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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3일 (화) - 베트남은 세일링 요트로 절대 가지마라. 이건 강도 수준이다. 아예 날강도다!
오늘의 할 일 : 디젤엔진 인젝터 클리너 사기, 유수 분리기 청소 및 필터 교체, 엔진오일 교환, 연료필터, 오일필터 교환. 이집트의 더러운 디젤이 참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네. 인젝터 클리너를 사서 넣고 엔진을 시험해 본 다음, 만약 안 되면 기술자를 불러 인젝터를 분해 청소해야 한다. 가격을 일단 알아보고 너무 비싸거나 시일이 오래 걸리면 낮은 Rpm으로 운행하고 한국 가서 수리할 예정이다.
오전 5시 30분. 어제 엄청 피곤하지만 인터넷 싫컷하고 잤다. 코타키나발루까지 항로도 작성하고, 가족들과 페이스 톡도 하고. 인젝터 클리너도 검색했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잠들었다. 알람이 울려 잠이 깼다. 마리나에 있을 때 낮엔 더워서 실내에 못 들어간다. 서늘해지는 초저녁부터 잠 들도록 노력하자.
오전 6시. 시애틀 여동생이 페이스 톡을 했다. 이번 항해에 여동생과 더 많이 가까워졌다. 예전 나이 드신 분들이 늙으면 동기간 밖에 없다고 하셨는데, 마침내 내가 나이 들었나 보다. 동기간 밖에 없다. 여동생과 수다를 떨며 콕핏 시트를 깔끔히 세척하고 말린다. 여러 명이 땀흘리며 밟고 다녔으니 엄청나게 더럽다.
오전 7시 삼양라면에 남은 밥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뭔가 맛있는 걸 해먹으려 했는데,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바쁘니 결국 라면이다. ‘세일링 서울’ 팀이 식료품과 물을 잔뜩 남기고 가서 감자, 오이, 빵 이외엔 살게 없다. 이대로 한국까지 갈 기세다.
오전 8시. 러시아 커플 Yulya M.juliana & Valdum 에게 문자를 하니 보지 않는다. 전화를 해도 안 받는다. 잠시 후, 자신들이 방금 깨어났으니 1시간 후에 만나자고 문자가 왔다. 엔진에 대해 잘 알면 엔진 부조 현상에 대해 물어볼 예정이다. 전문 기술자면 돈을 주고 고칠 생각도 있다. 대개는 세일러들이 마리나 소속 기술자들보다 더 똑똑하고 성의 있게 고친다. 좋은 세일러들에겐 어떤 나라 사람이라도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이제 마리나 매니저 ‘핀’이 오면 마리나 서류 작업과 인젝터 클리너 사러 시내에 갈 거다. 인젝터 클리너 넣고 30분 엔진 가동 후, 오일 교환, 각종 필터류 교환 등을 시작할 계획이다. 아마 오후 5시 이후 서늘할 때 시작해야지. 아니면 내일 오전 일찍 해야 한다. 낮에는 한증막에서 일하는 거다. 불가불가!
낮에 인젝터 클리너 사러 가는 길에, 스벅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셔야지. 요런 사소한 계획 마리나의 하루에 활력을 준다.
오전 8시 30분. 배 바닥을 열어 보니 완전 드라이 하다. 랑카위에서 온수기 급수라인을 새것으로 교체한 후, 물이 한 방울도 새지 않는다. 배는 바닥에 물 안고이고, 오토파일럿 잘 동작하고 그럼 최고다. 중고 배라 몇 가지 문제는 있지만, 우리 제니시스 최고의 배다.
오전 8시 40분. 날개를 교체한 드론을 시험 비행 하러 뭍으로 가 날려보니 날개 하나에 이상이 있다고 경고가 뜨고 이륙하지 못한다. 전원을 끄고 확인해 보니 전에 마스트 추락 때 데미지인지 왼쪽 후방 모터 축이 삐뚤어져 모터가 걸린다. 돌지 못한다. 다시 배로 돌아가서 롱노우즈 플라이어로 힘을 주어 모터 축을 제자리로 만들어 놓는다. 어차피 안 돌면 사용 못하니 뭐든 해보려는 거다. 밑져야 본전이다. 다시 뭍에 가서 시험 하니 드론은 아주 잘 나른다. 뭐든 안 되면, 우격다짐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낡은 방식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여전히 잘 통하기 때문이다. 힘차게 나르는 드론으로 Miri 마리나 전경을 촬영한다. 아름다운 곳이다. 내 눈엔 대개의 마리나가 다 아름답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세일러다.
