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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아버지 종우 어머니 혜수 친구 설희 아들 한수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하나는 평생을 놀고 먹어도 남을 만큼 재산이 있어서 건강이 허물어지지 않는 한 마음껏 세상의 향락을 즐기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 부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뜨는 사람이다. 자수성가를 했다고 해봐야, 먹고 사는 걱정도 해결하는 것이고 로또에 붙지 않은 이상 평생 고생을 해서 돈을 벌어야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것이다. 혜주는 평생을 안 해본 일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가난을 면할 길이 없었다. 불행은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그녀는 평범한 생애를 살았을 것이다.
오늘도 혜주는 평택 도매시장에서 떠온 야채들을 좌파위에 올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좌판 위를 휘 둘러볼 때 마다 하다못해 파 한 다발이라도 사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이 시장은 정부에서 비가 맞지 않도록 지붕을 씌워주고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다. 없는 사람들이 장사라도 해서 먹고 살라고 누가 와서 어느 장사를 하던 일체의 간섭도 하지 않았다. 이 시장은 먹을 거리가 풍부한 가게들이 유독 많았다. 먹 거리 시장인 것이다 혜주가 좌판을 벌인 것은 그의 친구 설희가 운영하는 식당앞 마당에서였다. 설희의 가게는 시장의 중심지에 자리를 잡고 오래 장사를 해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다. 사실 혜주가 좌판을 함으로 인해서 설희의 가게로 들어가는 길목은 좁아져 있었다. 그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죽 친구로 친하게 지내왔다. 아무리 그래도 혜주는 설희의 가게 앞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것이 여간 미안한 일이 아니었다.
“설희야, 내가 가게를 조금 줄일까?”
“왜?”
“내가게 때문에 식당 손님들이 아무래도 들어가기가 불편하기도 하고 유리창의 썬팅 간판도 일부 안보이잖아.”
“앞으로 절대 그런 생각 하지 말고 오직 자식하나 살린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해.”
“고맙다. 설희야.”
혜주는 그렇지 않아도 장사하는 데는 신경이 가지를 않고 집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아들에게만 온 신경이 가있었다. 전생에 뭔 죄가 많아서 자식 놈 하나 있는 게 저런 고치지도 못하는 병이 들어 고생하고 있는 것인지......점심은 가까운 곳에 집이 있어서 잠깐 가게를 설희에게 맡기고 집으로 가서 떠먹이고는 왔지만, 날이 저물자 혼자 고통을 견디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고 남들 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좌판은 천막으로 들쳐 씌우고 설희에게 봐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부분 저녁 무렵이면 채소는 다 팔렸지만 남는 날도 더러 있어서 설희의 신세를 지게 되는 것이다, 집으로 들어서는 혜주의 입에서는 긴 한숨먼저 새어나왔다. 방 앞에 다다르자 아들의 죽어가는 비명소리부터 먼저 들려왔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얼른 팔소매에 문지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혜주의 하나뿐인 아들 민재는 얇은 이불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매고 있었다. 혼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놈의 고통이 어찌 심한지 죽고 싶었다. 집안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평생 부모님들의 피눈물만 짜내고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서였다. 민재가 아픈지 벌써 칠년 째이다. 처음 고통이 시작된 것은 우연한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나이 스물이 되던 해에 오랜만에 동창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걸어오다가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바람에 빨리 걸어 나오려다 걸음이 꼬여서 넘어지고 말았다. 하필이면 무릎이 다쳤다. 그는 즉시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상처에 바를 소독제와 연고를 주며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는 다리로부터 시작된 통증은 계속되었고 나중에는 온몸으로 퍼져 폐인이나 다름없이 되었다. 그가 crps라는 난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판정을 받고나서였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못 고치는 병인데다가 돈도 없는 처지이고 보니 사람 사는 게 사람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민재의 아버지 종수는 목수였다. 그러나 세월이 변하고 집을 짓는 사람들이 줄면서 목수일로는 먹고 사는데 한계가 있었다. 민재가 먹고 버티는 진통제 살 돈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부에서 통증 증후군인 crps를 정부에서 인정하지 않을 때였다. 할 수 없이 민재 어머니는 약값이라도 벌어보겠다고, 친구 설희의 도움을 받아 채소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진통제를 살 돈만큼은 벌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서 좌판을 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으나 자식 놈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장사에 매달렸다. 방안으로 들어서자 민재는 몸을 어찌할지를 모르고 침대에 누운 채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
“많이 아프냐?”
