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순교자의 신앙따라 Date 2011. 6. 26
Text Jrm 1,4-10
(4)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 어제 6.25 전쟁이 발발한 날이었습니다. 3년간의 전쟁 중에 사망한 사람이 모두 226만7천여 명인데 군인 전사자 중 국군 13만7천8백여 명, 유엔군 4만6백여 명이나 되고, 중공군 90만, 북한군 52만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형편상 군인 전사자 대부분은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였는데, 지난 2006년부터 국군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하여 약 4,100여구를 발굴하여 새롭게 봉안하였습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끝까지 국가가 책임진다.’는 슬로건 아래 유해 발굴 작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군인들만 희생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민간인들도 확인된 사망자만 37만 599명, 행방불명된 이들만 303,212명 도합 67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숫자에는 공산군에 의해 학살된 기독교인들도 엄청 많습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비록 순국자들처럼 아무런 물질적 보상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국가가 해 주는 것보다 더 좋고 많은 복을 베풀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에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신 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성경 말씀을 통해 순교자들의 신앙은 어떠한지 살펴보고 그 신앙을 본받는 은혜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며 은혜 받고자 하는 인물은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성경 자체에는 순교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동족들에 의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갔고, 거기에서도 그들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예언 활동을 하는 것까지만 나옵니다.(렘43) 유대인들에게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끝내 그곳에서 동족들에게 살해되어 순교자의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왜 순교해야 했을까요?
2. 첫째, 예레미야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말씀만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예레미야가 선지자로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당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신저가 되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고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맞든 맞지 않던, 사람들이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시류에 어울리던 어울리지 않던 상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만 그냥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당부 때문에 결국 순교에 이릅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이 다스릴 때부터 살았는데 이 요시야 왕이 애굽과의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애굽 왕 느고는 새 왕인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가고 대신 동생인 엘리야김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북쪽의 신흥제국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 와서는 여호야김(엘리야김)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덟 살짜리 왕자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다가 석 달 열흘 만에 다시 그마저 잡아가고 전 왕 여호야김의 형제요 요시야 왕의 또 다른 아들인 시드기야를 왕위에 올려놓습니다.(대하35-36) 복잡하죠? 이런 망국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시절이 예레미야가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벨론의 힘에 의해 왕이 된 시드기야는 당연히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었죠. 그래서 시드기야는 바벨론과 애굽과 국민 여론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당시 실권을 쥐고 있던 권력자들은 애굽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애굽의 힘을 빌려 바벨론을 몰아내자고 주장합니다. 애굽은 전통 우호국이지만 바벨론은 신흥강국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국민 여론도 대부분 그랬습니다.
문제는 여기 있었습니다. 국민 여론도, 권력자들의 정서도, 모두 애굽의 힘을 빌려 바벨론과 일전을 벌리자는 것이었는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정반대의 말씀을 주시면서 그대로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위기는 모두 민족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온 것이며, 하나님은 바벨론을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순순히 징계를 받는 마음으로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나라와 민족이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벨론의 1차, 2차 침공 때에 바벨론으로 잡혀갔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하려 할 때에도 편지를 보내어 바벨론 정권에 협조하며 그 곳의 평안을 빌면서 자리 잡고 살라고 합니다.(렘29,24-32) 하나님의 징계의 회초리를 순순히 받으라는 것이요, 잠잠히 기다리며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포로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레미야의 말을 신앙적으로 받지 않고 반대로 민족관도 국가관도 없는 ‘바벨론에 아부하는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하고 죽이려고만 합니다.
예레미야도 자기가 전하는 말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소명 받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내가 보내는 누구에게든지 가며, 내가 하는 무슨 말이라도 다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52장의 내용이 모두 그런 내용입니다. 감옥에 갇힌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요 살해 위협을 받은 것도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까지 그 명대로 살았고 결국 그 명을 지키다가 순교합니다. 여론의 흐름이나 내 생각과 판단, 이익과 손해, 그런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언행심사의 기준으로 삼고 사는 것, 이것이 순교자의 신앙입니다.
