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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하나라(빌립보서:골로세서)10.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기 억 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 2:16-17).
●연구 범위골로새서 2장; 히브리서 7:11; 이사야 61:3; 고린도전서 3:6; 신명기 31:24–26; 로마서 2:28, 29; 로마서 7:7●
왜 안식일을 지키는지 묻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이번 주 기억절조차 안식일을 반대하는 ‘증거’로 사용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구절은 넷째 계명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교회 내 일부 거짓 교사들이 가르친 오류를 바로 잡고자 기록된 것이다. 그것은 어떤 오류들이었는가? 먼저, 거짓 가르침은 “철학,” “사람의 전통,” “세상의 초등학문,”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닌 것으로 묘사된다(골 2:8). 또한 할례와 유대 절기 준수(골 2:11, 16), 유대 정결 의식과 음식 관련 규정(골 2:16, 21)도 포함되었고, 천사 숭배나 교제, 천사 숭배를 모방하려는 시도(골 2:18)도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거짓 가르침은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에 근거했으며 아마도 금욕적 관습들도 포함했을 것이다(골 2:22, 23). 이 거짓 교사들은 분명히 신앙적이었고 진실했지만, 복음을 잘못 이해했다. 이번 주 우리는 그 이유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주 기억절이 왜 제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는 지도 살펴볼 것이다.
하늘과 땅을 하나로: 빌립보서· 골로새서
학습목표
깨닫기 : 믿음이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질 때 교회를 흔드는 오류로부터 믿음을 지킬 수 있다.
느끼기 : 하나님의 요구가 아닌 사람의 요구를 따르는 것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행하기 : 예수를 구주로 받아 십자가의 의를 믿고 말씀을 따름으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린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감
➊ 크던 작던 거짓 가르침이나 지식을 잘못 이해하고 따랐던 적이 있습니까?
➋ 바울이 교회의 제도를 말하며 질서에 신중을 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고전 11:)
➌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라는 바울의 권면은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까?(골 2:7)
➍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은 우리 죄, 십계명을 못 박은 것입니까?(골 2:14)
➎ 바울이 얽매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 것 중에 안식일이 들어간 이유는 무엇입니까?(골 2:16)
➏ 바울이 구약 의식법을 세상 초등학문이라고 단호하게 정의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골 2:20)
➐ 당신은 성경 말씀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성경이 아니라면 무엇에 믿음을 세울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첫째 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욥은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욥 28:12)지 물었다. 바울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골 2:3, 고전 1:30 참조)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답한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며, 삶의 목적에 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충만한 확신”도(골 2:2, 흠정역) 그 안에 있다. 그분을 통해 구원의 전체 계획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계시되었다. 골로새서 2:1-7을 읽어보라. 바울이 이 서신을 쓴 목적은 무엇인가?“위안을 받고”에 사용된 헬라어 ‘파라클레토신(paraklēthōsin)’은 ‘격려받았다’ 또는 ‘힘을 얻었다’를 의미한다(골 2:2). 바울의 소망은 골로새 신자들이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게 돕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사랑으로 “연합”하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두 개의 동사에 과거 시제를 사용한다. 이는 서신이 의도한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한 것”(골 2:5)을 칭찬했다. “질서”로 번역된 헬라어 탁시스(taxis)는 신약성경에서 아론의 제사장 직분(눅 1:8, 히 7:11)과 멜기세덱의 직분(히 5:6, 10; 히 6:20; 히 7:11, 17)에 사용되었으나, 바울은 이를 교회 내 질서(고전 14:40)에 적용하며 이 구절에서도 그렇게 사용한다. 때때로 교회 질서와 조직을 신학적 의미 없는 단순한 교회 제도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바울은 예배에서 적절한 예절을 규정하고(고전 11 참조), 장로와 집사를 어떻게 선출하는지 명시함으로써(딤전 3, 딛 1) 교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매우 신중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성경의 가르침이 보존되고 전파된다. 골로새 교인들은 바울의 동역자들로부터 올바른 가르침을 받은 결과 믿음의 “굳건”함을 가지게 되었다. 이 믿음이 흔들릴 수 없는 이유는 견고한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이 기초 위에 굳게 선다면 거짓 교사들이 퍼뜨리는 오류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훈 : 바울은 질서를 유지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전파하는데 신중했다. 믿음이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질 때 거짓 교사의 오류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다.
묵상 :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과 그분을 통해 구원의 전체 계획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비밀이 계시되었음을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 당신의 영적 삶에도 “질서”가 필요한 것을 경험해 보았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그 질서를 세울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보화가 숨겨있음 - “그리스도의 의는 순백의 진주처럼 결함도 없고 흠도 없다. 사람의 솜씨로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크신 선물을 개선할 수가 없다. 그것은 추호의 흠도, 점도 없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골 2:3)어 있다. 그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고전 1:30)다. 금세나 내세에 있어서 사람의 심령의 필요와 갈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찾을 수 있다”(실물교훈, 115).
