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온정
안녕, 온정? 난 이번에 장구 기초판으로 너의 품에 안겼던 새날 24 민준이라고해.
올가을, 넌 수많은 사람들을 품어주었기에 이름만 들어서는 내가 누군지 모를 수 있겠지만, 이틀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열심히 요란을 피웠던지라 얼굴을 본다면 나를 한 번에 알아볼 거로 생각해! 사실 10월 4일~5일 너를 만나게 될 거란 이야기를 듣고서 가졌던 나의 마음가짐은 '연습은 열심히 하되, 개인적인 삶을 살자.' 정도였어. 솔직하게 말하면 너를 알기 전까지 난 풍연에 큰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거든. 그저 악기를 치고, 판을 뛰는 순간에는 다른 것들을 전부 잊고 가락에, 그리고 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풍물이 좋았을 뿐이었지. 하지만 대략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너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내게는 아주 큰 변화가 하나 생겼단다. 그건 바로 내가 소속감을 느끼고 활동하는 공동체가 생겼다는 것이지! 조금 더 풀어 말하면, 나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생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공동체가 생겼어. 똑같은 것을 좋아해서 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가 생겼고, 이제는 더 이상 혼술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공동체가 생긴 거야. 이런 변화가 누군가에겐 아주 사소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컸단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난 지난 1학기가 19년의 짧다면 짧았을 나의 인생에서 여러모로 가장 힘든 시기였거든. 힘들었던 이유들은 일단 전부 뒤로 젖혀두고 그 시기를 보내고서 난 이런 결론을 내렸어. '조금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함께 하는 것보다는 혼자가 편하다.' 실제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걸 스무 살이 되어서야 받아들인 나는 그 이후로 삶이 많이 편해졌어. 그런데! 그랬던 내가 공동체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다니... 나로서는 매우 놀라운 변화일 수밖에 없었지. 아, 그리고 최근에는 나를 '벌레'라고 부르는 풍연인들이 꽤나 많아졌더라고? 이건 너에게만 말해주는 건데 사실 난 벌레라는 말을 듣는 게 마냥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처음에는 약간 억울하기도 했어. '난 술 마시고 사고도 안 치는데 내가 왜 벌레야?'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데 10월 8일 새벽, 술 진탕 마시고서 소주잔 깨고, 우형이 형 못살게 굴고, 카톡방에서 난리 피우고, 거울도 넘어뜨리는 등 온갖 사고를 치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봤어. '난 술을 마시면서 그동안 이런 식으로 취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왜 요즘 이렇게 취하는 걸까?' 물론 간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람들과 마실 때는 마음 편히 취해도 된다.'라는 무의식 때문이 더 큰 것 같아. 생각해 보면 그동안 술자리에서 느끼던 긴장감, 책임감 등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술자리는 풍연과 함께하는 술자리 말고는 별로 없었더라고. 그래서 벌레라는 말이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풍연인으로서 소속감을 주는 단어 중 하나가 되어버렸달까? 똑같은 말을 다른 표현으로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정리하자면 네가 있었던 덕에 내게도 소중한 인연이 생길 수 있었어! 정말 고맙다!
너와 헤어지고 나서는 시원섭섭한 마음에 사람들과 뒤풀이를 갔었어. 자리에 앉아 술을 몇 잔 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크게 슬프거나, 울컥하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런데 우리 장구기 조교님들께 준비한 선물을 전하고, 모든 조교님들께서 소감을 말씀하시는데... 와우! 눈물이 나더라고. 특히 집행국 선배들과 장구기 조교님들께서 말씀을 할 때는 정말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 집행국 선배들이 소감을 말할 때 서로 눈물을 흘리던데, 그 눈물을 보면서 주마등처럼 스쳐 간 생각이 정말 많았거든. 가장 먼저는 이제 집행국 선배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 서윤 누나와 우형이 형의 티키타카, 진아 누나의 잔소리, 채현 누나의 뿌엥, 은성이 형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이제 더 이상 듣고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조금 더 빨리 친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에는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응축된 눈물에 공감이 되어 울컥했어. 아마 소감을 말하며 집행국의 시작부터 가을공연의 마무리까지 수많은 순간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치지 않았을까? 집행국 선배들이 어떤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책임의 자리에 있는, 특히나 다른 사람들이 참여하는 축제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고됨과 고뇌는 정말 그들만이 알고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눈에 보이는,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이었을 집행국 선배들 생각에 울컥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러고는 감사함의 눈물이 또 흘렀지.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는 만큼, 책임감이나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온전히 열정만을 담아 참여할 수 있는 가을공연은 이번뿐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거든. 다른 풍연인들이 듣는다면 '최민준 그 벌레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항상 어떤 공연이나 축제, 그 밖에도 많은 공동체에서 큰 책임이 따르는 역할을 맡아왔는데 그러한 책임을 벗어 놓고 참여하는 정말 오랜만의 행사였던지라 풍연인들을 위해 열심히 그리고 무사히 행사를 준비하고, 이런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준 집행국 선배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었어. 그리고 우리 장구기 조교님들. 그냥 한 분 한 분 말씀하시는 족족 눈물이 터져 버렸어 (아, 윤학 조교님 때 눈물이 들어가긴 했다.). 난 우리 조교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거든. 가장 감사한 건 우리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을 그대로 걸으셨던 선배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풍물을 하고 있다는 것? 난 왜인지 세대가 바뀌더라도 변하지 않고 연결되어 가는 모든 것에 알 수 없는 감동을 느끼는 편인데, 가을공연을 하면서 그걸 선명히 느낄 수 있었어. 