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31-32
조물주의 미소 2.
"조, 조작을 했다면......"
남형사가 가슴을 진정시키며 윤형사를 보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렇게밖에 달리 해석할 수가 없어요. 이 테이프가 방송국에 넘겨진 시각은 진이 독살된지 20시간이 지나서였어요. 그 동안에 테이프를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이렇게 완벽하게 말이야."
"얼마든지 가능해요. 방송국에 준 테이프가 원본이 아닐 수도 있어요. 비디오 두 대만 있으면 조작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어요."
"그러나 조작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잖는가?"
장과장은 자신은 비디오에 관해서는 문회한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윤형사를 보며 말했다.
"저 역시 화면 조작에 대한 고차원적인 기술법은 잘 모르지만 조작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똑같은 장면이나 비슷한 장면이 든 테이프가 또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고, 물론 용인 별장 내의 홀과 테이블을 찍은 테이픕니다. 거기다가 박만하 자신이 직접 찍은 그날의 테이프를 가지고 그럴듯하게 끼워 맞추기를 할 수 있어요. 한 화면이나 두 화면 정도는 감쪽같이 바꿔치기할 수 있다고 봐요."
"음, 그건 간단하겠군. 그렇지만 똑같은 화면이나 비슷한 테이프를 어디서 구하겠나? 용인 별장에서의 파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는데."
"그, 그렇네요...... 그치만 캠코더가 두 대였거나 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또 그렇군......"
"윤형사, 만약에 윤형사 말대로 테이프가 원본이 아니라면 박만하가 가짜 비디오 테이프를 방송국에 건넨 속셈은 뭘까?"
남형사가 물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데, 그 테이프에 진범이 나타나 있지 않았을까?"
"그럼 박만하는 범인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성립되는군."
"또 돈벌이가 생긴거지."
"아무래도 박만하를 연행해야겠어요."
남형사가 장과장에게 말했다.
"그 전에 테이프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잡아야 해. 그런 다음에 목덜미를 잡고 끌고 와도 늦지 않아."
윤형사는 테이프를 들고 방송국으로 찾아가 베테랑 편집자에게 테이프가 조작되었는지 기술적인 확인 작업을 의뢰하였다. 그러나 베테랑 편집자는 테이프를 다 보고나서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베테랑 편집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한 윤형사를 보고 안스러웠는지 테이프 조작에 대한 가능성을 두 가지 알려주었다.
"자료를 이용한 게 아니면 리허설 장면을 찍을 수도 있습니다. 이 테이프에서는 지운 흔적이 없어요. 헌데, 이 테이프에 나타난 화면 중에 아주 특이한 촬영이 딱 한군데 있어요. 바로 이 부분이죠. 네 쌍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비추다가 두 테이블을 한 화면으로 잡았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의 화면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캠코더는 분명히 한 테이블만을 아주 짧게 2초 가량 잡았군요. 사람 얼굴은 포착하지 않고 테이블만 비췄어요. 세 잔의 칵테일 잔만이 화면에 나타나는군요. 바로 이 점이 의문스런 장면입니다. 캠코더는 한 테이블만 비추기 전까지 쉴 사이 없이 움직였어요. 화면이 정지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때에는 캠코더가 촬영을 일시 정지한 상탭니다. 그리고 다시 작동 스위치가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또다시 쉴 사이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끼워맞췄다면 다음 컷트로 넘어가기 전에, 그러니까
유진숙 회장이라는 여자의 얼굴이 이어져 보이지 않고 새로운 컷으로 찍혀져 있어야 되는데 계속 연결되어 있어요. 이 점이 참 애매한 장면입니다. 쉽게 이해를 구해드리면 TV연속극을 볼 때 카메라는 쉴 사이 없이 화면을 내보내는 게 아니라 한 신 한 신 촬영을 한 화면입니다. 영화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이 캠코더는 쉴 사이 없이 홀 안을 촬영하고 있어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이 테이프를 찍은 캠코더 기사는 한 테이블만을 2초 가량 찍을 때만 캠코더 기능을 일시 멈췄다가 이후부터는 계속 쉴 사이 없이 촬영을 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조작했다는 건 용어상으로도 맞지 않고 끼워맞추기도 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그리고 촬영 위치와 각도를 볼 때 기록용 테이프라는 걸 염두해서인지 자리 이동을 거의 하지 않고 한 군데에서 촬영을 하고 있어요. 조작은 절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리허설 장면을 찍을 수도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말 그대로 네 쌍이 춤을 추고 난 후의 두 테이블을 찍은 장면부터 다른 파티 장면을 연결시켜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화면상에 나타난 그림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밖에 드릴 수가 없군요. 보면 아시겠지만 전반부의 화면과 후반부의 화면에 나타난 초대객들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이 전부 똑같잖습니까. 홀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리허설을 하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얘기지요. 전반부가 리허설이고 후반부가 실제 파티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디로 황당무계한 얘기에 불과합니다."