“모르겠어요. 온몸이 다 칼로 찌르는 것 같아요.”
“어떻하던 나아야지, 우선 약부터 먹자.”
“예, 어머니.”
약을 먹이는 것도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병원에서 처방을 해준 진통제를 아들에게 멱여 잠시나마 통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생각하면 참으로 기구한 팔자들인 것이다. 만일 민재에게 그런 변고가 생기지 않았다면 결혼을 해서 손자도 보았을 것이다. 다 큰 자식을 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어야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 것을 그리 해주지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으려니 차라리 자신이 아픈 것이 더 나을 듯싶었다. 한참 민재에게 약을 먹이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민재의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에게는 오래된 1톤 트럭이 있어서 그 트럭을 타고 일을 다녔다, 그는 목수 일당으로 받은 십오 만원을 아내 앞에 내놓았다.
“이제 일주일이면 지금 다니는 공사도 끝이 나는데, 요즘은 건물을 짓는 곳이 없어서 일감도 끊어질 것 같구료.”
“그래요?”
“인구가 줄어서 그러는 것인지 경제가 나빠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살길이 막막하구료.”
민재도 아버지가 일거리가 없다하니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아프지 않았다면 살림에 보탬이 되었을 텐데요.”
“아니다. 네가 몸만 나으면 애비도 더 바랄 것이 없다. 몸은 좀 덜 아프냐?”
“약 먹고 조금 나았어요.”
“하필이면 불치병이 뭐냐. 그래도 나았다는 사람이 있으니 한번 버텨보자.”
“예, 아버지.”
민재는 잠시 잠이 오는 듯 했으나 눈을 뜨니 다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칼로 찌르는 듯 고통이 심해졌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했으나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침대 아래서 쪽잠을 자던 혜주가 일어나서 다시 진통제를 먹여 재웠다. 하루하루가 전쟁터만 같았다. 그래도 남편의 말대로 언젠가는 낫겠지 하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하루는 민재 아버지 종우가 아내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보, 이제껏 평택도매상에서만 거래를 해왔는데, 서울 가락시장으로 가서 채소를 떠오면 마진이 더 많을 것이니 건축일이 끊기면 한번 다녀와야 겠소.”
“아니, 길도 모르면서 왜 그 먼 길을 기어이 가시려고하오.”
“그래도 한 푼이라도 더 벌려면 싸게 떠오는 게 낫지.”
"아뭏든 운전 조심하세요. 길이 낮에도 익지 않는데 굿이 서울까지 가시려 하다니....."
"너무 걱정 말아요. 아직까지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았잖소."
“사고를 내가 내고 싶다고 내겠오? 재수 없으면 뒷 차가 받기도 하고 대형 트럭에 밀려 옆 도로로 갔다가 받치기도 하잖아요. 조금 마진이 남더라도 그냥 평택에서 떠다 팝시다.”
“낸들 가고 싶어서 가겠소, 민재 약값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려고 하는 것이지.”
“알았어요. 조심해서 다녀와요. 서울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하니까. 각별히 조심하시구료.”
“걱정 말아요. 내가 운전한지가 삼십년도 넘은 베테랑이오.”
원래 남편의 고집이 센 것을 아는 혜주는 남편이 하는 대로 놔두기로 했다. 종우는 건축일이 끝나자 곧 서울의 가락동 야채 도매상으로 차를 몰고 갔다. 일단 거래를 트기 위해서였다. 불운이라는 것은 항상 닥치는 곳에 다시 닥치는 것인지, 종수가 탄 차량이 평택을 지나오면서 딋 차에 받치는 사고를 당했다. 승용차가 과속을 하다가 종수의 차 뒤를 들이 받은 것이다. 사고를 낸 운전사는 종수의 진단이 4주가 나오자 바로 구속이 되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나이가 30대 초반의 어린 청년이었다. 그의 친구가 종수를 찾아와 사고를 낸 운전자가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운전을 하는 것이라며 합의를 해달라고 해서 병원비에 요양비 조금만 받기로 합의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의정부 시내에 빌딩을 소유한 부자였다. 친구란 놈이 감쪽같이 종수를 속인 것이다. 참 못된 집안이다. 살만한 사람이 트럭한대 몰고 생계를 유지하는데 돕지는 못하고 사람까지 속이다니, 완전 졸부인 것이다. 종우는 계속 몸이 안 좋아 거의 한달 동안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동안에 몇푼 받은 합의금도 다 쓰고 빈털터리가 되어 오히려 혜주가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혜주는 자식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편마저 사고로 누워있으니 그야말로 기가 막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이 두 사람의 간호에만 매달려 지내야 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도 일이 없어 집에서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몫까지 맡아야 하기에 더욱 장사에 매달렸다, 옥수수가 한참 나올 때쯤에는 옥수수를 까서 팔거나 쪄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계절은 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혜주는 아들의 병원비며 집안의 생계 때문에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좌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혜주가 날이 추우니 겨울 한철이라도 쉬라고 권했으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여름만큼 장사가 잘되지는 않아도 아들놈 약값은 벌렸다. 그의 사정을 아는 주변의 상인들에 도움이 컸다. 민재는 여전히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대를 누워만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 아들이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런 한 가닥 줄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녀도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불행이 닥친 다해도 이렇게 심하게 닥칠 수는 없는 것이다.
