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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베게너는 어떻게 대륙이동설을 내놓았는가
-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객관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사회적 실천과정에서 생산되고 발전되며 개인의 인식을 통하여 실현된다. 인간의 인식에는 어떤 형태들이 있으며 그것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이 장에서 우리는 이 문제를 토론해 보기로 하자.
1912년 오스트리아의 과학자 베게너(1880∼1930년)는 대륙이동설을 제기하여 세계의 지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후에 지질고생물학자, 고기후학자, 고지자기학자들은 또 부동한 측면에서 이 학설을 실증하였다. 베게너가 이 학설을 내놓은 경과는 다음과 같다. 병으로 입원하고 있을 때 어느 날 그는 병실의 벽에 걸린 세계지도에 시선이 끌리었다. 대서양 양안에 있는 한쪽 대륙의 해안선은 도도록하게 나오고 한쪽 대륙의 해안선은 오목하게 들어간 것을 발견한 그는 보면 볼수록 구라파,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4개 대륙을 한데 묶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감을 느끼었으며 특히 아프리카의 서해안과 남아메리카의 동해안은 그야말로 두조각으로 찢어 놓은 신문지와도 같은 감을 느꼈다. 이에 대하여 그는 골똘히 생각하였다. 퇴원한 후 그는 지질학면의 서적을 대량으로 보는 과정에 점차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한데 연결되어 있던 아프리카대륙과 남아메리카대륙이 그 어떤 구동력에 분열되어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대서양에 의하여 두 대륙으로 갈라지지 않았겠는가? 마찬가지의 원인으로 인도차대륙이 북으로 이동하여 아세아 대륙과 부딪쳐 오늘의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되지 않았겠는가? 이런 추리에 근거하여 베게너는 남아메리카주, 아프리카주, 인도차대륙, 오스트레일리아주는 원래 남극의 주위에서 하나로 연결되어있던 고대륙, 즉 곤드와나대륙이었다는 결론을 내리었다.
베게너가 대륙이동설을 제기한 과정은, 인간의 인식은 생동한 직관으로부터 추상적 사유에 이르는, 즉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여 준다.
감성적 인식은 인식의 초급형태이다
이른바 감성적 인식이란 인간이 실천과정에서 객관적 사물이 나타내는 여러가지 신호를 감각기관이 직접 대뇌피질에 전달한데 의하여 객관적 사물엔 대한 구체적 영상을 형성하는 것이다.
감성적 인식의 기본형태로는 감각, 지각 및 표상이 있다.
감각이란 객관적 사물의 운동 또는 인체내부의 운동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직접 작용하여 두뇌에서 생긴 이런 작용에 대한 반영이 인간으로 하여금 객관적 사물의 색깔, 소리, 온도, 맛, 냄새 등 개별적 속성을 감지하게 한다. 인체의 운동에 의하여 생긴 감각에는 운동감각, 더듬감각, 평형감각, 유기감각 등등이 있다. 이런 감곡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게 하는데 배가 고프거나 부른 것을 느끼는 것 같은 것이 바로 이런 감각이다.
실천과정에서 얻는 인간의 인식은 감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객관적 사물이 인간의 감각기관에 작용하여야만 감각이 생긴다. 객관적사물(인체내부의 운동을 포함)은 감각을 산생하는 유일한 원천이다. 감각기관이 잘못되어 객관적 세계와의 연계가 끊어지면 감각이 생길 수 없다. 선천적인 봉사는 색깔이 무엇인지 모르며 귀머거리는 소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인간의 감각능력은 또한 실천과정에서 끊임없이 완전하여지고 발전된다. 어떤 한가지 사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사람은 그 어떤 객관적 사물과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그런 사물에 대한 감각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발달한다. 제강노동자는 제강로속의 연한 남색불길의 섬세한 차이마저 아주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으며 음악가의 청각은 악기의 음을 아주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으며 요리사는 비범한 후각과 미각을 가지고 있다.
