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발령난 20대 초반 초등교사가 학교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기사를 보며 충격과 분노, 슬픔이 어우러진다. 기사에 의하면 학부모의 괴롭힘이 사망 이유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학부모의 갑질'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버젓이 허용하게 되었을까?
교사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 사회가 비난을 한다면 학부모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사회는 비난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학부모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교육부와 학교가 납짝 엎드리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요즘 이들의 행태를 보면 학부모 민원은 언제나 옳고 반드시 받아 들여져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어디 학부모만 그러한가. 학생의 불평불만이나 민원도 동일하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민원 공회국이 되어버렸고 교육에는 말도 안되는 민원이 넘쳐난다. 교권이 떨어졌다고 비난만 하지말고 교사를 쥐고 흔들려는 세력들이 그러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부의 존재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교사가 존중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과거 70~80년대 학교는 교사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했다. 막강한 교사의 권력이 학생 인권을 약하게 만들었기에 학생 인권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노력해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크게 잘못 생각한 점이 있는데 바로 교권과 학생 인권을 이분법으로 생각한 것이다. 교권을 약화시키면 마치 학생 인권이 강화되는 것처럼 생각한 것은 인권을 잘못 이해해도 한참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 마땅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지 누군가의 인권을 뻬앗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막강한 교권이 문제였던 것이지 교사의 권위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듯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를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학교의 지도자인 교장의 역할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서로 존중하도록 중재하는 것이지 특정 집단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다. 교사가 안전하게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교장이 방패막이 되어줄 수 없다면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있는가?
나는 최근들어 예비 교사들이 수강생인 대학 수업에서 "현재 공교육은 시한폭탄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때 교사가 선망의 직업 1순위였는데 지금은 교권과 교사의 사기가 심각하게 떨어졌고 희망 퇴직을 하는 교사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이미 교육의 문제가 심각할대로 심각한 것인데 교육부와 일선 학교 지도자들은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만이 문제가 아니다. 교육은 사람(교사)과 사람(학생)이 만나 이루어지는 행위인데 사람들이 서로 불신하고 있다면 교육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지겠는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소수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문제 교사가 소수인데 전체 교사를 비난하지 말라는 말이 불편하듯 문제 학부모나 학생은 소수이니 전체 학부모와 학생을 비난하지 말라는 말도 나는 불편하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소수이면 그냥 넘어가도 되는가? 작은 구멍을 막지 않으면 그 틈이 점점 벌어져 나중엔 손을 쓸 수 없을만큼 커지는 것을 모르는가? 하나의 사례를 전체로 확장시켜 일반화하는 것에는 나도 반대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례이니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히 반대한다.
시한폭탄이 언제 터질지 몰라 나는 무척 불안하다. 시한폭탄이 내 손에서만 안 터지면 괜찮은 것인가? 타인의 손에서 터져도 폭탄이기에 그 피해는 어마무시하게 된다. 제발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고 생각하자. 우리 교육이 이대로 망가져야 속이 시원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