혜주는 자식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남편마저 사고로 누워있으니 그야말로 기가 막혀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이 두 사람의 간호에만 매달려 지내야 했다. 남편은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도 일이 없어 집에서 소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몫까지 맡아야 하기에 더욱 장사에 매달렸다, 옥수수가 한참 나올 때쯤에는 옥수수를 까서 팔거나 쪄서 팔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계절은 겨울로 들어서고 있었다. 혜주는 아들의 병원비며 집안의 생계 때문에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좌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못한 혜주가 날이 추우니 겨울 한철이라도 쉬라고 권했으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여름만큼 장사가 잘되지는 않아도 아들놈 약값은 벌렸다. 그의 사정을 아는 주변의 상인들에 도움이 컸다. 민재는 여전히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 아들이 나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런 한 가닥 줄이라도 붙잡고 있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 그녀도 죽고 싶을 때가 많았다.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불행이 닥친 다해도 이렇게 심하게 닥칠 수는 없는 것이다.
날이 몹시 추워지자 설희는 동상이 걸리겠다며 전기난로를 하나 사다가 혜주에게 건네주었다. 어릴 적 친구가 진정한 친구였던 것이다, 종우는 사고를 낸 이후부터 서울에는 잘 가지 않으려고 했다. 아마도 사고 휴유증이 큰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택배도 화물차에 실어다가 중간지에 내려놓은 것이라 가금은 평택으로 택배를 받으러 나갔다. 어차피 거래처가 평택시장이니 서울에서 연락이 오는 날 한번만 나가면 두 가지 일을 다 볼 수가 있었다. 그렇게 힘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 혜주는 이제 어느 정도 장사에 이력이 붙어 지난해보다도 수입을 더 올릴 수가 있었다. 그는 어느 가게에서든 필요한 야채를 다 떠다가 팔았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 쌀쌀한 봄바람을 등 뒤에 맞아가며 냉이를 캐다가 팔았다. 종우역시 험한 산을 타고 올라가 버섯이나 약초등을 캐다가 아내에게 갖다 주었다. 혜주네 가게는 만물상이 된 것이다. 다른 야채가게에서 사지 못하는 물품들을 구하려면 혜주의 가게로 가보면 그곳에는 있었다. 누가 일부러 씨앗을 뿌려 놓았는지, 도라지들은 지천에 널려 있어서 그것들 캐다가 역시 아내의 좌판위에 올려놓고 팔게 했다. 아무리 남편이 돕고 장사가 잘 되도 혜주의 마음속은 개운하지를 않았다. 아픈 자식만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었다. 민재의 병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를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더 심해졌다. 병원으로 약을 지러 다니다 보니 아마도 신약이 개발될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의 빛이 보였다. 하루라도 빨리 약이 개발되어 자식 놈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지금처럼 죽을 만큼이 아닌 그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약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을 할 것이다. 종우아버지는 어쩌면 약초로 아들의 병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전국의 산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초의 종류를 몰라 약초꾼의 보조인으로 그를 따라다니며 약초 공부를 했다. 가끔은 귀한 송이 버섯을 한 움쿰이나 따다가 민재에게 먹이기도 하고 효과가 없으면 아내의 좌판에 올려놓고 팔게 했다. 그가 약초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쌓이자 혼자 전국의 산을 타고 다니며 통증에 잘 듣는다는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서운 병이라도 반드시 그에 대한 치료제는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손에는 쇄기가 쇄여 며칠을 고생을 했고 발도 퉁퉁 부어 한동안 잘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산에는 보물 투성 이였다. 그가 캔 약초들은 어느 누구에게 약이 될지는 몰라도 요긴하게 쓰였다. 자식이 아프고 나서부터 그는 세상의 모든 환자들이 자신의 아들처럼 측은하게 보였다.
