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新人 엡四章卄四節. 淸朝
信之工 日新. 如沐浴 非沐浴不去垢. 卽罪非大罪 卽日用之間 言語行動中 易起者也. 聖恩豊盛 如渴水滌去 此二少之過誤 可矣. 然何心 神使新爲新人? 新人所當行者 有數種.
一. 無慮妄. 心無眞理者 事事慮妄 擊空. 主曰凡事信者 凡事一眞理爲主. 心內有主則 千眞万眞 眞理以外無事. 日接事物 終然如無事. 慮妄 惡人所爲 如風稗 非但擇何其穀 無實種子 有實難. 花雖美 無實者 虛故也.
二. 去無知. 慮妄出於無信, 無知出於無實. 神是知之原, 我与神之間 以晴曇遮之知. 信何生也, 光從何生也? 요한證神曰 光人本無光 而借神之光 而爲光. 聖神通達無所不知 人工保無益之肉 故無知. 無知之信可卽罪也. 是非故意 卽無知而生也. 故當去之.
三. 貪慾. 心內有慾則 是爲色鏡 無直視. 常主自己之主見 不免自己之慾 故又怨誹不已. 敎會內近日 無視後 而敎會추사近 又송의權生可虛耳. 羞恥与汚穢生 是皆由慾 而生慾心多. 羞恥爲榮光 汚穢爲聖事. 慾如黑雲 障遮太陽之光.
是皆明有 虛妄無知. 貪慾皆明人亦爲知爲罪 而去之則 爲新人也. 保羅曰 欲爲新人則 脫去旧人. 新人 非指表人 指裡人. 表人雖表裡人 日新思新事 新至天地更新. 而今有可注意者 雖爲新人 常以旧人測之 使人阻更新之路.
바리새人是也 今日亦然 可備耳. 此深不解者 何等貴寶也? 大衛更新而後 爲聖君. 神擇之 而人棄之 是重也. 各細視自己之罪 一無完人. 何束以梁目視人乎? 甚不可基督敎 悔改爲莫測, 悔改則与不犯者得.
19. 새사람 / 에베소서 4:24. 청진교회 주일아침
신앙의 노력은 날마다 새로워짐입니다. 목욕과도 같으니 목욕이 아니면 때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큰 죄가 아니라면 하루사이에 언어와 행동 가운데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여 목마름을 씻어내듯 작은 이 두 가지 곧 언어와 행동의 과오를 씻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마음을 하나님께서 새사람이 되도록 새롭게 하십니까? 새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1. 망령된 염려가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진리가 없는 자는 일마다 망령된 염려를 하면서 허공을 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범사에 신자는 모든 일을 하나의 진리 위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면 천 가지가 진리요 만 가지가 진리이니 진리 이외에는 일이 없습니다. 날마다 접하는 사물도 마침내는 그렇게 무사합니다. 망령된 염려는 악인이 행하는 바로서 바람에 나는 피와 같아서 비단 그 곡식을 어떻게 선택할까 뿐만 아니라 열매가 없는 종자는 열매 맺기가 어렵습니다. 꽃이 비록 아름다우나 열매가 없으면 허사인 까닭입니다.
2. 무지(無知)를 제거해야 합니다. 망령된 염려는 믿음이 없는 데서 나오고, 무지는 열매가 없는 데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앎의 근원입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에 앎의 막힌 흐린 구름을 맑게 해야 합니다. 신앙은 어떻게 생기며, 빛은 어디로서 생겨납니까? 요한은 하나님이 빛을 말씀하셨다고 증언했으니 인간은 본래 빛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빛을 빌려서 빛이 되었습니다. 성신은 통달하시어 모르는 것이 없으나 인간의 노력은 하나님 나라에 무익하니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신앙은 결과적으로 죄입니다. 이것이 고의(故意)는 아니지만 무지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3. 탐욕입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으면 이는 색안경이 되어서 똑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항상 자기의 주장이 중심이 되어서 자기의 욕망을 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원망과 비난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근일의 일은 무시하고서 교회의 가까이 하니 권리가 생기게 하여 가히 헛되게 합니다. 수치와 오예(汚穢)가 생기니 이는 다 욕망으로 말미암아 생겨납니다. 욕심이 많으면 수치가 영광이 되고 더러움이 거룩한 일이 됩니다. 탐욕은 검은 구름과 같아서 태양의 빛을 막아서 가립니다.
이는 다 분명하게 허망과 무지를 가졌습니다. 탐욕은 모두 분명히 죄가 된다는 것을 아니 그것을 제거해야 새사람이 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새사람이 되고자 하면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새사람은 겉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속사람을 가리킵니다. 겉 사람은 속사람을 드러낼지라도 날마다 생각이 새롭고 일이 새로우며 새로움은 온 천지가 거듭 새로워지게 되는 데까지 이릅니다. 그러나 지금 주의해야할 것이 있으니 비록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항상 옛사람으로 헤아림을 받게 되니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갱신(更新)의 길을 저해하게 합니다.
바리새인이 그것이었으니 오늘날도 역시 그러므로 가히 준비해야 합니다. 이 깊이를 이해 못하는 것은 어떤 귀중한 보화입니까? 다윗이 새롭게 된 후에 위대한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시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버렸으니 이것이 중요합니다. 각기 자기의 죄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한 사람도 완전한 이는 없습니다. 들보의 눈으로 얼마나 속박되어서 남을 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