오전 9시 8분. 드론 영상을 하나 만들고 러시아 커플 Yulya M.juliana & Valdum에게로 가보자. 옷을 갈아입고 가야 한다. 오전에 잠깐 일한 걸로 옷이 땀으로 완전히 젖었다. 스리랑카Galle 에서 산 중국산 선풍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저게 없었으면 아마 선실에 있지도 못 할 거고, 밤에 잠자기도 어려웠을 거다. 이래저래 나는 복이 많은 것 같다. 풍족하지 않아도 적시에 적당한 대책이 세워진다. ‘세운다’가 아니라 ‘세워진다’ 다. 하느님이 보우하사다.
러시아 커플 Yulya M.juliana & Valdum에게 물어 보니 자기는 좋은 엔지니어가 아니고 그냥 엔진오일이나 가는 수준이란다. 그러나 볼보 엔진은 엔진 Rpm을 너무 낮게 다니면 그런 현상이 생긴다는 것을 매뉴얼에서 읽었다며, 가끔은 아주 강하게 엔진을 돌려줘야 한단다.
“Vadim은 엔진 슬러지일 수도 있다고 가정합니다. 엔진을 로우 모드로 사용한 후 슬러지를 제거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몇 분간 작동해야 합니다. Vadim은 설명서에서 그것을 읽었습니다.”
흠. 그런 경우도 있나? 확인해 봐야겠다. 러시아 커플 Yulya M.juliana & Valdum은 1년간 말레이시아에 머물 수 있단다. 뭔가 계약이 있다고 한다. 코타키나발루에는 Miri와 비슷하고 별다른 의미가 없어서 안 갔고, 워터메이커가 고장이고, 집세일도 고장, 스톰 세일도 중간이 터져서 가까운 Miri에서 수리를 하려고 여기 왔단다. 다음 항구는 필리핀이고, 그다음은 일본 후쿠오카에 가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도 갈 수 있냐고 해서 당연하다. 한국에 오면 강릉에 꼭 들르라고 말해준다.
이들에게 러시아에 언제 돌아 가냐? 고 물으니 절대 안 간단다. 그렇겠지. 20대 말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러시아로 가면 곧장 우크라이나 전쟁에 동원될 거다. 나도 전쟁 끝날 때가지 절대 돌아가지 말라고 말한다. 누가 이들에게 비겁하다거나 배신자라고 할 것인가? 명분 없는 전쟁에 애꿎은 젊은이들을 갈아 넣는 푸틴이 나쁜 거다. 나는 이들이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기도한다. 인간은 행복하려고 태어난 거다. 라고 나는 믿는다.
오만 하와나 마리나의 비싼 입국 비용(1,530달러) 에 대해 말해주니, 그들은 베트남의 더 비싼 인보이스를 보여준다. 무려 1,800달러(230만원)짜리다. 와! 베트남은 세일링 요트로 절대 가지마라. 이건 강도 수준이다. 아예 날강도다! 이러면 베트남은 세일링 코스에서 완전 제외 된다. 바가지요금은 어디라도 다 망해 버려야 한다. 세일링과 세일러들이 어떤 사람인지 아예 모르는 거다.
한창 수다를 떠는 데 마리나 매니저 ‘핀’이 왔다. 그는 내가 Yulya M.juliana & Valdum 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내가 웃으며 ‘네가 오전 8시에 온다고 하고 안 왔잖아?’ 하니 ‘네가 전화를 해야지’ 하고 그도 웃으며 답한다. ‘디젤 엔진 인젝터 클리너’를 사고 싶다고 하니, 시내에 가서 직접 알아 봐야 한단다. 그러면서 마리나 서류를 내민다. 오늘 중 제출하면 된단다. 내가 마리나 사무실 까지 갈 필요 없단다. 자기가 바빠서 오늘 하루 종일 마리나에 있을 거라 한다. 나는 Permaisuri Imperial City Mall 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친절하게도 자기 차로 데려다 주면서 ‘디젤 엔진 인젝터 클리너’를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준다. 일단 스타벅스에서 시원 달콤한 것 하나 마시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디젤 엔진 인젝터 클리너’를 사자.
핀의 차로 Permaisuri Imperial City Mall로 오면서 어제 한국식당에 대해 말한다. ‘그런 건 소금국이고 한식 맛이 절대 아니다.’ 라고 하니까 핀이 웃으며, 그곳은 중국인들이 하는 체인점이란다. 그럼 그렇지. 중국인들이 엉터리 한식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 완전 속았다. 1점짜리 후기를 남긴다.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런 엉터리 음식을 한식이라고 팔다니! 고약하다. 어쩐지 김치도 없더라니!
