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제주 도보 순례 피정 열 네 번 째 날
새 날이 밝아옵니다.
사흘 전부터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을 하질 않습니다.
새벽 5시가 지나가는 데
아무런 기척이 없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모닝벨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부산스럽던 모습은 보이질 않습니다.
모두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요?
지난 밤은 모두 잘 주무셨나요?
정말 일어나기 힘이 듭니다.
억지로 억지로 잘 견뎠던 온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칩니다.
아침 7시 미사
시간을 좀 늦추어 주실 만도 하건만, 어김없습니다.
‘힘들 때마다 주님께 지혜를 청해라.’ 하십니다.
착한 목자 안에는 지혜로움이 가득합니다.
영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청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체를 모셔올 때 모두 한 마음이 됩니다.
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닮아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또한 청해 봅니다.
걷는 것은 어제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전 9시 35분, 봉고차에 몸을 싣습니다.
신부님만 빼고 완전체가 되었네요.
비는 여전히 보슬비가 되어 내립니다.
하느님, 이제는 따뜻한 햇빛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신부님 차를 따라 산길을 계속 올라갑니다.
자동차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 길입니다. 이 길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약간의 헤매임(?) 끝에
‘전문 승용마 생산 지정 목장 J.J 루시타노 팜’ 이라고
쓰인 작은 나무 간판의 목장에 도착합니다.
얼마 전 성산포성당에서 머물며 저녁식사를 했을 때,
신부님의 지인 한 분이 오셔서 함께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분이 말을 너무 좋아하셔서 말을 키우고 있는데,
그 덕분에 목장 견학을 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답니다.
이런 멋진 기회가 또 올 수 있을까요?
조련사인지, 관리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을 사무실로 안내를 하며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합니다. 사무실 한 쪽 벽 칠판에
많은 말들의 정보가 쓰여져 있네요.
포르투칼계의 루시타노, 독일계의 홀스타이너,
관운장이 탔다는 적토마, 루시타노와 한라마의
교배종인 할로할로, 한혈마, 홍씨가 탄다는 홍씨타노 등등.
품종과 출생일, 부모의 이름이 빼곡이 적혀 있습니다.
며칠 동안 내린 비로
5만평의 넓은 목장의 땅이 질퍽거립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니 멋진 말들이 우리들
곁으로 다가옵니다. 고래눈을 가진 크림색의 알비노,
120년 된 목장에서 온 황금색의 적토마. 루시타노
목장의 말들은 전문 승용마들로 사람들과 친숙하고
온순하다고 합니다. 머뭇거리거나 겁먹지 말고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쓰다듬어 주면 된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 봅니다.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니 얼굴을 부비기도 하고
계속 졸졸 따라옵니다. 간식으로 준비해 준 당근을
손바닥에 올려 말에게 먹여주는 체험도 해 봅니다.
당근을 먹으려고 커다란 입으로 쑥 다가오니,
사실 아닌 척했지만 쪼매(?) 무섭긴 했습니다.
오전 11시 20분,
목장을 나와 성산포항으로 갑니다.
‘우도’가는 배를 타려구요.
며칠 전 걸었던 길을 차안에서
바라보며 성산포항에 도착. 평일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어 보이네요.
우도 여객선 운항 중단! 이젠 좀 잦아들기는 했지만
계속되는 비바람으로 배가 운항을 하지 않는답니다.
어쩌죠? 점심으로 주먹밥까지 준비하고 나섰는데....
숙소인 김녕성당으로 돌아가서,
제주에서의 마지막 오후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 낮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커다란 제주도 지도를 펼쳐놓고 12일 동안 걸었던
순례길을 다시 매직펜으로 그려보기도 합니다.
오후 3시, 조용하고 멋진 카페를 찾아
김녕 마을길을 걸어가 봅니다. 고불고불 골목길,
‘여기는 길없음’ 팻말, 마치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바닷가 돌담길을 따라가니 나지막한 지붕의 ‘농띠’ 카페가
보입니다. 유리창 너머로 비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 게다가 좋은 분들과 함께!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식사는 제주 오겹살 샤브샤브입니다.
올해 칠순을 맞이한 율리엣다님이 한 턱 쏘신 저녁입니다.
건강하게 미카엘님과 함께 오래오래 잘 살아 가시기를
기원하며 모두 건배!
율리엣다님과 먼저 김녕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걸까요?
어디론지는 모르겠지만 다함께 산책을 했다 하네요.
밤 8시가 넘어갑니다. 신부님과 형제님들이
아직도 함흥차사입니다. 신부님한테 볼일이 있는데...
신부님께 전화를 해 봅니다. 토마스님께 전화를 해 봅니다.
받지를 않습니다. 다시 신부님께 전화를 해 봅니다.
전화기 저 멀리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네요.
어디에 계시는 걸까요???
마지각 밤이 깊어갑니다.
14박 15일의 일정이 끝나갑니다.
발에 생긴 물집과 무릎과 다리의 통증으로
절뚝거리며 함께 걸어온 도보 순례 여정 속에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안창호 발다살 신부님, 유수길 미카엘님과 이상숙 율리엣다님,
박영순 마리아님, 이숙현 세레나님, 이양희 레지나님,
백장현 스테파노님, 진귀화 사비나님, 신길자 엠마누엘라님,
서영해 레아님, 운전 봉사 최경호 토마스님, 그리고
이가영 루시아님, 이용우 안젤로님, 강소영 세실리아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참 좋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부족하고 보잘 것 없지만
주님께 드립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일지라도
기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을 주소서.
아멘!
김미령(엘리사벳)님이 쓴 글을
제가 대신해서 올려드립니다.
사진은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순례로 하나되어 아픔도 기쁨으로 승화되어 주님과 일치되니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도보 순례하신 제5피님들 축하드려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별르기만 하고 참여하진 못한 제주순례하기.
마음은 몇 번이나 제주에 갔다 왔어요.^^*
마지막 날이라 특별한 체험도 하시고 이쁜 카페도 가보시고 유종의 미를 거두셨네요.
고생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여유 같습니다.
순례 참가하신 모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피곤한 몸으로 잠도 못자고 그 날 여정을 올려 주신 분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신부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