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산불을 막는 임도(林道)
숲 사이 도로 많아야 산불 끄는 장비·인력 투입 쉬워요
입력 : 2023.03.21 03:30 조선일보
산불을 막는 임도(林道)
▲ /그래픽=진봉기
매섭게 불던 칼바람이 산들산들 부드러워지는 봄이 왔어요. 동시에 대기는 건조해졌고, 전국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8일 경상남도 합천 지역에서 산불 대응 3단계에 달하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어요.
산불은 얼마나 크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총 3단계로 구분하는데요. 이 중에서도 3단계는 평균 풍속이 초속 7m 이상, 진화 예상 시간 24시간 이상, 피해 면적은 100ha(헥타르) 이상으로 예상되는 '재난' 수준의 큰불이 났을 때 내려져요. 이 단계에서는 산불을 끄기 위해 참여하는 소방대원은 물론, 소방차와 소방 헬기 등 동원되는 장비도 최대 규모이지요.
드론과 산불진화차의 활약
이번 합천 지역 산불의 경우 불에 탄 면적이 163ha에 달했어요. 축구장 228개를 합친 것과 같은 정도로 매우 넓지요. 불이 났을 당시 대기는 매우 건조했고, 바람은 초속 12m의 속도로 세차게 불었어요. 이런 탓에 불씨는 금세 번져나가, 불씨가 붙은 지 3시간 만에 3단계로 커졌답니다. 더 큰 산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소방대원과 드론, 산불 진화차가 힘을 합쳤습니다.
드론은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에 활약이 돋보였어요. 드론에는 열화상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산 위를 날아다니며 불이 난 위치를 찾아내 불을 끄는 물질을 정확하게 뿌릴 수 있어요. 또 그 결과를 전달받은 소방대원은 소방 장비를 알맞은 장소에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었지요. 특히 주불이 잡히더라도 곳곳에 남아 있는 작은 불씨들이 다시 커져서 큰 산불이 되기도 하는데, 드론이 이 잔불까지 찾아냈답니다. 처음 선보인 산불 진화차도 제 구실을 해 주었어요. 차에 연결된 호스에서 1분당 250L(리터)의 물이 뿜어져 나오며 숲을 축축하게 적셨지요. 그동안 사용하던 소방차가 1분당 60L를 내뿜을 수 있었으니, 물을 뿜어내는 힘이 4배나 더 셌던 거예요. 이렇게 소방대원과 드론, 산불 진화차의 힘을 모은 덕에 약 20시간 만에 산불을 잠재울 수 있었답니다.
진화에는 임도도 한몫
이번 합천에서 일어난 산불을 끄는 데 드론과 산불 진화차뿐만 아니라 '임도(林道)'가 큰 역할을 했다는 의견이 이어졌어요. 지난 9일 남성현 산림청장은 "평리산에 임도가 있어서, 야간에 임도를 통해 진화 장비와 인력을 투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며 "이번 합천 산불은 임도의 역할과 필요성을 확인한 산불"이라고 말했지요.
임도란 산에 만든 길을 말해요. 숲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한 산림 경영 방법의 하나로, 길을 따라 잘라낸 나무를 운반할 수 있고 병해충이 쉽게 옮는 것을 막아줍니다. 지난 1965년 광릉숲에 처음으로 6.5㎞의 임도가 처음 만들어졌고, 이후 일부 산에 임도가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임도의 장점은 산불이 옮아붙는 것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의 산은 대체로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경사가 커요. 그래서 산불이 나도 소방차가 불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고 소방대원들이 소방 호스를 들고 직접 진입하기에도 매우 위험했죠. 산불은 불씨가 비교적 작은 초기에 진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러한 지형적인 특징 때문에 초기 진화가 어려웠어요.
반면 이번 합천에서처럼 산에 임도가 나 있으면 이 길을 따라 불을 끄는 차와 사람들이 숲 중간까지 들어올 수 있어요. 또 임도 자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는 나무 사이에 간격을 만들므로 더 큰 불로 확산되는 걸 막을 수 있죠.
최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에 임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어요. 지구온난화로 뜨겁고 건조한 날이 길어지면서 대형 산불은 더 자주 일어나고 있으므로, 지금보다 더 많은 임도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임도 밀도'를 써요. 임도 밀도는 1ha 면적의 땅에 몇 m의 임도가 있는지를 나타내는 단위예요. 우리나라의 임도 밀도는 2021년 기준으로 전국 평균 3.81m/ha예요. 임업 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13m/ha, 독일은 46m/ha인데, 이 나라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임도 밀도는 아주 낮죠.
임도 주변 생태계 교란되기도
한편에선 임도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요. 임도를 만들기 위해선 인위적으로 나무를 뽑아내고 땅을 파는데, 동식물이 사는 공간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거죠. 또 이 과정에서 동식물이 다칠 수도 있어요. 대부분의 임도가 흙으로 다져진 길로 만들어지지만, 일부는 그 위에 아스팔트를 덮어 마치 도시의 길처럼 구성해 놓은 곳도 있거든요.
임도가 만들어지며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본 연구 결과도 있어요. 지난 2013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소민석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임도 10개 주변의 생태계 교란 정도를 알아봤어요. 봄(4~5월)과 여름(7월) 두 번에 걸쳐 자연 상태의 숲과 임도 주변의 숲을 지정해 각각 위치의 '도시화 지수'가 어떻게 다른지 관찰했지요. 도시화 지수는 조사 지역의 식물 중에 외래종인 귀화 식물의 종수가 얼마나 있는지 그 비율을 나타내는 단위예요. 연구 결과 임도 주변 숲의 도시화 지수는 자연 상태의 숲에 비해 5배 정도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다시 말해 임도 주변의 숲은 자연 상태의 숲보다 외래 종수가 훨씬 많은 거예요. 임도는 탐방객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음식이나 쓰레기 등 인간 활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받아요. 이 영향으로 인해 임도 주변의 생태계가 교란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지요.
이러한 연구 결과가 연이어 발표되자, 임도를 만들면서 생기는 생태계 문제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지요. 실제로 산림청은 임도를 만들기 전후로 숲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친환경적인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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