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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곁의 무성한 가지
창세기 49:1~2, 8~27
오늘 저녁 읽은 말씀은 야곱이 그의 아들들을 불러 놓고 장차 당할 일에 대하여 말씀한 것입니다. 이미 봉독한 말씀 가운데서 22절 말씀을 다같이 읽었으면 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여기 야곱이 요셉을 열매 많은 가지로 말했는데 풍성한 열매의 비결을 요셉이 차지한 위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샘 곁에 있으므로 풍성한 가지가 됩니다. 물이 마르지 않은 샘 곁에서 포도나무가 자라서 생수가 항상 솟아오르는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계속 물을 빨아올릴 수 있다면 분명히 이 나무는 열매가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가 샘 곁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 13절에 보면 요셉에 대하여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요셉은 땅 아래 저장한 물을 빨아올리는 나무로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우리가 만일에 시편 기자처럼 “나의 모든 근원이 당신께 있나이다”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할 수 있는 형편이라면 우리의 가지는 무성하고, 열매가 풍성하게 맺을 것이며, 잎이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깊이 거한다’는 말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뜻깊은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배수가 잘되고 적당한 우로가 내리는 땅에 심겨진 나무에게는 충분한 조건이 되겠지만 많은 열매를 가져오는 주님의 나무들은 포토를 뚫고 밑으로 깊이 뿌리를 내려 은밀한 은혜의 샘에 닿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하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또한 아버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가짐으로 우리 심령의 나무가 샘 곁에 심겨지고 땅 아래 저장된 물을 빨아올리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샘 곁의 무성한 나무는 요셉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하나님 곁에 있어서 축복이 풍성했습니다. 그는 오랜 나무의 한 가지였으며, 샘 곁에 심겨져서 이 샘은 항상 새로운 생수로 그 나무를 적셔 주었습니다. 요셉의 일생에서 그의 특색은 한 마디로 말해서 언제나 하나님 편에 가까이 서서 끊임없이 주님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는 생활을 영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크나큰 축복을 안겨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르침과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요셉만 축복하신 것이 아니고, 요셉으로 말미암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축복을 받게 역사하셨습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할 때 그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바로와 온 애굽 천지의 기근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복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과연 그의 가지는 담장을 넘어 멀리 그리고 넓게 축복을 나누어 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모든 축복의 역사는 요셉이 끊임없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는 삶을 영위한 결과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과연 요셉처럼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통이었습니까? 시편 1편에서 성도가 누리게 되는 축복을 말씀할 때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성도의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샘 곁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무궁무진한 창고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고, 그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충만으로 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로부터 생명과 활력을 받게 되면 자연히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셉은 하나님과 가까이 살았으므로 이 은혜의 원리들을 받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주위 환경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고 그저 평범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생활하게 되면 자신의 생애를 인도하고 마음을 지배하는 확고한 원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마음과 의로운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기 속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좋은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보려면 먼저 진리를 올바로 배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확실한 분별력으로 진리를 확고히 부둥켜안고, 이것을 마음 속의 귀중한 보화로 간직하지 않으면 평화로운 날에 진리로 인한 기쁨을 맛볼 수 없을 뿐더러 폭풍이 휘몰아치는 어두운 밤을 당할 때 의지할 닻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오늘 주신 말씀은 요셉의 전 생애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요셉이 어린아이 때부터 그의 아버지는 지극히 사랑을 그에게 쏟았는데 성경은 “요셉은 노년에 얻는 아들이므로 깊이 사랑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어릴 때부터 노련한 데가 있었습니다.
매사에 능란하고 지혜로운 아이였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렸어도 깊은 예지를 품고 있었는데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뜻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볼 때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아주 출중한 젊은이로 돋보이게 되었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이 자기들의 부류와는 딴판의 사람으로 생각되어서 그를 미워하고 ‘꿈쟁이’라고 조롱하기도 하고 마침내는 그 땅에서 아주 제거해 버리기로 모의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악행으로 요셉은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요셉이 애굽에 들어가자 곧 성경에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보디발이 그를 종으로 샀지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려고 만전을 기했습니다. 사실 노예로서 대신의 청지기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되었고, 그의 주인은 모든 일을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 집을 축복하셨습니다.
