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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예수영성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어여쁜자
I. 갈릴리 (Galilee)
갈릴리는 ‘둥글다, 고리’의 뜻.
바다와 계곡과 평원으로 되어 있고, 북쪽에는 벳새다, 비옥한 게네사렛 계곡, 남쪽에는 야르묵-요르단 평원이 있다.
예수님의 대부분의 사역은 유대인들로부터 ‘이방의 갈릴리‘로 조롱받은 이 지역 안에서 이루어졌다.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9:1)
이 곳 갈릴리 바다 앞에 숙소를 잡고 답사하는 우리의 발걸음 하나 하나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생각하며, 같은 공기를 숨쉬며 묵상할 수 있었다...
로마의 행정구로 헤롯이 관할하였던 이 곳은 예수님의 친숙한 성장지(마2:22 갈릴리 지방 나사렛)였고,
제자들은 남방출신인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다 갈릴리 출신들이다.
항구도시는 최소 15개(가버나움, 게네사렛, 막달라, 디베랴, 거라사, 고라신등)로 고고학적 연구가 활발했다.
초대교회가 세워졌고, 예수님 당시에 사용하던 배와 방파제가 발견되어 과거 초대교회 역사를 증명했다.
(기노사르 키부츠에서 목조선을 타려고 갔던 Yigal Allon Center에 전시되어 있던..
예수님 당시 배를 인양하는 모습의 사진 앞에서 서전도사님..)
아열대성 기후로 비옥하여 지금도 바나나, 목화, 오렌지, 올리브 등 갖가지 농산물을 풍부히 재배한다.
인구밀집지역이라 2차성전시대에는 약 50만정도 사람들이 살았다 한다.
후에 유대인들은 이 곳에서 탈무드와 경전을 완성하였다.
II. 갈릴리 바다 (Sea of Galilee, Sea of Kinnereth)
납달리 땅의 이 갈릴리 바다는 ‘얌(물이 많은곳) 긴네렛’으로 생명의 바다이다.
해발 -210m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호수로, 남북길이 21km, 폭이 최대 13km, 수심은 50m가 된다.
헬몬산과 3군데 샘에서 북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와 형성된 내륙호수로,
이스라엘에서 사용하는 물의 1/3을 공급하고 있다. 먼 남쪽의 네게브 사막까지 물을 공급한다.
고대 히브리어에는 호수라는 단어가 없었고, 지중해를 '큰 바다(The Great Sea)', 그 외는 '작은 바다'라고 불러서
내륙호수인 갈릴리와 사해(염해)도 바다라고 불렀다.
<명칭> 1. 갈릴리 바다(신약의 주 명칭. 기독교인들 사용)
2. 긴네렛 바다 (민34:11/ 구약 및 현재 공식적인 명칭. 하프모양)
3. 디베랴 (요6:23 서쪽 해안에 헤롯 안티파스가 건설한 티베리아에서 나온 명칭. 신약과 유대경전의 명칭)
4. 게네사렛 호수(눅5:1/ 하프모양이라 히브리어로 '키노르'라 불려 '게네사렛'의 어원이 됨.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신약에 사용)
티베리아가 보이고...
좌) 서은석목사님 뒷쪽은 골란고원 ........................................................................ 우) 조목사님 뒷쪽은 티베리아(디베랴)
(북쪽을 보면 타브가의 오병이어교회, 베드로수위권교회와 윗쪽 팔복교회가 보인다.)
<지형> 동북쪽으로 300m이상 되는 가파른 산지들이 많이 있어서 그 경사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갑자기 돌풍으로 바뀌는 현상들도 종종 일어난다. 헬몬산의 찬 공기가 요단 골짜기를 타고 급하게 내려오면서
갈릴리 바다의 따뜻한 공기와 만나므로 회오리 태풍으로 인한 급한 파도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진은 지중해쪽에서 이 깎인 틈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지형을 보여준다.
많은 고기로 유명하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었다.
갈릴리 호수에 서식하는 물고기 중 명물은 ‘베드로의 고기’로 알려져 있는 Bass로 순례객들에게 인기있는 별식이 된다.
(아주 고소하고 맛있는 생선튀김...정결식 물고기로 확실히 보이는...^^ Peter's Fish)
III. 주변지역도시와 성지(교회)들
1. 가버나움(Capharnaum)
가버나움은 '나훔의 동네', '위로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갈릴리 북서해안에 있으며 수비대 주둔도시이자 행정도시이다.