어느새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시작되었다. 그해엔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시장 상인들의 가게에까지 물이 차올라 정부에서 보상금까지 지불해주었다. 그러나 혜주는 무허가로 장사를 해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아무리 싼 야채라도 시뻘건 장맛비에 노출된 것은 아까워도 버려야 했다. 민재는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처지이고 보니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가끔 그의 친구로부터 청첩장이 날라 오기도 했다. 이미 아이를 낳고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민재와 가까워 가끔 찾아오는 친구에게서 그런 소식들을 전해 듣곤 했다. 오늘도 종수는 날이 꾸물거림에도 비가 올 것 같지는 않아 산행을 결심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산책로가 있어서 올라가기가 수월했다. 날이 꾸물거려서인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았는데 한 참 오르다보나 저만치 앞에서 오십대쯤 보이는 웬 여자 한분이 앞서 걷고 있었다. 산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상대가 여자이니 얼른 그 여자 앞을 지나쳐 산 정상으로 오르려고 했다. 막 그 여자 옆을 지나치는데 뜻밖에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선생님, 오늘 같은 날, 우산도 없이 산에 오르세요?”
“아, 예. 저는 웬만한 비는 그러려니 하고 우비는 갖추고 다니니 심하게 옷이 젖지는 않아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왜 산책을 나오셨는가요?‘
“아니요. 전 산책을 나온 게 아니라 약초를 캐러 나온 겁니다.”
“고생이 되시겠어요. 약초를 캐서 파시는 일을 하시나 보군요.”
“아니, 팔기보다는 자식 놈이 아파서 혹시 무슨 약초라도 몸에 맞을까 싶어 캐러 다닙니다.”
“저런, 아드님이 아파서 걱정이 많으시겠네요.”
“걱정뿐이겠어요? CRPS 라는 희귀한 병이라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해서 한번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약초로 다스려보려고 이 고생을 합니다.”
“CRPS 라구요? 복합통증 증후군이라고도 하지요?”
“예.”
그 말을 들은 여인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보였다. 그녀는 긴 한숨 끝에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막내도 그 몹쓸 병에 걸려서 그만......”
“그 병은 고칠 수가 없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 애는 심성이 여려서 부모님 고생시키기 싫고 아픈 것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아이구! 저런, 애 아버지도 심사가 불편하시겠네요.”
‘예 딸이 둘 있는데 다 출가를 하고 아들하나만 바라보고 살다가 그리되니 매일 술로만 살아요. 하루도 취하지 않는 날이 없는데, 그 심정 이해하니 뭐라 나무랄 수도 없어요. 저 역시 일주일에 한번 씩은 산에 올라 가슴속의 한을 풀어내곤 하지요.“
“그러시군요. 모쪼록 가정이 편안해지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가정은 어떠하세요?”
“안식구는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고 애 약값을 벌고 나 또한 약초를 캐다가 아들에게 먹입니다,”
“모쪼록 아드님이 쾌차하시기를 빌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이따 내려갈 때 산행 조심하세요.”
“예, 약초 많이 캐시기 바랄께요.”
그리고는 말은 끊겼다. 종우는 뒤로 그 여자를 남긴 채 부지런히 산 정상을 넘기 시작했다. 산책로가 있는 산이라면 산속 깊숙이 들어가야 약초를 캘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혜주는 남편이 어디를 다니는지 알 수도 없고 무슨 짓 을 저지른다 해도 간여하기는 싫었다. 그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었다. 만일 남편이 없었다면 아들 민재를 혼자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재가 아픈 이후로 방도 따로 쓰고 있지만 커다란 기둥임에는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민재는 아버지가 별의 별 약초를 캐다가 먹여도 별로 효과는 없었다. 어떤 약초는 먹으면 통증이 조금 나아지기도 했다. 그것을 본 종우는 반드시 듣는 약초는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더욱 열심히 산을 탔다. 약초를 못 캐는 날은 한참을 땀에 젖어가며 굵은 칡뿌리를 캐고 산마도 캐왔다. 혜주는 착즙기를 하나 빌려다가 칡즙을 만들어 한잔에 오백 원씩 팔았고 마는 자르지 않고 한 뿌리 당 오 만원을 받고 팔았다. 그녀의 노점상은 야채가게가 아닌 약초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번은 지리산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산삼 세 뿌리나 캐었다. 감정을 받기 위해 한약방으로 가니 나이 지긋한 약방 주인이 말하기를 그건 진삼이 아니라 산양산삼이라고 했다. 즉 사람이 산삼 씨를 산에다 뿌려서 나온 삼이라는 것이다. 그의 실망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산양삼이라고 모두 삼십 만원을 받고 한약방에 넘겨주었다. 그는 아내에게로 가서 받은 돈 중 이십 만원을 내주었다.
