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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재속프란치스코 야고바형제회 원문보기 글쓴이: 세베리노
1) 주님의 기도
2) 1846년 6월 8일 옥중서신 발췌문을 읽고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에게 한 장의 편지를 보내게 되니 결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환경과 공경하올 신부님들에 대한 생각과 애정이 이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 음력 3월경에 지극히 지극히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의 뜻을 따라 백령도로 항해 하였습니다. 거기에 중국 어선들이 와 있었고, 그 어선들을 통해 신부님들에게 보내는 여러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들은 그 후 조선 포졸들에 의해 압수되었습니다. 그 편지들은 라틴어와 한문으로 쓰여져 있었습니다.
돌아오면서 네 명의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우리를 같이 포승으로 묶고 수도로 이송하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읍내들을 지나며 밤을 지냈습니다. 모든 무리들이 우리들을 구경하기 위하여 달려 들었습니다. 저는 마치 외국인처럼 체포되었습니다. 서울에는 여러 신자들이 잡혀 있었습니다. 곧 현석문 가를로도 포교지를 위해 봉사하던 다섯 여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저의 집에 있던 물건들도 압수되었는데 그것들은 돈과 가구 등등이었습니다. 지금은 포졸들이 교우들을 특히 공경하올 페레올 주교님의 복사인 이재의 토마스를 체포하기 위해 사방에 파견되었습니다. 주교님과 신부님이 잡힐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되면 큰 박해가 될 것입니다. 저는 편지들 때문에 많은 문초를 받았습니다. 함께 갇혀 있는 교우들에게 저는 고해성사로 힘을 복돋우고 있고, 또 두 예비 교우에게 영세를 주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열 명이 잇습니다. 다른 감옥에는 아마 7- 8명이 갇혀 있을 것입니다. 중략.. 미구에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다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다른 모든 신부님들께도 인사를 드려 주십시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코마스, 잘 있게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도록 부탁하네, 저는 그리스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분의 이름 때문에 묶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형벌을 끝까지 이겨낼 힘을 저에게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 보소서, 주께서 만일 우리의 죄악을 사라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히 감당할 수 있으리까!!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묶인 조선의 교황 파견 선교사 김 안드레아 올림. -
3)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신덕고개에서 도보성지 순례의식을 끝내고 다시 망덕고개를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숲 길을 구비구비 돌아 내려섰습니다. 저 능선 v자 능선이 바로 신덕고개입니다. 고개 아래에는 수목원에서 가꿔 놓은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엔 단풍빛이 그렇게 곱고 아름다을 수가 없는 곳입니다.
자연의 빛이 그대로 살아 있는 녹색정원을 걷고 계신 트레커 일행입니다. 앞장자는 바로 실비아 자매님이십니다. 명주바람이 얼마나 곱고 살풋하게 불어 주는지 걷기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야고바트레킹에 절대적인 협조자이신 수산나 자매님께서 걷는 모습에서 평화가 묻어 납니다. 그리고 이주완 에로디모 장형님께서도 발걸음이 가볍우십니다. 그런 걸음으로 미리내까지 완주해 주셨습니다. 이 녹색정원이 끝나면 조금은 길고 긴 아스팔트 길 따라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왼편으로 꺽어 들면
다시 긴 아스팔트 길을 걸어서 도착한
마을정자,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물을 마시고 행동식을 나누며 마음을 추수리고 행장을 점검한 후 망덕고개를 향해 걸음을 옮겼습니다.
도저히 척박하고 생명을 들지 못할 것 같은 콘크리트 하천벽에 야생화가 피었습니다. 화초는 사람의 손으로 키우지만 야생화는 주님께서 손수 키워 주십니다. 당신의 사랑과 숨이 깃든 아생화를 뜻밖의 방법으로 우리들 걷는 길에 보내 주셨습니다. 자연히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개인 정원에 서 있는 성모님 모습을 보면서 화살기도를 날립니다. 성모님! 우리들의 성모님! 오늘 우리들이 걷는 안드레아 신부님 시신 운구 동선을 엄숙, 거룩한 마음과 평화의 마음으로 시종일관 걸을 수 있게 바라오니 이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본격적으로 망덕고개로 오르는 숲길에서 만난 엉겅퀴입니다. 빛이 너무 곱습니다. 주님의 빛은 이토록 곱고 아름답습니다. 영국이나 유럽전역에서 엉겅퀴 대를 껍질을 벗긴 후 셀러드를 해서 먹기도 합니다. 아삭하면서도 상큼한 맛이 일품입니다. 까치수염꽃 등도 피기시작한 숲 길이 호젓하고 성숙의 계절을 향해 가는 숲이 아름다웠습니다. 신덕고개 보다는 더 가파른 산길, 도랑이 있고 끝부분 간격이 맞지 않은 나무계단은 순례자의 마음을 조급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부분입니다. 계단의 단 걷기에 부담이 되는 나무계단, 오히려 계단 양끝을 이용하여 흙길을 걷는 것이 오히려 편안합니다. 발빠르게 올라 선 후 망덕고개 주변을 촬영해 두었습니다.