동물에게도 감각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능력은 동물의 감각능력과 다르다.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매는 사람보다도 휠씬 더 멀리 보지만 사람의 눈은 매의 눈보다 휠씬더 많은 것을 알아낸다. 개는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에게는 각이한 사물의 일정한 징표로 되는 냄새들을 개는 100분의 1도 구별하지 못한다.≫(≪자연변증법≫, ≪마르크스 엥겔스 선집≫, 한문판, 제3권, 512쪽)
그것은 인간의 감각력이 동물의 감각처럼 자연선택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사회적 실천 및 인간 자체의 지력활동의 발전에 따라 끊임없이 완전해지고 발전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러가지 노동도구를 만들고 여러가지 과학기구를 발명하여 자기의 감각기관을 무장함으로써 감각의 한계를 부단히 돌파하여 감각능력을 끊임없이 높인다. 예를 들면 현대의 라디오천문망원경은 이미 인간의 시야를 지구와 100억광년이나 먼거리의 천체에까지 확대하였다. 현세기 60년대 이래에 새로 발견된 천문학상의 유성체(流星體), 펄스성 (중성자성 ), 성간분자, 우주마이크로파배경복사 등등은 모두 라디오망원경으로 관측한 결과이다. 미생물을 인식하는 과정에서는 현미경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세균의 활동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현시대에 와서는 고에너지 가속기, 유제함, 운무함, 기포함과 같은 고에너지 실험설비와 탐측기구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그것들을 이용하여 육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물질 소립자의 운동정황을 점차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시야를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에로 확대하였으며 인간의 감각기관의 능력을 대대적으로 높이었으며 객관적 사물에 대한 사람들의 감성적 인식을 대대적으로 풍부히 하였다.
지각이란 인간의 두뇌가 감각을 통하여 객관적 사물의 각 부분과 속성을 전일체로 반영한 것이다. 어떠한 객관적 사물이나 모두 여러가지 속성과 부분으로 구성된 종합체인 것이다. 감각은 어떤 종합체의 개별적 속성을 반영한 것이고 지각은 이런 개별적 속성을 종합한 것이다. 감각과 지각은 사물을 감지하는 과정에서 갈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본 붉은 것은 붉은 기거나 붉은 꽃이거나 기타의 붉은 물체일 것이다. 구체적 사물을 떠난 ≪붉다≫는 감각은 있을 수 없다. 붉은 꽃에 대한 지각은 꽃의 붉은 색과 꽃의 모양 및 기타의 속성을 종합한 것이다. 객관적 사물의 개별적 속성에 대한감각이 풍부하면 할수록 사물에 대한 지각이 더욱 완전해지고 더욱 정확해지며 객관적 사물에 대한 반영도 더욱 근사해지고 더욱 같아지게 된다.
사람들의 지각도 감각과 마찬가지로 실천활동과정에서 발전된다.
실천활동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인간은 대상을 골라서 지각하게되며 그 대상의 지각방법을 생각하게 된다. 경험있는 농민은 밭머리만 돌아보아도 곡식이 자라는 형편을 알 수 있으며 경험있는 노동자는 기계소리만 들어도 기계의 정상여부를 알 수 있다. 생물학자는 현미경 하의 복잡한 도형을 보고 세균활동의 완전한 형상을 지각할 수 있지만 이 면의 지식이 없는 사람은 현미경 하의 점들만 보일 뿐 세균의 완전한 형상은 지각할 수 없다.
표상이란 과거에 감지한 사물의 형상이 기억에 재현된 것이다. 만리장성을 유람한 후에 장성의 웅위로운 형상은 오랫동안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게 되어 장성을 회상할 때마다 산등성이로 구불구불 뻗어나간 그 웅장한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열자≫에는 ≪한아의 노래소리 여운이 집안을 감돌면서 3일동안이나 귓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라고 쓰여있다. 이것은 옛사람의 과장이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노래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오랫동안 청지각의 기억에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표상은 지각의 직접적인 종합이며 개괄이다. 표상이 있어야만 인한 사물의 형상을 그것으로써 분석, 비교할 수 있다. 이래야만 인간의 대뇌피질이 사유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표상은 감성적 인식에서 중요한 형태의 하나이다. 인간의 기억에 남아있는 객관적 사물에 대한 표상이 전면적이고 풍부하면 할수록 사물을 본질적으로, 전면적으로 인식하는데 더욱 유리하다.
