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도서: 약간의 요약>
바트 어만.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허영은 옮기. 서울: 갈라파고스, 2019(2018).486쪽. 21,000원
신약 문헌학자이면서 동시에 역사학자인 바트 어만의 초기 기독교 역사서를 소개한다. 저자 어만은 고등학생 때 신앙에 심취되어 극단적 근본주의 성경학교인 무디바이블칼리지에 입학하여 근본주의적 경향의 신학에 기초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했다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사본학자인 브루스 메츠거를 만나 그의 수제자가 되었고, 본문비평과 신약성경의 문헌학 연구에 심취하여 그 후 신약 문헌 연구, 초기교회 역사 연구에 거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은 저명한 신약학자이면서 초기 기독교 역사가이다.
그의 연구는 신약 문헌, 초기 기독교의 실상 등에 주로 집중되었는데, 그가 출간한 30권이 넘는 책은 모두 자극적이고 도전적이라서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릴 정도로 학자와 진지한 신앙인들 사이에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여기서 소개하는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는 초대교회사에서 중요하게 다룰 만한 사건의 실상을 밝힌 초기 기독교 역사서이다. 저자는 로마 제국 시대에 제국과 대중들에게 박해의 대상이고, 제국 내부에서 금기시되었던 기독교가 어떻게 그처럼 빠르게 세계를 휩쓴 제국의 종교가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486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서 저자는 9장으로 주제를 나누어 초기 400년간의 기독교 역사를 다룬다. 1장은 기독교의 박해기로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때까지의 상황을 다룬다.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더 이상 박해를 받지 않게 된 것이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건(303년)이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흔히 “개종”이라고 했을 때, 그 단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이 얼마나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진실했느냐의 문제다. 니케아 신조를 탄생시켰고 4세기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논쟁이 벌어질 때 갓 신앙생활에 입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영향은 매우 컸다. 그리고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가 오늘날 교회의 신조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의 문제가 1장의 중심 화두다.
2-3장은 콘스탄티누스보다 더 오래 전에 바울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향한 것을 다룬다. 바울의 회심(또는 개종, 전향)은 기독교회 형성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사실 바울이 기독교를 창안했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어만은 바로 이 문제, 즉 바울 개종의 의미와 중요성을 추적한다.
이 장에서 어만은 고대 세계의 다신교적 종교와 유일신론적 유대교 또는 기독교가 각각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어만은 당시 이교도의 다신교적 종교에 대한 이해를 잘 알아야 유대교나 기독교의 유일신론적 종교로 개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다신교는 종교나 신조에 대한 개방성에 있고, 기독교는 배타성에 있다. 다신교는 제물 희생, 기도 의식, 점치기 등으로 사람이 종교를 통에 무슨 유익을 얻을지에 집중한 종교였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신이나 종교라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상관하지 않고 얼마든지 받아들였다. 매우 현세적이고 실리적인 종교관이다. 그들에게 사회 윤리는 중요하지도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런 세계에 어울리지도 않고 용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새로운 종교를 바울은 제시했다. 제의보다 믿음을, 외적인 종교 행위보다 교리와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는 기독교 말이다. 다신교 풍조의 종교인들에게 그것은 비합리적인 종교였다. 아니 무신교(無神敎)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울의 교훈이 당대 사람들에게 먹혀들었을까? 이것이 4장의 주제다.
4장은 본격적으로 이 책의 제목에 해당하는 주제를 다룬다. 기독교가 승리한 이유다. 그 까닭에 대해 그간 여러 학자가 나름대로 방안을 내놓았지만, 어만은 기독교가 이교도와 다른 점을 지속적으로 유지한 것에 기독교 승리의 이유가 있다고 판단한다. 즉 기독교의 배타성을 강조하여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신이심과 그를 숭배하기로 한 신자는 다른 종교를 떠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과 다른 삶(경전에서 요구하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요구한 데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신교를 숭배하는 이교들 사이에서도 신들 가운데 으뜸 신을 선정하는 정서가 있었다. 선택일신론이다. 이교도들도 가장 높은 신 한 분을 선정하고 다른 하위 신들보다 더 잘 숭배하는 의식이 있었다. 소위 신들의 서열 인식이다. 바울과 교회는 이교도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가장 으뜸 신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면 소위 전도는 절정에 도달한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의 배타성이 매우 분명히 드러났다. 여기에 더하여 진정한 헌신은 종교의식이 아닌 윤리적 행동이 요구되며,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 올바르게 알고 꾸준히 배워야 하는 교리를 강요했다는 것에 기독교 승리의 비결이 있다. 현대인이라면 성공하지 못할 전략이라고 꺼릴 만한 전략을 초기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사용했다.