집행국 임기가 끝난 후에도 빠짐없이 조교로 참여해 준 여진 누나, 장구를 손에서 놓은 지 4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조교 제의를 기꺼이 수락했던 택림이 형, 지금의 집행국 선배들이 1학년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조교로 활동해 준 종연이 형, 윤학이 형까지 오랫동안 풍물을 사랑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 가을공연에서 '기초판 조교'라는 직책은 마치 학교 선생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에 가깝달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기본부터 차근차근 가르치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재밌게 놀아주고, 속상하거나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따로 신경 써주어야 하니깐 말이야. 물론 우리 조교님들께서는 본인들이 원하셔서 하신 거겠지만 나로서는 매일같이 나의 시간을 써서 풍물 아가들과 함께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해. 아마 직접 조교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가르치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거겠지? 나도 언젠가 한 번쯤은 조교로서 가을공연에 참여해 보고 싶다! 맞아. 그리고 나의 눈물을 왈칵 쏟게 했던 주범에는 나의 마니또이자, 상장구이자, 패장 윤서 누나도 있었어. 윤서 누나와 가을공연 기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은 별로 없지만 2학년으로서 가을공연에 참여하는 기분이 어떤지, 처음 배우는 설장이 힘들지는 않은지, 연새날의 패장으로 활동하며 회의감이 든 적은 없는지, 혹여 새날소리가 사물을 따로 할 것 같다고 전해 들었을 때 서운하지는 않았을지 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았었거든... 그런데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누나가 나의 마니또라는 걸 알게 되자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온정,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윤서 누나가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고 대신 전해줬음 좋겠다!
어쩌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아졌네. ㅎ 사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차고 넘치지만 여기서 더 이야기했다간 네가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뜬금없는 이야기로 슬 마무리를 지을게. 폭풍과도 같았던 1학기를 보내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러는 동안에 내 삶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지는 작품 몇 개를 발견했어.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니얼스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브로콜리 너마저의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가 바로 그 작품들이지. 정답이 없는 세상, 혼돈뿐인 세상,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도 없고, 이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 저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 속에서 크게 와닿았던 문장은 '생각과 마음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었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 속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가고,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끌리는 대로 움직이는 것. 가을공연도 나에게는 그와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어. 언제 그만둘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풍물,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끊어질지도 모르는 관계, 내 가치관대로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지 모르는 '온정'이었지만, 풍물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과 해방감,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로부터 형형히 느낀 행복함과 편안함, 그저 당장에 끌리는 대로, 하고 싶어서 참여했던 사전 연습 중도 참여부터 아시바 철거까지의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맥락 속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을 소중한 의미 체험이 될 것 같아!
글을 다 쓰고서 느낀 건데 지금 이 글이 너한테 쓰는 편지인지, 너의 품에 함께 안긴 사람들에게 쓰는 편지인지, 그냥 최민준의 수기인지 구별이 잘 안되네. ㅋㅋ 지금까지 수다스런 나의 글을 끝까지 읽어 주어 고맙고, 꿈만 같았던 사랑과 인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고마워 온정! 그럼 난 이만 총총.
2024.10.11.(금)
민준이가
첫댓글 이건 또 참신하네
like 국문과 편지 형식 갬성
편지형식을 사용함으로써 보는이의 몰입감를 강화하고 있군.
후기 대체 언제 써요?
@새날소리 24 최민준 입대하기전까지 쓸테니까 기다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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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않는다와 에에올을 좋아한다니 참 안목이네요
와! 두 개 다 감상하셨다니 션님이야 말로 진정한 참 안목을 가졌군여
담에 저것들 주제로 토크토크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국문학과는 다르구나
그러엄
근데 민석아 후기 언제 써?
오 이런 형식은 참신한데. 벌레대마왕 수고 많았어! 다음엔 벨라 꼭 같이 들어가자...ㅋㅋㅋㅋㅋ
고맙다 도희야 ㅋㅋㅋ 너야 말로 수고 많았어~ 그리고 놀랍게도 어제는 벨라에 들어갔다는 사실..! 다음에도 들어갈 자신 준비 갈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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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국문과~~ 민준 진짜 진짜 고생 많았다!! 같이 청광 뛰면서 재능기 장단을 외우는 모습을 보고... 아... 이 친구는 진짜 찐이다... 생각했어 ㅋㅋㅋㅋ 여름전수때부터, 아니지 1학기 장구 연습때부터 너의 흥과 자신감이 멋지고 부럽기도 했어! 그리고 덕분에 항상 연습이나 공연이 더 풍성해진 것도 있고,,,! 멀찍이서 봤을때 갈공 연습하면서 장구도 장구지만 뭔가 이 기간을 통해서 내적인 성장도 이뤄낸 것 같아서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 힘든 시간을 풍물로 극복하다니..(?) 이게 진짜 풍생..?? 선배들한테서도 많이 배우고 장구기 사람들한테서도 많이 배웠지만 특히 너를 보면서 마인드, 태도를 배운 것 같아! 너의 에너지와 열정과 모든 것들을 응원하고,,, 정말 수고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