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삼대三大 요결要訣
박문하
12월을 가리켜서 사주師走라고 부른다. 연말이 되면 한 해 동안에 밀린 빚을 갚아야하기 때문에 가난한 선비들이 동분서주로 바쁘게 쫒아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태도 변해버린 요즘에야 연말에 갚으려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보다도 도리어 빚을 피하여 숨어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중에야 삼수갑산을 갈망정 보너스를 받아서 포컷 속이 좀 두툼해지면 크리스마스이브니 망년회니 해서 술 마실 기회부터 겹치고 덮쳐서 요즘의 12월은 정녕 술마시기에 바쁜 사주師走의 달이 되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나이와 더불어 즐거운 일보다 괴로운 일이 더 많은 것이니 한 해 동안 쌓이고 뭉친 괴로운 사연들을 망년회라 이름 하여 술로써 툭툭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한 가지 방편이라고 하겠다. 괴로운 사연들을 잊어버리기에는 '세월이 약'이라고 하지만 그 세월을 기다리기에는 더욱 답답하니 앞당겨 술을 마시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ㄴ 위궤양이라는 병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슴속이 답답할 때는 밖에 나가서 곧잘 술을 마신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에는 어떠한 좋은 약을 먹엇을 때보다도 한결 가슴속이 후련해지고 소화도 잘 된다. 혈압이 높은 의사친구 한 사람이 있는데 술을 즐겁게 마신 다음날은 도리어 혈압이 내리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술을 마시는 방법과 태도 여하에 따라서는 '백약百藥의 장長'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술이란 가까이 하면 할수록 과음하기가 쉽고 드디어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공자님이 말한 유주무량唯酒無量이란 우리 범부로서는 행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술은 현대인의 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하나의 필수품이요 필요악인 동시에 현대인의 유체 및 정신 관리에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술의 제조 관리와 그 양생법은 의사가 담당해야 할 중요한 국민보건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폭음과 과음의 연속인 12월 연말을 맞이하여 술을 약으로 받아들이는 술의 양생법과 처방을 한번 알아보는 것도 헛된 일이 아닐 것 같다. 술을 건강하고 즐겁게 마시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구비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술을 마시는 마음의 자세로써 그 마음속에 어떤 거래나 이해타산이 도사리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주도酒道 에서 가장 어긋나는 사도邪道인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면서 성인군자연聖人君子然하라는 말은 더욱 아니다. 술의 정도와 건강한 음주법은 첫째로 순수한 마음으로 술을 마실 것이오, 순수한 마음으로 술에 취하는 것이다. 벗들과 더불어 흉금을 털어놓고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술이나 비 내리는 호젓한 밤에 우산을 받쳐 들고 주막집 찾아가서 마시는 술. 여름철 시원한 바다나 계곡에서 가족들과 마시는 술도 좋거니와 추운 겨울 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난로 위에 데워진 따끈한 술을 사색에 잠기면서 혼자서 조용히 기울이는 맛이란 정녕 술의 삼매경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건강한 음주법의 둘째 요결은 술 마시는 시간과 속도라고 하겠다. 술은 다른 음식들처럼 장에서 흡수되기 전에 이미 위에서 그 대부분이 흡수되고 있다. 위에서 흡수된 술은 곧 피 속에 들어가서 15분쯤 되면 최고의 혈중농도가 된다. 가장 알맞은 취기는 알코올의 혈중논도가 0.1% 내지 0.2%쯤 되었을 때로써 이때는 절로 흥겨워져서 콧노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알코올의 혈중농도가 0.4%내지 0.5가 되면 과음상태로써 정신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알코올의 체내운명은 지극히 간단하며 단순하여 위에서 피 속으로 피 속에서 간장에 들어가서 산화분해가 되고 만다. 보통체격을 가진 남자의 간장은 한 시간 동안에 약 10cc의 알코올 분해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나 이에 맞추어서 음주의 양과 속도를 조절하면 되는 것이다.
위스키 한 잔(30cc) 속에 15cc의 알코올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 시간 동안에 위스키는 4잔(120cc, 정종은 2홉, 맥주는 2병 정도를 마시면 적당하다. 건강한 음주법의 셋째번 요결은 좋은 안주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다. 안주는 첫째가 육류肉類, 둘째가 회, 셋째가 포哺, 넷째가 젓, 다섯째가 소금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술꾼은 안주가 필요 없다고 한다. 깎두기나 소금만으로 한 되 술을 거뜬히 비워야만 진짜 술꾼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막걸리처럼 마시는 술이 아니고 배불리 먹는 음식물로써 술을 먹을 때의 일이지 진짜의 술을 마시려면 그 알코올이 체내에서 완전히 연소 분해되기 위하여 많은 분량의 비타민류가 필요하며 술에 대한 간장의 기능을 돕고 보호하기 위하여 각종의 아미노산의 섭취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좋은 단백질과 비타민류를 풍부하게 포함한 안주는 술에서 우리들의 간장을 보호해 주고 알코올의 분해 및 배설을 완전히 하여서 악취에서 우리의 몸을 보호해 주는 젓이다.
우리는 술이라면 곧 간장의 침해를 생각하지마는 술을 반드시 좋으은안주와 함께 마셔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인 것이다. (음주=간장병)을 (음주+좋은 안주=건강한 간장)으로 고쳐야 하겠다. 알코올은 우리 체내에서 연소되어 일정한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의 일부는 우리 체온을 보호해 주면서 당분과 지방의 소비를 절약해 준다. 1cc의 알코올은 35칼로리가 되므로 이것이 체중화 되면 하루에 약 50g쯤의 몸에 살이 찌는 것이다. 이것이 한 달 동안 계속되면 약 2kg의 체중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술은 약간 과음이 되더라도 일주일에 한두 번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정도로 마실 일이지 계속해서 마실 것은 못된다. 건강한 음주법을 지켜서 저무는 세모歲暮를 조용히 보내고 우리 모두 좋은 새해를 맞이하자.
박문하|(1918―1975) 경남 김해 출생. 의사. 수필가
수필집 《배꼽 없는 여인》《낙서 인생》《약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