5장은 기독교가 신생종교이고 신자들은 약자이고 비천한 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이교도들이 굳이 기독교로 개종하려 했을까? 기독교로 개종하면 어떤 유익이 있었을까? 상반되는 두 가지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어만의 분석이다. 첫째는 여전히 일반 종교의 신자들에게 볼 수 있는 개인적인 이득을 기독교로부터 얻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세계에 만연한 전염병과 기근에서 의료적 혜택을 본 것이 그 실례이다.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사람들 사이에 기적을 경험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들은 기도로 어느 정도 기적을 경험했다고 믿었고(어만은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고 싶어 한 것에 근거한다고 판단한다),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돌봄과 의료 혜택을 체험했다.
둘째는 이생을 마치고 나서 얻게 되는 내세의 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만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신분이 낮은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주로 노예들이다. 그들이 선하게 살면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들과 가진 자들에게 홀대를 받으며 사는 것으로 이번 생이 끝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성경 구석에 있는 실낱 갈은 빛에 의존하고 그것을 부각시키면서 사후의 소망을 믿고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어만은 진단한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지 기독교는 성공하고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는가? 기독교가 이런 결과를 낳는 데 신자들의 열렬한 선교와 전도가 있지 않았을까? 아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지 않았을까? 이 문제에서도 어만은 우리가 기대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역사가답게 정확한 역사적 분석과 정보에 의존하여 기독교인들의 수가 많아지게 된 것을 분석한다. 6장에서.
6장의 제목은 20명에서 3천만 명으로이다. 서기 400년 무렵 기독교인 수는 3천만 명에 달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총인구가 6천만 명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기독교인의 수는 실로 엄청나게 많이 증가했다. 이 통계는 내가 언젠가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언급했듯이, 처음과 끝을 비교하면 놀랄 만한 수치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만은 그의 책 254-55쪽과 부록: 기독교의 성장(424-35쪽)에서 도표로 보여주면서, 예수의 사후 20명의 신자에서 400년이 채 안 되어 3천만 명으로 불어난 것이 엄청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한다. 어만은 100명으로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가 1년에 3명만 새로운 신자를 만들면, (은행의 복리 이자 계산처럼) 30년, 50년, 그래서 400년이 되면 그 숫자에 도달한다는 것을 실증한다. 1년에 3명이 증가하는 것은 100명인 교회가 한 집의 가장 한 명만 교회로 이끌면 되는 수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가장이 개종하면, 아내와 자식 그리고 노예들은 자동적으로 가장이 선택한 종교를 갖기 마련이니까.)
내가 보기에 1-6장이 이 책의 주요 주제를 다루는 중심 부분이다. 남은 7-9장은 로마 황제들(네로, 아우렐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와 순교의 현실)(7장), 최초의 기독교도 황제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의 문제(8장), 그리고 기독교 제국이 시작되어 제국이 점점 기독교화되는 과정을 다룬다(9장).
아이러니한 것은 그간 박해를 받던 교회가 로마 황제들로부터 적법한 종교로 승인되고(323년) 국가 종교로 선포된 이후(주후 392년), 이교도들을 박해하는 자들로 돌변했다는 사실이다. 역할이 바뀐 것이다. 여기서 누구나 교회가 세상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짐작하고 상상할 수 있다.
누구나 같은 사건이라도 자신의 시각으로 그 사건을 보게 되고, 선입견을 가진 채 자신이 유리한 대로 똑같은 사건을 달리 해석하는 것을 본다. 인간이니까. 하지만 지성인이 된다는 것은 가급적 사건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다뤄야 하고, 소문이 아니라 실제 자신의 연구나 정확한 사료에 기초하여 그 사건의 본질을 분석, 평가, 판단해야 한다. 이 점에서 어만의 이 책은 우리의 잠자는 지성을 깨우고 교회와 기독교의 실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신앙하게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초기 역사와 사회학, 그리고 신학을 총망라함), 우리의 고정 관념이 깊어 쉽게 읽히지 않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 유익을 얻을 만한 양서다. 고대의 종교의 특색,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신분, 그들이 박해를 받은 이유, 역설적으로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믿는 그들이 왜 무신론자라는 비난을 받았는지, 기독교의 전도 전략 등을 현대인의 관점이 아니라 당시 그곳(then and there)의 관점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고 우리의 생각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준다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혜택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