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돌담 만나다
이영백
어려서 살았던 초가집에는 돌담이 없었고, 살아있는 나무울타리이었다. 늘 돌담이 있는 민속촌이나 하다못해 경주 양동민속촌이라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살면서 조금의 여유와 돌아보는 즐거움으로 낙안(樂安)읍성을 방문하기로 정하였다. 물론 돌은 제주도가 단연 유명하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그나마 순천으로 가게 된 것도 다행이다.
광대고속도를 경유하여 곡성으로 빠져나가 곧장 순천 승주로 갈 수 있었다. 입구 찾으니 입장권 끊고, 가장 먼저 동문의 낙풍루에 올랐다. 낙안읍성 성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성 위의 길 따라 걸으니 “별감집”이 나오고, “낙안객사”와 “동헌” 뒷부분이 보여 성 아래로 내려갔다.
TV에 자주 나왔던 동헌(사무당) 마당에 매 치는 형틀이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있었으면 한 판 치고 왔을 텐데 나이 들어 그만 쑥스러워 나오고 말았다. 덩그렇게 높은 낙민루 앞을 거쳐 성내의 집집마다 발길을 돌렸다.
예전에는 집 짓고, 돌이 귀하면 나무를 심거나 마른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돌 모아 돌담치기도 하였다. 돌담은 건축미학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쌓아올린 그 모습이 너무나 아스라이 정겹다. 집집마다 경계 이루고 밤에 도둑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냥 집만 덩그렇게 짓고 나면 불안할 텐데 돌담 쌓아 집 지킬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다.
요즘은 민속촌으로 존재하지만 그 곳 집마다 민박하며 심지어 주점을 열어 수입도 올리고 있었다. 일행은 그래도 동네 한 바퀴 돌아보는 재미에 뱅뱅 돌아다니며 돌담이룬 모습을 스마트 폰에 담기 바빴다. 뿐만 아니고 돌담 곁으로 담쟁이, 온갖 꽃들이 피어 시골풍정을 더욱 자아내었다.
돌담 돌아 나오는데 작은 샘이 기다리고 옹 우물이 있어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어 마실 수도 있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들이 모여들었다. 아마도 바람이 나려나 그것이 걱정이기도 하다. 시원하듯 하였지만 흙길 걸으니 땀이 맺힌다. 노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쉬어가자. 돌담이 보인다.
돌담 사이 길로 민속주점이 보인다. 땀도 말릴 겸 민속주점에 들러 파전과 동동주를 시켰다. 모처럼 가족 나들이로 목을 축였다. 이곳에 앉아서 돌담을 쳐다보니 낮달도 슬퍼서 서산을 기울었다. 이제 일어서야 하였다.
민속촌에 돌담보고 외국인들이 우리 건축의 미학을 어떻게 느꼈을까? 우리 조상들의 혜안을 과연 알아차렸을까? 오묘한 돌담쌓기는 한 마디로 예술이다.
돌담에 구멍 있었으면 어여쁜 처녀들이 과객 구경도 했을 법한 데 없다.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