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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생을 마친 한 광복군출신 어르신이 있습니다. 일제시대때 일본군인으로 강제입영되었다가 전선에서 목숨을 건 탈출 시도 끝에 한국광복군이 된 기구한 사연을 가진 김준엽이라는 분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의 탄압을 피해 상해(上海)에서 중경(重慶)으로 근거를 옮기고, 독립전쟁의 재개를 위해 직속군대인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고 합니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되기 위해 청년 김준엽은 다른 탈출학병 장준하, 윤경빈 등을 만나 1944년 7월 중경임시정부를 향한 6000리 장정의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중경으로 가던 김준엽 일행은 임천(臨泉)에 주둔한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에 합류하게 되고 목총 한 자루 없는 식민지의 군대였지만 김준엽은 잡지 ‘등불’을 만들어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 청년들과 항일의지를 다졌습니다. 3개월간의 훈련을 마치고 중국 곳곳을 점령하고 주둔한 일본군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임정으로 향하게 됩니다. 임시정부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해발 3000미터의 험준한 파촉령(巴蜀嶺)에서 그들은 죽음의 고통을 느꼈습니자. 하지만 혹한으로 사지가 얼어붙는 처절한 고통속에서 김준엽 일행은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버텼다고 합니다. 1945년 1월 31일, 마침내 중경임시정부에 도착하고 광복군 간부로서 해방되는 그 날까지 이 경험으로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생각으로 싸웠고 조국 광복의 기쁨을 맞이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인생을 마치게 되고 그 인생을 마쳤을 때 우리의 삶에 대한 조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우리 주위의 인물을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삭이 죽음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야곱의 삶속에서 이루었던 대가족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우리 일생에서 어떤 기준으로 무엇을 행하며 살아야할 지에 대한 질문을 깊이있게 던져줍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의 일생을 돌이켜보고 인생에 어떤 족적을 남길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남길 수 있는 것 그 첫 번째는 후손들입니다.
26절의 후반절을 보십시오. 제가 읽겠습니다.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야곱은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것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린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 야곱이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녀들입니다. 12명의 아들의 이름이 오늘 본문에 모두 열거되고 있는데 이 열 두명의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근간이 세워지고 이스라엘의 부족들이 형성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열 두 지파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인구분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기 국가는 이 열 두 지파가 각기 자기의 땅을 분배하여 다스리는 것으로 국가가 형성된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아들, 딸 자녀들이 많을 때 좋은 점도 있지만 좋지 못한 점을 자꾸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는 경우 이 좋지 못한 점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에 자녀출산을 포기하는 가정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좋지 못한 점이 무엇일까요? “가지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라고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신경쓰는데 여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많으면 걱정이 많아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 한 명당 들어가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도 또 한가지 이유가 됩니다. 태어나면서 아이를 키울 때 들어가는 식비, 의류비, 의료비, 교육비 등... 대학교갈 때까지 억단위가 들어간다고 말을 합니다.
크게 이런 이유로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자녀가 많다는 것은 틀림없이 복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27:3~5을 찾아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 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자녀를 많이 낳아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이 땅의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요... 인간의 의무입니다. 시편 127편에서는 자식들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유산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개발이 되고 기술로 승부를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대가족이 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농업중심의 사회에서는 가족이 대가족이 되어야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이 보편적인 추세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경쟁력이 평가할 때 인구가 많은 것이 큰 잇점이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고부가가치사업을 하는 국가가 국가경쟁력이 높지만 인구가 많아서 값싼 노동력으로 승부하는 개발도상국의 추격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전쟁을 하는데도 최첨단무기를 가진 나라가 전쟁 수행능력이 큰 나라로 보여지고 지금 시대는 군인숫자보다 최첨단 무기 보유 숫자를 비교하면서 군사력을 비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최첨단무기가 많아도 군인의 숫자가 5배, 6배차이가 나면 실제 전쟁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 지 모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구가 많다는 것은 여러모로 큰 힘이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낮은 출산율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9일 박희태 국회의장은 국회 제1접견실에서 국회 다자녀 출산 직원에 대한 격려금 전달식을 갖고 국회가 다산가족이 제일 많은 곳으로 소문날 수 있도록 독려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박 의장은“현재 우리나라가 저출산으로 인해 활력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우리나라가 세계인들과 경쟁을 하려면 사람 밖에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큰 애국자 역할을 한 것”이라고 격려했습니다.