감각, 지각으로부터 표상에 이르는 이것은 직접적인 데로부터 간접적인데로, 구체적인 데로부터 추상적인 데로 이르는 인간의 인식과정의 발전추세를 구현한다. 그러나 감각이건 지각이건 표상이건 할 것 없이 그것은 모두 인식의 감성적 형태에 속한다. 그 특성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로 그것은 객관적 사물의 직접적인 반영이며 둘째로 그것이 반영한 것은 객관적 사물의 표면적 현상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인식의 초급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지식은 다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과학사에서 많은 중대한 창조와 발명은 모두 자연물에 대한 직접적 감지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며 우리 나라 고대의 대발명가 노반은 어느 날 절벽을 바라오를 때 띠풀을 한줌 쥐고 잡아당기다가 톱날같은 풀잎에 손을 벤데서 계시를 받아 톱을 발명하였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오늘에 있어서도 여전히 자연물에 대한 직접적 감지가 필요되는 것이다. 대자연은 대단히 정교한 설계사이다. 이 설계사는 여러가지 형태로 인간의 감성적 인식을 풍부히 하였으며 인간의 창조적 사유의 발전을 추동하였으며 새로운 기계, 기구, 기술공정, 건축구조 등등을 연구제작하는데 믿음직한 본을 보여주었다. 사회를 심각히 이해함에 있어서도 여러 분야의 사회적현상과 광범위하게 접촉하여야 한다. 상품의 각종 현상에 대한 감수가 없으면 상품의 본질을 가일층 이해할 수 없다. 감성적 인식은 사물의 본질을 깊이 밝힐 수 있는 토대이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파악하자면 감성적 인식만으로는 안된다. 감각만으로는 빛의 속도를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별들사이의 거리, 항성과 태양의 질량 및 그 화학성분도 측정할 수 없다. 덴마아크의 천문학자 튀코는 30년동안의 공력을 들여 행성의 운동을 관찰하고 많은 감성적 자료를 축적하였다. 그는 행성운동에 대한 감성적 인식이 극히 풍부하였지만 그 운동의 법칙은 발견하지 못하였다. 후에 그의 조수였던 케플레르는 튀코가 얻은 감성적 자료를 개괄하고 총화하여 행성운동의 3대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리 하여 사람들은 행성운동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사실에 언급하면서 매우 적절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케플레르의 놀라운 성과는 다음과 같은 진리, 즉 지식은 단순히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지적인 발명을 관찰한 사실과 비교하는 데서만 얻을 수 있다는 진리를 실증하는 묘한 실례로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람들은 날마다 상품을 보고 만지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마르크스만이 전인들의 과학성과를 섭취하고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사회관계를 전면적으로 연구하는데서 상품의 본질을 발견하였다.
인도에는 매우 흥취있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세한왕이 장기를 발명 한 사람이며 재상인 시싸 반따엘에게 ≪많은 상을 주려고 재상에게 어떤 요구가 있는가라고 물었다 한다. 그 재상은 장기판의 간이 도합 64간인데 간마다 누진적으로 곱해놓은 밀알을 몽땅상으로 주었으며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국왕은 보잘것 없는 하찮은 상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면서 쾌히 응낙하였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20간도 채 계산하기 전에 한 마대의 밀이 다 없어졌다. 만일 장기판의 64간을 이렇게 계산하여주면 인도에서 나는 밀을 다 주어도 모자랄 형편이었다. 왜냐하면 그 재상의 요구대로 주자면 18, 446, 774, 073, 709, 551, 615개의 밀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1부셸(계량단위인데 환산하면 35.2되임)의 밀은 약 500,000알이다. 이 숫자를 부셸로 환산하면 4만억부셸인데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2,000년동안 생산한 밀의 총화에 해당된다. 세한왕은 이처럼 많은 수량에 대한 감성적 인식이 전혀 없었다. 그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지식이 해박한 현대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이 수량을 직접 알 수 없을 것이다. 오직 숫적 개념에 의하여 추상적인 운산을 하여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감성적 인식은 국한성이 있으므로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인식하려면 감성적 인식을 이성적 인식에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성적 인식은 인식의 고급형태이다
이른바 이성적 인식이란 감성적 인식의 기초에서 이론적 사유에 의하여 객관적 사물의 본질과 일반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 기본형태로는 개념, 판단 및 추리가 있다.
개념은 사유의 기본형태의 하나이다. 인간이 사회적 실천에서 쌓은 많은 감성적 자료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사물의 공통한 특성을 추상한 다음 그것을 일반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개괄하면 비약이 생겨 개념이 생기게 된다. 예를 들면 우물물, 강물, 호수, 빗물 등 사물에서 물이란 개념을 추상해내며 행성, 항성, 성운 등 사물에서 천체란 개념을 추상해낸 것과 같은 것이다.
