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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1. 21.
지난 18일(현지시각)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는 미국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블리자드(이하 블리자드)를 687억 달러(약 82조원)에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콜오브듀티’ ‘워크래프트’ 개발사로 이름 높은 블리자드의 월간 게임 이용자 수는 4억명입니다. MS는 2500만명을 보유한 자사의 게임 구독서비스 ‘게임 패스’에 블리자드의 게임 소프트를 더해 게임 플랫포머로서 MS의 영향력을 한층 높이겠다는 계획이죠.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분야로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리자드 인수가 완료되면, MS는 게임 소프트 매출 규모에서 중국 텐센트에 이어 2위에 오르게 됩니다. 작년 2분기(4~6월) 게임 소프트 매출을 보면, 1위는 텐센트(약 80억 달러)였고요. 2·3위가 소니(약 40억 달러)·애플(약 35억 달러)이었습니다. MS가 4위, 구글이 5위, 텐센트와 함께 중국 2대 게임업체인 넷이즈(Netease)가 6위, 블리자드 7위, 닌텐도(일본) 8위였지요.
왜 MS는 ‘고작’ 게임업체 한 곳 인수하는데 자사 M&A 사상 최대금액인 82조원이나 들인 걸까요? MS의 미래 전략, IT 트렌드, 인터넷 다음의 세상이라는 메타버스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MS의 블리자드 인수에서 드는 궁금증, 혹은 시사점을 5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왼쪽부터 필 스펜서 마이크로소프트 게임총괄 부사장, 바비 코틱 블리자드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 WSJ
◇ 1. 게임 업계의 넷플릭스 꿈꾼다
MS의 블리자드 인수가 가져올 변화로 먼저 떠오르는 것은 MS가 게임업계의 넷플릭스가 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MS가 게임업계 넷플릭스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상을 즐기는 수단이 비디오테이프·DVD·블루레이 같은 물리 매체에서 스트리밍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게임 역시(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를 갖춘 전용 게임 콘솔에서만 가능했던 게임조차도 결국에는) 스트리밍으로 넘어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시장에서 MS가 게임업계 넷플릭스와 같은 존재가 되겠다는 겁니다.
이미 소니와 MS는 본격경쟁에 돌입했습니다. 과거 MS는 일본 게임기 업체(플레이스테이션의 소니 등)를 벤치마킹해 엑스박스를 만들었고, 여기에 DVD·블루레이 같은 물리적 매체에 게임 소프트를 담아 보급했지요. 하지만 이미 MS는 게임을 스트리밍하는 구독서비스 ‘게임패스’를 보급하고 있고, 2500만명이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소니의 구독서비스인 PS플러스는 회원 수가 MS의 2배인 5000만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도 기본적으로는 게임 콘솔 기반이죠. 게임기는 계속 신제품을 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구형 게임기와 게임 타이틀은 전부 퇴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신기종이 나오면 또 거기에 대응하는 게임 타이틀을 모두 다시 사야 하죠.
하지만 음악·영화산업에서 이미 봤듯, 이런 모델은 게임산업에서도 지속하기 어려울 겁니다. 5G 등 초고속 통신과 클라우드 게이밍이 보급되면서, 게임 역시 음악·영화 콘텐츠처럼 점차 디바이스를 불문하고 스트리밍으로만 즐길 수 있게 바뀌겠죠.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즐기고, 태블릿으로 책을 읽고, PC에선 스포티파이로 음악을 듣는게 일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중요한 것은 비디오 게임도 그 길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스펙을 강화한 가정용 게임기의 중요성이 점점 더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포트나이트를 즐기는 어린이들은 어떤 단말기이든 게임기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들은 커서도 전용 게임기를 사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변화는 MS가 엑스박스에서 추진하는 비전이기도 합니다. 거실이나 방에 설치할 고성능 게임 전용기기가 10년 뒤에도 존재할지 의심스러워지고 있죠.
