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핑계를 대자면요
이사하느라.... 출사 ...등등으로 바빠서 이제야 정신 좀 차리고 큰스님 법문을 정리했습니다
늘 느끼지만 들어도 들어도 좋은 주옥같은 말씀이라 정리해 올립니다.
2021 신축년 정초 기도 지안큰스님 법문
당나라 무제 때부터 참회기도하는 풍습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6세기 였고 지금은 21세기이니 1,500년 전부터 시작된 풍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소원을 가지고 비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 사찰에서 기도 의식을 체계적으로 시행한 것은 모두 그 때부터라 말하고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나라 사정이나 세계 여러 나라 사정이 마찬가지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설도 잘 못쇠고 있지 않습니까? 가족이 모여 음식을 먹거나 이런 풍습이 여러 사람이 모이지 않도록 하라는 정부의 권장사항으로 모이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시대입니다.
불교 경전에서는 이런 어려운 시대를 劫濁(겁탁)이라고 합니다. 五濁惡世(오탁악세)에 나오는 것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劫濁(겁탁)인데 재앙이 오는 것도 劫濁(겁탁)이고, 천재지변이 오는 것도 劫濁(겁탁)이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劫濁(겁탁)이고, 예전 농경사회에서 풍수해가 일어나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없어서 흉년이 드는 것도 劫濁(겁탁)이라 하였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도 항상 인류가 사는 사회에는, 달리 말하면 중생이 사는 세계에는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기에 劫濁(겁탁)의 어려움을 수시로 겪고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이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마음을 잘 써야 합니다. 참회정신을 가지고 자기 생활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이나 또는 내 자신이 잘못되어 오는 여러 가지 고통이 근본적으로 貪瞋痴(탐진치) 三毒(심독)에서 오는 것입니다. 貪瞋痴(탐진치) 三毒(삼독)이 意業(의업)에 속하는 세가지인데 흔히 三毒(삼독)이라 합니다. 三毒(삼독)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때로는 불행해지고 화를 입게 됩니다.
제가 31년 전인 1990년도에 마산에 있을 때인데 교도소에 가서 법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는 처사 한분이 교도소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어느 분이 교도소장의 부탁을 받았다면서 “스님 언제 시간 내시어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법문 한 번 해주십시오.”라 하시어 교도소를 갔었습니다. 그 후에도 김해교도소 등 교도소에 서너 번 가서 재소자들을 상대로 법문을 했었습니다. 그 처사분의 간청으로 마산교도소에 갔는데 강당에 재소자들 200 여명이 모여있었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여러분들이 어쩌다가 이 교도소에 와서 피감생활을 하게 되셨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제가 답을 듣고자 한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한 생각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한 생각 瞋心(진심)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에 교도소에 와있게 되었습니다.” 라고 처음에 말을 꺼냈더니 맨 뒤에 앉아있던 사람이 고개를 숙여 소리를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교도관들이 그 사람에게 달려가서 진정을 시키고 제가 30~40분 정도 얘기를 했습니다. 법문을 마치자 교도소장이 “스님, 재소자들에게 참으로 좋은 말씀 해주셨습니다.”라고 덕담을 하면서 교도소장 집무실에 가서 차 한 잔 하고 하여 교도소장 집무실에 가 차를 마시고 있는데 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오더니 “소장님, 한 재소자가 꼭 스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만났는데 이 분이 나이가 50 쯤 되시는 처사님인데 눈물을 흘리면서 “스님, 첫 마디 말씀을 듣고 제가 울었습니다. 스님 말씀이 제 가슴에 와닿아 제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라 하였습니다. 그 때 한 말이 가끔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나쁜 짓하는 것은 욕심, 성내는 마음 때문입니다. 痴心(치심)은 빼더라도 貪瞋心(탐진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사는 환경이 어려워지는 것이 貪瞋(탐진)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貪心(탐심), 瞋心(진심)에 의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괴롭히는 것이고 이 세상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貪心(탐심), 瞋心(진심)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痴(치)는 ‘어리석음’이라는 뜻인데 왜 痴(치)를 貪瞋(탐진)에 붙이느냐 하면 貪瞋(탐진)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 안부려도 괜찮은데 자꾸 욕심이 일어나는 것이 痴心(치심)이고, 성 안내도 괜찮은데 자꾸 화 내는 것이 痴心(치심)입니다. 貪瞋(탐진)을 조정하는 마음을 痴心(치심)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三毒(삼독)입니다. 그래서 항상 내가 잘못되는 것은 욕심, 瞋心(진심) 때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행동을 조심해야 하고, 말(口業구업)을 조심해야 하고, 생각을 정리하여 밝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身口意(신구의) 三業(삼업)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조심하면 禍根(화근)을 만나지 않아 괜찮습니다. 몸을 조심하고·입을 조심하고·생각을 조심하는 것을 節約(절약)이라고 합니다. 節約이란 경제적으로만 쓰여지는 말이 아닙니다. 인생은 하나도 보장되어지는 게 없습니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고 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태어나서 몇 살까지 살아야 겠다는 생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나를 위해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는 요행을 바라는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게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주력을 하고 마음에 선근을 심고 공덕을 쌓아가면 그 결과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허황한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항상 성실한 생각 – 불교에서 말하는 願力(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사람은 돈을 벌어서 반드시 좋은 일에 쓰겠다는 願力(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勝鬘經(승만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勝鬘經(승만경)』에서는 부처님께서 “돈을 많이 벌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 끝에 “많이 벌어서 중생을 위해 널리 쓰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중생들을 위해서 많이 베풀라는, 보시를 많이 하라는 뒷말이 이어져 나옵니다. 그런 것을 ‘願力(원력)’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항상 願力(원력)에 의해서, 그리고 안돼도 편안해야 합니다.