또 박 의장은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수부귀다남자(壽富貴多男子)’를 빌 정도로 아이 많이 낳는 것을 가장 복된 것으로 여겼는데, 요즘은 수부귀다자녀(壽富貴多子女)가 맞을 것 같다”고 말하고“아이 많이 낳는 것이 이 시대의 요청이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이를 많이 낳아 우리 국회가 다산가족이 제일 많은 기관으로 소문날 수 있도록 주위에 출산을 독려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국가뿐 아니라 가족들도 다자녀가 큰 복입니다. 교역자생활을 하면서 장례식에 가보면 2명의 자녀를 낳고 장례를 치르는 가정과 대여섯명의 자녀들이 장례를 치르는 집안의 분위기가 많이 다른 경우를 보게 됩니다. 물론 형제들의 우애가 별로 없으면 아무리 형제가 아무리 많아도 장례식이 힘들겠지만 보편적인 경우에 형제들이 많은 집의 장례식은 손님도 많고 일을 진행하는데 일손이 많아서 복된 장례를 치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 또 이 시대의 모든 젊은 부모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재롱을 피우는 많은 손주들이 있고 젊은 부부들에게 많은 자녀들이 있어... 이들을 여러분의 인생에 큰 보람으로 남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생을 승리했다라고 말할 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귀한 후손을 남기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귀한 후손을 남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남길 수 있는 것 둘째는 우리의 이름입니다.
27절을 읽겠습니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 이삭과 야곱이 세운 인생의 발자취는 대단합니다. 후세에도 도무지 따라잡기 힘든 엄청난 업적을 우리는 금자탑이라고 합니다. ‘금자탑’을 세웠다는 말은 한 사람의 인생이 그 만큼 큰 업적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인생의 가치를 논할 때 명예를 중요시 한다는 말입니다.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Hall of Fame 줄임말로 HOF라고 하는데요...이 명예의 전당은 스포츠, 예술 등 어떤 한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설립된 박물관, 단체, 모임을 뜻합니다.
미국에 가면 골프, 농구, 야구, 테니스, 프로레슬링 등의 명예의 전당이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세워져 있습니다.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나라마다 정치인, 과학인, 경제인을 위한 명예의 전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업적을 기리고 대대로 자신의 이름을 기리는 명판이 기록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지나간 사람들의 업적을 통해 그 사람을 기억하며 그 사람의 생을 닮으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8일 동두천 하천에서 시민을 구하려다 급류에 휘말려 순직한 21세의 고 조민수(21) 명예순경의 의로운 죽음을 널리 알리고자 ‘다큐멘터리 동영상 제작 홍보’ 등 ‘10가지 추모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역을 한 달 남기고 생명을 구하고 죽은 그 의로운 죽음에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재부산일본총영사관은 “2001년 일본 유학 중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 씨의 아버지 이성대 씨(72)와 어머니 신윤찬 씨(62)가 한일친선우호관계 촉진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 정부가 수여하는 외교장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1974년 부산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씨는 10년 전인 2001년 1월26일 도쿄 신주쿠구 JR 신오쿠보역 선로에는 취객이 떨어져 있었고 역에 있던 많은 일본인들은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때 역 근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던 이수현씨는 선로에 사람이 떨어진 걸 보고는 주저 없이 뛰어들었습니다. 이씨 혼자 취객을 선로 밖으로 끌어내려 애쓰던 그 때 역으로 들어서는 전철의 불빛이 보였습니다. 열차는 점점 더 이씨와 취객 가까이로 달려왔고 이를 보다 못한 일본인 사진가 한 명이 이씨를 도우려 선로로 뛰어들었으나 이들 3명은 모두 전철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이 일 이후로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은 '이수현씨가 보여준 희생정신으로 일본인들이 정의와 용기에 새롭게 눈뜨게 됐다'고 한 젊은이의 의로운 죽음에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생에 별로 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인생을 산 것 같지만 수많은 일본인의 가슴속에는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버린 한 젊은이의 이름이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야곱과 이삭의 삶은 진정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치있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인생이 가치있는 인생이 되기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길게 살아도 100년정도에서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100년으로 끝이난 인생이 되고 어떤 사람은 수백년, 수천년동안 이름이 남아 후손들의 마음속에서, 후손들의 지식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름을 남기고 명예로운 인생을 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큰 업적, 위대한 업적은 아니더라도 항상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을 삶을 살다가 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남길 수 있는 것 그 셋 번째는 신앙의 유산입니다.
