 끼의 사랑을 목말라 하는 아이들이 배회한다.
‘문제 청소년’ 경준이는 복서가 되어 우승까지 했다.
지난 24일 실종된 소년의 희망을 찾기 위해 출발점인 부천역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희망이다’ 첫 번째에서 얘기했던 천막식당이 사라졌습니다. 6년째 운영 중인 천막 식당은 떠돌이 소년들에게 무료로 밥을 주는 거리 식당입니다. 이정아(49) 물푸레나무 청소년공동체 대표는 천막 식당을 중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용역 동원하겠다는 땅주인… 쫓겨난 천막 식당
“땅주인 측에서 ‘밥을 먹으러 온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고 술 먹고 사고치는 등 문제를 일으킨다’면서 천막 식당 철거를 요구했습니다. ‘철거하지 않으면 용역을 부르겠다’고 해서 식당을 중단하고 인근 건물에 세를 얻어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데 월세 200만원이 큰 부담입니다.”
고아와 장애인을 섬기는 ‘교회 건물 없는 교회’ 부천선한목자교회 김명현(51) 목사의 사모 이 대표는 고난의 사역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밥을 얻어먹는 자들을 꺼려했습니다. “밥을 주니까 거리 아이들이 꼬인다”는 것입니다. 민원이 발생하면 쫓겨나곤 했습니다.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면 눈물 흘리며 천막을 치고 밥을 퍼주는 사역….
이 대표는 “부모와 세상이 버린 아이들을 그리스도인들이 품어 달라”고 호소하면서 이런 소망을 밝혔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내쳐진 소년들이 여기 대안공간에서만큼은 쫓겨나지 않도록 보호하겠습니다. 그래서 소년들의 상처가 아물고 거리의 꿈과 희망이 온전히 실현되는 피난처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꿈… 알바 인생으로 끝날까 두려워요”
이날 부천역에서 수환(18·이하 가명)이와 민훈(18)이를 만났습니다. 생일을 맞은 수환이가 밥을 사달라고 해서 ‘콩나물 불고기’를 사주었습니다. 수환이는 1호, 3호, 5호 처분을 받고 서울소년분류심사원에서 지난해 11월 풀려났습니다. 보호처분을 이행하지 못하면 소년원에 갈 수도 있습니다.
수환이 팔에 수갑 대신에 ‘힘들면 연락해’라는 글귀가 새겨진 손목밴드가 채워졌습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답니다. 소년들은 힘들어도 연락할 곳이 없습니다. 목자 있는 양들은 푸른 초장에 살지만 버려진 소년들은 거리를 헤매다 허기지면 죄의 덫에 걸려듭니다. 하지만 밥을 주지 않아 훔치게 만들면서 범죄자로 모는 건 정당하지 않습니다.
수환이에게 영진(20)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동생 3명과 함께 가출팸 생활을 하던 영진이가 다시 교도소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월세를 못내 원룸에서 쫓겨난 영진이가 지난 4월 “며칠 굶었더니 배가 고파요. 돈 좀 보내주세요”라고 도움청한 적이 있습니다. 입금해준 얼마 뒤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 것입니다.
지난 2월 김천소년교도소에서 출소한 영진이가 귀가하지 않고 부천역으로 돌아온 것은 이혼한 엄마와의 갈등 때문입니다. 애증 관계의 불편한 가족보다 같은 처지인 거리 소년이 차라리 편했던 것입니다. 소년원에서 미용사 자격을 딴 영진이는 헤어디자이너가 꿈입니다. 담장 안에 갇힌 영진이의 꿈은 이루어질까요? 아니면 법자(법무부의 자식)로 울부짖으며 살까요?
민훈이는 알바 인생입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게 꿈’이라는 민훈이는 알바 인생으로 끝날까봐 걱정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전단지 배포와 식당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는 민훈이는 몇 번이나 일당을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민훈이가 세상을 향해 이렇게 항의했습니다.
“세상은 우리 같은 애들을 받아주지 않아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으니 알바밖에 못하고요. 치사하게 애들 돈을 떼어 먹는 어른들과 세상을 때려엎고 싶지만 힘이 없어서 참는 거예요.”
“엄마가 떠난 후 처음으로 희망이 생겼어요”
준현(18)이와 태진(19)이가 크게 다친 것은 아빠와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재혼한 아빠와 갈등을 빚던 준현이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고 태진이는 술 취한 아빠가 휘두른 흉기에 크게 다쳤습니다. 소년들을 돌보는 명성진(48) 목사는 아이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와 치료비 마련에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복서의 꿈을 꾸는 경준(19)이가 기쁨을 줍니다.
경준이 엄마도 어렸을 때 떠났습니다. 형은 보호관찰 중이고 여동생은 안양소년원에 들어갔습니다. 거칠고 어둡던 경준이가 밝은 표정을 짓기 시작한 것은 복싱을 시작하면서입니다.
경준이는 지난 5월 부천시복싱연합회장배 생활체육대회 65㎏급에 출전해 우승했습니다. 첫 출전에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본 경준이는 권투가 재밌어졌습니다. 스스로 샌드백을 치고 줄넘기하며 땀 흘리는 것은 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경준이는 “UFC 챔피언이 되고 싶다”면서 “나중에 권투도장을 운영하면서 위기청소년을 지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거리 소년들에게 밥과 사랑과 관용을
‘소년이 희망이다’를 연재하면서 거리 소년들을 만났습니다. 손을 잡아줘도 범법자가 되는 소년들, 미움과 증오로 세상을 적대시하는 소년들… 이 소년들에게 희망이 필요할까? 과연 사랑이 가능할까? 의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렇게 말해주시길….
“얘야, 밥은 먹었니? 밥 안 먹었으면 이리 오렴! 같이 나누어 먹자!”
또한 주 안의 엄마들에게 소망합니다. 열에 아홉은 자식을 사랑하고 나머지 하나는 세상의 자식들 특히, 엄마에게 버림받은 소년들을 안아주는 사랑의 십일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해주길 소망합니다.
“엄마 없이 떠돌다 그렇게 됐구나. 소년아 이리 오렴, 내가 안아줄게!”
우리가 우리를 용서해준 것같이 소년들을 관용으로 안아주면서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돌봐주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소년의 죄가 소년의 죄가 아니라 그 아픈 가정들을 외면했던 우리들의 무정한 죄임을 시인하며 부디 이렇게 자복하길 소망합니다.
소년들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세상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세상은 소년들을 미워할 뿐입니다. 그런데 빛과 소금 같은 이들이 희망의 씨앗을 나눠 주었습니다. 새벽에 깨어 파종하며 희망의 땅을 밟습니다.
소년들이 소년원과 구치소와 교도소에 가지만 아직은 희망입니다. 절망이어야 마땅한데도 희망인 것은 그만큼 희망이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끝끝내 희망인 것은 우리 곁에는 희망의 동역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포기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소년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국민일보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사진 김진석(작가) jonggy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