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테의 돈으로 세상 읽기 79
자유롭고 질서정연한 사회란 형용 모순인가
뻔한 결말이었다. 흑사병처럼 포장되었던 코로나가 시들해졌다. 시간 단위로 사망자 숫자를 발표하던 공포 조장도 종 쳤다. 문이 열리자 제주도엔 중국 관광객이 벌통이다. 제주관광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월에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만 42만 명을 넘었다. 작년 동기대비 2,052%나 증가했다고 한다. 분명 관광특수를 반길 일인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볼멘소리다. 돈은 쓰지 않으면서 몰상식한 행동으로 불쾌감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인 관광객이 지나는 곳은 쓰레기로 몸살 난다. 대로에서 용변을 보고 공공장소는 황소개구리 합창대가 따로 없다. 그들과 잘못 섞이면 담배 연기에 눈이 맵다. 무단횡단을 단속하는 경찰도 막무가내 삿대질엔 핫바지다. 이런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짜증 날 만하다.
한편 찾아온 손님이라면 이해의 너그러움도 있어야 한다.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법, 문화상대주의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위장막으로 가려줄 만도 하다. 그들은 싫든 좋든 우리와 같은 아시아인이며 이웃이며 때로는 우리에게 문명의 다리를 놓아 준 역사적 사실도 부정할 수 없지 않은가. 다만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공권력이 소비될 지경이라면 곤란하다. 까칠한 사람들 눈에 황하문명을 일으킨 나라가 문화 후진국 소릴 듣는 게 딱하다.
한국은 K팝을 넘어 K푸드와 K뷰티까지 세계인들이 좋아하는 나라가 되었다. 문화의 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문화선진국이 되었는가. 솔직히 남 흉볼 처지는 아니다. 어제까지 여행 가이드의 깃발에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이란 신조어를 써 붙이고 맨발로 비행기 좌석을 넘나들던 우리가 아니었던가. 매일 쓸어도 길거리는 쓰레기가 넘쳐나고 공공장소는 세 사람만 모이면 시장통과 다름없다. 2년 전 서울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을 때 수해를 키운 것이 담배꽁초 때문이라는 조사도 있었다. 꽁초를 얼마나 버렸는지 빗물받이가 막혔다는 것이다. 하루에만 1천만 개비 담배꽁초가 버려진다는 소방방재학과 교수의 연구를 보면 억지가 아니다.
정권마다 기초 질서를 바로잡자는 구호를 외쳤다. 물론 기초 질서가 집힌 적도 없다. 오히려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공권력이 붕괴되는 느낌이다. 폭력집회를 단속하는 경찰이 피 칠갑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도농을 막론하고 악성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은 안전 헬멧을 써야 할 판이 되어간다. 오죽하면 얼마 전 행정안전부가 「악성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을 발표했겠는가. 모두 기초 질서가 무너진 데서 생기는 문제다.
질서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는 공권력이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파출소의 기물을 부수고 경찰의 뺨을 때리는 행위는 상상하기 힘들다. 공권력에 도전하는 자에 대해서는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민원을 구실로 공무원에게 폭언을 일삼는 사람 또한 회피성 자비를 베풀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 법질서조차 지키지 않는 사회구성원에게는 공익을 위해서라도 엄정한 법 집행이 뒤따라야 한다. 교화나 구제가 어려운 인간이 존재한다는 건 불행이지만, 우리는 아직 그들을 온전한 인격체로 구원할 사회시스템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질서는 공동체 존립의 토대다. 질서를 어기는 사람이 혜택을 본다면 공동체는 붕괴한다. 무질서한 사회는 사회적 신뢰가 사라지고 도덕성이 파괴되며 사람들의 심리에 약육강식의 의식이 자리 잡는다. 수많은 유형의 사건 사고도 기초 질서를 무시한 데 기인하며 부정부패도 경제 질서의 일탈이란 점에서 마찬가지다. 질서의 무시는 불확실성을 확대하고 결국,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뿐만이 아니다. 질서 없는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공격적이라는 이론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무질서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손해다. 하지만 우리는 질서를 어기는 사람을 보면서도 으레 그러려니 눈감는다. 개인의 도덕적 흠결이나 양심의 문제만이 아니라 질서가 곧 사회적 비용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며 그 돈은 모두 시민의 주머니를 턴 세금이다. 질서를 무시하는 행위가 다른 사람 주머니에 구멍 내는 짓이라면 모르는 척할 수만은 없다.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을 습관들의 묶음으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보았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된다고 한다. 습관은 인격과 환경을 만들고 개인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무렇지 않게 질서를 무시하는 사람의 삶이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만 지켜야 하는 법과 질서라면 수용하기 어렵다. 담배꽁초를 버리는 경범죄에 실제 얼마나 벌금을 부과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기꺼이 처벌을 수용할지는 더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벌금을 내는 것이 억울하다며 항변할 것이다. 아니면 일진이 사나워 옴이 붙었다고 투덜댈지도 모른다. 왜냐면 중범죄를 짓고도 사회지도자행세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질서를 가르치는 일은 유치원 선생님의 몫이 아니다.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이는 게 먼저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뭔가 뒤틀려 있다. 잘났다고 턱 세우는 사람 중에는 편법과 갖은 요령으로 능력보다 과분한 사회적 신분을 움켜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 국가와 시민에게 보탬이 된 적이 없는 그들은 완장을 차고 적색 신호등에 거들먹거리며 팔자걸음으로 길을 건넌다.
사실 질서는 불편할 때가 많다. 문제는 얽힘이다. ‘나’라고 하는 말은 타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타자가 없으면 자아도 사라진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런 관계에서 내가 질서를 어기면 더 많은 사람이 불편을 겪는다. 타자를 배려한 자발적 질서의 사회, 질서정연하면서도 자유와 창의가 꽃피는 사회, 그런 사회는 이기적 인간이 결코 구현할 수 없는 환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