MS의 게임사업 총괄인 필 스펜서 부사장도 얘기합니다. “당신과 내가 각각 넷플릭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시다. 서로 어느 단말기를 사용하든, 보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 둘이서 이야기할 수 있지요. 게임도 그와 같은 레벨로 진화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전용 게임기를 TV에 연결해 즐기는 방식이 당장 끝나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어디서 어떤 디바이스를 통해서라도 모두가 같은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될 겁니다.
MS가 게임업계 넷플릭스가 되려면, 기술적으로 어떤 디바이스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겠죠.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일 텐데요. MS는 클라우드 게이밍을 이용할 스트리밍 디바이스와 별도 하드웨어 없이 컨트롤러만 있으면 플레이할 수 있는 TV를 제조업체와 공동 개발 중이라고 작년 6월 밝혔습니다. 클라우드 게이밍에서는 게임기나 PC에 비디오게임을 다운로드하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한 채 서버에서 스트리밍해 플레이하게 됩니다. MS는 애저(Azure)라는 강력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죠. MS가 시총 2조 달러 기업으로 부활한 핵심 역량이기도 한데, 이런 역량이 MS의 클라우드 게임 보급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됐을 때 게임을 즐기고 싶어하는 세계인들이 MS의 플랫폼, 구독서비스로 몰려야 하겠죠. 그러려면 강력한 킬러 콘텐츠가 많이 필요해질 겁니다. 그런 역할을 해줄 곳이 바로 블리자드 같은 곳이죠. MS는 작년에 인기 게임 시리즈 ‘둠’을 보유한 베데스다를 75억 달러에, 그 이전에도 몇 개의 더 작은 기업을 인수했습니다. 블리자드까지 추가되면 MS가 보유한 게임업체는 1년 전 23개사에서 30개사로 늘어납니다. 2014년 나델라 CEO 취임 이후 3배가 된 것입니다.
만약에 MS가 게임업계 넷플릭스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진다면, MS의 라이벌 소니는 어떻게 될까요? 게임사업 매출은 MS보다 많지만 기업 규모는 많이 뒤집니다. 가상현실(VR)로 들어갈 수 있는 고글형 단말기를 개발하는 등 메타버스에 대해 여러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총력전이 되면 열세에 몰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소니의 경우 이미 게임 매출이 전체 6개 사업부문 가운데 비중이 가장 높지요. MS에 주도권을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소니의 미래가치가 크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런 우려 때문인지, 지난 19일엔 소니 주가가 전날보다 13% 떨어지면서 약 2조엔의 시가총액이 날아갔습니다.
MS·소니·텐센트 같은 플랫포머가 게임 등의 컨텐츠 기업을 인수하는 ‘수직통합’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MS는 게임 매출이 전체의 10% 미만인데도 블리자드 인수에 82조원을 쏟아부었습니다. MS의 블리자드 인수 발표 직전 주에는 테이크투인터랙티브가 게임업체 징가를 11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죠. 세계최대 게임업체인 텐센트도 중국 정부가 자국 내 게임사업을 옥죄고 있어 해외시장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대형 M&A에 나설 가능성이 있습니다. MS가 블리자드를 거액에 인수하는 바람에, 다른 주요 게임업체 주가도 올라갈 것 같습니다. MS가 블리자드 인수를 발표한 지난 18일, 미국 증시는 전반적인 약세에도 비디오게임주 매수 주문이 쇄도했습니다. 당일 일렉트로닉아츠(EA)는 2.7% 상승했고. 유비아이소프트와 닌텐도의 미국 상장주는 각각 12%, 2.2% 상승했습니다.
▲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시리즈 '콜오브듀티'의 최신작인 '콜오브듀티: 뱅가드'. / 블리자드
◇ 2. 메타버스의 전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 사람 모으는데 게임만큼 매력적인 장치는 없어... MS의 블리자드 인수가 빅테크기업과 게임업체 통합 경쟁 가속화할 수도
메타버스 즉, 나를 대신하는 존재인 아바타를 통해 새로운 삶·게임을 즐기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가상공간이 성공하려면 전제조건이 뭘까요? 우선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하겠죠. 사람이 모이지 않는 메타버스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어떤 것을 통해야 가상공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게임입니다. 게임이야말로 메타버스라는 문을 열어줄 열쇠인 셈이지요.
