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梁文
상량문
百怯閱夫星霜魯谷之舊祠將毁 數間庇其風雨農山之新宇乃成 先祖是安 孝孫有慶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상주 노곡의 옛 가묘(家廟) 몇 칸이 장차 더 훼손될 것이 예상되어
이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농산에 몇 칸의 새로운 사우를 이에 완성하였으니, 이에 선조는 안전하고 효성스러운 자손들 경사가 있게 되었다.
恭惟我忠簡公沙西全先生 金玉其相 嶽瀆之精
공손히 생각건대, 우리 선조 충간공 사서 전선생은 금옥 같은 형상에 산과 강의 영험한 정기를 받아서 탄생하시었다.
負笈塾師已蒙鄕彦之獎許 摳衣厓老仍作徒弟而依歸 器局節行之品題 等蒼石而相讓 古今事理之評 騭與愚伏而幷稱
공부하러 선생님을 찾아갔으니, 이미 고을 선비의 장려하는 칭찬도 받았고, 서애 류성룡 선생님께 나아가 문인이 되어 돌아왔다.
도량과 절조 있는 행실의 품제(品題)는 창석 이준과 같으나, 그러나 서로 사양하였고, 고금 사리에 밝다는 평가는 우복 정경세와 함께 병칭(幷稱)되었다.
專對朝天 從容涉險於大鰌挾舟之海上 進退擇地 歛跡休官 於高鳳覧輝之山中 及其天日重明 幸兹風雲復會 含蘆戒愼 鴈湖之別號自符 拔茅彚征 鵷班之仕路稍闢
사신이 되어서 바다에서 폭풍의 위험함에도 침착히 대처하여 큰 고기가 배를 안내함을 받았고, 지역을 가려서 나가고 물러났으며, 봉황이 빛을 바라보는 산속에서 자취를 거두고 벼슬을 그만두었고, 그날이 다시 밝음에 미쳐서는 이 정세에 다시 복귀하였으니, 갈대를 물고 삼가고 경계하는 호숫가 기러기의 별호와 부합하고, 인재들이 무리로 나올 때 조정반열에서 벼슬길이 조금씩 열리게 되었다.
歷歇顯耍 竟躡天曹之崇階 登庸賢俊 屢遷六館之清任 藴蓄由兹以展布 英華於是乎發揚 家而孝 國而忠 載於仁 抱於義 撮要之院祝 舉實之碑銘 緩期縱賊之誅 甲士落膽於聲厲 邪論正箚之辨 壬人回背而語窮
청요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마침내는 이조의 고위 관직에 이르렀으며, 어질고 뛰어난 자들로 등용되었고, 육관(六館)의 청한한 임직을 두루 옮겨 다녔으며, 공부하여 함축한 것을 여기에서 뜻을 폈고, 이곳에서 영화(英華)가 발양되었다.
가정에서는 효도, 나라에는 충성을, 자애로움을 담고 의로움을 가슴에 안았으며, 원(院)의 축문의 요점은 비명(碑銘)에 실제를 들었으니, 원수 장만이 늦게 도착하매, 적(賊)이 날뛰는 것을 억누르고 병졸들을 꾸짖는 말에 가슴이 철렁하였다. 사특한 논의와 올바른 차자(箚子)의 변별에 아첨하는 자들이 고개를 되돌리며 말이 궁해졌다네
南極祥光生而享八袠遐等 北闕恩渥没而受一品高銜 君子澤深 何遽五世必斬 慈孫誠篤 所以百代不遷
남극성이 상서롭게 비추어서 80세로 장수를 누렸고, 대궐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사후에 일품의 관작을 받았도다. 은택을 깊이 받은 군자의 위패를 5세가 지나면 반드시 치워야 근거가 무엇이냐? 후손들은 정성이 돈독하니, 백 대가 되도록 위패를 옮기지 못하는 이유이다.
幽宅樹襄 曾移息山之麓 私廟妥奉亦在東川之堧 然一自仍雲離散以來 實萬無香火修行之道 晨夕之闕 寅實謁尚矣 勿論春秋之衂丁禋 亦云非禮 今其主 鬯人胤錫 憂憫情勢 久懷拮据之經營 奮勵身心 快斷移建之謀策
유택은 일찍이 상주 식산의 언덕에 이장하였으며 사묘 또한 동천의 빈터에 봉안되어 있다. 그러나 후손(잉손, 운손)들이 흩어진 후부터는 실제로 향화(香火)를 수행할 길이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궐(闕)하나 실상 인시에 배알하는 일은 가상하도다. 물론 봄가을 제사 지내는 일은 또한 예가 아니라고 하는데, 이제 대를 이어 술 따르는 윤석(胤錫)이 걱정이 많은 세상에 오랫동안 애써 경영하였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힘쓰다가 옮겨 짓는 방안을 결단하였다.
