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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라스트 홀리데이>의 줄거리:
시한부로 3주가 주어지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한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아줌마라 부르는 30살의 뚱뚱한 흑인 아가씨 조지아는 모든 돈을 다 모아 체코의 동화 같은 최고급 호텔로 할러데이를 떠납니다. 부활 후 주어진 예수님의 지상 40일. 색다르지만 역시 시한부의 시간입니다. 대체 주님은 이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시며 지내신 것일까요?
라스트 홀리데이
(요21:1~14)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라스트 홀리데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라스트 홀리데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서른 살 된 아주 뚱뚱한 흑인처녀 조지아입니다.
뉴올리언스의 한 백화점에서 주방용품을 파는 가게의 점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 고약한 상사 밑에서 지루하고 따분한 그런 삶을 살다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무슨 일 때문에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았는데, 램핑턴 병이라는 진단이 나오면서 3주밖에 못 산다는 시한부 선언이 주어집니다.
집에 돌아와서 이렇게 두껍게 노트에 적어놓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들에 대한 항목을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보면서 펑펑 울다가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축이라든지 연금이라든지 보험이라든지 그동안 안 쓰고 안 먹고 절약하고 절약해서 모아두었던 모든 돈을 다 모아가지고, 사는 동안 가장 큰 꿈 중의 하나였던 체코의 어느 동화같이 아름다운 호텔에 가서 마지막 3주를 지낼 것을 결정합니다.
예쁜 최고급 옷을 사 입고 그 아름다운 최고급 호텔에서 그동안 뚱뚱했기 때문에 또 돈이 없어서 먹고 싶지만 먹지 못했던 모든 산해진미들을 마음껏 먹습니다.
최고급 마사지를 받습니다, 스노보드를 타봅니다, 베이스점프를 해봅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세계의 새로운 친구들을 사귑니다.
그 중에 하나가 그 호텔의 주방장으로, 미국에 있을 때 늘 멘토의 역할을 했던 디디에라는 셰프와 친분을 갖게 되고 새로운 친구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렇게 마지막 3주의 홀리데이를 보내고 있는데, 미국에서 연락이 옵니다.
‘CT기계의 결함으로 오진되었으므로 당신은 렘핑턴 병이 아닙니다’라고 연락을 받으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이 ‘라스트 홀리데이’, 공감이 가지요.
동화 같은 호텔에서 맛있는 것 먹고 비싼 옷 입고, 마사지 받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못해봤던 스노보드도 타고… 이게 뭐 별겁니까? 대단한 것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거예요.
꼭 체코에 있는 호텔에 가서 3주를 지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는 겁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지상에서 부활하신 뒤에 머물렀던 40일이 주님에게는 시한부입니다.
주님은 아시지 않으셨겠어요?
종말 때의 재림이야 언제일지는 주님도 모르시고 하나님아버지만 아시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승천하시는 그 시간은 주님이 모르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지상에서 산다고 하는 생각과 연관지어 보면 주님도 지금 부활하신 뒤에 이 지상에서 시한부의 인생을 살고 계시는 겁니다.
오늘 이 본문은 이 시한부인생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단계에요.
그런데 ‘라스트 홀리데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인 조지아에게서 보여 지는 그런 드라마틱한 모습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지아는 아주 밝게 승화시킵니다.
최고급 호텔에 가서 정말 즐기면서 인생을 사는데, 많은 사람들이 시한부선언을 받게 되면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조지아가 즐기는 것도 시한부인생의 선고를 받고 심히 괴로워하는 것도, 다 공통된 하나의 이유 때문이에요.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이것만은 해봤어야 되는데, 이것은 먹어봤어야 되는데, 이곳은 가봤어야 하는데, 사랑의 고백을 했어야 되는데… 이런 버킷리스트가 있기 때문에 괴로워도 그것 때문에 괴롭고, 조지아처럼 역전의 분위기를 만든다 해도 그 버킷리스트의 수행 속에서 나타나는 거죠, 즉 세상에 대한 소원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시한부인생 속에서는 그런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분위기 자체를 도대체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일상적이고 평범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일상적이고 평범한 본문 속에 불가사의한 내용이 너무나 많이 끼어 들어가 있어요.
자, 한번 보세요!
부활하신 뒤에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나 다른 복음서에 보면 그 외의 여자들에게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벽에 구애받음이 없이 쑥 들어오셔서 평강을 기원하시며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이게 다 부활한 다음날에 있었던 일들입니다.