고대부터 애굽에서 지중해 해변길을 거쳐 갈릴리 바다를 끼고 골란고원 쪽을 거쳐 다메섹으로 올라가는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도로 '해변길(Via Maris, 사9:1, International Highway)'의 길목에 있었다.
예수님 당시 국경을 지나는 많은 이방인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던 세관 소재지이다.
매우 번화했던 도시로 예수께서 요한의 잡힘을 들으시고 나사렛을 떠나 해변의 가버나움에 가서
사셨다고 되어 있는(마4:12-13) 예수님의 제2의 고향이다.
(위의 A 네모는 가버나움 회당, B 팔각형은 베드로집터와 기념교회이다)
당시 이 지역은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으로 이방인들과 유대 두 지파가 섞여서 살았던 곳으로
이방 문화와 이방세력이 더 강하였던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기에 유익했던 지역이었다.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이곳을 '본 동네'라고 부를 만큼 갈릴리 전도사역의 중심지로 삼으시고
어부 출신의 제자들(베드로,안드레,야고보,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고(마4:12-22),
세관에서 일하던 세리 마태(레위)도 부르셨다(마9:9).
로마 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어서 백부장의 하인의 병도 고치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죽었던 딸도 살리셨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도 고치셨으며,
중풍병자의 네 친구들이 지붕을 뚫고 들어가 치유받은 사건은
현무암 지대여서 돌로 집을 짓고 갈대나 종려나무 가지로 지붕을 덮는 형태의 가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 등에 가장 많은 이적과 가르침을 베푸셨지만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마11:20-23)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
6C에 퇴락해서 8C에는 니므롯, 헤산궁전 등 여기까지 지진으로 망하였고
지금은 종려나무들 속에 폐허더미로 유적만 남아있다...
<가버나움 회당>
갈릴리에서 가장 큰 2층 회당으로 2층은 여성예배처소였다 한다.
1920년대에 발굴이 시작되어 복원이 되기도 했다.
2C말경 하드리아누스 황제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서 환심을 사려고 예수님 시대의 회당을 증축했다가,
4C경 부수고 다시 하얀 석회석으로 화려하고 웅장하게 새로 지었다고 한다.
그 지역 돌이 검은색인 반면, 회당의 돌은 하얀 대리석으로 구별되고 있다.
열린 문들은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장식방식인 메노라(일곱 금촛대)가 새겨져 있어 눅7:5에 백부장이 지었다고 나오는
예수님 당시 가르치셨던 회당은 최소 1~2C에 지어졌을 거라고 추측한다.
현무암 검은 돌(예수님시대) 위쪽으로 석회암의 하얀 돌(비잔틴시대)로 이루어져 있다.
회당은 이전의 회당자리에 지어야 한다. 7세기에 페르시아에 의해 회당이 파괴되었는데,
1894년 이후 프란시스코 구역이 발굴한 회당과 베드로 장모의 집터, 그리스 정교회 구역인 발굴 장소로 되어 있다.
이 회당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후 '생명의 떡'(요6:35)에 대해 설교하셨던 것이다..
주변의 발굴지역들 .. 연자맷돌등..
회당에서는 다윗의 별, 솔로몬의 별(5꼭지별)모양의 돌등.. 여러가지가 나왔다.
시나고그(회당) 유적지에서 나온 언약궤를 옮기는 수레모양의 그림... 특별한 것이다.
<베드로 집터위의 베드로기념교회>
회당 앞쪽으로는 베드로가 살던 집에 초기 가정교회의 유적(마8:14)이 남아 있다.
1C에 작은 가정교회였다가 5C초 정도에 개축하여 8각형으로 된 큰 경당을 지어
갈릴리 지방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지가 되었으나,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폐허가 되고,
1894년 프란치스코회에서 발굴작업을 시작하여 집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그 위에 어선 모형의 기념 교회를 지었다.
<'행복한 사도 베드로'라 써 있는 교회 외벽>
집터 위의 베드로기념교회 내부.. 가운데 철난간 아래 유리 밑에는 팔각형으로 된 베드로의 집터가 보이는데
초대 신자들의 기념경당이다.
그 유리 아래...
바깥에서 아래를 찍은것.. 집터에서는 '베드로'라는 헬라어 푯말과 어선의 그림을 발견했다 한다.