≪개념이라는 것은 벌써 사물의 현상이나 사물의 하나하나의 면이나 그 외부적 연계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 사물의 전체, 사물의 내부적 연계를 파악한 것이다.≫)(모택동, ≪실천론≫)
개념은 인간의 실천활동의 발전과 함께 발전하는데 때로는 오랜 과정을 거쳐야 한개 개념이 형성될 수 있다. 인류가 살고 있는 대지의 형상에 대하여 사람들은 몇천년 동안의 탐구를 거친 끝에야 과학적인 개념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고산부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지가 하늘을 떠받드는 기둥과 같다고 하였고 산골짜기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대지가 둥근 쟁반과 같다고 하였으며 평원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지가 네모난 평평한 판자와 같다고 하였다.
후에 또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난 것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증자는 공자에게 ≪하늘은 등근 것이고 땅은 네모난 것이라면 그것들이 어떻게 어울릴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공자는 ≪이것이 바로 하늘의 도리이다≫라고 대답하였으며 또 이로써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비천하다는 등급관념을 선양하였다. 서방의 종교신학에서도 대지를 하느님이 살고 있는 전당의 마루바닥이라고 말하였다. 동방에서 출발하여 서방을 돌아 원래 출발한 곳에 이른 콜롬버스와 마젤란의 항해실천에 의하여 비로소 대지가 방대한 구체라는 것이 실증되었다.
개념은 이론체계를 구성하는 단위이다. 과학적 개념의 형성과 발전은 과학이론의 혁신을 촉진한다. 아인슈타인의 협의적 상대성이론은 협의적 상대성의 원리와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제기하여 뉴톤체계의 절대적 운동개념과 절대적 시공개념을 대체하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이론체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여러 과학간에서 새로운 개념들이 서로 이식되어 원래의 한계가 타파되는데서 과학도 가일층 발전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양자역학의 파동함수개념이 화학, 생물학에 이식되어 양자화학과 양자생물학이란 새로운 영역이 개척되었다. 어떤 과학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자체의 개념이 있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또 새로운 개념을 제기하거나 그릇된 개념을 시정하기 때문에 발전한다. 철학적 범주는 광범위한 개념으로서 여러 과학들에 다 운용된다. 철학 자체도 구체적 과학에서 새로운 개념, 예를 들면 정보와 같은 개념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체를 풍부히 하고 이론을 더욱 정확하게 한다.
판단이란 바로 개념의 전개이다. 그 어떠한 개념이나 다 한개 또는 일련의 판단에 의하여 전개되어야만 명석한 내용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기마당과 자력선에 관한 패러데이의 개념이 바로 이렇게 형성된 것이다. 패러데이는 실험과정에서 자석부근에 있는 쇠부스러기가 종이 위에서 선형도안으로 배열되는 것을 발견하고 자석주위에 있는 작은 자기바늘들의 방향지시법칙을 연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쇠부스러기가 없어도 이런 선이 존재한다고 판정하였다. 그는 새로운 실험현상에 대한 판단을 통하여 자극과 자기력이란 개념외에 자력선이란 새로운 개념을 제기하였다. 이때로부터 사람들은 자기의 성격을 더욱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력선모형을 세우고 또 자기마당이란 개념을 얻어냈다. 또 예를 들면 앞에서 우리는 물질에 관한 개념에 대하여 언급하였는데 레닌은 물질에 대하여 일찍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을 통하여 지각되며 우리의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우리의 감각에 의하여 복사되고 촬영되고 반영되는 객관적 실재를 표시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레닌선집≫, 제2권, 162쪽)
여기에서는 철학에서의 물질이란 개념을 객관적 실재로 전개하였는데 이 객관적 실재는 감각기관에 의하여 감지되는 구체성도 가지고 있고 감각으로부터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성과 감각기관에 과하여 반영될 수 있는 가인식성도 가지고 있다. 이 구체성과 객관성과 가인식성은 또 객관적 실재에 대한 규정인 것이다. 이리하여 철학에서의 물질이란 개념은 고도로 개괄된 것이며 명확한 내용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추리란 기지의 판단으로부터 새로운 판단에로 넘어가는 이성적 활동인 것이다. 개념에 의하여 판단이 구성되며 판단에 의하여 추리가 구성된다. 기지의 판단을 전제라 하고 추리해낸 새로운 판단을 결론이라고 한다. 추리는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된 것이다. 추리과정에서 정확한 결론을 얻어내자면 반드시 전제가 진실해야 하고 추리가 논리에 맞아야 한다. 추리는 복합문으로 표달된다. 추리는 늘 사용되는 사유형태이다.
