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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정등 (岸樹井藤)
안수정등(岸樹井藤)은 '강기슭의 나무, 우물속의 등나무'란 뜻으로
불가에서 말하는 '인생'에 대한 탁월한 비유설화이다.
다음은 [월간 불광] 1995년 8월호에 실렸던 '성철스님' 관련 기사에 나오는
'안수정등' 화두에 관한 글이다.
불교정화 무렵, 참선공부를 하는 수좌(首座)들 사이에는 해제가 되면
여러곳의 눈 밝은 선사(禪師)를 찾아 다니면서 자기의 수행을 점검받고 법을 묻는 일이 성행하였다.
그 때,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화두중 하나가 '안수정등(岸樹井藤)'이라고 하는 화두(話頭)였다.
대부분의 화두가 중국에서 이루어진것과 달리
안수정등은 우리나라 선가(禪家)에서 태어난 순수 한국산 화두(國産話頭)이다.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말이 최초로 쓰이기는 저 유명한 중국의 현장(玄裝)의 전기(傳記)인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大唐大慈恩寺三藏)이 아닌가 한다.
이 전기 9권에 보면 "현장은 항상 이몸을 생각하기를 뭇 인연이 임시로 합해져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순간순간이 무상(無常)하다.
비록 안수정등(岸樹井藤)으로써도 위태롭고 나약해서 짝할 수 없다."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과분한 탓인지 모르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전기에서 안수정등이라고 하는 말이 쓰이고는 있으나 중국의 선가에서는 이 말을 그대로 화두로 쓰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이 안수정등의 화두를 낳은 비유설화(譬喩說話)에 등장하는
"두마리 쥐가 등나무를 침범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이
조정겸추록(祖庭鉗鎚錄)이나 선문염송(禪門捻頌)등에 보이는 것이 고작이 아닌가 한다.
각설(却說)하고, 현장의 전기에서 인명(人命)의 위태로움을 비유하고 있는 안수정등의
안수(岸樹) 즉 '강기슭의 나무'란 본래 대반열반경 1권에서
"이 몸은 마치 험준한 강기슭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아서 무너지기 쉽다.
폭풍을 만나면 반드시 쓰러지기 때문이다."고 설한 말씀에서 나왔다.
이 비유를 중국에서는 흔히 하유(河喩)라고 말한다.
이 '하유'역시 화두로 쓰인 흔적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정등(井藤) 즉 '우물속의 등나무'에 관해서는 두 가지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두 가지 기록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안수정등에 관한 이야기는 많으나
이 화두의 근거가 되는 출전(出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으므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다.
그 하나는 빈두로돌라사위우타연왕설법경(賓頭盧突羅 爲優陀延王說法經)이다.
경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우타연왕을 위하여 빈두로돌라사 존자(尊者)는 이렇게 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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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옛날 어떤 사람이 광야(廣野)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때] 크고 사나운 코끼리를 만나 쫒기게 되었습니다. 미친 듯이 달렸으나 의지할 곳이 없었습니다.
[때마침] 언덕 위에 있는 우물을 발견한 [그는] 곧 [우물속으로 드리워진] 나무 뿌리를 잡고
우물속으로 들어가 숨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를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이빨로 갉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의 네 벽에는 네 마리 독사가 있는데 그 사람을 물려고 합니다.
또 이 우물 밑에는 큰 독룡(毒龍)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옆에 있는 네 마리 독사와 아래 있는 독룡이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뿌리는 [뽑힐 듯이] 흔들리고, [그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꿀 세 방울이 그의 입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나무가 움직여 벌집을 무너뜨렸습니다.
벌들이 날아와서 그 사람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또] 들에 불이 일어나 [그가 매달려 있는] 나무를 태웠습니다. -중략-
대왕이여, 광야는 생사(生死)를 비유하며 그 남자는 범부(凡夫)를 비유하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을 비유하며 언덕위의 우물은 사람의 몸을,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을 비유합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밤과 낮을 비유하고
[그 쥐들이]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사람의 목숨이] 순간순간 줄어드는 것을 비유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사대(四大)를, 꿀은 오욕(五欲)을 비유하며
[그를 쏜] 뭇 벌들은 나쁜 생각과 견해(見解)를 비유한 것입니다.
