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바빌로니아 유수 이후 편집자들이 기원전 4세기 경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의 창세기 신화를 차용해 히브리인 환경에 맞게 개작한 것이다. (중략) ... 예컨대 구약성서의 에덴동산, 노아의 홍수, 모세의 율법, 욥기의 비극, 시문학 등이 모두 수메르의 신화에서 대대적으로 차용되었음이 밝혀졌다." - [성서의 뿌리, 민희식 교수 저]
윗글은 불문학자이면서 불교학자를 자처하는 민희식 교수가 쓴 "성서의 뿌리" 3장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우선 대홍수를 언급한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편을 들어 민교수 등이 인용하는 수메르와 중근동의 사서가 성서 창세기의 원전인지 검토해 보겠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
1. 1852~1853년, 영국의 탐사 팀이 아시리아 국왕 아슈르바니팔이 세운 니네베 도서관에서 아카드어로 된 길가메시 서사시의 점토판을 발굴하였다. 그 뒤 1872년, 홍수에 관련된 내용이 번역되면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학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2. 길가메쉬 서사시의 홍수 이야기는 12개의 토판 중 11번째 토판의 15번째 행으로부터 196번째 행까지 모두 181개의 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제1판 ~ 제2판 : 폭군 길가메시와 야생인 엔키두의 문명화
- 제3판 ~ 제5판 : 백향목 숲 원정과 훔바바의 처단
- 제6판 ~ 제8판 : 이슈타르의 저주와 엔키두의 죽음
- 제9판 ~ 제11판 : 불멸을 향한 추구와 홍수의 전언
- 제12판: 사후 세계의 풍경과 최종적 교훈
[출처 - 고대 문학의 효시로서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그 역사적 의의 | 작성자 Alex the Consultant]
길가메시 서사시는 수메르 문명의 도시 국가 중 하나인 우루크의 전설적인 국왕 길가메시에 관한 영웅 서사시 설화군(群)이다. 수메르는 기원전 약 4500년경부터 기원전 1900년경까지 존재했다고 알려진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회자되는 곳이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800-2500년경 수메르의 도시국가 중 하나인 우르크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그의 이야기가 성서 창세기의 대홍수 설화로 편집(edit) 됐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아래의 [나무위키]가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아서 그대로 옮겨왔다.
3. "설화군(群)이라는 말을 쓴 것에서 알 수 있듯, 길가메시 서사시는 단일한 저자가 저술한(혹은 결정적 영향을 끼친) 통일된 서사시가 아니라, 최초의 수메르어 이야기(추정: BC 2100년경)부터 앗수르바니팔 도서관의 판본(추정:BC 1250-1000)까지 1000여년 간 누적되고 수집된 설화군(群) 모음집이다. 가령 그 유명한 홍수 이야기(제11토판)은 마지막 시기의 것이며,* 수메르어 시기의 것이 아니다. 오늘날 수메르어 길가메시 서사시를 재구성하는 것은 학자들에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길가메시 서사시를 서브컬처의 영향으로 '모든 영웅 설화의 원전'이라느니 하는 과장된 흥분은 지양하는 게 좋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오래된 서사시이기에 후대에 영향력을 끼쳤지만, 이를 모든 영웅 설화가 수렴하는 '단일원천'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한 시대에 한 저자가 쓴 이야기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역사 동안 성립되고 발전되고 수집된 자연적인 설화군이며, 아카드의 사르곤 대왕 전설 등 다른 근동 영웅 설화들과 병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나무위키 개요]
* 우트나피쉬팀 홍수 설화는 그 자체로 독립된 설화이며, 길가메시 서사시에 후험적으로 삽입되었다. 즉 길가메시 목록에 없었으나 나중에 길가메시 목록에 넣는게 맞다고 생각해 11번째 목록에 올랐단 뜻이다. 홍수 설화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12개 점토판 중에서 마지막 시기(BC 1250~1000)의 것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가 성서의 원전보다 앞서는 사료라고 믿고 있는 분들에겐 매우 실망을 안겨 드린 것 같군요. 성서 창세기를 신화의 범주에 넣고 싶어 안달하는 분들에게 매우 요긴한 텍스트였던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가, 원래는 독립된 설화인데 후에 길가메시 설화집에 포함됐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보는 말일테죠?
왜냐면, 대부분의 글쓴이들은 나무위키나 위키백과에서 서술하는 위 얘기(3장) 같은 부분은 건너뛰고, 수메르라는 미지의 문명이 창세기의 편집자인 모세보다 1,000년 이상 앞섰다고 믿기 때문에 놓치기 쉽습니다.
민희식 교수의 '성서의 뿌리'라는 글을 인터넷을 통해 대충 읽어 봤는데, 내가 특히 놀란 것은 이분은 철 지난 성서 비평의 '문서가설'을 그대로 인용하더군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문서가설을 인용하려면, '문서가설'이 어떻게 반박되는지 반대편의 자료도 찾아보고 책을 써야 하는거 아닌가요?
이제 창세기와 관련된 장대한 여정에 올라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추방된 후에 겪었던 상황이나, 에녹이 본 네피림 등 대홍수가 왜 일어 났는지에 대한 평상 시의 궁금증에 대해서 연속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창세기를 통한 대장정은 내 탐구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첫댓글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면 당시 인류의 문제가 무엇인지 와 닿습니다. 이런 사료를 읽고 기껏 성서 창세기보다 앞섰다는 등의 "대단한 발견"을 한 양 나댈 게 아니라, 인류 초기에 성서와 궤를 같이하는 엄청난 사태가 있었다는 자각을 해야 합니다. 이런 사료들은 인류가 공통으로 겪은 사태를 다른 관점에서 기록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