객관적 사물에 대한 인식에서 어떤 판단의 진리성은 추리로써 증명하여야 한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이지만 사람들은 지도를 그리는데 네가지 색만 있으면 인접하고 있는 구역들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4색정리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러한가? 이 문제를 증명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100여년 동안이나 정력을 들였다. 1976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의 수학자 아펠과 헤이겐이 전자계산기로 백억개의 논리적 판단을 진행하고 천여개의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이 증명을 완수하고 경험을 이론적 인식에로 끌어올렸다. 보다시피 추리가 없이는 사물의 복잡하고 심각한 본질적 연관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추리의 역할은 과거를 총화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데서도 표현된다. 우리 나라 지질학자 이사광이 창립한 지질역학원리는 지각의 구조와 지각운동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해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진을 예측하고 지하자원을 탐사하는데 관련되는 데이타도 제공하였다. 천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중에서 어떤 것은 직접적인 관측에서 온 것이 아니라 관측한 자료에 근거하여 계산하고 추리하는데서 발견된 것이다.
보다시피 개념, 판단, 추리는 객관적 사물을 반영하는 면에서 사물의 외적 현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내적 연관에 깊이 들어간 것이다.
감각기관으로는 직접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이성적 인식은 파악할 수 있다. 미시세계에서는 누구도 소립자 자체를 직접 관찰할 수 없으며 거시세계에서는 아직까지 태양계 밖의 천체에 가서 실지로 고찰할 수 없다. 그러나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모두 객관적 존재이므로 사람들에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을 인식하자면 이성적 추상에 의거하며 이성적 추상에 의하여 형성된 과학적 이론에 의거하여야 한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물질의 추상, 자연법칙의 추상, 가치의 추상 및 기타 등등 한마디로 말하여 모든 과학적(황당하지 않고 옳고 정중한)추상은 자연을 더욱 심각하게, 더욱 정확하게, 더욱 완전하게 반영 한다.≫(≪철학노트≫, ≪레닌선집≫, 한문판, 제38권, 181쪽)
이성적 인식을 인식과정의 고급형태라고 하는 그 도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변증법적 통일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은 같은 인식과정에서의 두가지 각이한 수준의 인식형태이다. 그것들은 모두 실천에 토대하여 생산되는 것이다. 그것들은 구별되면서도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감성적 인식은 이성적 인식에로 심화되어야 하며 이성적 인식은 감성적 인식에 의존하여야 한다.
인류의 인식사에서 생산력과 과학수준의 제한으로하여 사람들은 인식과정의 변증법적 성격을 흔히 옳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감성적 인식의 역할만 본 일부 철학자들은 모든 지식이 감각적 경험에서 오는 것 만큼 이지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다 먼저 감각 속에 있는 것이며 개념이란 사람들이 객관적 사물에 단 표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이것은 이성적 인식의 역할을 말살하고 감성적 인식의 역할을 무한히 과장한 것이다. 이런 관점을 철학사에서는 경험주의라고 한다. 영국의 철학자 로크(1632-1704년)가 바로 경험주의의 유명한 대표자이다. 경험주의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감성적 경험만으로도 객관적 사물을 넉넉히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적 사업에서 경험에만 의거하는 사람을 경험주의라고 한다 그들의 범하는 오류는 바로 경험주의적 오류이다. 그들은 특수한 경험에서 일반적인 것을 개괄하여 내지 못하고 어디서나 지난날의 경험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주관주의적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주의자들과는 반대로 다른 일부 철학자들은 이성적 인식의 역할만 승인한다. 