또 들불(野火)이 타는 것은 늙음을 비유하고, 아래 있는 독룡은 죽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경이 설하고 있는 비유의 전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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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이 비유를 압축한 기록으로서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이 전하고 있다.[괄호 안은 비유임]
"옛날 어떤 사람이 두 마리의 술취한 코끼리(生과 死)를 피해서 등나무(목숨의 뿌리)를 의지하여
우물(無常)에 들어갔으나 검은 쥐와 흰 쥐(달과 해) 두 마리가 등나무를 긁으려 하고
네 마리 뱀(四大)이 물려고 하며 아래는 세 마리 용(三毒)이 불을 토하면서 발톱을 펴서 잡으려 하였다.
그 사람이 위를 쳐다보니 두 마리 코끼리는 우물 위에 있어 의탁할 곳 없어 근심하고 있는데
홀연 지나가는 벌이 꿀방울(五欲)을 떨어뜨려 입안에 들어왔다.
이 사람은 꿀을 맛보자 위태로움을 모두 잊었다."
번역명의집은 대집경에 이 이야기가 있다고 했으나 대집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앞에서 든 비유가 그 원형이다. 이 비유를 흔히 정유(井喩)라고 한다.
이 비유는 몇방울의 꿀맛에 도취되고 집착해서 삶의 실상(實相)을 잊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존(實存)하는 인간의 한계상황(限界狀況)을 적나라(赤裸裸)하게 설파한 설화(說話)로서 짝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한 설화 중에서 중국의 선가는 고작 "두 마리 쥐가 등나무를 침범할 때는 어떠합니까?"하고
화두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 선가에서는 하유와 정유를 묶어서 이 비유가 전하는 메시지를
총체적으로 묻고 있다. 이것이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이다.
1949년 12월, 문경 봉암사에서 '부처님 법답게 살자'는 결사(結社)를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 스님들(청담, 자운, 성철, 월산, 혜암, 향곡, 성수, 법전)은
제방(諸方)의 선지식(善知識)에게 이 안수정등화를 제기 하였다.
이때, 어떤 스님은 무릎을 탁 치며 '아! 달다'하고 일어서 문밖으로 나갔다 하고
어떤 스님은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하고
어떤 스님은 '개구즉착(開口卽錯)이라고 했다 한다.
이 물음에 성철 스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성철 스님에게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것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물은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가 침묵한 것과 같은가 다른가 물었다.
그때, 스님은 '조주와 같이 할(喝)을 하랴, 덕산과 같이 방(棒)을 하랴. 니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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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얘기를 조금 더 읽기 쉽게 다듬은 자료를 찾아보았다.
한문투를 최대한 줄이고 부드럽게 다듬은 글들이 여럿 있다.
안수정등 이야기
여기 안수정등(岸樹井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잡아먹으려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생사가 박두(迫頭)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죠.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둘러보니
4마리의 뱀이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으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고 하고 흰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갉고 있습니다.
만일 쥐가 갉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룡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꿀을 받아먹는 동안에 자기의 위태로운 경계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죠.
이 비유설화에서 한사람이란 생사고해에서 헤매고 있는 중생을 말한 것이요,
망망한 광야란 생사광야인 육도 윤회를 말한 것이요,
쫓아오는 코끼리란 무상살귀(無常殺鬼)를 말한 것이요,
우물이란 이 세상을 말한 것이요, 독룡이란 지옥을 말한 것입니다.
네 가지 뱀이란 이 몸을 이룬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를 말한 것이요,
등나무란 무명수(無明樹)를 말한 것이요, 등나무 넝쿨이란 사람의 생명줄을 말한 것입니다.
흰쥐와 검은 쥐란 일월(日月)이 교차하는 낮과 밤을 말한 것이요,
벌집의 꿀이란 소위 눈앞의 오욕락을 말한 것이니,
재물과 색과 음식과 수면과 명예욕을 말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중생을 비유한 설화입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중생들은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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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정등 이야기,
안수(岸樹 강기슭의 나무)란, 강가에 겨우 서 있기는 하지만 만일 폭풍을 만나면
견디지 못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큰 나무와 같이 위태롭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정등(井藤)은 '우물속의 등나무'라는 말이다.