嗟 世俗漸薄 擁虚簿而二十年 契物難収 儘家計稍敫 斥沃土而四百鈔財政自辦 非徒在他域而守護之關慮 亦爲近居室而瞻省之取便
아! 세속에서 점점 얇아지니, 빈 회계장부를 껴안은 지 20년 동안 계물(현금)의 수금이 어려웠다. 가정 살림이 점점 줄어 없어지게 되어 옥토를 팔아서 4백초의 재정을 스스로 마련하였다.
단지 다른 지역에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호함이 심히 염려되었으므로, 역시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여 우러러 살피는 편의를 취하였다.
相役諸員玉洞之儒冠悒定 運物巨事金泉之働車奔馳 位置則背山而面野 神道則舍舊而從新 間架恢弘兼揭寫眞一幀 儀文彬郁當備執禮五官 豈但罄忱於奉先 又是貽謨於傳後
서로 일하는 여러 인원은 옥동의 유생들이 정하고, 물건을 운송하는 일은 김천시의 자동차를 이용하여 분주히 옮겼다. 위치는 산을 등지고 들에 면하고 있으며, 신도(神道, 신령이 다니는 길)는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따랐다. 집의 칸수가 넓고도 크므로 영정 1정을 게시하였으며, 의식에 필요한 문서가 빛나고 성대하니 마땅히 집례하는 다섯 관리를 갖추었다. 선조를 받듦에 온 정성을 다하지 않으랴! 또한 지혜를 주어 후손들에 전하였다.
聊唱短律
俾擧脩梁
애오라지 칠언율시를 지어
긴 대들보를 올리는 데 도움을 주겠다.
抛梁東
梅嶽尖峰碧挿空
當日書堂遺躅在
宜令後輩繼眞工
어기여차 들보를 동쪽을 던지니
상주 매악산의 뾰족한 봉우리는 푸른빛이 허공에 끼어들었으니
당일의 서당에는 옛 자취가 남아 있으니
후배에게 참된 공부를 계승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抛梁南
一帶伊川萬象涵
日夜滔滔流入洛
玉淵源脈箇中含
어기여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상주 이천 일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밤낮으로 낙동강으로 도도히 유입되도다.
상주 옥연의 원맥은 그 속에 담겨 있다.
抛梁西
山有荷渠舊别棲
緬憶同庚同學誼
金蘭心臭照靈犀
어기여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산속에는 하거(우복) 정경세의 옛집이 있으니
동갑내기 동창의 우정이 회상되었다.
벗의 향기가 서로 통하여 마음에 비친다네
抛梁北
天馬名山天駿極
淑氣扶輿護世家
毓生賢士兼才德
어기여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천마산은 명산이라 하늘의 빼어남이 지극하다.
맑고 상서로운 기운이 세가(世家)를 보호하고
어진 선비가 태어나 재덕을 겸비하리라.
抛梁上
九萬蒼穹恢宇量
一點奎星象緯明
光垂屋角文華暢
어기여차 들보를 위로 던지니
구만리 창공은 넓고 넓은데
일 점의 별(규성)이 우주를 밝히니
별빛이 집 모퉁이에 드리우니 위대한 문인이 많이 나오리다.
抛梁下
一望無邊藿浦野
農事秋登承祭虔
主人歲歲受其嘏
어기여차 들보를 머리 아래로 던지니
아득하게 끝없이 펼쳐진 상주 곽포 들판에서
농사지어 가을걷이 끝에 제사를 경건히 올린다.
해마다 주인은 하사(嘏辭,복)를 받을 것이다.
伏願上梁之後 瓦甍不缺而不漏 棟桷相扶而相持 輪焉奐焉 足為聚族而薦獻 燎也灌也 即以求神於陽陰
원하옵건대 상량한 후 기와지붕은 흠 없어서 새지 않고, 마룻대와 석가래 서로 의지하여 서로 잘 지탱해주며, 규모가 크고 아름다워서 가족이 모여 제수(祭需)를 바치고 술잔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불을 피우거나 관개하는 것, 즉 음양에서 신을 구하기 때문이라네.
先靈景慕之情 元是豐奠之不啻 後嗣保守之責 亶在恒葺之如何 和氣相乎 預睦於一門九族 餘慶攸屆 宜旺於百子千孫
조상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은 원래 풍성하게 제사 지낼 뿐만이 아니고, 후사(後嗣)들이 그것을 보호하고 지키는 책무는, 진실로 항상 이엉을 올림이 어떠한가에 있다네. 조화로운 기운이 일문구족(一門九族)에게 화목함을 예비하였으니 자손에 이르는 경사는 수백 명의 자손에게 마땅히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다.
有其志竟成 做何事不得
의지만 있다면 마침내 성공할 수 있으니, 얻지 못하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
歲舍 癸酉 三月下澣 後學 商山 金直原 謹撰
세사 계유 삼월하한에 후학 상산인 김직원은 삼가지었습니다.
정선전씨 임하군파 55세(世) 전과웅 번역
옥천전씨 판서공 송정공파 27세(世) 전규호 감수
[출처] 충간공 사서 전식 불천위 묘우 중수를 마치며 (옥천전씨 판서공파 노동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