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거리에서 ‘복’ 받기 / 캐나다 캘거리. 유장원
캘거리에서 사는 맛 중에 최고를 뽑으라고 한다면 대부분이 Banff 국립 공원이 지척에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차로 1시간이면 Banff 시에 도착하고 거기서 3, 40분을 더 달리면 Lake Louise에 다다르니 아침 일찍 출발하면 국립공원을 두루 구경하다가 올 수 있는 거리다.
이민 오던 해에 한국에서 가깝게 지내던 교회 성가대 지휘자가 밴쿠버에 출장 온 김에 연락이 되어 캘거리를 잠시 들리셨는데 이 분은 여행을 좋아해서 전 세계 안 다녀 본 곳이 별로 없는데 자신은 밴프를 그중 최고로 여긴다며 우리에게 '복' 받았다고 했었다.
그런 덕담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은 틈만 나면 밴프로 놀러 다녔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가 본 곳은 밴프 시가지와 주요 관광지뿐이었지 공원 속에 널리 퍼져 있는 등산로는 가 볼 엄두도 못냈다.
아내나 나나 등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어린 두 딸과 가기에는 트레일은 좀 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밴프를 왔다 갔다 하기를 몇 해 후에 아내의 고등학교 친구 부부가 밴프에 왔다는 기별이 왔는데 이 부부는 밴프 관광이 아니라 트래킹 여행으로 1주간 코스를 잡은 후 연락이 온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매주 등산을 다녔던 부부는 신문에 밴프 트래킹 모집 광고를 보고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탈탈 털어서 성수기 트래킹 여행을 온 것이다.
1주일 트래킹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날, 밴프 시의 pub에서 같이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 부부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트래킹 여행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하는 말 “너흰 복 받았어, 정말. 우린 여기 오느라 천여만 원을 모아서 겨우 1주일만 여행했는데 너흰 아무 때나 올 수 있잖아. 정말 복 받았어.”
받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복을 누가 주었을까? 의심하면서도 여전히 밴프 트래킹은 우리랑 상관없는 그들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놈의 복이란 걸 한 번 받아 봐?' 라는 생각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2, 3년이 지난 올여름, 같은 교회 셀 모임에서 어쩌다 트래킹 얘기가 나온 김에 매주 트래킹을 하는 부부 두 쌍이 우리를 위해 가장 쉬운 코스를 잡아 같이 가기로 했다. 드디어 9월의 어느 토요일 아침, 우리 부부와 다른 두 쌍의 부부는 밴프 가는 길목에 있는 Heart Mt. Trail로 접어들었다.
등산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필수 품목 중의 하나인 스틱도 없어 그들과 나눠 가진 채, 초보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복장에서부터 초보자라고 쓰여 있는 우리 부부는 그러나 패기 있게, 이민 14년 만에 처음으로 트래킹에 도전한 것이었다.
쉬운 코스답게 가파르지 않은 계곡과 따스한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한 시간을 걸었을 무렵, 눈앞에 거의 45도 경사의 가파른 길목이 앞을 가로막았다.
두 부부는 여기까지 온 거로 족하다면 돌아가고 아니면 도전? 하면서 슬슬 우리를 꾀기 시작했다. 그들의 꼬임에 넘어가서라기 보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이정도도 못 올라가면 안 되지 라는 자존심이 발동하여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20분을 올라가니 10명 정도가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중간 정상이 나타났고 거기서 정상을 보니 이건 꽤 멀어보이고 가팔랐다. 그들도 정상을 도전하는 건 무리라고 보고 “오늘은 여기까지”라며 가지고 온 점심을 먹고 하산하는 것으로 그 날 일정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 날 아침부터였다. 한 번도 그런 트래킹을 해 본 적이 없던 몸의 모든 근육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금만 걸어도 “아고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난 이렇게 구시렁 대고 있었다.
“복? 아고고, 그놈의 복 받으려다 내가 먼저 골로 가겠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신음하게 하시네. 아고고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