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치러진 서울 양천 을과 경기 고양 덕양 갑, 의정부 등 3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선 결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양천 을과 의정부에서 승리, 정국
주도권을 선점한 반면 여당인 민주당 후보들은 텃밭에서 모두 패배했으며
민주·개혁당이 연합 공천한 고양 덕양 갑에서 승리,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이날 3개 지역 국회의원 재·보선 투표율은 평균 25.3%를 기록, 역대 재·보선
최저투표율(1965년) 26.1%를 경신하는 신물이 난 정치에 등을 돌린 이반된
민심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시적 측면에서 보자면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거대여당 한나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더구나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이 모두 이겼던 세 곳 중
두 곳에 한나라 당이 입성했다는 사실은 집권여당의 입장에서 적잖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변화와 개혁을 위한 참여정부의 기치를 내건 새 정부 출범초기의
선거에서, 특히 야당의 취약지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도권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달리 보면 소수여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안정논리나 개혁드라이브가 아직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쉽게나마 경기 고양 덕양 갑에서 연합 공천한 개혁당 유시민 후보의 당선은
향후 여권의 정개개편 향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 대통령과 민주당의
신 주류는 유후보의 당선을 기폭제로 당의 쇄신과 정치개편 작업을 본격화
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24일 재·보선 개표결과를 자축하며 만족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당직자마저 '노무현식 이벤트 정치에 대해 국민의 우려감이 표출된 선거'로
규정하고 지난 대선 패배의 충격을 추스르고 향후 정국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자평이다. 나아가 박희태 대표대행은 '이번 선거는 안정이냐,
불안정이냐의 싸움이었고 국민은 안정을 택했다'고 하는가 하면 박종희 대변인은
논평에서 '노무현 정권이 얼마나 못미덥고 불안했으면 한 석도 주지 않았겠느냐'고
현 정권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이에 반해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뜻을 확인했다'며 더욱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당과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패자로서의 깨끗한 승복을
자세를 보여 대조를 이뤘다.
아무튼 민주당의 이번 참패는 가뜩이나 어려운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개혁당과의 연합공천을 놓고 신·구 주류의 대립과
갈등이 심했던 고양 덕양 갑에서 개혁당 유시민 후보의 당선으로 신 주류의
영향력과 발언권이 점차 거세질 양상이다. 만약 이들이 타협에 의한 합일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 두 세력이 양분되어 결별하는 극단의
정치상황까지 몰고 가는 초유의 불행을 초래할지 알 수 없으나 1년 남짓 앞둔
17대 총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리란 점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이제 개혁당은 지난 대선 때 확인 된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민심을 등에 업고
새 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목소리가 점차 확대될 조짐이다. 더불어 개혁당과
민주당 신 주류의 정치행보가 맞아떨어질 경우 새 정치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정계개편의 물살도 그만큼 가속도를 동반하게 될 것이다.
4·24 재보선 결과에 국민의 선택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한나라당의 자기도취식
가당찮은 논리는 심히 못마땅하다. 민주당 역시 겸허한 성찰은 좋으나 실의에
빠진 모양새 역시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번 선거는 기껏해야 전국 227개 선거구 중 수도권 세 곳에서 치러진 선거로
당락이나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최악의 투표율에서 나타난 극단의 정치냉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심한 표현을 하자면 국민이라는 알맹이는 빠진 채 당과 조직원만을 동원한
그들만의 '소문 난 먹을 것 없는 잔치'였다.
정치에 등을 돌린 이반된 민심을 바로잡는 유일한 길은 상생의 정치로 정치개혁에
부응하는 길뿐이다. 정치권은 지금부터가 바로 새 정치구현의 시작임을 자각하고
환골탈태의 정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choikwanglim@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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