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여성문학 제31집
심영희
지난 10월 21일에 출판기념회를 한 춘천여성문학을 출판사에서 엊그제야 찾아왔습니다. 춘천여성문학회(회장 송병숙) 출판기념회 때 새한국문학회 시상식이 있어 나는 서울 행사에 다녀왔지요. 이런 저런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벌써 11월입니다. 이제 춘천문학과 강원문단3호가 나오면 올해 내 글쓰기 숙제는 끝나고 내년에 다시 좋은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31집에 수록된 글을 소개합니다.
<수필>
익어가는 가을
심 영 희
가을은 모든 게 여물어가는 계절이다. 익지 않고는 가을과 함께 할 수 없다. 익지 않은 과일이나 곡식을 우리들은 쭉정이라고 한다. 쭉정이 농산물을 반겨주는 농부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모든 게 익어야 한다. 봄부터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풀을 매면서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씨를 뿌려 놓고 비가 오지 않으면 씨앗이 말라 죽을까 걱정이고 비가 많이 오면 씨앗이 떠내려 가서 싹이 나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새싹이 올라오면 반가움과 함께 가을이 될 때까지 걱정으로 시간을 보낸다. 다 키운 농작물이 태풍으로 쑥대밭이 되고 홍수로 밭에 물이 차서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시름시름 앓게 된다. 올 여름 장마도 유난히 농촌에 피해를 많이 입혔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힘들고 물량 부족으로 오를 대로 오른 과일과 채소값에 서민들 장바구니도 휘청거린다고 뉴스마다 야단이다.
가을에는 모든 게 결실의 계절답게 풍요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그런 와중에 신문에 실린 고은리의 다랑이논은 컬러판으로 예쁘고 정겹기까지 하다. 다랑이논에서도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이고 풍년을 노래하는 것 같아 이런 시 한 편을 썼다.
익어가는 가을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 다랑이논에 살고 있는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는 신문기사와 함께
아침저녁 서늘한 바람이 가을소리를 몰고 온다.
높은 하늘만큼이나 으스대며 쑥쑥 자라는 가을 꽃
심술궂은 가을비바람에 과일은 땅으로 비행하고
속으로 병든 배추는 죄인처럼 고개 숙인 채
한숨짓는 주인들의 눈치만 살피며 안절부절 못한다
올해는 풍년인가 했더니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구려
그래도 고은리의 마을풍경은 풍요롭고 평온하다
정겹도록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의 집들이
고은리에 풍년이 왔다고 소곤소곤 속삭인다.
가을에는 알곡이든 쭉정이든 추수를 해야 한다. 익지 않았다고 추수를 하지 않고 그냥 두면 그것은 버리게 되는 것이다. 잡초나 꽃들이 으스대며 잘 자라듯이 농작물도 악착같이 양분을 빨아 먹고 몸통을 키워야 하는데, 쑥쑥 자라야 할 여름에 잡초에게 양분을 많이 빼앗기고 억울해 하다가 가을 추수 때가 되니 더욱 억울하고 주인 볼 면목도 없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추수를 하기 전에 무엇인가 열심히 찾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즈음은 100세 시대라 백세까지 산다고 하여도 나는 어느새 가을 맨 끝자락에 와있다. 그러니 계절로 따지면 익을 대로 익어야 하는데 아직도 덜 익은 과일로 남아있다. 백세를 채워 겨울까지 산다고 하여도 속이 꽉 찬 열매처럼 익을지 모르는데 가을이 왔다고 하여 내가 제대로 익었을 리가 없다.
부모님이 좋은 밭에 좋은 씨를 잘 뿌려 주어서 어느 봄날 새싹으로 태어났고 그나마 시대를 잘 만난 덕에 체관을 통해 영양분 있는 비바람 맞고 꽃피우며 열매를 맺으며 꽉 찬 열매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고은리의 노랗고 푸른 가을 다랑이논처럼 예뻐 보이고 싶은 가을이다. 가을에 풍만하게 익었던 열매도 겨울을 맞이하면 서서히 속으로 병들어간다. 그러기에 가을에 더 단단하게 익어야 겨울까지 지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심영희 약력
ㅇ 「수필과 비평」 지로 수필 등단(1995)
ㅇ 수필집「아직은 마흔아홉」 외 3권/시집「어머니 고향」/
포토에세이「감자꽃 추억」/민화에세이「역사와 동행하는 민화이야기」
ㅇ 동포문학상/한국수필문학상/소월문학상/황희문화예술상 시부문 금상/
춘천여성문학상/한국문협 수필분과 수필의 날 2022년 작품상 수상
ㅇ 한국문인협회문단정화위원/한국수필가협회 이사/새한국문학회 강원지회 회장/강원문협 이사/춘천문협 회원/춘천여성문학회 고문/한국민화협회 홍보팀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