Permaisuri Imperial City Mall에 들러 일단 시원한 음료를 한잔 마시며 오전 내 있었던 일을 정리하고, ‘핀’에게 전달할 마리나 서류도 작성한다.
오후 12시 40분. 치킨라이스 전문점에서 치킨라이스와 연두부를 주문했다. 보기엔 그럴 듯하다. 그러나 치킨라이스는 잔뼈가 너무 많았다. 국물은 닭 비린내기 난다. 연두부는 그저 그렇다. 내가 그리 까다로운 미식가가 아닌데도 한국인 입맛에 안 맞는다.
문자가 날라 온다. 랑카위에서 산 SIM 카드가 80%를 사용해서 속도가 느려진다는 거다. 뭔 소리야? 무제한을 한 달 동안 쓴다 해서 산건데. 대놓고 사기다. 오다가 핸드폰 가게에 들러 50기가 한 달사용을 다시 산다. 56링릿 (15,400원) 이다. 이제 말레이시아에서 일주일 반 정도 더 있을 예정이니 동영상이라도 싫컷 보자. 역시 인터넷 속도가 확! 빨라진다.
식사를 마치고 두 블록을 걸어 디젤 엔진 인젝터 클리너를 샀다. 한 캔에 75리터까지 쓸 수 있다. 현재 150 리터 쯤 남아 있으니, 3캔을 다 넣어보자. 한 캔에 64링깃(17,630원) 이다. 엔진 인젝터가 청소되어 부조만 잡힌다면 그보다 더 감사할일이 없겠다. 택시를 타고 마리나로 돌아오니 계속 비다. 비 때문에 해치를 열지 못하니 이건 열탕지옥이 따로 없다.
오후 2시 14분. 비가 그친다. 해치들을 여니 좀 살 것 같다. 엔진 정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성격상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할텐데 이 더위 속에 작업이 가능할까? 그러나 부품과 공구들을 슬그머니 꺼내 놓는다.
오후 2시 25분. 인젝터 청소, 엔진 벨트교환, 임펠러 교환, 급수 필터 청소, 연료필터교환, 유수분리기 청소 및 필터교환, 엔진 오일교환, 오일 필터교환, 기어오일 보충까지 일사천리로 마친다.
작업을 마치고 엔진을 끄니 오후 5시 5분이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렇게 머리가 어지러우니 더더욱 두 번씩 점검하며 일을 한다. 나사 하나라도, 뚜껑 하나라도 빼먹으면 큰 사고다. 작업하고 엔진 실 바닥까지 깨끗하게 닦는다. 땀으로 범벅이 된 내의와 수건을 깨끗이 빨아넌다. 정신이 하나도 없지만 절대 실수하면 안 되는 일이다.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한다. 목이 좀 불편한 것 같다. 차가운 물 두 잔과 소염제를 한 알 먹는다. 무리해도 아프면 안 된다. 이제 화장실만 빼고 출항준비는 끝났다.
대만의 문선장님께 연락이 왔다.
“선장님, 사실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으나, JABSCO 수동 변기는 이제 생산을 하지 않아서 구하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대신 대만제 수동 변기를 추천해주었습니다. 납기는 6/28-6/29이고, 가격은 4500대만달러(한화 약 18만 6천원)입니다.”
가격이 너무 좋다. 이 정도라면 쓰다가 문제 생기면 통째로 갈아도 되겠다. 이걸로 하기로 하고 문선장님께 답변을 드린다. 문선장님의 도움으로 대만에선 Horizon City Marina Kaohsiung Taiwan로 간다. 미리 항로를 만들어 둔다. 코타키나발루에서 1,056해리, 8일 7시간 거리다. 다만 이번 주말부터 바람이 거세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며칠 기다릴 수도 있겠다.
오후 6시. 짜장을 만들어 밥에 부어 먹는다. 너무 지쳐서 그런지 입맛이 없다. 몸은 열에 들떠 있다. 더위가 몸에 배어 들었나 보다. 어둠이 내린 콕핏에 앉아 있는데 땀이 줄줄 흐른다. 마리나 건너 coco cabana miri에 회전목마가 있다. 너무 더워 거기까지 갈 생각을 못한다. 샤워를 한 번 더 해야겠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마감하자. 내일은 coco cabana miri에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