그 후에 요셉은 생전 최고의 시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고 의의 길에서 떠나지 않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은 요셉 자신의 기쁨이었으므로 그는 감히 자기 하나님을 슬프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전옥 밑에서 감옥의 일을 보게 되었고 따라서 죄수들을 도와주었습니다. 항상 요셉의 가지는 담장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갈 때 감옥 안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모든 일들을 능히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장성했을 때 감옥에서 바로의 궁전까지 들어가는 길이 그 앞에 열려졌습니다. 요셉은 높은 지위에 올라갔지만 하나님을 등한히 하지 않았습니다. 왕의 꿈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주시리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높이 받들었습니다. 요셉은 일생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인도하는 별이었습니다. 요셉은 샘 곁에 심겨진, 열매가 풍성한 나뭇가지였으며, 이 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하나님과 가까이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독립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의 근원이 깊은 샘에 있었기 때문에 주위 환경에 별로 영향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밖에는 아무리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들어도 그 뿌리가 깊은 샘에 박혀 있기 때문에 가뭄이 들지 않고 여전히 싱싱하게 자랐습니다. 애굽의 타락한 우상 숭배가 만연한 가운데서도 요셉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앙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샘 곁에 심겨진 나무가 되어서 결코 마르는 일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 속에 주님께서 항상 계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영혼 속에 부어지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모든 것을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영에 잡힌 바 되고 그 능력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2. 나무가 샘 곁에 심겨지면 큰 축복입니다.
모세는 “땅 아래 저장한 물”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하나의 축복의 형식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셉 지파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을 이룩할 때 경건의 생활과 진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선한 사람을 믿음이 깊은 사람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리상으로는 정통과 보수적인 사람일지라도 정통적인 것들을 이해하며 체득하여 진리의 하나님, 진리의 성령으로 더불어 살지 아니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책장에 수천 수만권의 장서가 꽂혀 있다고 해도 내가 읽고 이해하지 못했으면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혹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에 등록했고 예배시간에 꼭 참석하고 선교단체와 봉사단체에 가입해서 일하고 있는데요.” 좋습니다.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참 신앙은 그 이상의 것입니다. 믿음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주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같이 샘 곁에 심겨진 나무로 비유될 만한 사람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은밀하면서도 실제적인 원천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비록 이런 사람을 알지 못하지만 주님의 은밀하심이 그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있어야 열매가 있는 것은 우리의 상식입니다. 열매를 맺게 하는 뿌리가 어디 있는지, 또 이 뿌리들이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샘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추인 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비로울 뿐입니다. 우리 모두 이 보이지 않는 분과 함께 거하며, 우리 자신이 보이지 않는 생명의 동참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합니다. 우리도 이 영원한 기업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적인 생명이란 참된 생명이므로 이를 개발하는 것이 중대한 일입니다. 그러나 은밀하신 하나님과 동거하지 않는 사람은 내적인 생명의 불꽃이 꺼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외면보다도 내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속은 볼 수가 없습니다.
샘 곁에 심겨진 나무 같이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에 대한 공급원은 무진장하여 다함이 없습니다. 그 샘은 마르는 법이 없고 그 아래의 샘이 언제나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풍성하십니다.”라는 표현은 아름다운 칭호입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목자로 삼을 때 부족함이 없다고, 그 잔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주님 하신 말씀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곁에 거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계속되는 공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중단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땅 위에만 흐르는 시내가 아니고, 깊은 데서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한껏 누린 것처럼 그가 늙어서도 역시 하나님의 깊은 은혜 속에 살았습니다. 흐르다가 그쳐 버리는 냇물 같은 종교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우리는 태양이 변하지 말기를 희망하지만 달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해는 발광체요, 달은 반사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 받기를 원하고 또 언제나 우리 일생 동안 은혜 입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은혜의 원천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이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샘 곁에 심겨진 나무는 잘 자랍니다.