베드로 동상 뒤로 기념교회가 계단 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2. 타브가(Tabgha) - 오병이어기념교회/ 베드로수위권교회가 있다.
타브가라는 이름은 '헵타페곤(Hepta-Pegon 7개의 샘)'이라는 헬라이름이 변조된 것이다.
가버나움과 막달라(유대반란 중심지, 로마가 핏빛으로 물들임)사이에 위치한다.
초대교회 사적지로 아주 유명한 곳으로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 잡던 곳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 만나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막1:17)고 소명을 주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도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조반을 먹고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신 곳이다.
또 주님이 즐겨 찾으셨던 호숫가의 외딴 곳(막6:35)이다.
미네랄 온천이 솟아나 가버나움 출신의 어부들은 겨울철에 이곳에 와서 어업을 했다 한다.
4C까지 가버나움에 살던 유대계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타브가 지역에 머물렀다는 추억을 전하며
3개의 바위(굳건한 믿음과 베드로를 상징)와 연관시켰는데,
하나는 팔복교회 아래 언덕에서 발굴된 "바위동굴(비잔틴시대 기념성전)"과
베드로수위권교회 안에 있는 "주님의 식탁(멘사 크리스티)",
그리고 오병이어교회 안의 제대 아래에 있는 "오병이어 축복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오병이어 기념교회>
Church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 and Fishes (마14:19-21)
Church of Heptapegon
로마 카톨릭교회. 5C에 지어졌다가 614년 아랍의 침입으로 파손되었는데,
1300여년 동안 묻혀 있었다가, 1932년 독일 고고학자들이 이곳에서 기둥과 특히 교회 바닥의 오병이어 모자이크 등을
발견하였다. 1982년 "독일 성지회"에서 지어 독일 베네딕토 수도회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일곱개의 샘, 헵타페곤 교회 (오병이어 기념교회) 의 역사 소개 안내액자)
350년 유대인 성 Josipos가 첫 교회세우고, 480년 비잔틴교회가 세워지고,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되고,
1932년 Mader 신부가 고대교회 유적 발굴, 1980/1982년 독일성지조합에 의해 고대 비잔틴 바실리카를 재건했다는...
제단 아래에 석회석 돌(예수님이 오병이어를 놓고 축복하시고 기적을 베푸셨다는)과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들이 있다. 제단 바로 밑의 오병이어 모자이크에는 빵이 4개인데,
없는 나머지 하나는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 자체로 본다 한다. (김상원신부)
전통적인 양식의 수도원엔 항상 4각형의 회랑이 있고, 그 중앙엔 우물이나 정원이 있어 수도자들이 회랑을 돌며
기도한다. 4각형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우주를 상징하고, 그 중앙에 있는 샘물이나 정원은 에덴동산을 상징한다.
그리고 정원의 푸르른 나무와 샘물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김상원신부)
기념성전 입구 회랑 중앙에 감람나무와 연못이 있고, 예쁜 물고기들이 많이 있었다.
<베드로 수위권교회, 베드로 수제자임명교회, 예수발현교회>
Church of Primacy St. Peter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관리하는 교회로 소박한 느낌이 나는 모습...
베드로의 사도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곳이다.
1933년 비잔틴 시대 교회 위에 지어진 교회이다. 비잔틴 시대때 파괴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보존된 교회이다.
제단 앞에 “Mensa Christi"(주님의 식탁)이라는 큰 돌이 있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조반을 준비해주신 장소였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입구문들에 교황들이 방문한 것을 기념한 장식들이 있다.
야외 예배처
예수님께 수위권을 받는 베드로의 동상이 그 앞에 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17)"
예수님과 시몬의 대화였겠다... 우리 모두와 예수님의 대화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질문 앞에 숙연해지는데.. 우리는 진실된 사랑의 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랑을 묻기 전에 제자들을 숯불가의 만찬으로 초청하셔서
사랑의 떡을 먹이셨던 것이다... (김운성 목사)
그 뒤로 갈릴리 바다가 바로 보이고, 예수님이 즐겨 찾으셨다는 호숫가의 한적한 곳...
제자들은 옛 생활로 복귀했었고, 예수운동은 상실했으며 고기는 잡히지 않는다.
새벽 동터올 때의 그 위기감.. 그러나 물고기는 계속 움직인다.
예수님 말씀처럼 오른편의 기회를 잡으라... (장완석 목사)
to be continu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