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mimetal 찾다가 찾은 글 // > 펀글 <
쉬면서 생각하기. 머리 쥐나지 않도록
부모는 半先生인가 꼰대인가(Semi-teacher or Poor teacher?)
<프롤로그: 국어공부, 설레임은 입안에 내리는 눈?>
저녁때 준원이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게에 갔을 때다. 준원이가 자기만이 선호하는 아이스크림을 찾아 이 가게 저 가게를 헤맨 끝에 집어든 것은 이름도 생소한 「설레임」이라는 빨아먹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집에 오면서 “왜 아이스크림이름이 설레임인데 한자로는 설래임(雪來淋)이냐고”. 준원이가 물었을 때, 그때 나는 비로소 그 아이스크림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았다. 내 대답을 기다릴 것도 없이 준원이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눈 설(雪), 올 래(來), 무슨 림(淋)이지?” “원래 림인데 임이라고 읽기도 하는 거고, 물과 관련된 건데 무슨 림이더라...”. 내가 그렇게 거들었더니 준원이는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한다. “눈이 오다가...”. 그래서 내가 도와줬다. ”눈이 내리다 녹는 건가 보다. 입에 들어가면서 녹는 거, 그걸 표현한 거 아니겠어?“ 준원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무슨 림인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날 나는 TV에서 ”입안에 눈이 내린다“는 분위기잡는 광고 장면을 처음 봤다.
<장면1: 화학, 영어, 또는 국어공부, 半의 영어 표현은 Semi- or Poor? >
저녁 식사후 준원이가 과학소년 잡지 부록인 원소주기율표를 갖다 놓고 옮겨 적는데, 말려도 막무가내다. 그리고 뭔가를 자꾸 물어보는데, “주기율표 옆에 「반금속」이라는 원소무리가 두 개나 있는데 같은 거냐?”는 것이었다. 살펴보니 반금속(Semimetal)과 반금속(Poor metal)이었다. 영어로는 분명 구분되는데 한글로는 같았고, 한자는 어떤지 모르니 대답해 줄게 사실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그걸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세마이 메탈은 금속과 비금속의 중간 성격을 띠는 것이고 푸어메탈은 금속의 성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고, 그렇게 얼버무릴 수 밖에. 하지만 2학년생에게도 한글로 설명하기보다 영어로 말하는 게 더 이해가 쉬워야 하다니, 이건 화학 전공자들의 무책임이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자위했다.
<장면2: 수학공부, 센치그램과 센치리터는 왜 없는건가?>
다음날 아침 준원이가 느닷없이 물어본다. “아빠, 왜, 센치리터는 없어?” 뭔 말인지 못알아 들었다. “밀리미터 다음엔 센치미턴데, 밀리리터 다음에는 센치리터가 없잖아?” “아!, 글쎄? 아마 단위를 만들 때 리터에는 센치라는 것이 안 필요했었나 보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네.” “그럼 센치그램은 왜 없어?” “그것도 마찬가지겠지.” 그렇게 말했지만 나도 왜 센치리터와 센치그램이 없는지 그제서야 궁금했다. 지금까지 한번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으므로.......