"가능성조차도 없는 일이예요? 그럼 또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캠코더가 두 대였다면 조작은 가능합니다."
"두 대로요?"
"그렇습니다. 전반부는 A캠코더로 촬영했고 후반부는 B캠코더로 촬영을 했다면 테이프를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쉽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거의 같은 장소와 위치에서 처음부터 두 대의 캠코더가 촬영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촬영이 끝났을 대 두 개의 테이프가 탄생됩니다. 그러면 캠코더 기사는 두 테이블이 화면에 나타나는 그 순간에 제2의 테이프를 연결시킵니다. 그러면 이 테이프처럼 작동이 일시 중단된 화면에 이어 계속 촬영이 되고 있는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겠네요."
"그러나 캠코더 기사가 한 사람밖에 없었다면 불가능한 촬영이지요. 그러나 이 테이프의 화면을 보건대 후반부라 불리우는 화변은 캠코더의 이동이 전혀 없었어요."
"그렇군요. 미스코리아 진이 숨지기까지 불과 몇 분밖에 안 됐으니까요."
"만약에 캠코더 기사가 두 대의 캠코더로 홀 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이 가능성 역시 무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제2의 캠코더를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면 역시 감시 카메라 같은 고정카메라를 이용했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전부 촬영했다고는 보여지지 않는군요. 그 증거로 후반부의 1분 가량의 카메라는 진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가 테이블을 잡고 다시 진의 안색이 변하는 얼굴을 보착한 걸로 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잘 알았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실낱 같은 가능성을 가지고 시경으로 와 강여사와 금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았지만 박기사는 그날 분명히 한 대의 캠코더 만으로 촬영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리허설 파티가 있었느냐는 윤형사의 질문에 전화응답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기까지 했다.
결국 박만하에 대한 의심은 여지없이 깨져버린 꼴이 되었다. 테이프가 조작되지 않은게 기정사실이라면 용인 별장에 대한 독살은 완전히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 결과가 되는 것이다. 장과장과 남형사는 풀이 죽어있는 윤형사를 위로하고 연박사에 대한 용의점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 놓았다.
"역시 모든 용의점은 연박사에게로 집중되고 있어. 윤형사는 30초 동안의 독살이 어렵다고 했지만 연박사가 진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증명해 주고 있어. 어쨌든 잔을 사라지게 한 장본인은 연박사고 나비향양의 잔을 유여사에게 가져다 달라고 한 것도 연박사가 틀림없어. 범인은 연박사야. 이제부터 증거를 확보하는 수사에 전력투구해야겠어."
장과장은 비장한 각오로 말했다.
이때, L호텔에서 발생한 변사체 살인사건을 수사중인 관할 경찰서 수사반장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과장이시오?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만, L호텔에서 간괴사로 숨진 여자의 신원을 알려온 전화 제보가 있었소. 전화 목소리의 주인공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잘 모르겠소. 가성을 써서 잘 모르겠다는군요. 당직 순경이 전화를 받았는데 L호텔의 여자 신원은 6월 23일에 실종되었던 성주라양이라고 하더군요."
"뭐라구요?"
장과장은 잘못 들었지 않나 싶어 다시 물었다.
"장난 전화라는 생각을 안 한건 아니지만 제보자는 L호텔에서 죽은 여자는 성주라입니다라고 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