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아흔세 번째
수작酬酌할까요?
“술이 몇 가지요, 청주와 탁주로다. 먹고 취할지언정 청탁이 관계하랴. 달 밝고 풍청한 밤이어니 아니 깬들 어떠리.” 조선 중기의 고위 관료였던 신흠申欽이 이렇게 술을 노래했습니다. 오랜 세월 술은 제사와 유흥에 빠질 수 없는 음료였습니다. 그렇지만 곡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때에는 나라에서 금주령을 내리기도 했는데 영조 때에 가장 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사신으로 간 홍대용洪大容이 청나라의 선비들과 술자리를 가졌지만, 술 대신 차를 마셨답니다. 사연을 들은 청나라 선비들이 술 없이 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했답니다. ‘술’이라는 말은 옛사람들이 알코올이 발효할 때의 모습을 물이 끓는다고 하여 ‘수불(水불)’이라고 했고, 그 말이 변형되어 ‘술’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역사에서 술이 언급된 최초 문헌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중 ‘동명왕편’에서 고구려 시조 주몽의 탄생 설화에 등장합니다. 해모수와 유화부인이 만나 술을 나누어 마시고 주몽을 낳았답니다.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의 글을 보면 고려와 조선 문인들이 입을 모아 예찬한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이 “신라 술 한 잔의 취기가 새벽이슬에 사라질까 두렵구나”라며 신라 술을 예찬했답니다. 지금은 우리네 술이 중국의 술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오랜 옛날에는 우리네 술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원들끼리 서로 우의를 다지는 모임을 회식이라 하고, 회식 자리에서는 술잔을 주고받는 수작을 벌입니다. 그런데 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의 수작酬酌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여 남을 기만하거나 술책을 쓰는 행위를 할 때 ‘수작 부리지 말라’라고 합니다. 애주가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정을 나누는 자리에서 ‘수작酬酌’하는 일을 너무도 반가운 일이지요. 수작酬酌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