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있으나마나한 ‘조계종 선거법’
<불교닷컴> 2013년 12월 05일 (목) 유응오
논란 끝에 봉은사 주지에 원학스님이 임명됐다. 기실, 항간의 구설수를 차치하면 원학 스님이 강남포교의 산실인 봉은사 주지로서 부적격한 것은 아니다. 경전에 밝아 법문도 잘 하고, 서화(書畵)에 능통하고, 행정력이 뛰어나므로 사부대중의 원융살림에도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불교닷컴> 2013년 12월 05일 (목) 유응오
논란 끝에 봉은사 주지에 원학스님이 임명됐다. 기실, 항간의 구설수를 차치하면 원학 스님이 강남포교의 산실인 봉은사 주지로서 부적격한 것은 아니다. 경전에 밝아 법문도 잘 하고, 서화(書畵)에 능통하고, 행정력이 뛰어나므로 사부대중의 원융살림에도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이번 봉은사의 인사는 본질적으로 잘못됐다.
정치(政治)의 사전적 의미는 ‘바른 치수(治水)’이고 농경사회에서 물(水)은 재화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선거에서 이긴 자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은 당연한 권리 행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불교광장> 소속이라는 이유로, 제34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을 도왔다는 이유로 원학 스님을 봉은사 주지에 임명했다는 것을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11월 18일 불교광장 모임에서 자승 스님이 “원학스님을 주지로 내정한 이유는 종상 스님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불교광장 소속 스님의 “봉은사 주지 추천권한을 종상스님에게 약속했고, 종상스님이 원학스님을 주지로 추천했다는 게 총무원장스님의 말씀”이라는 전언도 함께 알려졌다.
이틀 후 <불교광장> 회장인 지홍 스님이 중앙종회의원 및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본부장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학 스님의 봉은사 주지 임명을 막고자 배수진을 친 것이다. 1주일 후 지홍, 법안, 삼혜, 적천, 원혜스님 등 5명의 중앙종회 명의의 입장문이 발표됐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승 스님과 종상 스님이 봉은사와 불국사(혹은 금오문도회) 표를 주고받는 조건으로 뒷거래를 한 것은 기정사실화됐다.
문제는 자승 스님이 제34대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 스스로 심대한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시인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조계종 선거법 제36조 3항에는 ‘종단의 공직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한 행위 금지’, 제41조에는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제42조에는 ‘종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가 명시돼 있다. 그리고 동법 제90조에는 ‘매수 및 이해유도’에 대한 양형 기준으로 ‘3년 이상 10년 이하의 공권정지에 처한다’고 적혀 있다. 사회법처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조계종 선거법은 조계종이 정한 성문법이다.
실제로 불교광장 회의에서 자승스님이 종상스님과의 뒷거래를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면, 이는 제34대 총무원장 선거인단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서는 조계종의 전 종도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 종헌·종법에 기초한 법치(法治)가 아니라 종권에 의한 통치(統治)를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파시즘의 논리이다. 종도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자승 스님은 33대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도 ‘종단 운영에 있어 인사문제는 장주스님과 합의해 처리하고, 부원장 제도를 신설하고, 선본사, 조계사, 보문사, 봉은사, 도선사를 합의해 처리한다’는 내용의 밀약서를 작성한 의혹이 있다. 이 의혹과 관련 교단자정센터는 “필적 감정결과, 총무원장 스님을 포함하여 각 본인의 필체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33대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의 선거법 위반 의혹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34대 총무원장 선거과정에서의 선거법 위반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자승 스님은 “선거의 구태를 끊고, 선거의 악행을 막기 위해 어떠한 기득권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선거전에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이율배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것은 자승 스님과 종상 스님의 뒷거래가 이뤄졌을 시기, 해외언론인 <이코노미시트>는 ‘몽키 비즈니스(Monkey business)’ 운운하며 조계종 선거를 협작 사기로 비하했다는 사실이다.
자승 스님은 이번 선거법 위반 의혹은 물론이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다. 총무원장은 종헌·종법을 수호해야 할 막중한 의무가 있다. 총무원장이 지키지 않는 종헌·종법을 어느 종도가 따르겠는가?
만약 자승스님이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다면, 유구한 역사의 수행(Monk) 공동체인 조계종은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놀아나는 원숭이(Monkey) 집단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중앙승가대 동문 스님들의 음주 파티, 모 스님의 성희롱 발언 등 최근 언론에 보도된 추문에 대해서 자승 스님은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마치 소떼가 물을 건널 때처럼 길잡이 소가 바르게 가면 뒤따르는 소도 모두 바르게 하니 길잡이 소를 따라가기 때문이다. 대중에게는 반드시 길잡이가 있으니 길잡이가 바른 법을 행하면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는 《증일아함경》의 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때이다.
/ 유응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