기도: 그리스도를 마음 가장 높은 곳에 두고 그분을 중심으로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는 혼란과 어려움을 종종 경험합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생각과 혼탁함으로 어지러워지지 않도록 교회와 가정을 붙드시고 지켜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둘째 날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내리고 자라남
골로새서의 주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골 2:6)는, 그리스도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명확한 좌우명이다. 우리는 가르침의 체계가 아닌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주신 그분의 모든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한다(엡 2:20).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에 대한 죽음, 곧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계신 말씀(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성경)과 분리될 수 없다. 모두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실제로 성경을 통해서만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다. 우리가 “그 안에서 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결정과 행동을 그분의 말씀과 성령께서 인도하시도록 내어드린다는 뜻이다. 골로새서 2:7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나무에 비유하는 익숙한 성경 은유를 사용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삶을 정립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는 방법이다.다음 구절은 식물의 은유를 어떻게 믿는 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여주는가?(사 61:3, 마 3:10, 눅 8:11-15, 고전 3:6 참조)바울은 신자들에게 주어진 두 가지 선택지를 분명히 설명한다. 하나는 “여호와께서 심으신”(사 61:3) 나무로 남아 그분과 그분의 교훈을 굳게 붙잡고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해서 완전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모조 식물에 비유할 수 있다. 인간의 철학과 전통을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사로잡”힌다(골 2:8).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지만, 다시 속박의 멍에를 메고 노예가 될 수도 있다(갈 5:1; 행 15:10 참조).
성경에 어긋나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불행히도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고, 성경의 권위보다 인간의 권위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갈 1:6-9 참조). 이는 초기 교회가 경험한 위험이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교훈 :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삶을 정립할 때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에 굳게 서”는 방법이다.
묵상 : 당신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자아를 죽이는 것을 어떻게 경험해 보았습니까?
적용 : 당신의 자아를 죽이는 과정이 지속적인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감의 교훈
진리 안에 뿌리내리라 - “흔들릴 수 있는 것은 모두 흔들릴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가장 크게 시험을 받는 처지에 놓일 것이므로, 모든 사람은 진리 안에서 안착하고, 뿌리를 내리고 굳게 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미끄러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의 임재로써 심령을 위로해 주고 고무시켜 주시면, 그들은 비록 길이 어둡고 험할지라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은 미구에 사라지고 참빛이영원히 비칠 것이기 때문이다”(교회증언 1권, 355).기도 : 비록 흔들리기 쉽고 세상의 시험 앞에서 넘어지는 부족한 종이지만 우리의 모든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임재하셔서 매일 매 순간 주님과 동행하도록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셋째 날 십자가에 못 박으심
골로새서 2:11-15을 읽어보라. 바울이 여기서 어떤 문제들로 씨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 본문들, 그중에서도 골로새서 2:14이 율법과 안식일 준수를 반대하는 논거로 오용되는 것을 얼마나 자주 보아왔는가?이 구절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두 가지 주요 해석을 제안했다. 첫째, 십자가에 못 박힌 기록한 “증서”는 빌라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걸었던 팻말(마 27:37; 요 19:19, 20)처럼 “우리를 대적하”여 제기된 죄목들이다. 혹은 둘째, 모세가 기록한 의식법(신 31:24-26 참조)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이다. 우리가 더 넓은 맥락에서 살펴볼 때, 이 구절은 분명히 의식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또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골 2:11), 곧 “마음”의 할례(롬 2:28, 29; 신 30:16 참조)를 언급하는데, 이는 의식법의 가장 중요한 규례 중 하나였던 육신의 할례와 분명히 대조된다(레 12:3; 출 12:48 참조). 바울은 이러한 내적 변화를 “육의 몸을 벗는 것”과 물속에 잠기는 침례와 연결한다. 이 침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게 된다(골 2:11, 12).이러한 회심의 경험은 마치 죄 가운데 “죽었”다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는(골 2:13)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게 된 것과 같다. “의문”(골 2:14)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세상(눅 2:1, 행 17:7)이든 교회의 것(행 16:4)이든 법적 규정을 가리킨다. 바울 서신에서 이 단어는 단 두 번 등장하는 데, 다른 한 곳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분리 장벽을 형성했던 의식법을 가리킨다(엡 2:14, 15). 바울이 이미 침례로 상징되는 죄 사함과 내적 변화를 언급했으므로 성경의 다른 어디서도 사용되지 않은 다른 은유로 이 주제를 다시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강조한 것과 유사한 요점, 곧 골로새의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포함한 의식법이나 그에 따르는 정결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행 10:28, 34, 35 참조)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다른 곳(롬 7:7)에서 죄를 십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그는 분명히 십계명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교훈 :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은 증서는 할례를 포함한 의식법이나 정결법을 지키는 것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묵상 :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어떤 것까지 포함하고 있습니까?