본래 우리 마음은 빈 마음입니다. 아무 것도 없었던 마음입니다. 본래 眞心(진심)은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입니다. 貪瞋痴(탐진치) 三毒(삼독)이 자리잡기 이전의 마음을 眞心(진심) - 참마음이라고 합니다. 眞心(진심)은 아무 소견이 없습니다. 달마스님 법문 「四行論(사행론)」에 ‘無所求行(무소구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괴로움을 해결해야 하고 생활의 기본요소인 의식주를 해결해야 내 생계가 유지가 되는 것인데 그러나, 큰 마음을 쓰면 - 대승경전에서 말하는 無爲心(무위심- 함이 없는 마음) 속에서 다 이루어 집니다. 『千手經(천수경)』에도 관세음보살의 덕을 찬탄하는 ‘無爲心內起悲心(무위심내기비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無爲心(무위심)은 無心(무심)으로 함이 없는, 원하는 바 아무 것도 없는 마음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지극한 마음이 되면 생각이 떨어져 나가 원하는 바가 없게 됩니다. 기도할 때 지극한 마음에 들어가면 내가 없는 無我之境(무아지경)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처님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오대산 월정사에 계시던 탄허큰스님께서 살아생전에 부산에 오시어 대법회에서 법문을 하신다는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나는 큰스님들 법문을 꼭 직접 가서 듣고 싶어서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갔는데 차가 밀리다보니 이미 법문이 끝나고 탄허스님께서 질문시간을 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느 신도님이 “큰스님, 기도를 할 때 어떻게 하면 됩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 “기도할 때에는 기도하는 내가 없어야 합니다.”라고 답하시었습니다. 부처님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큰스님 말을 이해했지만 ‘신도님이 저 말씀을 알아들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한 마음에 들어가면 내가 없어집니다. 三昧(삼매)가 無我之境(무아지경)입니다. 三昧(삼매)의 경지에 들어가면 주관과 객관이 다 끊어져 버립니다. 이 때 道心(도심)이 순수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분별심이 끊어져서 주객이 하나로 합쳐질 때 내가 없어지고 보여지는 경계가 없어질 때 비로소 道心(도심)이 일어납니다. 道心(도심)이란 보리심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입니다. 어머니가 아들 대학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는 마음을 당연히 가질 수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이 들면 내가 없어집니다. 의식 속에 생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 경지가 된 것이 기도 三昧(삼매)이고 염불을 하게 되면 염불 삼매가 되는 것입니다.
나옹스님이란 큰스님께서 출가하시어 어느 절에 계실 때에 속가의 누이동생이 오빠인 스님이 그리워 자주 찾아왔습니다. 나옹스님은 누이동생이 찾아올 때마다 없다고 하면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큰 절에서는 부모가 찾아와도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은 속가의 인연들이 찾아오면 번거롭기 때문입니다. 구산스님과 법정스님의 스승이신 효봉스님은 일제 강점기 장학생으로 일본유학 최초의 한국인 판사로 6년간 평양에서 판사 생활을 하다 어느 죄수에게 誤判(오판)으로 사형 언도를 하고 회의를 느껴 법복을 벗고 엿장수를 하며 3년을 다니다가 석두스님 아래에서 출가하시어 불가에 귀의하신 분입니다. 효봉스님도 속가의 인연이 찾아와도 만나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옹스님께서도 자꾸 찾아오는 누이동생에게 자신이 멀리 갔다고 하라며 편지 한 통을 전해달라고 다른 스님께 부탁하였습니다. 편지 내용은 ‘출가한 나를 자꾸 찾아다니지 말아라. 네가 자꾸 찾아오는 것은 내 수행을 방해하는 것이다. 내가 너한테 부탁하는 것은 내가 생각날 때 아미타부처님을 찾아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미타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지 간절히 생각하는 염불공부를 하라고 일러준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흔히 각 사찰의 법당 주련(柱聯) 속에 쓰이어져 걸려 있는 사구송이 있습니다.
阿彌陀佛在何方(아미타불재하방)
아미타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가?
着得心頭切莫忘(착득심두절막망)
가슴에 붙여 이 생각을 잊지 말아라.
念到念窮無念處(염도염궁무념처)
생각이 다하여 생각이 없어진 곳이 이르면
六門常放紫金光(대문상방자금광)
눈, 귀, 코 등 육근(六根)의 문에서 항상 금빛 광명(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광명)이 비쳐져 나오리라.
이 게송 속에 참으로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인생은 무상한 것입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려도 죽은 사람은 하나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누구도 죽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업적을 추모한다거나 할 수는 있어도 부러워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身口意(신구의) 三業(삼업)을 절약해야 합니다. 생각을 절약해야 하고, 행동을 절제해야 하고 말을 절약해야 합니다. 행동반경이 늘어나는 시대이기 때문에 교통사고도 일어나고 사고도 많이 일어납니다. 身口意(신구의) 三業(삼업)을 줄이는 것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절약이라는 말로 어려운 시대에 참고 절약하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복습 잘 했습니다.()
아이고 복습까지요..
고맙습니다 _()_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
인생사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예 큰스님 법문이 그러시지요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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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
봄비가 오신 이 아침에
구구절절이 가슴을 적시는 명법문입니다.
코로나 위험한 시대에 신구의 삼업을 청정, 절약해서
늘 아미타부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진 댓글 고맙습니다 _()_
_((()))_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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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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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