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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지키는 비밀
성경본문 : 느헤미야 13: 1-3
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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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31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29. 내 하나님이여 저희가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기었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옵소서
30. 내가 이와 같이 저희로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그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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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상태가 아니라 관계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도 행복을 나눌 대상이 없이는 곧 관계가 없이는 행복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행복이란 말은 사실은 세속적인 단어입니다. 좀 더 성경적인 단어는 축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행복을 영어로 말하면 'happiness'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happen'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연히 누리게 된 행운정도의 의미를 갖습니다. 마치 로또 복권 당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축복이란 말은 영어로 표기하면 'blessing'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bleed'(피흘린다)라는 옛날 영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약의 피제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향한다는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오는 기쁨의 삶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시온의 땅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의 도움으로 이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안에서의 기쁨의 삶, 곧 축복의 삶을 회복할수 있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행복한(성경적으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경험하는 대부분의 행복이 그런 것처럼 행복은 행복을 얻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느헤미야는 12년간의 이스라엘 총독을 지낸 후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 페르샤로 돌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6절) 그후 지도자를 떠나보낸 이스라엘 백성들이 잠시 동요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모든것이 그동안 지도자 느헤미야가 강조한 삶의 원칙들을 져버리기 시작한데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할수없이 느헤미야는 다시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아 조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느헤미야가 떠나가 있었던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학자들 가운데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길게 잡으면 일년 정도까지 떠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돌아온 지도자 느헤미야는 다시 행복의 원칙을 강조하게 됩니다. 여기 그들이 다시 한번 행복한 백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밀들을 엿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변함없이 행복을 지키는 비밀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복을 지키는 비밀-무엇일까요?
1. 말씀을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잠시 지도자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떠나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방황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치심을 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돌아온 지도자 느헤미야는 백성들 앞에서 말씀을 낭독하는 것으로 그의 회복의 사역을 시작한 것입니다.
13:1을 보십시오.
어떻게 본문이 시작되고 있습니까?
"그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3절을 보십시오."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라고 기록합니다.
느헤미야는 이 백성이 다시 이 말씀을 붙들 때에만 그들의 회복이, 행복의 회복이 가능한 것을 확신한 때문이었습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에스라에게 백성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 것도 느헤미야였습니다. 마음의 재건이 없는 심령의 부흥이 없는 행복은 불완전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참된 행복을 회복하고 싶으십니까?
진정한 축복을 다시 누리고 싶어하십니까?
그러면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셔야 합니다. 돈을 붙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명예를 붙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인기를 붙들려고 하지 마십시오.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이 말씀의 진리를 붙들고 사셔야 합니다.
유명한 시편 1편이 가르치는 복있는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누가 복있는 사람이라 했습니까?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그 다음을 기억하십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절)
그렇습니다. 성경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무엇이 약속되어 있습니까?
시1:3의 말씀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철따라 열매맺는 푸르고 푸른 복된 인생은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행복을 지키는 유일한 성경적 대안인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역한 E.스탠리 존스(Stanley Jones)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가 성경의 중요성을 가르칠때 한 인도 청년이 이렇게 반문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렇게 성경을 붙들고 산다고 돈이 생기나요? 직장이 생기나요?"
이때 스탠리 존스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한가지 분명한 약속을 할수 있겠네. 만일 자네가 이 말씀을 붙들고 산다면 그때부터 이 말씀이 자네를 붙들어 인도할 것이라네"
그렇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이 말씀이 당신을 붙드는 새 인생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것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행복을 누리고 지키는 유일한 비밀이 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2. 구별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읽고 첫번째로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암몬과 모압 사람들과의 분리였습니다. 인종적인 편견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세속적인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서 분리 즉 구별을 요구한 것입니다.
3절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했습니다.
이어서 이어지는 4절 이하를 보면 이스라엘 벡성의 구별된 삶을 위해 두가지 경건의 실천생활을 요구하십니다.
이 두가지 영역은 또 다시 십일조의 실천과 안식일 준수였습니다. 십일조는 돈과 관련된 것이고, 안식일은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이 무엇보다 돈 관리와 시간관리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기를 기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돈 관리, 시간 관리에 승리하면 다른 모든 삶의 영역에서 승리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돈 관리를 생각해 봅니다. 십일조의 실천은 무엇보다 우리의 소유가 우리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임을 의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십일조 정신을 가르칠때 가장 큰 의미로 강조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10분의 1만이 하나님의 것이고 나머지는 내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인데 그중에 10분의 1을 온전히 구체적으로 구별하여 주께 드림으로 그 나머지 10분의 9까지도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부분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만일 10분의 1도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가 10분의 9를 주의 뜻대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살수 있다고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는 자기 백성의 행복을 위해 생애를 바친 지도자로서 무엇보다 이 십일조의 회복을 열망한 것입니다. 드디어 백성들은 순종을 결단합니다.
이것이 공동체의 회복의 시작이었습니다.
13:12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이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행복을 회복하는 전기가 된 것입니다.