적용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고 새 생명을 주신 십자가 앞에서 당신은 오늘 어떤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합니까?
영감의 교훈
폐지된 것은 의문의 율법 - “의문의 율법(ceremonial law)에 대한 성경절을 도덕적 율법(moral law)이 폐지되었다는 증거로 사용함으로 이 두 율법을 혼돈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 의문의 율법은 그 희생 제도와규례(ordinance)와 함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형이 실물을 만날 때까지 히브리 사람들에 의하여 이행되어야 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365).
기도 :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이루신 놀라운 사랑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암약하며 구원의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는 길을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고 진리를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을 가까이 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넷째 날 그림자인가 실체인가?
골로새서 2:16-19을 읽어보라. 바울은 여기서 어떤 유대교 배경의 기독교 관습을 다루고 있는가? 오늘날까지도 학자들은 바울이 여기서 다루고 있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바울의 서신 자체가 이방인이 대다수였을 이 교회에(골 2:13) 분열을 일으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영향력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유대인 신자들이 골로새 교인들에게 따를 필요가 없는 것들을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골로새서 2:16이 기독교로 개종한 일부 유대인들 사이에서 지켜지고 있던 여러 유대교 관습을 열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골로새서 2:18이 말하는 요소들도 같은 맥락에 부합한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겸손을 가장하는 것을 비판하셨다(마 6:1, 5, 7, 16). 쿰란 사본을 통해 우리는 어떤 유대인들의 예배 개념에서 천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권면하는 문제들은 다른 곳에서 겪었던 문제들과 유사했을 가능성이 높다. 골로새서 2:16은 너무나 빈번하게 오해받기 때문에, 이것을 더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다음 사항들을 주목하라. 바울이 “그러므로”를 사용한 것은 그가 이미 말했던 내용에서 결론을 도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전에 문자적인 할례의 필요성을 배제한 것은 내면의 마음의 변화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골 2:11-15).“먹고 마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에 가져온 음식과 음료 헌물을 가리킨다.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골 2:16)은 호세아 2:11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호세아는 예식 안식일을 포함하여(레 23:11, 24, 32 참조) 동일한 순서의 절기들을 언급하고 있다.
이 구절을 이해하는 핵심은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요, 그 실체는 그리스도에게 있”다(골 2:17, 새번역)라고 말한 바울 자신의 해석에 있다. 이 절기들은 희생 제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가리킨다(고전 5:7, 고전 15:23 참조). 그와 대조적으로 제칠일 안식일은 죄가 있기 전, 성소의 의식적인 제사가 채택되기 오래 전인 에덴에서 이미 제정되었기에 이것은 십자가 이후에 없어질 그림자가 아니다.
교훈 : 바울이 다루는 문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골로새 교회에 강요했던 예수의사역을 가리키는 절기의 폐지에 대한 것이며 안식일은 없어질 그림자가 아니다
묵상 : 좋은 목적을 위해서 주셨지만 바르게 대하지 못할 때 그들을 얽매이게 했던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적용 : 어떻게 하면 폐지된 것은 지키고 지켜야 하는 것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해야 “그리스도 교계의 많은 영혼도 저희 눈과 마음을 어둡게 하는 수건을 쓰고 있다. 저들은 폐지되어야 할 그 의식의 종국을 바라보지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망 시에 폐지된 것은 오로지 의문의 율법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저들은 도덕적인 율법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주장한다. 저들의 이해력을 어둡게 하는 수건은 너무나 두껍다. 많은 사람의 심령은 하나님과 전쟁을 하고 있다. 저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39)
기도 :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무엇이 옳은지 바르게 보지 못하는 사람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멀리 있으면서도주님을 따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바른 길을 걷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다섯째 날 사람의 계명
골로새서 2:20-23을 읽어보라. 이 장에서 논의된 다른 사항들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의 책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갈라디아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유대교 의식을 지키려고 하는 문제에 대해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규정한다(골 2:8, 20; 갈 4:3, 9 참조). 다시 말해, 지상 성전과 같은 것들은 땅에 속한 것이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우리가 의식법에 얽메일 필요가 없는 것은 이것들이 단지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현실을 예표했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규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분명하지만, 그 기능을 다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손이 성전 휘장을 찢는 사건(마 27:51; 단 9:27 참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규례는 십자가에서 폐지되었기에, 유대교 배경을 가진 사람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것에 매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 규례를 따르는 것은 사라져 버릴 이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된 새 세상과 배치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옛것을 단순히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벧후 3:13)본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모세의 규례 위에 인간적인 요구사항을 추가했다는 사실(막 7:1-13 참조)을 제외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약의 의식들을 계속 지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요구사항으로 여겨질 수 없으며 그저 인간이 부여한 의무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 규례는 믿음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에 부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 모든 행위를 하는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더 우월하다고 여기게 했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잘못된 일인데, 그뿐 아니라 교묘하게 마치 이것이 구원을 위한 어떤 공로가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기 쉬웠다. 우리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 내내 성경학자들은 종교적 주장을 만들려는 유혹에 굴복해 왔으며, 신자들에게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할을 가로채 왔다. 바울과 다른 성경 기자들이 가르친 것처럼 그리스도만이 성경의 진리가 솟아나는 샘이시다.
