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는 낮 10시 7분이 아니라 밤 10시 7분을 나타낸다. 준비운동을 마친 사람들이 마룻바닥에 나란히 앉는다.
선임자의 구령이 들린다.
“묵상하겠습니다”
“차렷, 묵상”
소란스러운 도장은 갑자기 침묵에 싸인다. 검도를 하기 전에 하는 묵상이다. 묵상을 마친 관원들은 장비를 갖추고 기합소리와 죽도가 부딪치는 소리로 도장은 활기를 되찾는다. 큰 기합소리와 함께 관원들은 빠르고 민첩하게 상대의 머리, 허리, 손목 등을 공격한다.
전주시 우아동에 위치한 완산제 검도관(관장 이승민)의 밤 10시 이후의 모습이다. 낮 10시가 아니라 밤 10시이다. 이 시간이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지만, 완산제 검도관은 관원들의 강한 기합과 움직임으로 활기차다.
완산제 검도관은 1994년 7월 풍남동에서 범사 8단 전영술 선생님이 검도 저변 확대를 위하여 개관하였다. 그 후 2004년 1월 우아동(아중지구)로 이전하여 각종 대회 종합우승을 하였고 매년 승단심사에서 가장 많은 유단자를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있다.
2대 관장 이승민(공인 7단)은 “관원들이 자발적으로 밤 10시에 수련하는 도장은 아마 우리 도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힘든 직장일 등을 마치고 오거나, 학원을 끝내고 오는 학생들, 늦게까지 일한 직장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관원들이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열심히 지도할 뿐인데, 관원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검도는 오래 하면 할수록 깊이가 느껴지고, 예를 중요시 여깁니다. 검도를 통해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울 수 있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관원들은 검도를 배우기 위해 모인 생활체육인들이다. 대학생 때부터 수련한 교수, 왜소한 체력을 보완하기 위해 검도를 배운 공무원, 사업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입문한 CEO, 경찰공무원 준비를 위해 시작한 대학생, 부모 권유에 시작한 초등학생, 검도시합 동영상을 보고 입문한 중·고등학생, 새로운 취미를 갖기 위해 시작한 대학생, 잠시 충전을 위해 시작한 휴학생 등 다양하다. 이들은 모든 일과를 마치고 하루의 마지막을 힘차게 검도로 마무리한다.
대학생 때부터 검도를 시작한 김병기교수(남·48)는 “동아리활동으로 대학생일 때 시작하여 30년째 죽도를 놓치 못하고 있습니다. 검도는 다른 격투기와는 다르게 정적이면서 마음을 닦는 선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검도의 도가 칼도(刀)가 아니라 길도(道)입니다. 격렬해 보이지만, 장비를 갖춰하는 운동이어서 남녀노소와 나이를 불문합니다. 조부모, 부모, 손자 즉 3대가 할 수 있는 격투기입니다”
가정주부인 배소현(여·42)씨는 “처음에는 남편이 검도를 시작하였고, 다음에는 제가 도장을 왔습니다. 막내아들까지 검도를 해서 전 가족이 수련하고 있습니다. 검도는 나이에 상관없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에요. 우리 가족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검도를 하면서 가족 단합도 잘 되고, 같은 운동으로 호흡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두운 밤 10시에 검도라는 생활체육으로 모여 건전한 마음으로, 건강을 지키고, 자기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앞으로 밝게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검도 수련을 통해 자기 마음을 수련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이들이 있어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강 주 용 도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