“당신 돌아다니려면 기름 값도 들고, 점심이라도 사서 먹어야 하는데 돈을 내게 주면 어쩌려고 그러우”
“나는 십 만원만 갖으면 되니 걱정 마시구료.”
“아뭏든 식사는 거르지 말고 다녀요.‘
“알았어. 민재에게나 가보리다”
“가면 진통제 꼭 먹여줘요. 내가 지금 가려고 했는데, 마침 당신이 간다하니 당신이 약을 주구료.”
“알았오.”
아무리 나이가 들고 사내라 하지만,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위에서 앓고 있는 아들을 보면 종수는 가슴이 뻐근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 캄캄한 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희미한 불빛 하나만이라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보인다면 가슴이 타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민재는 침대위에서 꼼짝 못하고 고통에 신음만 토하고 있었다.
“아버지 오셨어요?”
그 와중에도 애비라고 인사를 했다.
“오냐. 진통제를 줄 터이니 가만히 누워서 먹거라.”
“예, 아버지.”
종우는 아들에게 약을 먹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어둑해지는 시내는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고 있었다. 그는 그저 하늘밖에 바라볼게 없었다. 아니 어느 곳 한곳도 없었다. 어디에 하소연을 한들 자식 놈의 병이 나을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왜 이리 자신에게만 운명이 가혹한지를 알도리가 없었다.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우리 집에 우환이 드리워지다니, 전생에 업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반드시 자식 놈 병을 고쳐주겠다고. 그리고 여러 가지 자식 놈 앞에서 조심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얼마 전 산행 길에서 만난 여자의 말이 떠올라서 였다. 그건 아내에게도 주지시켜야 할 필요가 있는 말이었다. 그는 산행을 다녀온 날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여보, 내가 얼마 전에 우리 아들과 똑 같은 병을 앓고 있던 여자를 산책로에서 만나 적이 있는데, 민재에게 조심할 게 있더라구.”
“무슨 말인데 그러우.”
“아픈 자식 앞에서 저놈 때문에 집구석 다 망한다고 막말을 하고 괴롭혔던 모양이야. 어린애가 얼마나 상처가 컸으면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지 몰라. 우리도 웬만하면 민재 앞에서 짜증나는 모습을 보이지 맙시다.”
“알았어요. 당신도 조심해요. 산을 타는 게 힘들다고 하지도 마시구요.”
“민재 앞에서는 산을 타는 게 재미있다고 하려고 해요,”
“그러시구료.”
그들 부부는 이후부터 더 민재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약을 먹일 때도 짜증을 내지 않았고 아무리 바빠도 티를 내지 않았다. 한번은 설희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왜 있잖니. 시장 저쪽에 있는 건강원.”
“응, 나도 알지 민재 한약 즙 내준 곳이잖아,”
“그래 거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벌써부터 말이 있었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응, 야채도 들여놓고 팔수도 있고, 약초도 팔수가 있잖아. 여름 우기 때나 겨울에 폭설이 내려도 장사할구 있잖니. 특히 겨울에 장사하며 네 손하고 발에 동상 걸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뭔 돈이 있어서 그렇게 큰 가게를 인수할 수가 있겠니.”
“내가 도와줄게. 그 건물주는 월세를 받았으면 하는데, 전세로 들어가야 낭비가 없지, 나올 때 찾아서 나올 수도 있고.”
“얼마에 나왔길래.”
“전세로 오백.”
“내게 오백이 어디 있냐? 애 약값도 다달이 들어가는데.”
“대체 현금이 얼마나 갖고 있니?”
“장사 밑천 다 털면 한 삼백을 될 것 같애.”
“그럼 나머지 이백은 내가 빌려줄 터이니 돈은 되는대로 갚아.”
“고맙다. 설희야. 이제껏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그깟 가게하나 못 꾸러나가겠니?”