한사람이 망망한 광야를 가는데, 무서운 코끼리가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코끼리를 피하여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고,
등나무 넝쿨이 우물 속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넝쿨을 하나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우물 밑바닥에는 독사 네마리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고,
또 우물 중턱의 사방을 둘러보니 작은뱀들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다.
할 수 없이 등나무 넝쿨을 생명줄로 삼아 우물 중간에 매달려 있자니,
두 팔은 아파서 빠지려고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흰쥐와 검은쥐 두마리가 번갈아 가며
그 등넝쿨을 쏠아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쥐가 쏠아서 등나무 넝쿨이 끊어지거나,
두팔의 힘이 빠져서 아래로 떨어질 때는 독사들에게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는 신세다.
그 때 머리를 들어서 위를 쳐다보니, 등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달콤한 꿀물이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다섯 방울, 이렇게 떨어져서 입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게 꿀을 받아먹는 동안엔 자기의 위태로운 처지도 모두 잊어버리고 황홀경에 도취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상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등나무 넝쿨은 생명을, 검은쥐와 흰쥐는 밤과 낮을 의미한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한다.
달콤한 꿀물방울은 인간의 오욕락(五慾樂) - 재물, 이성, 음식, 명예, 편안함에의 욕망이다.
급박한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그 꿀 한 방울에 애착하여 무상하고 위태로운 것을 모르고 있다.
이렇게, 생사고해에서 헤매는 인생을 비유한 설화가 바로 이 '안수정등' 이야기이다.
다시 올라갈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려갈 수도 없는 신세..
등나무 넝쿨에 매달려 꿀 방울을 먹던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살아나겠는가?
다음 글은 [대한불교신문]에 연재되었던 "고승열전' 가운데 '안수정등' 화두가 나오는 내용이다.
선교율을 겸비하신 천진도인(제68회) 인곡대선사(麟谷大禪師)
해 방 기 (解 放 期) 〈3〉
앞서 전강(田岡)스님을 잠시 소개했는데 내친 김에 한가지 더 얘기해 둘까 한다.
전강스님이 서른살 남짓 되었을 때 스님은 엿목판을 짊어지고 이 고을 저 고을 순행하며
엿장수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 해 여름안거의 반살림 시기를 맞추어 서울 대각사(大覺寺) 조실(祖室)이신
용성(龍城)선사께서 전국 각 선원으로 설문(設問)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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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의 내용은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이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한 나그네가 평원광야(平原曠野)를 혼자서 걷고 있었다. 이 때 미친 코끼리〔狂象〕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밟아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젖먹은 힘까지 다 쏟아 도망갔는데 그 코끼리는 막무가내로 뒤쫓아 오는 것이었다.
결국 지치고만 나그네는 영락없이 코끼리에 밟혀 죽게 되었는데 바로 그 때 그의 앞에 오래된 낡은 우물이 있는지라,
나그네는 우물로 뻗어 내려간 등나무를 부여잡고 우물 속으로 몸을 숨겼다.
미친 코끼리는 우물을 빙빙 돌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위협해 왔으며 나그네는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게 되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우물 밑바닥에는 팔뚝만한 독사떼가 있어 나그네가 내려오면 물어 죽이겠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고,
우물 사방에도 독사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위를 쳐다보니 흰쥐 검은쥐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나그네가 붙잡고 있는 등나무를 갉아 먹는 것이 아닌가?
등나무를 다 갉아 먹으면 나그네는 우물 바닥으로 떨어져 독사떼의 밥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두 마리의 쥐가 등을 갉아먹으며 마침 근처에 있는 벌집을 건드리니
벌집에 고여 있던 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전후좌우의 긴박한 상황을 깜박 잊고 꿀 받아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만 나그네가 위기에서 벗어나 살아나게 되겠는가?」
이것이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 내용의 요지(要旨)이다.
제방의 각 선원에서 30여통의 답이 대각사에 도착했는데
어느 큰스님은 ‘작야작몽(昨夜作夢)’이라 답하셨고 어떤 큰스님은 ‘광상(狂象)이다’라고 하셨으며
어떤 큰스님은 ‘상강(霜降)에 월색한(月色寒)이다’하셨다.