이렇게 따지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 사십 일 동안에 승천하실 때까지 11번 나타나십니다.
여기에 이상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있다 지금은 갈릴리에 와서 함께 머물고 있다가, 일곱 제자가 고기잡이를 하는데 밤새 고기를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새벽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신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처음에는 몰라보았다가 요한이 주님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물속으로 뛰어들어서 첨벙첨벙 하면서 주님께로 다가갑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주님이 같이 있지 않았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올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오지를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 40일 동안에 주님은 누구랑 지내신 것이고 어디에 머무신 것입니까?
제자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 함께 계시지 않으신 겁니다.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주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나 어머니 마리아나 그 외에 시중 들던 여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그런 기록이 없고 그랬을 리도 없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40일 동안에.
이상하지 않아요, 여러분?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또 이상한 것은 대체 주님께서는 어디서 불을 지필 수 있는 재료들을 얻으셨으며, 고기를 잡으라고 해놓으시고 어디서 고기가 나서 그 불 위에 고기를 굽고 계셨을까요?
주님이 전지전능하시니까 ‘떨어져라 물고기야!’ 해서 고기를 구우셨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기를 더 가져오라고 하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리고 13절에 보면 가셔서 떡을 가져오셨다고 합니다.
떡이 이미 구워지고 있는데 가셔서 떡을 또 가져오셨다고 해요, 어디로 가셔서 떡을 가져오셨다는 얘깁니까?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이 본문 속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배고픔까지도 자상하게 다 아시고 조반을 준비해 주셨다’라는 메시지를 이 본문 속에서 뽑을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채택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불가사의한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40일 동안에 어디에 계셨느냐 이겁니다.
느낌은 이런 느낌이에요.
이북이 땅굴을 팠잖아요? 땅굴이라는 게 뭡니까?
안 보이다가 갑자기 땅굴 끝에서 불쑥 나타나는 겁니다.
38선 아래로 땅굴을 내서 1,2,3호 땅굴을 밑으로 내는 동안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땅굴 마지막 부분에서 불쑥 나타나는 거잖아요?
주님은 그 하늘의 아버지가 계시는 천국에 가신 건 아니고, 하늘과 이 세상 사이에 하늘의 땅굴이 있어서 그 땅굴에 머물고 계시다가 불쑥불쑥 나타나시는 것 같다는 겁니다.
땅굴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안 받는 공간입니다.
그러니까 그 땅굴에 계시다가 사방이 다 벽으로 둘러싸이고 문으로 막혀 있는데 불쑥 나타나시고, 예루살렘에 계시다가 갈릴리로 불쑥 나타나시고, 그런 것 같다 이거예요.
영원히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통해서 시한부인생 40일의 마지막 부분으로 치닫고 있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이 세상 속에서의 버킷리스트가 없다는 것입니다.
버킷리스트는 세상에서 꼭 하고 싶은 항목들을 적어놓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고 싶으신 일이 없는 거예요.
‘라스트 홀리데이’라는 영화 속에 나오는 조지아처럼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체코의 어느 호텔에 가서 마지막 인생을 홀리데이로 보내고 싶으신 그런 마음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고, 십자가를 지셔야 된다고 하는 부담감 때문에 3년의 공생애 동안에 미처 누리지 못했던 이 세상에서의 재미있는 것, 흥미로운 것, 기쁠 수 있는 모든 것들, 이런 버킷리스트가 전무하다는 얘깁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주님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실 것입니다.
지금 하늘나라는 있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말씀을 나누는 이 순간에도 하늘나라는 있고, 그곳에 아버지가 계시고 승천하신 주님이 계십니다.
그곳에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가 맡기신 모든 일을 마치시고 40일을 머무시면서 하늘로 올라갈 준비를 하십니다.
하늘을 아는 분에게는 이 세상에서 이루고 싶고 가보고 싶은 동화 속 호텔도 없고, 입어보고 싶은 예쁜 옷이 있을 수가 없고, 못 먹어서 아쉬운 산해진미가 있을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 후의 40일이 이렇게 밋밋합니다.
홀리데이가 아니에요, 홀리데이라는 게 기쁨 여유, 그런 것 아닙니까?
일상성 속에서는 못해봤던 것을 특별히 하는 것, 맛있는 것도 사먹고 특별한 곳에 가는 것이고, 일상의 무게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느끼는 것이고…
그런데 주님은 이 세상은 홀리데이를 지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닌 것을 아시는 거예요.
