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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기도가 주는 유익 (디모데전서 2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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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E. M. 바운즈(Edward McKendree Bounds, 영국, 1835-1913) 목사님만큼 깊은 기도의 경지에 이른 그리스도인들은 별로 없을 겁니다. 바운즈는 앨라배마, 테네시, 미주리에서 목사로 섬겼을 뿐만 아니라, 미국 남북 전쟁 기간에는 남부 동맹군과 함께 최전선에서 용감한 군목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바운즈가 살아온 기도의 삶은 수많은 목회자, 선교사,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끊임없이 기도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기도의 능력」(Power Through Prayer)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바운즈 목사님은 놀라운 영적 통찰의 은사를 탁월한 글 솜씨로 풀어낸 비범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쓴 기도시리즈는 베스트셀러로 자라 잡았는데, 그 중에서,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 『기도의 불병거』, 『응답받는 기도』 등은 꼭 한번 읽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책 제목 자체부터 굉장히 도전적입니다. 당장 읽지 안 읽으시더라도 사셔서 눈에 보이는데 꽃아 놓으십시오. 시간 날 때마다 읽으셔도 큰 도움이 되실 것이고, 특히 사순절 기간에 한 권쯤은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운즈 목사님의 글중 sns에 올려진 글을 보고 저도 다시금 도전을 받은 글이 있어서, 세 가지 구절을 소개합니다.
첫 번째 글은, “중대한 문제, 작은 문제,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라. 기도에 네 인생이 달렸다. 너무 중대한 문제라고 해서 기도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무 작은 문제라고 해서 기도의 골방에서 최종 판결을 내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두 번째 글은, “절박한 심정, 인내를 가지고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라. 끈질긴 기도는 절박한 심정으로 인내를 가지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갈망하는 바가 들으심을 얻고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긴장감을 풀지 않고 강력하게 기도하는 것이다”
세 번째 글은, “기도 안하면서 그리스도의 병사인 척하지 말고 즉시 기도의 불병거에 올라타라. 기도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단지 종교 놀이를 하고 있을 뿐이고, 그리스도의 병사인 체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에게는 갑옷과 탄약도 없기 때문에 사악하고 논쟁에 강한 세상 사람들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다”
어떻습니까? 도전적인 글이면서도 가슴을 치는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도가 주는 유익에 대해서는 말씀 안 드려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단순히 우리의 문제를 아뢰고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기 위한 호흡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자랑하고, 내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절제 시키고, 묶어 두어야 하는 골치 덩어리, 문제투성이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치장하고 가꾸려고 하는 육체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을 통해 접촉을 시도 하십니다. 그 만남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대화 단절이 되는 것이고, 기도가 멈춘 사람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기도에 대해 가르침을 주는 내용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첫 째로 권하고 싶은 것이 ‘기도’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세 번째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바울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 였을 겁니다. 사역자인 디모데에게는 ‘기도’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기도의 정의가 무엇이고, 사역자에게 기도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논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기도를 단적으로 표현하여 영국의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피다. 비실비실한 사람을 피 마른 사람이라고 한다. 기도 마른 사람은 영적 피 마른 사람일 것이다. 영적 피 마른 사람이 어떻게 남에게 영의 양식을 배달 할 수 있겠는가?” 사역자인 저에게는 두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현대의 엘리야로 불리는 미국의 레오날드 레이븐힐(Leonard Revenhill)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수확의 법칙이다. 기도에서 실패하면 어디서나 실패 한다. 설교는 사람을 감동시키나 기도는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설교는 순간을 감동시키나 기도는 영원을 감동 시킨다” 이렇게 신랄한 표현을 했습니다. 열 번 들어도 옳은 말입니다. 특히, “기도에서 실패하면 어디서나 실패 한다”는 말이 가슴을 쳐서 울립니다. 두 목사님의 말씀은, 모든 사역의 기본은 기도라는 것을 강조하는 애써 강조하는 말이고, 사역은 무릎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과 핍박의 시대에 정말 목숨 걸고 사역을 했습니다. 그가 육체적, 정신적, 영적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은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일평생 몸으로 체득한 기도의 비밀, 기도가 주는 유익에 대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려면, 그리고 네가 영적 기근에 시달리지 않고, 영의 양식을 풍성히 나누어 주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도해야 한다. 다른 것 다 잊어도 이것만은 꼭 명심 하거라”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일컬어지는 바울이 모든 일생의 경험을 함축해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 “기도하라, 그리고 또 기도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권면 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왜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가 주는 유익’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세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기도가 주는 첫 번째 유익은, 2절의 말씀과 같이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과 단정함”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안정감 있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를 바르게 만들어 줍니다. ‘자세’라는 것이 의식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가 의식적이 되면 몸이 굳어 버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면 무언가 어색해 보이고 불안해 보입니다. 그리고 어거지로 만들어진 자세는 금방 흐트러지고 들통이 납니다. 경박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괜히 어설픈 자세를 취했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젠틀(gentle)한 자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외면에 보여 지는 자세는, 내면의 내공에서 나와야 안정감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평안함을 줍니다. 이러한 내공은 오직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도로 단련된 자세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존재감을 발하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린 나이라 업신여기고 무시당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 했습니다. 이런 핸디캡(handicap)을 극복하는 일은 기도를 통해 축적된 내공을 내뿜게 되면, 그 아우라(aura)를 보고 모든 무리들이 그를 나이에 상관없이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통해 잘 갖추어진 반듯한 자세를 취하여서, 아무데나 갔다 놓아도 빛나는 그리스도인다운 품격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고고한 품격이 느껴집니다. 더 빛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를 통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악의 유혹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근심, 걱정, 낙심, 절망, 심지어 삶의 포기를 결행하는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다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방어벽이 무너지고 파수꾼이 하나도 없으니, 도적과 강도가 수시로 쳐들어와도 무대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 영역이 온통 원수 마귀의 놀이터가 되어 있으니 평안할 리가 없습니다. 늘 넘어지고 깨지기 일쑤입니다. 기도의 장벽을 쌓지 않으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기도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많은 틈이 생깁니다. 틈을 노리고 있는 사탄이 우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습니다. 나쁜 생각을 마구 불어넣어 혼란에 빠지게 하고, 기도가 없는 사람은 그 나쁜 생각을 분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받아들입니다. 