설운도 차차차 선율에 실어 불러 보면 이외로 재미있는 가사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간 흔적인 각종 표식가 돌망태기에 걸려 있습니다.
오르막의 끝부분은 항상 누구에게나 힘듬을 경험하게 합니다. 끝오름이란 언제나 누구에게든 항상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비로서 오름이 완성됩니다. 김종식 파스칼형제님이 망덕고개 끝을 오르고 계십니다. 아어서 데레사, 수산나 자매님께서도....
김문규 도미나 자매님의 망덕고개에서 기념사진을......
숨을 몰아 쉬시며 잠시 숨을 고루시는 봉사자님......
망덕송(望德頌)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의 근원이시며 저버림이 없으시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주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1) 주님의 기도.
2) 김대건 신부님 시신 이장과 관련된 망덕고개에서 생긴 일을 묵상 한다.
태재고개에서 잠시 쉬고는 능골 앞산에서 이르니 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부터는 용인 땅이다. 여기까지만와도 내집 근처에 온 듯이 안도의 숨이 쉬어진다. 이고서 하루를 보낸 그는 다시 해가지자 길을 재촉하였다. 여기서 부터는 압고지, 용인읍, 송전으로 간다면 직선 코스라 하루밤이면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나 큰길로 가자면 위험에 뒤다를 것을 아는지라 그는 참바테 고개를 넘어 새래, 삼막골, 태화산 기슭으로 들어가 통점골 다리내 고개를 넘고 두렁이 고개를 넘어 은이를 지나 별미 고개까지 왔다. 반 년전만 해도 신부님이 계시던 은이 마을이요. 지금 쉬고 고개에서는 신부님이 미사를 드리시던 토담집이 무성한 나무사이로 지붕만 보이고 지금 앉아 쉬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신부님이 지나시던 길이라 신부님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듯 했고 신부님의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그는 여기서 처음으로 마음 놓고 신부님을 부르며 통곡했다. 이곳에서 하루 해를 보내고는 다시 길을 재촉해서 별미 고개 능선을 타고 해실이 고개를 접어드니 이곳이 속칭 신덕, 망덕, 애덕, 고개라고 하는 험하기 짝이 없는 산길이다. 이 길은 전에 김신부님을 뫼시고 여러번 다녀 본 길이라 밤이라 해도 그리 서둘지 않았다.그러나 워낙 나무가 울창하고 험하여 가금 산짐승들이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며 또한 산적들이 나타난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힘이세고 담력이 센 원선시오는 한 두놈의 도적이나 군졸 다위를 만나도 때려 뉘고 갈 마음이 준비되어 있었다. 망덕고개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획하는 소리와 함께 두 눈에 서기가 비추는 소아지만한 호랑이가 나타났다. 아무리 담력이 센 원선시오였지만 이 때만은 등골이 오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 무서운 짐승을 노려 보며 크게 호령을 했다 한다. 네 이놈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우리의 위대한 김신부님의 시체를 모시고 가는 앞 길을 막다니 썩 물러나지 못할까! 이 한마디의 호령으로 호랑이는 슬그머니 산중턱으로 사라졌다. 원선시오는 다시한번 성모님과 자기 수호천사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걸음을 제촉하였다. 마지막 고개인 애덕고개 가지 오니 날이 새었다. 이곳에서는 바로 눈앞에 검은정이 동리와 미리내도 보인다. 그러나 만일을 위해서 여기서 또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체를 감추어 둘 곳을 몰색하니 마침내 화전 콩밭이 있어 콩밭속에 시체를 감추어 놓고 자기는 솔폭 밑에 누워 있기로 했다.