그들은 이성적 인식이 감성적 인식에 앞서 존재한다고 인정하며 감성적 경험이 인식의 발단이고 지식의 기원이라는 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을 철학사에서는 이성주의라고 한다. 데카르트가 바로 이성주의자였다. 그는 일반적 개념, 기본원칙 및 공리 등을 확정적인 지식을 얻는 토대라고 인정하였으며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공리로부터 출발하여 일보일보 기타의 명제를 추리해내어 지식의 체계를 이룬다고 인정하였다. 이런 개념, 원리, 공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데카르트는 이런 것들을 선천적인 것으로 인정하였다. 우리는 실제사업에서 일반적 원리를 구체적 실천에 결부시키지 않고 마르크스주의서적에 있는 단편적인 어구에만 매어 달리는 사람들을 교조주의자라고 한다. 그들이 범하는 오류는 바로 교조주의의 오류이다. 이성주의자들은 실천에서 필연적으로 주관과 객관과의 분리를 조성하고 주관주의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경험주의와 이성주의는 인식과정에서의 감성적 형태와 이성적 형태에 대하여 각각 하나만 주장하므로 확연히 상반되는 두가지경향인 것 같지만 다 감성과 이성을 형이상학적으로 분열시키므로 그 병근을 따지고 보면 동일한 것이다. 원래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은 통일적인 것이다. 감성적 인식이나 이성적 인식이나 할 것 없이 그것들은 모두 객관적 사물에 대한 두뇌의 반영인 것이며 반영형태에서 직접적인가, 간접적인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고 내용면에서 구체적 인상인가, 추상적 개념인가 하는 구별이 있을 뿐이다. 사실에 있어서 객관적 사물을 인식하는 과정에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은 늘 서로 침투된다. 즉 구체적 사물에 대한 감성적 인식에서도 개념을 사용하므로 이성적인 것이 있으며 이성적 인식도감성적 인식을 토대로 하므로 거기에도 감성적인 것이 있다. 개별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일반적인 것을 포괄하지 않은 개별적인 것이 없고 개별적인 것을 전적으로 떠난 일반적인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이성적 인식을 포괄하지 않은 감성적 인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감성적 인식을 전적으로 떠난 이성적 인식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양자를 완전히 분열시키는 것은 인식과정의 본래의 면모에 부합되지 않는 것이다.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이 서로 침투하는 것을 명확히 알기 위해 우리는 사유과정에서 노는 분석과 종합의 역할을 가일층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다.
감성적 인식과정에서 분석과 종합이 필요한가? 물론 필요한 것이다.
감성적 인식으로부터 이성적 인식에 이르는 과정은 분석하고 종합하는 사유활동과정이다. 감각, 지각, 표상은 개념과 마찬가지로 대뇌피질의 분석과 종합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다. 감각을 놓고 말할 때 시각은 붉은 색, 누런 색, 흰 색, 검은 색을 직접 구별할 수 있으며 청각은 우뢰소리, 대포소리, 음악소리를 직접 구별할 수 있으며 후각은 여러가지 냄새를 직접 구별할 수 있다. 구별하자면 분석도 하고 종합도 하여야 한다. 우리가 텔레비젼이나 영화를 볼 때 그 소리도 듣고 그 형상도 본다. 이것은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는 종합적 활동이다. 50년대에 사람들은 인간의 두뇌가 마치 10의 11승개의 전자관으로 구성된 전자계산기(대뇌피질에는 약 10의 11승개의 신경세포가 있다)와 같다고 인정하였다. 지금 생리학자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의 신경세포는 하나의 전자관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극소형전자계산기에 해당되며 매개의 극소형전자계산기는 또 약1,000개의 같은 형의 기타 극소형전자계산기와 연계되어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두뇌는 10의 11승개의 극소형전자계산기로 구성된 정보처리계통과 유사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매개 감각기관이 외계의 정보를 접수하고 전달할 때에 분석하고 종합한다는 것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매개의 신경세포도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단위라는 것을 설명하여 준다. 보다시피 감성적 인식과정에서 대뇌피질에 구체적 인상이 형성되는 과정은 대규모적으로 분석과 종합을 진행하는 사유활동인 것이다. 분석과 종합을 떠나서는 지각과 표상이 형성될 수 없다.