하루는 조실스님이 오공중(午供中)에,
“영신(永信)이 요즘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구나.” 하시니 -영신은 전강(田岡)스님의 법명이다-.
조실스님 맞은편에서 공양을 들고 있던 설봉(雪峰)스님이 여쭙되,
“영신은 왜 말씀하십니까?”
“영신의 답을 듣고 싶구나.”
“소승이 찾아볼까요? 직지사(直指寺)근처에서 엿장수하고 있다던데요.”
“그럼 한번 찾아보아.”
이렇게 해서 설봉스님이 전강스님을 찾아 나섰다.
설봉스님은 먼저 직지사로 내려가서 자세히 물어본 다음 금릉군(金陵郡)의 어느 시골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시골 마을을 샅샅히 뒤지기를 사흘 만에 어느 마을 앞에서 엿목판을 진채 가위를 치며
타령조로 엿 사시오 엿 사시오 하고 떠들고 있는 전강스님을 만났다.
연령은 설봉스님이 위이지만 두분은 절친한 도반 사이였다.
둘이 한동안 두손을 부여잡고 담소를 나누다가 설봉스님이 ‘안수정등화’의 문답을 얘기하며
한마디 일러보게 하니 전강스님은 제방선원에서 보낸 답을 먼저 듣고 나서 하는 말이,
“선방에서 모두 시은(施恩)만 축냈네 그려.”
“그게 무슨 말이야?”
“모두 엉터리 답이란 말이지.”
“그럼 자네 한번 일러 보라구.”
“정식으로 물어오면 답하지.”
“우물 속에 갇힌 나그네가 어떻게 하면 출신활로(出身活路)를 얻겠는가?”
엿목판을 짊어진 채 그 무거움도 잊은 전강스님이 바른 손을 번쩍 들면 외치기를,
“달다”
하는 것이었다. 설봉스님이 돌아가서 낮 공양 중에 조실스님이 물으시자,
“달다 하고 큰소리로 외칩디다.”
이 말은 들으시던 조실스님은 들고 계시던 국그릇을 떨구고 말았다.
조실스님이 너무도 뜻밖의 답을 들으시는 순간 경악하시며, 국그릇을 떨군 것이었다.
시자가 수건으로 모두 닦아 드렸지만 조실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굳은 표정으로 한식경을 지난 뒤에 무릎을 툭 치시며, “과연 영신(永信)이 있었군…” 하셨다.
영신의 답이 가장 값지다고 수긍하신 것이었다.
그러면 설문을 던지신 용성조실(龍城祖室)스님은 무어라고 자답(自答)하셨을까?
包瓜花穿籬出하야 臥佐痲田上이라
박꽃이 울타리 뚫고 나와서
삼밭 위에 누워 있도다
영신(永信), 즉 전강(田岡)스님은 용성선사의 자답(自答)도 어줍잖다고 일렀다.
안수정등화(岸樹井藤話)의 문답은 여러 해를 지나서도 논란이 계속되었고
그와 함께 전강스님의 ‘달다’하신 답에 대해서도 많은 선객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아무튼 코끼리에 쫓겨 낡은 우물 속에 갇힌 나그네의 출신활로(出身活路)에 대한 문제는
곧 현재의 우리네 문제이므로 공부인(工夫人)이라면 누구나 깊이 사유해야 할 것이다.
때는 임오년(壬午年?서기 1942년), 절기는 하안거(夏安居) 중인 유월의 더운날,
인곡(麟谷)조실은 변산(邊山) 월명암(月明庵) 선원에서 여름을 나고 있었다.
운문선원(雲門禪院)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지라 결제일을 사흘 앞두고 새벽예불 모신 뒤 장상과 발우만을 챙긴 채
산길로 구암사(龜岩寺)쪽으로 내달려서 가까스로 여기에 닿았던 것이다.
운문선원 용상방(龍象榜)에는 여전히 조실로 올라 있고 선객 너댓이 조실스님 찾으러 원근의 사찰을 뒤졌지만
소식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입승(立繩)스님은 조실스님 실종사건을 큰절에서 알지
못하도록 철저히 은폐하여 한참이 지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후문(後聞)이다.