최근에 가상현실 혹은 메타버스를 다뤘던 유명한 영화 2개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볼까요?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 등장하는 메타버스인 ‘오아시스’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요? ‘프리 가이(2021)’에서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무엇을 할까요?
네, 모두가 게임을 합니다. 함께 게임을 하며 소통하는 가상 공간인 것이죠. 회사명을 바꾼 메타(구 페이스북) 등 대기업부터 신흥기업까지 일제히 뛰어들고 있는 게 메타버스이지만, 현 시점에서 가상공간 내 커뮤니티나 상거래라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로블록스’나 ‘포트 나이트’ 등 게임이 대부분입니다.
MS가 인수하는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콜오브듀티’만 매달 플레이어가 1억명이 넘습니다. 다른 게임을 포함하면 매월 4억 명이 블리자드 게임을 하는데요. 이들은 모두 메타버스에 친화적인 고객이자 MS판 메타버스의 지원군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게임 개발자를 수중에 넣은 것도 큽니다. 게임 인력은 가상공간 구축에 능하죠. 개발자 확보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블리자드의 인재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매우 큰 이득입니다.
▲ 영화 '프리 가이(2021)'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
◇ 3. MS는 블리자드 게임 개발자의 능력을 인당 1000억원에 산 것
MS의 블리자드 인수대금 82조원은 너무 비싼 것일까요? 일단 금액이 어마어마하긴 하죠. 코스피 시가총액 2위인 SK 하이닉스(약 92조원)를 살 만한 금액이니까요.
게임업체 하나 인수하는데 이런 엄청난 금액을 썼다는 게 충격적이긴 하지만, 잘 뜯어보면 MS가 오랫동안 시기를 엿보며 인수 준비를 해왔음을 알 수 있고, 보기에 따라 적정가에 혹은 저렴하게 샀다고 볼 소지도 있습니다.
보통 이런 기업을 인수하려면 상당한 프리미엄을 줘야 하죠. MS는 블리자드 주식을 주당 95달러에 인수했는데, 전 주말 종가보다 45%나 높은 금액입니다. 이렇게 보면 MS가 블리자드를 비싸게 주고 산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블리자드가 직장 내 성차별, 일부 임원의 권력 남용 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주가가 급락했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블리자드의 작년 7월 중순 주가에 비하면, MS가 고작 4%의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것이 됩니다.
그 사이에 블리자드의 맨파워나 경쟁력 자체가 손상을 입은 것은 아닙니다. 즉 MS로서는 자신들의 게임사업 전략상 블리자드가 꼭 필요했는데, 주가가 떨어지는 시기를 엿보다가 잡아챘다고 보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MS가 블리자드를 인수한다고 발표한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주식시장에서 블리자드 주가가 전날 대비 26%나 상승한 82.3달러로 마쳤지요. MS가 인수했다는 프리미엄이 붙어서 앞으로 블리자드 주가가 좀 더 오른다면 어떨까요? MS가 잘한 거래라고 볼 수도 있겠죠.
수치상 분석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큰 그림에서 보자면, MS는 블리자드 게임의 월 이용자(4억명), 특히 개발자를 중심으로 하는 블리자드 직원 1만명의 능력을 82조원에 산 것입니다. 이들 1만명이 형성한 게임 개발 조직으로서의 능력, 또 개개인의 능력이 MS의 클라우드게임 전략, 게임과 메타버스의 연결 전략에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나델라 MS CEO는 “메타버스는 단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앞으로 태어날) 많은 메타버스를 지탱하는 강력한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블리자드 개발자들이 게임이 발전된 형태로서의 메타버스는 물론, 소매·기업용의 다른 메타버스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데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능력과 상상력을 겸비한 세계최고의 게임 개발자들이니까요.
뛰어난 게임 개발자는 단순히 프로그램 짜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이죠. 영화 ‘프리 가이’에서 일종의 메타버스를 만든 게임 개발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스스로를 개발자가 아니라 작가라고 생각한다. 코드는 단순한 0과1의 조합이 아니라 숨겨진 메시지다. 나는 문자 대신 0과1로 작품을 쓴다”라고요.