혜주는 설희가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장사에 방해가 되는 노점상을 하도록 도와 주기도 하고 이제는 가게 내는 것 까지 도와주니 은인도 그런 은인이 없는 것이다. 건강원은 보증금을 돌려받자 곧 가게를 철수했다. 아무리 깨끗이 가게를 썼다고 해도 일단 비우고 나면 손볼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목수가 직업인 민재 아버지에게 가게 리모델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의 일주 일 간이나 가게에 매달려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혜주는 오픈을 하면서 시장 상인들에게 떡을 돌렸다. 그들은 모두 혜주에게 덕담을 했다. 혜주는 문이 네 개나 달린 냉장고를 하나 구입해서 오래 보관할 야채나 약초는 냉장실 안에 보관을 해두었다. 종우가 가게를 리모델링 할 때는 혜주가 틈틈이 민재의 약을 챙겨먹였고, 혜주가 가게를 정리할 때는 종우가 민재를 건사했다. 종우는 아들에게 엄마가 가게를 새로 내어서 장사가 잘된다고 희망섞인 말을 건넸다. 조금이라도 그의 안위에 해가가지 않도록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종우는 가게 리모델링이 끝나자 다시 산행 길로 나섰고, 혜주도 전보다 더욱 열심히 가게 일에 매달렸다. 혜주가 가게를 낸지 얼마 안 되어 좋은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나서서 crps 즉 복합부의 통증증후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치료도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환자들이 늘어간다는 현실을 정부가 외면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였다. 일단 주민 센터에 가서 생활보호 대상자로 등록을 하고 비 급여 약도 신청을 했다. 통증에 잘 듣는다는 마약성 진통제도 투여할 수가 있었다. 민재는 이 치료를 받고나서부터 통증은 덜하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종우부부는 만족할 수가 있었다. 이제는 완치되리라는 희망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종우는 산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여전히 좋다는 약초를 찾아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타고 다니며 약초를 캐왔다. 아내가 낸 가게에 진열하기도 하고 민재에게 다려 먹이기도 했다. 그런 정성이 효과를 본 것인지 민재는 점점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통증도 가시기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으면 나을 것도 같았다. 기적은 노력 끝에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 종우가 산에서 내려와 집에 가보니 민재가 침대에서 벗어나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아니, 애야. 어쩌자고 일어나 있는 게냐?”
“아버지, 몸이 가벼워졌어요. 그전보다 훨씬 덜 아파요?”
“그 말이 사실이냐?”
“예, 조금만 더 약을 먹으면 날 것 같아요.”
종우는 아들이 나아지는 것이 병원 약 때문인지, 약초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제껏 아들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돌봐온 것이 효과를 보는 것 같아 기쁘기가 한량이 없었다. 종우는 아내의 가게로 달려가 사실을 알렸다. 혜주는 눈물부터 흘렸다. 그 오랜 세월동안 무던히도 견뎌온 아들의 세월이 슬픔으로 북받쳐 오른 것이다. 혜주는 가게를 제쳐놓고 집으로 달려갔다. 정말 민재는 누워있지 않고 벽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정말 괜찮은 것이냐?”
“예. 하루가 다르게 통증이 사라져요.”
“아, 이런. 이런.....” 민재는 몸이 회복되자, 어머니의 가게로 나왔다.
“네가 웬일로 가게를 나왔다냐?”
“그동안 누워있었으니 이젠 아들노릇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머니도 쉬실 때가 있어야지요."
“나는 그 놈의 병이 도질까봐 걱정이다.
“한번 앓고 나면 재발 율은 없다고 해요. 언제까지 집에서 뒹굴 거릴 수도 없고요. 그동안 누워만 있었으니까운동도 해야해요.”
민재가 가게를 나오자, 아는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효심이 깊은 청년이야. 아들 하난 잘 두었네. 기다리다보면 이렇게 좋은 날도 찾아온다니까? 이젠 모두 내 자식처럼 돌봐줍시다“
혜주는 그런 주변상인들이 고마웠다. 그건 그만큼 혜주가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인심을 얻었기 때 문이었다
민재의 의도대로 한달쯤 지나자 이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해나갔다. 혜주가 장사를 하다말고 점심식사를 차려주려고 집으로 갔다오지 않아도 되었고, 민제는 시장도 보아다가 반찬도 만들어 먹었다.. 이제 다 나은 것이다. 이제는 기적같이 그 어렵다는 복합부의 통증에서 벗어난 것이다. 민우가 아픈 이후로 한 번도 웃음이 나오지 않던 집안에는 이제 개나리같이 활짝 핀 웃음꽃이 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