운문선원에서 함께 났던 도반들도 지금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선원에 몸담고 있을 것이지만
소식을 들으지는 일년이 지난 스님도 있다.
월명암(月明庵)에는 인곡스님의 도반이 한 분 있다. 바로 매곡(梅谷)스님이다.
학명(鶴鳴)큰스님의 훈도(訓道) 속에 본분납승(本分衲僧)으로 많은 신도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매곡스님은 예전에 정혜사(定慧寺)의 만공회상(滿空會上)에서 함께 난 이래
멀리 금강산(金剛山)에서도 함께 정진하며 도반의 우의를 두터이 다진바 있다.
인곡스님과 매곡스님은 조용한 성품이 꼭 닮았다.
말수가 적은 것도 명예를 돌아보지 않는 점도 두 스님은 비슷하였다.
인곡스님은 백양사에서 이력을 마쳤고 매곡스님은 금산사(金山寺)에서
일대시교(一大詩敎)를 이수하고 선원으로 다니며 자기 공부에 누구보다 열심이다.
“어! 운문선원 조실스님이 아니여?”
“월명선원 법주스님 안녕하신가?”
“아니, 내일이 결제일인데 오늘 여기에 원일이란 말씀이여?”
“결재일이 되었으니 큰스님 회상에 온게 아닌감.”
“살다보니 별일 다 보겠네 그려.”
“아무튼 한철 나고져 왔으니 방부나 받아주소.”
“정말잉가여? 인곡당.”
“암 정말이지.”
“큰일 났겠네, 인곡당.”
“뭐가 큰일나?”
“백양사는 지금 난리가 났을 것이구만.”
“너무 과장하지 마소. 아무 일 없을 터이니.”
매곡스님은 걱정이 앞섰다.
만암큰스님이 노여워하실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튕길지, 걱정이 앞섰다.
그렇지만 인곡스님을 운문선원으로 가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인곡화상, 조실 자리가 어떻길래 도망 하다시피하여 이렇게 온게야?”
“적어도 내게는 안 어울려. 마치 머리에 맞지 않은 무거운 모자를 쓴 기분이었거든.”
“하기야 이 산중 저 선방을 자유롭게 넘나들다가 염화실에 앉아만 있자니 답답하기도 할게야.”
“바로 그걸세, 자유라는게 없어.”
“그렇다면 여기루 잘 왔네, 그려.”
“자네는 여기에 얽매이지 않은건가?”
“나야 조실이 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니까 얽매일 것도 없지만
상좌가 주지직에 있으니까 맘 편히 있는게지.”
“들으니 자네도 조실로 있다던데?”
“큰절에서들 조실로 계셔야 한다고 하더구만. 나는 아예 조실이란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지.
조실 운운하면 이내 걸망을 싸겠다구 말일세.”
“그래서 회주(會主)스님이니 법주(法主)스님이니 하고 부르는구만.”
“그런 칭호도 못하게 했는데 그렇게 부름으로써 조실 칭호를 안 쓰니 그냥 봐주고 있다네. 허허.”
조실(祖室)의 칭호. 아무나 조실이 될 수 없듯이 일단 조실이 되면 산중을 대표해야 하니
마음이 무겁기 마련이다.
주지(住持)는 절 살림을 맡은 행정승(行政僧)의 수반이지만
조실은 그 산중의 납자들을 다스리고 가르치며 거느리는 법왕(法王)이다.
얼핏 보아 주지스님이 그 절의 대표인 것 같지만 그 절의 행정을 맡아하는 대표이지 산중의 대표자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방장(方丈)화상이 주지직(住持職)을 겸임한다.
말하자면 주지가 곧 방장이요 방장이 주지인 것이다.
방장화상은 한 산중의 법왕이자 행정수반(行政首班)이므로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주지스님이 곧 조실을 겸임했는데
이판(理辦).사판(事辦)으로 나뉘면서 이판은 조실이 맡고 사판은 행정승이 맡는 제도도 확립된 것이다.
이렇게 나뉘어진 것은 아마도 일제시대 초기부터인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