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도라픽 등반기
겨울비는 향기가 없다 새싹의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봄비와 흙냄새 품은 여름 소나기 하고는 사뭇 다르게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만 있다. 이 멋없는 비를 맞고 초라하게 말라가던 나뭇잎들이 단풍으로 회춘을 했다. 10월 이 초반일 때만해도 이구동성으로 올핸 단풍도 코비드 바이러스에 찌들어 졌는지 예전같지 않어 푸념하며 가을의 정취를 아쉬워 했는데, 웬걸 11월 들어 겨울비 몆 번에 그 삭막했던 마른잎들이 의젓하게 때깔을 내기 시작한것이다.
지난여름 엘도라도픽을 올랐다. 나도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기에 지울것 다 지우고 나서 이제야 지난 여름으로 되돌아 가본다. 우리는 늘 평안한 생활과 안식을 꿈꾼다. 살아 있는 동안에 에덴동산 같은 낙원으로 점프해 죽지않는 신선으로 변신을 꿈꾸는 것이다. 구름타고 오가다 벗을 만나 나무 그늘에 앉자 장기판 두드리며 복숭아를 나누어 먹다 보면 수십년이 지나간다는 은하수 다리 건너 천상세계.
옛 사람들은 산 중 에서 길을 잃어 헤메다 물 안개 피어 오르는 깊은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보니 복숭아꽃이 만개 하고 앞개울에 신선수가 흐르며 마을안 우물에서 떠마시는 불노장생 감로주는 백발을 희게하고 주름도 펴주고 굽은허리 바로잡아 영생을 누리게 한다며 꿈속의 이상향 무릉도원을 생각해 냈다.
우리는 땡 볕이 뜨겁던 팔월의 한 주말을 정해 ‘아즈텍’ 과 ‘잉카’ 인들을 무참하게 도륙하며 욕망의 완성품 금을 찾아 나섰다는 스페인기병 흉내 내듯 ‘총 균 쇠’ 로 무장하고 ‘엘도라도픽’ 으로 향했다. 산정의 들머리는 시애틀에서 출발하면 족히 세시간은 가야하는 곳이다.
넓은 개울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사태와 폭우로 쓰러져 개울에 가로 걸쳐진 나무를 타고 넘어야 한다.
산 에서는 일가견이 있는 멤버들도 힘들어 했다. 고산이 만들어내는 구도는 곡선과 직선의 유연함이 아니라 갈 짓자 날카로움 에 선명함 이다. 거친 개울을 넘자 말자 우리에게 다가온 산길은 쉴새없이 올라쳐야 하는 사다리병창 이였다. 힘든 산행이 이쯤되면 무거운 캠핑배낭 메고 힘겹게 오르지 말고 오늘밤은 차라리 트레일헤드 주차장에서 자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맨몸에 산보 배낭 가볍게 지고 냅다 뛰어 올라갔다 오는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생긴다. 과희 나쁘지 않다 몸에 건강을 위하여 산에 오르며 정상 증명사진이 중요한 분들의 일반적인 해법이다.
산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오르는것이 아니다. 내가 팀을 만들어 산행할때 나는 의논하지 않는다. 내가 정한 계획과 의지로 전진하고 후퇴한다. 지혜있다 착각하며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가 양보하고 다수결로 결정 하자고 말한다. 내가 살던 나라 일부 공직자의 거침없는 뻔뻔함은 어떤 권력 이라도 상관없이 빌붙어 스스로 부역하다 부패하는 비굴한 생존전략에 불과 하지만 백성과 조국을 위한 합리적 판단 이라 포장된다.
산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훈련과 경험을 통한 리더쉽은 믿고 따름이 최선이다. 산중에서 맞이하는 생각과 마음의 평화는 말할 의무 보다는 잠잠할 권리로 유지된다. 인간은 미각을 통하여 타락에 빠지는걸 생각하지 않는다. 선악과 씹어 에덴동산 추방의 원죄가 입에서 시작 되었고, 물이 포도주로 변한 가나 혼인잔치 대속과 구원의 역사가 입에서 시작 되었고 산행의 파국도 입에서 시작한다.
씨애틀 동북쪽 2번과 20번 도로 사이에 광대한 지역은 표주박 같은 모양으로 2000에서 2500미터의 수 많은 고산을 끼고 자리 잡았다. 그 중심에 캐스케이드 고개가 자리했고 좌우로 요하네스픽이란 창끝봉과 사하리픽이란 방패봉이 서로 마주보며 야생화 꽃철에는 천상의 화원을 만들어 내고 그능선 사방으로 엘도라도픽 보스톤픽 희든픽 등등이 한여름 내내 녹지 못하는 눈스카프를 걸치고 앉자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제임스 힐튼의 (Lost Horizon) ‘읽어버린 지평선’ 을 처음 읽은것이 유년시절 이였으니 아마 1965-6년 정도일것이다. 양장판 세계문학전집을 갖고 싶어 애를 쓰는데 12책으로 꾸민 문학전집 한질이 2400원 이였고 아버지는 월급으로 6000원 정도 받던 시절 이었다. 소상하게 기억하는것은 그 전집을 팔던사람이 당시 영등포구 등촌동 나사렛 벳엘교회 김전도사 였고 우리 문권사는 과감하게 1800원으로 깍아 그 전집을 12개월 할부로 내게 사 주었다. 그시절 기억해 두었던 ‘상그릴라’ 를 찾아 2019년 나는 두어달 네팔 희말라야를 유랑했다.
캐스캐이드 고개가 손아래로 잡히는곳에 베이스를 마련하고 작은 텐트로 집을 짓고 눈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사람은 자연에서 공간을 담아 방을 만들면 휴식을 하며 힐링을 하고 도시에서 칸을 막아 방을 만들면 노동을 하고 징역을 산다. 대자연에 안겨서 따사한 햇볕과 바람결에 느끼는 무한자유는 영혼을 연기처럼 날려 보낼수 있기에 작은 텐트를 치고 들어 앉아 몸을 누이고 지친 육체와 고단한 영혼에게 평안과 안식을 선물하는 것이다.
빗속에서 걷는 걸음이 하염 없다면, 눈위에서 걷는 걸음은 정처 없다. 그저 앞에 봉우리만 보고 걷는 것이다.산의 정상은 늘 저 뒤에 있다. 내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인줄 착각하는것이 산행 이고 인생 이다. 더 올라갈 곳이 안보이면 내려가야 한다. 내려와야 하는데 왜 오르냐는 질문은 우문이 아니다. 현답이 없을 뿐이다.
그저 하염없이 그저 정처없이 당신은 걸어 본적이 있었던가? 코비드19에 지친 우리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송재희는 엘도라도 픽에서 멋지게 스키 활강을 했다. 우리는 내년봄 베이커 정상에서 스키 하강을 꿈꾸며 오늘을 걷는다. 재희는 엘도라도픽 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오기 위하여 '메일박스픽' 보다 힘든 고지를 무거운 캠핑 배낭에 스키와 스키부츠 까지 메고 올랐다. 열정은 무게를 이긴다.
네팔 희말라야에도 페루 안데스에도 설악산 울산바위 넘어에도 엘도라도 상그릴라 무릉도원은 없다. 것들은 이미 내 방 안에 있었다.
글 사진 / 염승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