‘프리 가이’에서는 뛰어난 젊은 개발자 2명이 한 대형 게임개발사를 뒤흔드는 수준의 메타버스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VR(가상현실)이건 AR(증강현실)이건 메타버스이건, 결국은 사람이고 이야기입니다. 그 세계에 사람들이 빠져들고 열광하지 않으면 메타버스 확산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메타버스가 흥하려면, 설계자인 동시에 최상급의 작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재가 포진한 곳이 바로 게임 업계이죠. 그리고 게임 업계에서 뛰어난 개발자이면서 상상력과 스토리텔링능력을 겸비한 작가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 중 한 곳이 바로 블리자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MS는 블리자드 개발자 1명의 능력을 100억원씩 주고 산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역으로 해석하자면, 결국 많은 이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콘텐츠와 세계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디지털 세상이 와도 끝까지 살아남고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블리자드 개발자 1명당 몸값이 100억원이라면 너무 비싼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어떤 한 명이 메타버스의 미래를 바꿀 새로운 가상세계를 창조해낸다면 어떨까요? 얘기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한 장면. / 트위터 캡처
◇ 4. 메타버스로 가는 길목의 AR 시대 기대하라... MS의 선공, 라이벌 소니와 1위 게임업체 텐센트의 반격, 애플의 AR 전략도 지켜볼만
메타버스라고 부르는 인터넷 3차원 가상공간이 IT 업계 메가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죠. 이용자가 자신의 분신이 되는 ‘아바타’ 를 조종하고, 그 시선으로 가상현실(VR)을 체험하면서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능 자체는 이미 온라인 게임에서 친숙하지만, 현재의 메타버스는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 가치를 체현하는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겁니다.
여기에 대해 MS가 당장 구현하려 것은 AR(증강현실)입니다. AR은 인터넷에 접속하는 새로운 수단, 그리고 많은 기업이 현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메타버스의 입구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난 4일 CES 2022에서 미 통신반도체 기업 퀄컴은 MS와 공동으로 소비자·기업이 메타버스 앱에서 사용할 AR(증강 현실) 글래스 전용 칩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MS가 퀄컴과 공동개발하는 디바이스는 사용자의 헤드셋에 다른 사용자의 현실에 가까운 모습을 비춰,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메쉬(Mesh)’라는 MS의 소프트웨어에 대응한다고 합니다. MS가 아직 구체적인 발매 시기를 밝히진 않았지만, 소비자용 AR 기기가 될 것으로 보이고요. 처음에는 업무용 위주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MS의 클라우드 게임 전략과 연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MS는 홀로렌즈(HoloLens)2라는 현재로선 가장 성공적인 AR 디바이스를 내놓고 있지만, 무게가 570g으로 꽤 무겁고 가격도 기본 3500달러로 매우 비쌉니다. 그리고 법인고객만 대상으로 하고 있죠.
애플 역시 첫 AR 디바이스를 빠르면 올 연말쯤 발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애플은 AR이 VR보다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데요. AR 디바이스는 길 안내나 메시지 알림, 화상 채팅 등의 정보를 투명한 렌즈 위에 표시할 수 있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메타가 주력하는 완전 몰입형의 VR테크놀로지를 이용하기보다, 장소를 불문하고 디바이스를 조작할 수 있는 AR 쪽을 선호합니다. 메타가 판매하는 헤드셋 오큘러스는 VR(가상현실)에 대응하는 기기이죠. 가상세계에만 완전히 몰입해야 하는 겁니다. 가상세계로 들어가면 현실세계와는 단절됩니다. 하지만 AR은 실제 세계의 모습에 증강된 현실을 더해 보여주는 것이죠.
아이폰의 인기를 생각하면 이 접근법은 애플의 강점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애플이 AR 안경을 가볍고 슬림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필요한 처리 대부분을 아이폰에 대신해주는 식으로 한다면, 모바일 생태계에서 아이폰의 지배적인 위치를 한층 굳힐 수 있겠죠.