3. 둘째, 순교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신앙입니다. 예레미야는 단순히 앵무새처럼 말만 옮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위험은 민족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요, 때문에 회개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살 길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는 바벨론이 믿을만 하거나 좋아서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은 하나님 손에 들린 회초리이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편으로는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면서도 바벨론도 하나님에 의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전합니다.(50-51) 당시 어떤 면으로 봐서도 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초강국 바벨론으로부터 70년만에 귀환한다며 시한부적인 예언까지 합니다.(25,11-12 29,10) 또한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될 것을 믿는 표시로 자기 숙부로부터 아나돗에 있는 땅을 은 17세겔을 주고 사서 등기까지 합니다.(렘32,7-9) 나라가 망해서 남의 나라 땅이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돌아오게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땅까지 샀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가 몇 가지를 말씀드렸죠? ‘①현재의 고난은 하나님의 경고다. 때문에 순응하고 회개하면 아무리 끝장난 것 같은 현실이라도 하나님에 의해 살길은 열린다.’ ‘②하나님은 온 세상을 모두 통치하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바벨론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되는 도구에 불과하며, 그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결정된다.’ ‘③하나님의 약속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지켜진다.’ 등입니다. 오늘 읽은 9-10절 말씀을 보시지요. “(9)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네가 내 말대로 외치는 모든 말대로 세상의 나라들 운명이 정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순교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순교가 있고, 다른 하나는 어두움을 뚫고 신앙의 새 빛을 밝히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순교가 있습니다. 공통적인 것은 이 두 종류의 순교 모두에는 반드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의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세계통치, 하나님의 통치 능력,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어야 모든 위협과 곤란과 미혹을 이기고 순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순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다니엘과 그 세 친구의 믿음에서 우리는 예레미야가 가졌던 절대적 신뢰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원수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래서 그들의 계략대로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하루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기름가마솥에 던져지려 할 때 그들의 믿음을 확실하게 나타냅니다. “(17)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여러분, 오늘 우리도 꼭 지켜야 하고, 또 나가서 새 빛을 밝히기 위해서 포기해서는 안 되는 믿음, 순교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신앙이 바로 이 신앙입니다.
4.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립니다. 순교자의 믿음은 영원한 승리에 대한 믿음, 곧 부활 신앙입니다. 8절 말씀에,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라고 한 것이 이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번 순교사적지 순례길에 들리려고 하는 전남 영광에는 염산교회와 야월교회 순교기념관이 있습니다. 염산교회 77명, 야월교회 65명, 영광대교회 20명 등이 6.25 때 순교하였는데 염산교회 성도 77명은 마을 앞 수문에서 전부 돌을 목에 매달고 수장되었고, 야월교회에서는 어린아이 하나까지 한 사람도 달아나지 않고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그들은 순교하면서도 통곡하기보다는 서로 격려하며 찬송을 하니 그 소리에 죽이던 인민군들이 더 놀랐다는 것입니다. 황해도 진남포의 신석구 목사님은 연회장 송정근 목사가 투옥되어 있어 회의가 어려워지자 70세가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내가 감옥 경험도 있고 하니 내가 대신 감옥에 가 있겠다고 자원하여 구금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이 그분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할 수 있었을까요? 영원승리, 최후승리, 곧 부활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잔학한 핍박자들을 향해, “내 몸은 죽일 수 있어도 내 영은 너희들이 어찌할 수 없을리라. 내게는 영원한 승리의 나라가 있다.”고 외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순교자기념주일에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입니다. 다 아는 내용들이지요. 우리가 오늘 본 받자는 것은 알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자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 절대 주의 신앙, 하나님 절대 신뢰의 신앙, 영원 승리 부활 신앙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 무엇도 나의 충성과 감사를 못하게 하는 합당한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충성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