대뇌피질은 일정한 분업에 의하여 분석하고 종합한다. 대뇌우반구의 피질은 구체적 인상을 위주로 분석하고 종합하며 대뇌좌반구의 피질은 추상적 개념을 위주로 분석하고 종합한다. 그러나 두 반구의 피질의 사유활동은 또한 서로 연결되고 서로 제약한다. 두 반구의 연합부위가 완전한 정황 하에서 매개 반구의 피질은 전부의 감각기관으로부터 감각신호를 받아들인 다음 또 연합부의 상호전달을 통하여 분석, 종합한다. 일단 연합부가 절단되면 한개 반구가 받아들인 감각신호는 다른 반구로 전달되지 못한다. 병원의 임상에서는 다음과 같은 정 황을 보게 되었다. 즉 우반구를 배어버 린 사람은 수술 후에 말하는데 곤란이 없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데도 순조롭지만 도형에 대한 지각능력이 없으므로 그림을 모방하여 그리는데는 힘들어하였다. 좌반구를 베어버린 사람은 수술 후에 말하기는 힘들어하지만 여러가지 기하도형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모방하여 그릴 수 있었다. 이로부터 대뇌의 양반구는 갈라놓을 수 없는 통일적인 전일체로서 비록 사유활동에 있어서는 분업이 있지만 모두감각의 신호를 토대로 하며 서로 전달하고 서로 보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좌반구나 우반구만 있거나 연합부를 끊어버린다면 객관적 사물을 완전하게 반영할 수 없다.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을 망라한 사유활동은 인간의 사회적실천의 발전과 합께 발전한다. 인간은 자연을 개조하는 실천활동과정에서 유성언어를 가지게 되었고 후에는 또 서면언어를 형성하여 인식한 여러가지 사물에 명칭을 달게 되었고 또 그것으로 지식 체계를 점차 형성하여 축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유는 직접적으로 감각한 사물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지식체계가 제공한 사물도 반영한다. 그러므로 인간에 의하여 개변된 객관적 사물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식도 더욱 풍부해지고 인간의 사유도 더욱 발전한다.
인류가 지식을 응용하여 발명, 창조한 정황을 볼 때 통계에 의하면 16세기에는 여러가지 새로운 발견과 발명이 2항에 불과하였으나 17세기에는 106항, 18세기에는 156항, 19세기에는 546항에 달하였으며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첫 50년 동안에 961항에 달하였고 최근 10여년 동안에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발명과 창조가 더욱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오늘 인간의 사유능력은 이미 전자계산, 인공지력을 표징으로 하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다.
자연을 개변하기 위한 인간의 사유활동에서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실천과정에서 객관적 사물에 많이 접촉하면 접촉할수록 객관적 사물에 대한 구체적 인상이 더욱 풍부해지고 개괄해낸 추상적 개념도 더욱 명확해지고 심각해진다. 풍부한 구체적 인상이 없으면 정확한 과학적 추상이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여러가지 구체적 인상을 얻은 다음 인간의 두뇌에서 그것들을 분석연구하지 않으며 그것들을 추상적 개념으로 개괄하지 않는다면 단 두가지 사실도 서로 연결시킬 수 없다. 과학사에는 이러한 교훈이 적지 않은 것이다. 최면술을 예로들면 그것은 본래 자연수면과 유사한 생리적, 심리적 현상이다. 피최면자의 대뇌피질은 부분적으로 억제되며 억제되지 않은 부분은 피최면자로 하여금 이러저러한 암시를 받고 여러가지 동작을 하게한다. 그런데 과학수준이 높지 못한 19세기에 선교사들은 사기꾼들과 결탁하여 최면을 당하는 소녀를 유인하여 여러가지 동작을 하게함으로써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였다. 이런 기만술은 일반군중을 미혹시켰을 뿐만 아니라 유명한 생물학자이며 다윈과 동시에 종의 진화론을 제기한 월리스, 화학자 크룩스까지도 강신술의 신봉자로 되게 하였다. 과학사에서 이것은 협애한 경험론으로부터 출발하여 관념론으로 나아간 전형적인 실례로 된다.
그러므로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과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감성적 경험을 홀시하고 실제를 떠나 명상만 하는 경향도 반대하여야 하고 이론적 사유를 홀시하는 경험주의적 경향도 반대하여 한다. 많이 사고하여야 한다. 책을 읽을 때 머리를 써서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천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의식적으로 분석, 종합함으로써 사유활동의 능동적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여야 한다.
실천의 기초 위에서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과의 변증법적 통일을 견지하여야만 오류를 배제하고 진리를 발견할 수 있으며 진리적 인식을 끊임없이 발전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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