29절 말씀입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이삭은 때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삭이 죽은 이후에 이제 가정의 책임은 에서와 야곱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실제로는 장자인 에서에게 많은 권한이 넘어가야 하지만 결국 장자의 권한을 사모했던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이 넘어가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들이 에서의 가문에서 나오지 못하고 야곱의 가문에서 나오게 되는 축복을 이어받게 된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고 고민할 때 가장 현명한 해답은 믿음의 자녀를 낳아 믿음으로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부모님들은 믿음으로 잘 키운다는 말을 잘 모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잘 키운다는 말을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가고 돈 잘 벌고 이름난 사람이 되면 잘 컸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잘 컸다는 말은 인품이 좋고 사람들의 손가락질 받지 않고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잘 큰 사람입니다.
특별히 신앙관을 잘 키워줘야 합니다. 성적이 좋아야 인정받고 좋은 대학을 가야 인정을 받는 것만 가르쳐주면 컨닝을 하거나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각종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점수만 잘 받으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가르쳐준 자녀들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미국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중에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신혼 초부터 철저하게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갔습니다.
같은 때에 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 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혼하여 나중에는 자신도 신앙을 잃어버리고 사람됨도 아주 잘못된 인성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후대에 추적하였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는 지 살펴보았습니다.
에드워드는 그때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난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 군대 장교가 75명, 저술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의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반면에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 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가문과 믿음이 없는 가문...
하나님의 가치관을 따른 가정과 인간적인 기준으로 살아갔던 가문의 후세는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시편 112편 1~3절을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잘 키우고 믿음의 가문을 만드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것이 학업능력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암송과 그것에 대한 삶의 실천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든 상황을 파악하는 하나님 중심 가치관을 가르쳐야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들은 믿음으로 잘 크고 결국 이 땅에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공부에 대해 닦달하고 악착같이 성적 잘 받으라고 독려했기 때문에 서울대가고 일류기업을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앞에 신실하게 살도록 가르쳤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주셔서 인정받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가 영적인 사람이 되도록 키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가문에서 신앙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넘어지지 않고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으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을 우리가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인데도 인간적인 모습을 추구하다가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왜 목회자의 자녀인데도 결국은 패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눈과 귀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영적인 눈과 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영적인 훈련을 시키고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그들이 결국 인생에서 승리할 수 있고 믿음의 명문가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가보면 초,중,고등학교까지 교회에 잘 나오던 학생들이 고3이 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이 고3은 중요한 시기니까 교회가지말고 공부더하라고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은 쓸데 없는 일이라고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단어하나, 수학공식하나 더 외우라고 말합니다. 대학교가서 신앙생활해도 늦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고3 일년동안 교회 안 나온 학생이 대학간다고 교회에 나올까요? 안 나옵니다.
영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이 기도하거나 찬양하거나 말씀을 읽을 수 있을까요?
결국, 가정의 몰락을 부모들이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 지금은 괜찮아보여도 10년 뒤, 20년 뒤에 자녀들은 가치관이 바로 서지 않아서 제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자녀들을 잘 양육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믿음의 가문이 세워지고 2대, 3대가 지나가게 되었을 때 거룩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자녀들이 많아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후손은 십대, 백대, 천대를 이어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귀한 믿음의 자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습니까? 그리고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까? 특별히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고 그 삶을 통해 어떤 것을 남기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돈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권력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명예를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우리가 남겨야할 것은 우리의 자손이요, 우리의 신앙의 업적이요, 믿음의 가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보시고 천국에서 우리를 맞으실 때 우리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리실 것입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녀들에게 인간적인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살았는가? 영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며 자녀들에게 천국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르쳐주고 살았는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문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남은 인생에 이제 진정 남기고 떠나야할 것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