교훈예수께서 성취한 구약의 의식은 더 이상 하나님의 요구가 아닌 인간이 부여한 의무일 뿐이었다. 실제로 이것은 믿음을 향상시키기보다 믿음에 부담이 되었다.
묵상 사람의 요구를 따르는 것은 믿음에 부담이 되어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부담과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적용 : 구원의 유일한 기초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 밖에서, 우리를 대신해 하신 일에 있음을 아는 것은 항상 부족함을 느끼는 당신에게 어떤 용기를 줍니까?
영감의 교훈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 - “신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위험에 대하여 경계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거짓 교사들을 받아들임으로 그들이 오류에게 문을 열어 주게 되고, 원수는 그것을 사용하여 복음의 신앙으로새로 나온 사람들의 영적 지각을 흐리게 하고 확신을 흔들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표준이시다. 그들은 그 표준으로 제시된 교리들을 시험해야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일치하지 않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하였다”(사도행적, 473).
기도 : 최선을 다한다 하면서도 변화가 없는 것 같고, 부족함을 느끼곤 합니다. 죄 가운데 사는 연약한 종이지만자신을 보지 않으며 사람의 생각이 아닌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를위해 일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보게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 여섯째 날 더 깊은 연구를 위해
“사도 시대에 유전과 철학으로 성경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려고 시도한 것처럼 오늘날도 의의 원수는 고등 비평, 진화론, 강신술, 접신술, 범신론 등의 그럴듯한 주장으로 영혼을 금지된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성경이 기름 없는 등과 같은 것은 그들이 오해와 혼란을 일으키는 사변적 믿음의 경로로 저희 마음을 돌린 까닭이다. 분석, 추측, 재구성하는 고등 비평은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 신앙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을 제어하고 향상시키고 감명시키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빼앗고 있다. 강신술에 의하여 군중들은 욕망이 최고의 법이며 방종은 자유요, 인간은 자기 자신만 책임지면 괜찮다고 믿도록 가르침을 받는다.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바울이 골로새 신도들에게 경고한 ‘공교한 말’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는 강신설의 성경 해석을 만나게 될 것이지만 그것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사도의 음성은 성경의 영원한 진리를 분명히 확언하는 말로 인정되어야 한다. 눈을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며, 밝혀 주신 길로 꾸준히 전진하고, 그분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관념들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가 명상과 묵상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하여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할 것이다”(사도행적, 474)
함 께하는토의를 위해
➊ 그리스도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그분이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골 2:9, 10) 요한복음 1:1, 히브리서 1:3, 베드로전서 3:22도 참조하라.
➋ 골로새서 2:14-16이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반대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번 주 교과에서 다룬 것 외에, 우리가 더 이상 네 번째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데에 이 구절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어떤 문제점이 있겠는가?
➌ 당신은 의식법들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그것들을 지키는 데서 영적인 또는 신학적 축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➍ 위 인용문에서 엘렌 화잇은 성경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여겨야 한다고 기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모든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킬 수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으로부터 부지런히 자신을 지켜야 하는가? 심지어 때로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부분들까지도 말이다.
결론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은 신앙적이었고 진실했지만, 복음을 잘못 이해했다. 믿음이 성경적 기초 위에 세워질 때 거짓 교사의 오류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고 말씀에 따라 삶을 정립하여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려야 한다. 하나님의 요구가 아닌 사람의 요구를 따르는 것은 믿음을 향상시키기보다 부담이 되었다. 바울은 할례를 포함한 의식법 등을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 그것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골로새에 강요했던 예수의 사역을 가리키는 의식법과 절기의 폐지에 대한 것이며 십계명과 안식일은 없어질 그림자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