이 본문을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주님은 ‘라스트 홀리데이’라는 영화 속의 조지아처럼 이 세상 안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세상에서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워할 만한 그 어떤 항목도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버킷리스트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됩니다.
이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는 이루고 싶은 항목들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요거 했으면 좋겠다, 요거 하면 기쁠 텐데, 요걸 하지 못해서 아쉽다, 이러한 버킷리스트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피부로 천국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겁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시한부 40일을 이 세상에서 홀리데이로 보내시려고 계획하고 추진하지 않으시고, 그냥 마지막으로 맡겨진 일을 수행하시듯이, 그리고 결국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신 일, 그것 하시고 떠나신 거예요.
40일 동안 어디에 머무셨는지, 성경에 열한 번 나타나셨는데 그것도 앞에 다섯 번 나타나신 건 하루에 다 나타나신 거예요, 부활 후 다음날.
그러면 그 외의 시간은 무엇을 하셨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지아의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미련과 소망이 전혀 없으셨다, 다시 말하면 하늘을 아시는 분에게는 이 세상을 지금 당장 떠난다고 하더라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는 겁니다, 그런 세상이라는 걸 믿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 속에 사는 동안에 홀리데이처럼 지내는 것을 우리는 포기하는 겁니다, 믿기 때문에.
우리의 홀리데이는 ‘라스트 홀리데이’가 아니라 ‘everlasting holiday’입니다.
그건 천국에서 준비되어 있는 거예요.
천국에서 준비되어 있는 에버래스팅 홀리데이, 영원한 홀리데이를 믿음 안에서 성령님께서 느끼게 해주심을 따라서 우리 마음에 영원한 홀리데이, everlasting holiday를 느끼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는 시한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계획도 꿈도 소원도 아쉬움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는 거예요.
조지아의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겁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는데 우리는 잘 안돼요.
주님은 천국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못 느껴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 세상에서 사소한 것이든 대단한 것이든, 이것이 이루어지면 내 마음이 좋겠다고 느껴지는 모든 버킷리스트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죽는 겁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그렇게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소원이 아무것도 없으셨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라스트 홀리데이를 꿈꾸는 것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꿈꾸지 않고 주님은 계획하지 않으셨는데, 왜 우리는 꿈꾸고 계획해야 됩니까?
지금 오늘 본문이 주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구간에, 그것도 40일 중의 종반부로 치닫고 있는 일을 기록한 겁니다.
그 종반부로 치닫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조지아의 라스트 홀리데이에 대한 계획과 소원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직 40일을 더 살 수도 있는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버킷리스트가 있으면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묶여 있고, 육체에 묶여 있기 때문에 자꾸 그게 생겨나요.
그러니까 매일같이 우리의 세상을 향한 버킷리스트를 십자가에서 죽이는 겁니다.
그럴 때 성령님께서 다시 매일같이 오시면서 우리에게 everlasting holiday,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아버지와 함께 누리게 될 everlasting holiday, 그 동화 같은 체코의 호텔이 문제이겠습니까? 비교가 안 되는 거죠, 그 everlasting holiday를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그 믿음 안에서 느끼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 기쁨 그 평강과 그 행복을 앞당겨 느끼면서 이 세상에서는 holiday로 즐기는 게 아니라 즐기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요한복음 마지막 부분에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시고 이렇게 제자들과의 대화가 종료되고 있습니다, ‘나의 양을 먹이라’고 하는 사명을 맡기시면서…
이 세상은 holiday의 장소가 아닙니다, 버킷리스트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세상에서 꼭 이루어야 할 것으로서의 버킷리스트는 내가 갖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십니다.
그 버킷리스트가 그 다음 부분에 나오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하는 것이었어요.
자, 우리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있으되, 해야 할 일로서의 버킷리스트가 있는데, 아버지께서 쥐고 계십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에 우리의 버킷리스트를 끊임없이 십자가에서 죽이고, 이 세상은 holiday의 세상이 아니라 사명의 mission의 기간이 될 수 있어야 되겠다는 얘깁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갖고 싶어 하는 이런, ‘ㅇㅇ하고 싶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우리의 버킷리스트는 everlasting holiday로서 천국에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우리의 인생이 언제 끝날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마는 우리 인생의 사전에 holiday라는 말이 사라지게 해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버킷리스트가 다 죽게 하시고 오직 성령 안에서 everlasting holiday, 천국에서 누리게 될 holiday의 기쁨을 앞당겨서 누리며 기뻐하면서 이 세상은 사명으로 살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