안식일 준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간 일주일 7일이 모두 주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중의 하루를 구별하여 주를 예배하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로 보냄으로 나머지 6일의 주인도 하나님 이신 것을 인정하고 날마다 매시간 시간마다를 주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성도가 일주일의 하루인 주일도 주의 뜻대로 구별하여 사용할줄 모른다면 우리는 그가 나머지 6일을 주의 목적을 따라 시간 낭비없이 선용하리라는 것을 기대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느헤미야는 13:17에서 민족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백성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주일 한 예배를 온전히 드리시고 다른 한 예배에서 봉사해 보십시오. 그리고 주일의 반나절 정도는 가족들과 함께 가정예배도 드리시고 가족들과 의미있는 대화도 나누시고 또한 여유가 있는대로 경건한 독서와 휴식의 시간을 가지시면 어떨까요? 물론 주변에 아파하고 병든 이웃들을 방문하고 위로를 나누는 것도 뜻깊은 현대적 주일 지키기가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독특한 행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을 모으거나 시간을 낭비하는 데서가 아닌, 우리의 돈과 시간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여짐을 인해서 감격하고 기뻐할수 있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세상과의 동화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구별된 삶이 행복인 것을 기억하십시다.
3. 기도로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우리는 느헤미야가 기도하는 것으로 이 책의 드라마가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기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인 13장은 다시 기도로 마쳐집니다.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31절)
그리고 이런 그의 기도는 단순히 자기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공동체의 리더로써 그가 사랑하는 백성들의 행복이 지켜지도록 도움을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의 기도는 소위 기도의 말미를 장식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기도였습니다. 이 말미의 기도는 그가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위하여 최선의 섬김의 행동을 한 다음 꼭 그렇게 이루어지고 지켜지게 해 달라는 마음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같은 내용의 기도들이 13장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14절,22절, 29절에 정확하게 같은 내용의 기도가 반복되지 않습니까?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쉴수 없는 날마다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제의 기도로 오늘을 견디어 낼 수 없습니다. 어제의 양식으로 오늘을 살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도움을,
오늘은 오늘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주께서도 우리에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오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늘도 기도의 도움을 구하며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를 그치는 순간 우리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다움, 그리스도인 다움을 잃어버립니다. 그 순간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속물인생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향한 행복의 전도자일수 없습니다. 우리의 행복의 비밀을 스스로 포기한 까닭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기로 작정한 까닭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날 그날의 생존을 위해 희망없이 몸부림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당신의 모습이 아니신지요?
그렇게 계속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회복을 열망하십니까?
부흥을 사모하십니까?
다시 살아나고 싶으신지요?
말씀을 붙드십시오.
세상과 거룩한 결별을 선언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의 무릎을 꿇으십시오.
당신의 무릎아래서 새날이 태어날 것입니다. 새 걸음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래전 이탈리아에 북 아프리카 출신의 한 청년이 살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자기의 종교였던 기독교 신앙을 떠나 이단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습니다. 점차 시간이 흘러가며 그렇게 살아가는 자기의 마음의 내면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자각하며 괴로와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무료한 자기의 내적 공허를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달래고 있던 순간 갑자기 바깥 정원에서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창을 타고 들려 왔습니다.
"Tolle lege, Tolle lege"--"펴서 읽어 보아라. 펴서 읽어 보아라"
갑자기 그의 시선이 책상 한구석에 오래동안 버려져 있었던 성경에 시선이 끌렸습니다.
실로 오래만에 그는 먼지 묻은 성경을 열었습니다. 로마서 13장 12절이하의 말씀이 펴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며--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무릎을 꿇었습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이 어두움의 세상과 결별하겠다고 그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신 주님께 약속했습니다. 그가 얼마 동안을 기도하고 일어섰을 때 그는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거룩한 영향을 끼칠 새 사람이 되어 그는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성 어거스틴이었습니다.
이날 그에게는 세가지 결단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첫째, 그는 거룩한 말씀을 붙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째, 그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셋째, 기도의 무릎을 꿇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그가 그동안 그렇게도 목마르게 찾아왔던 거룩한 행복이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동일한 행복이 여러분과 저에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기로 결단하신다면--그리고 이 말씀의 인도를 따라 이 어두움의 세상과 자신을 차별화하고 살아가기로 결심하신다면--그리고 날이면 날마다 아니 매 순간 순간마다 이제는 우리의 삶의 구주요 주님되신 주 예수님과 하나님의 도움을 기도로 구하며 살기로 결심하신다면--우리는 이미 그 영원한 행복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할렐루야!
<설교 적용 질문>
1. 느헤미야 13장의 줄거리는 무엇입니까?
2. 느헤미야의 삶에서 말씀의 중요성을 정리해 보십시오(13:1참조).
3. 느헤미야의 삶에서 기도의 중요성을 정리해 보십시오(13:31참조).
4. 느헤미야가 13장에서 백성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강조한 삶의 원칙들은 무엇들이었습니까?
5. 우리 각자의 삶에서 행복을 각자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오늘 가장 중요하게 기억될 것이 무엇인지 나누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