<장면3: 수학 아니면 철학공부, 0은 시작인가, 끝인가, 아니면 가운덴가?>
‘그렇게 엿 멕인다 이거지. 그렇담 이거 한 번 소화해보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질문을 던졌다. “숫자의 시작은 뭐지?” “1” 준원이와 솔비가 합창했다. “그럼 끝은?” “무한대”, 솔비가 답하자, 준원이가 덧붙였다. “무량대수래!” 어디서 들었는지 나도 못 들어본건데, 아무튼...“그래, 그럼 0은 시작이니 끝이니?” 내 물음에 둘 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다시 떠보았다. “0은 1보다 앞에 있으니 시작이잖아?” “아냐, 0은 숫자가 아니라 그냥 정한 거야. 0은 없는 거잖아!” 솔비가 그때서야 답한다. “다른 숫자도 그냥 정한 거잖니? 그러니 0이 시작이지!” 내가 다시 질문하자 다시 둘다 묵묵부답. 둘이 말이 없길래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런데 0은 끝이기도 해.” 내 말에 솔비가 그제서야 다시 반론을 제기한다. “왜? 0은 없는 거고, 무한대가 끝인데” 그래서 내가 다시 물었다. “어떤 수를 1로 나누면 어떤 수 자신이 되지?” “응” 애들이 대답한 뒤 계속 설명했다. “그런데 어떤 수를 무한대로 나누면 0이 된다. 그리고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뭐가 될까? 무한대가 되거든. 니들은 아직 안 배웠겠지만.....그러니 0은 무한대와 통하지. 그래서 0은 무한대고 무한대는 0이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애들은 또다시 묵묵부답 속으로 침잠하고, (잠시 휴식)
<장면4: 수학 아니 이제는 철학공부, 0은 시작인가, 끝인가, 아니면 가운덴가?>
그런 애들에게 나는 계속했다. “ 0은 숫자의 시작이고 끝이지?! 원을 한 번 생각해봐.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거야.” 그랬더니 이번에는 준원이가 반론을 제기한다. “원을 그릴 때 컴파스가 시작되는 곳이 있어!” 그래서 내가 다시 지적해줬다. “준원아. 그렇지만 컴파스가 시작된 곳, 거기서 원그리기가 끝이 나는데? 그러니 시작도 끝도 없는 거지! 안 그래? 그게 0이야.” 잠시 생각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참, 예전에 준원이가 그랬지? 왜 지구엔 남극과 북극은 있는데 동극과 서극이 없냐고. 지구는 옆으로 돌잖아? 그게 바로 시작과 끝이 없는 이유야. 니들 원불교라고 아니? 불교와 비슷한데 아마 원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라.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윤회?” 내가 자신없는 말을 끝냈을 때도 솔비는 여전히 수긍하지 않는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숫자는 1에서 시작해서 무한대까지 이어져!.”
그 옆에서 준원이가 중얼거린다. “그럼 0은 중간이잖아? 0, -1, -2, -3.... 0은 중간이기도 하대!” 준원이는 그렇게 내 말에 수긍했다. “그래. 0은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고, 또 중간이기도 하네! 준원이 똑똑한데.” 그렇게 0에 대한 논쟁은 끝났다. 그렇게 일단 위기는 넘길 수 있었다. 어린이 철학교실에 다니는 애들이라 대충 이해는 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국어에서 화학을 건너, 영어, 수학을 거쳐 철학까지 전과목 과외수업을 한 것 같았다.
<장면5: 한자공부, 쉬어가는 시간, 그러나 그냥 쉬기엔...>
“나는 얼음을 무지 좋아하는 얼음신이다.” 자꾸 지 엄마가 못 먹게 하는 얼음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준원이의 말에 누나 솔비가 되받는다. “아, 氷神!” 그러자 준원이는 순간 당황하는가 싶더니, “그럼 나는 드라이아이스신이다!”라고 한걸음 비켜선다. 이번엔 내가 한 수 거들었다. “半氷神?!” ............. 준원이는 한동안 대꾸를 하지 못하다가 뭔지 모르는 소리를 해댄다. 찡얼거리는 준원이의 흙빛 낯을 보면서 잠시 미안했었다.
<에필로그: 도덕공부, 부모는 과연 반선생인가 아님 꼰대인가>
애들이 점차 커 감에 따라 부모와 선생의 이중적 역할이 더욱 어려워져 가는 것 같아 전율마저 느꼈다. 부모라는 자리에 있는 한, 선생이고 싶을 때만 선생일 수 있는 半先生(Semi-teacher)보다는 항상 실력없는 꼰대(Poor teacher)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자식이 공부하든가 말든가 관심 끊지 않을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雪來淋이 혀끝이 아닌 눈동자에 맺힌다.
첫댓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답이 없다 ~~~~
입가에 미소가 생기면 이 펀글은 성공.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