아랍 사람들은 종려나무가 그 뿌리를 흐르는 강 밑바닥으로 내리고, 그 머리는 뜨거운 태양열 속에 두기를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아래로는 흐르는 물, 그리고 위로는 뜨거운 태양을 바라보기를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종려나무처럼 자라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뿌리를 거룩한 샘 속으로 뻗어 내리고, 또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내리쬐임을 받을 때우리는 급속히 그리고 튼튼히 자라나게 될 줄을 믿읍시다.
3. 하나님의 은총은 다른 많은 축복을 동반합니다.
우리가 정말 샘 곁에 심겨진 나무와 같이 주님 안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하면 많은 열매를 자연히 맺게 될 것입니다. 열매가 많이 달린 나무는 언제나 뿌리가 든든한 나무입니다. 열매란 나무가 애써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열매란 노동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의 질서에 따라 봉우리를 맺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열매 없는 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 생기가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도의 헌신이란 것도 모두가 기계적인 행위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성도의 경건은 인위적인 흥분으로 뒤바뀌어졌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많은 일거리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는 일이 헛소동만 벌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분, 농부를 보십시오. 이른 봄부터 나가서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며, 씨를 뿌리면 씨에서 움이 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데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 아니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느라고 소리지르는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포도나무가 그 뿌리를 좋은 땅 속에 깊이 내리고 있으면 자연히 좋은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새로워진 본성을 따라 경건함을 이룩하도록 주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럴 때 자연히 그 시기가 다가오면 우리는 즐거움으로 열매를 풍성히 거두어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축복은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담을 넘어가는 가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가족을 넘어 멀리 미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가지들을 자기 자신과 또 친족들에게 국한해서 뻗치고 있다면 물론 열매를 맺기는 하겠지만 풍성한 수확은 거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경건하며 예수께서 구속하신 자를 사랑함으로 거룩해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위해 삽시다. 사랑이 하나님을 위해 기초된 것일 때 사랑하는 것은 곧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버림받은 사람에게 가지를 뻗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전혀 기대하지 못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의 영향을 미쳐 유익하게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 자신과 상관이 없고 하나님과도 전혀 무관한 사람들에게조차도 축복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축복은 움직일 수 없이 고정된 것입니다. 샘 곁에 심겨진 열매 많은 나무는 그 뿌리를 아래로 깊은 물에까지 내리고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가 든든히 뿌리를 박고 있지 않으면 열매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의 튼튼한 뿌리가 없으면 마음대로 뿌리째 뽑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가 살아 있고, 자라나며, 뿌리를 깊이 내려 깊은 데서 자양분을 흡수하고 있으면 그 뿌리는 아주 강한 힘으로 나무를 버티어 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교의를 마음 속에 진실되게 받아들인 사람을 우리가 흔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데 이론이 아니라, 관습이 아니라 실제 내 삶을 통해서 뿌리 깊은 체험으로 날마다 살아갈 때 세상의 무엇이 우리를 흔들 수가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로마서 8장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람에게는 또 다른 특권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안전성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그를 군박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살고 있을 때 경건치 않은 자들이 목표물이 되고,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이 우리의 마음을 슬픔으로 채우고자 달려듭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애굽에 팔려 가서 자기 형제들과 분리되어 지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살라면 나실인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우리에게 해가 미치지는 못합니다.
성경을 보세요.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힘입음을 받아서 요셉은 다른 사람들의 노여움이 미칠 수 없는 높은 차원의 삶을 영위했습니다.
자기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도움이 하나님께로 올 때 어떠한 역경도 우리를 짓밟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요셉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처럼 주 안에 살아서 많은 열매를 맺고, 튼튼히 서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