3)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망덕고개에서 기도의 망중한에 깊이 빠진 수산나 자매님~~ 기도의 마음이 평화의 노래가 되어 온 숲에 퍼져 나가는듯 하였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은 정의와 진리와 평화의 길로 나가는 길목입니다. 그 길목에 지금 야고바트레커들은 서 있는 것 입니다. 이들에게 평화, 평화를 주옵소서.......
창촌에서 차량 탑승을 원하시는 형제 ,자매님을 미리내로 먼저 보내 드리고 이끌거리는 아스팔트 폭염을 뚫고 걸었습니다. 문수켐프장에 많은 이들이 캠핑중인 모습을 보면서 혼장 중얼거렸습니다. 자연 안에 든 이들은 행복하다. 문수터널로 빠지는 삼거리에서
옛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가로변에 핀 접시꽃이 마중하고 이어서 카네이션이 순례자들을 맞아 줍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걷는 순례자들은 애덕고개 못밑처에 있는 개울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하였습니다. 얼굴과 손, 발을 딱은 후 행장을 점검한 후 누런 황토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능선 밑 길이라 그런지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산길, 6부능선에서 9부 능선으로 넘어서는 숨소리는 조금 거칠어짐을 느끼며 올라섰습니다. 순례의 막바지 고개인 애덕고개가 바로 지척에 있습니다. 먼저 오른 후 뒤따라 오르시는 트레커들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애덕고개에서도 다른 고개에서 한 것처럼 애덕송을 부르고 주님의 기도를 그리고 오기선 신부님께서 채증하신 내용을 듣고 각자 잠시 묵상의 시간을 갖아 보았습니다.
애덕송(愛德頌)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한없이 좋으시므로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하나이다.
1) 주님의 기도
2) 이민식 빈체시오 옹을 애덕고개에서 만나 들은 오기선 신부님 증언 말씀 묵상
-자꾸만 계속되는 5리나 되는 길을 걸으며 나는 이 빈체시오 할아버지께 꼬치꼬치 여쭈어 보았다. 할아버지는 제밥 구수하게 유모를 섞어가며 남곡리 양지에서 미리낶가지 오려면 신덕, 망덕, 애덕, 세고개가 있지, 박해를 피하던 신자들이 삼덕을 기리며 넘나든 곳이지, 나도 신덕, 망덕 고개는 잘 빠져 넘었는데, 애덕 고개를 넘으려니까 날이 밝지 않겠나. 저 비탈 콩밭 오른쪽 밭고랑에 김신부님 시체를 숨겨 놓고 솔가지를 쳐서 여러겹으로 덮고 보니 해가 점점 높아지지 뭐냐. 해가 높아지자 콩밭에 임자가 일꾼을 데리고 올라와 가을걷이를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이 할아버지는 고개를 넘어가 소나무 밑에 배를 쭉 깔고 숨어서 눈만 내놓고 망을 보았다. 그런데 콩을 거두는 일꾼들이 점점 시체를 숨겨둔 곳 가까이로 다가 가는 것이 아닌가.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아버지의 가슴이 졸아 들었다. 몇 번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드렸던 묵주신공이지만 더욱 더 정성껏 드리기 시작했다.
제목숨 대신 드려도 좋으니 우리 착한 목자 김신부님 장례나 잘 치루게 해주십시오. 저걸 보세요. 이제 두서너 고랑만 더 베어 들어 오면 만사는 허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성모님 기적을 내려 주시옵소서.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사람들은 콩밭을 게속 베어 들어 오고 있었다. 김신부님의 시체를 감춰 둔 곳에 거의 다가 왔을 때 갑짜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끼고 동서남북에서 장대 같은 비가 쏱아지면서 천둥과 벼락이 울었다. 그러자 콩밭 임자가 ' 여보게들 내려가세 다음에 날씨 좋을 때 와서 거두세' 하는 것이 아닌가. 콩밭 주인이 일꾼들을 데리고 사라지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날이 개었다.
3)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애덕고개, 삼덕고개의 도보순례를 마친 일행들은 다시 울창한 숲길을 걸어 미리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경당으로 향했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순례자들의 마음에 평화가 깃들게 해 준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