음란, 욕심, 자랑, 게으름, 비판, 정죄, 이기심, 무시, 차별....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생각들이 우리를 완전하게 지배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가 기도가 부실하여 판단력이 흐려지고, 불안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서있는 것을 염려 했습니다. 기도하면 거룩한 장벽이 세워지고, 기도하면 한 치의 틈도 없는 평안의 장막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참 평안을 얻으시려면 깊은 기도, 끈질긴 기도, 간절한 기도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매일 매일 기도의 시간을 구별하여 드리셔서, 경계가 흐트러지지 않게 우리 자신을 지켜 가시고, 조그마한 틈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악한 세력이 결코 침범하지 못하는 견고한 거룩의 장벽을 날마다 쌓아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가 주는 두 번째 유익은, 4절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바울이 수많은 교회를 세우고 뭇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성령의 무한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되게 하는 시작은 오로지 기도 응답에 있었습니다.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내가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내가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영원불변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일개 피조물이 하는 기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원의 대상을 찾고 계시며, 우리의 기도를 통해 올려드린 명단을 보시고 구원의 대상자를 정하십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이름이 불려 졌던 사람을 반드시 하나님께로 나아오도록 마음을 움직여 주십니다.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 내 이웃의 이름을 부르면서, “000이, 구원 받게 해 세요. 000이, 꼭 예수님 믿게 해 주세요” 간절히 기도해 보십시오. 올려진 그 이름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하나님 다 받으십니다. 내 기도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협력하는 결과가 되고, 내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구원의 연결고리는 기도입니다. 기도 응답이 곧 구원이고, 구원 받은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하면서 생명의 길을 찾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기도에 힘쓰셔서 내 구원을 잃지 마시고, 다른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진리를 아는데 이르게 하기 위함” 이라고 합니다. 진리는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구원 받았다고 하여도, 내가 무슨 연유로 구원 받았는지, 내가 구원 받았음을 무엇으로 확증 할 수 있는지, 내가 구원 받은 사람으로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례 받고, 예수님 믿는다고 고백하고, 예배 생활 해 나가면 다 된 줄 압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세상 평안을 한꺼번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 걱정, 저 걱정,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깨지고, 상처받는 일들은 여전히 나를 괴롭힙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고통과 고민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투성이입니다. 십자가에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진리의 예수님만이 우리를 평안으로 이끄실 수 있습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더욱 사모하고, 진리에 더 가까이 가려하고, 진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때로 부르짖으며, 때로는 통곡하며 매달리며 기도하는 겁니다. 기도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하고, 내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께 나의 언행심사를 다 맡겨 버리는 시간입니다. “진리를 아는 만큼, 진리가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함으로 평안과 자유함을 얻으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에 더욱 힘써서, 진리 되신 예수님과 깊은 교제를 이루어 나가셔서, 온전한 회복과 소망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가 주는 세 번째 유익은, 5절에서와 같이, “오직 한 분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매일 같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라는 것은 일종의 통로입니다. 출입구이기도 합니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이 판단하시고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가 전달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고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중보자(仲保者’라는 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성립시켜주고 화해를 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보자는 오직 한분, 예수님만이 중보자 이십니다. 모든 기도가 예수님에게 먼저 전해지지 않고는 하나님께 하나도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응답 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감당해주시는 예수님께로 먼저 나아가지 않고는 아무리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해도 전혀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는 중보자인신 예수님과 친해지는 시간이며, 터놓고 이야기 하는 사이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른바 ‘통하는 사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어떤 기도라도 하나님께 전달할 수 있는 통로가 활짝 열립니다. 기도 응답을 잘 받으시는 분들은 중보자이신 예수님께로 날마다 나아가서 자주 만나는 사이를 이룬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기도하는데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서, 중보자이신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6절에서와 같이, “중보자이신 예수님이 나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고, 구원에 대한 ‘증거(실체, 약속의 성취)’가 되신다”는 사실이 매우 불확실해 집니다. 나는 구원 받은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시민권을 얻은 자요, 생명책에 기록되어 영생의 면류관을 쓸 자라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기도가 없이 중보자 예수님을 계속 기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7절에서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받은자요, 이방인의 스승이라”고 선언 하는 것과 같이, 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 사명,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책임감이 없어집니다.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나를 왜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는지, 그리고, 나는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면, 진정한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가 주는 유익은, 기도를 통해 내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재발견하는 것이고, 내 평생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깨닫고, 죽도록 그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직 한 분이신 중보자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선택하고, 그리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에 전력을 다하여서, 소명을 잊지 말고,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심을 다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 주는 ‘기도가 주는 유익’에 대한 가르침 이었습니다. 세 가지를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면,
기도가 주는 첫 번째 유익은, 2절의 말씀과 같이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주는 두 번째 유익은, 4절에서와 같이,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기도가 주는 세 번째 유익은, 5절에서와 같이, “오직 한 분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께로 매일 같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가 주는 유익은 이것 이외에 이루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더욱더 기도에 힘쓰시고, 절제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다 드리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시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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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기도로 순종하겠사오니, 마음에 평안을 더하여 주시고, 구원 확신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사명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의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유일하고, 영원한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