◇ 5. 기업에서 정말로 뜻을 펼칠 생각 있다면, 최고경영자를 제대로 설득해야
MS의 블리자드 인수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시사점은 조직 경영 혹은 자기경영에 관한 자세입니다.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MS의 수장 스티브 발머가 경영실패로 물러나고 사티아 나델라가 새 CEO로 취임한 해입니다. 당시 MS는 조직이 무너지고 있었는데, 게임 부문은 특히 심각했습니다. 게임 부문 즉 엑스박스 팀의 사기는 바닥이었습니다. 2013년 가을 발매한 ‘엑스박스 원’의 2014년 3월 누적 판매 대수는 510만대로, 같은 기간 760만 대를 판 소니의 PS4에 크게 밀렸습니다. 게임부문 수장이었던 돈 매트릭은 회사를 떠나버렸고, 발머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MS 게임부문의 수장은 공석인 상태였죠. 이후 나델라가 CEO에 오른 이후 게임부문 새 수장에 오른 인물이 MS 게임스튜디오를 이끌던 필 스펜서였습니다. 이후 스펜서는 게임부문 부활에 큰 공을 세우며 지금까지 MS 게임부문을 총괄하며 사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2014년 게임 부문 총괄이 된 지 몇주 만에 스펜서는 나델라 CEO의 호출을 받습니다. 나델라는 스펜서에게 “우리가 왜 게임사업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MS가 게임 사업을 하지 않아도 미래 전략을 충분히 짤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MS의 신임 CEO가 취임하자마자 게임 사업을 팔아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읽힐 수 있는 대목이죠. 이후 MS 게임 사업부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시장에 게임사업 포기 루머가 돌자, 나델라 CEO가 공개 석상에서 이를 부인하기도 했었죠.
이럴 때가 정말 중요합니다. CEO가 어떤 사업부의 존속에 대해 회의적일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스펜서가 구체적으로 나델라를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결과는 지금 보시는 대로입니다. MS의 게임사업부는 축소되기는커녕,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스펜서가 나델라 CEO를 어떻게 설득했을지 유추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델라가 MS에서 CEO까지 오르게 된 이유인 클라우드 서비스가 게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했을 겁니다. 음악과 영화·드라마에서 먼저 일어난 구독과 스트리밍의 물결이, 게임의 세계에 곧 밀려들게 될 것이라는 것, 넷플릭스 구독자가 각자 다른 단말기로 원하는 작품을 시청하듯 사람들은 각자 원하는 단말기로 원하는 게임을 하게 될 것이고 게임기 판매 대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와 접점을 가질 수 있을지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설명했을 겁니다. 그리고 게임기·PC 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구상을 설명했을 겁니다. 이런 설명을 들었을 때 나델라 CEO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이 해당 사업부 책임자라고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고민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주관하는 사업부의 능력과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고, 미래를 펼칠 자신도 있다면, 반드시 CEO를 설득해야 합니다. 그냥 설득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논거, 강력한 의지를 갖고 말입니다.
결국 2014년 스펜서는 신임 CEO를 상대로 MS가 왜 게임사업을 지속해야 하는지를 명확한 전략을 바탕으로 설명했고, CEO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이 현재 MS의 블리자드 인수와 게임의 클라우드화, AR·VR 혹은 최종적으로 메타버스로 연결될 기반이 돼 준 것이죠. 그때 스펜서가 CEO의 돌직구 발언에 겁을 먹거나 수동적으로 대처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서 MS의 게임사업부가 매각됐거나 축소됐다면, 지금의 MS, 그리고 MS의 미래 가치는 어떻게 됐을까요?
나델라 CEO 역시 인도 출신(그냥 인도계 미국인이 아니라, 인도에서 태어나 공대까지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이면서 MS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그 역시 과거에 상사들에게 ‘클라우드서비스가 왜 MS 미래에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관철시키고 성과로 증명해나가면서 지금 위치에 올랐을 테니까요. ‘게임사업이 MS에 왜 필요하냐’는 자신의 질문에 대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MS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끈질기게 설득하는 스펜서의 모습에서 말입니다. 나델라가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내심 반가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