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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8. 01
독일 암흑기에 신성으로 등장해 황금기를 견인했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세계인의 축구네트워크 '골닷컴'은 이를 기념해 슈바인슈타이거의 독일 대표팀 여로를 되돌아보도록 하겠다.
# '녹슨 전차군단' 독일, 새로운 희망의 등장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독일은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유로 2000과 유로 2004 본선에서 독일은 조별 리그 조기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들어올렸다.
비록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독일은 브라질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당시 많은 호사가들은 독일이 강했던 게 아니라 미하엘 발락과 올리버 칸 둘의 미친 활약 덕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진운이 따랐다는 비아냥도 있었다. 실제 독일은 16강전에서 파라과이, 8강전에서 미국, 그리고 준결승전에서 한국을 차례대로 만났다. 반면 독일의 준결승 상대였던 한국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연장 혈투를 치렀고, 8강전에선 스페인과 승부차기 접전 끝에 힘들게 올라왔다.
특히 유로 2004에서의 졸전은 충격적이었다. 그나마 유로 2000에선 독일이 포르투갈과 루마니아, 그리고 잉글랜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해있었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었다(당시 루마니아는 동유럽을 대표하는 강호였다). 하지만 유로 2004 조별 리그에서 독일이 라트비아 상대로 0-0 무승부에 그치자 이제 독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무엇보다도 2000년 초반 독일의 고질적인 문제는 바로 왼쪽 라인에 있었다. 오른쪽 측면 수비수로는 아르네 프리드리히가, 측면 미드필더로는 베른트 슈나이더가 버티고 있었으나 왼쪽 측면 수비수와 미드필더는 믿고 쓸만한 선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확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독일은 유로 2004를 통해 필립 람과 슈바인슈타이거, 그리고 루카스 포돌스키라는 신예들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람은 왼쪽 측면 수비수로, 슈바인슈타이거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그리고 포돌스키는 투톱 중 왼쪽으로 포진하면서 독일의 고민거리였던 왼쪽 측면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특히 슈바인슈타이거의 활약상은 단연 눈에 띄었다. 유로 2004 본선을 앞두고 치른 헝가리와의 최종 평가전에서 포돌스키와 함께 독일 대표팀 데뷔 무대를 가진 슈바인슈타이거는 조별 리그 첫 2경기에 교체 투입되어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에 당시 독일 대표팀 감독이었던 루디 펠러는 슈바인슈타이거를 체코와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 과감히 선발 출전시켰다. 비록 독일은 1-2 역전패를 당했으나 슈바인슈타이거는 21분경 발락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독일 대표팀 부동의 주전으로 떠올랐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 컵 2골 1도움을 올리며 독일의 3위 등극을 견인했다. 슈바인슈타이거가 출전한 4경기에서 독일은 3승 1무 무패를 기록했다. 유일한 1패는 슈바인슈타이거가 경고 누적 징계로 결장한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이었다(2-3 패). 단순한 주전을 넘어 독일 대표팀 핵심 선수로 자리잡은 슈바인슈타이거였다.
컨페더레이션스 컵을 통해 가능성을 보여준 독일 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2006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며 '전차 군단의 부활'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 중심엔 물론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월드컵 7경기에 모두 출전해 2골 4도움을 올렸다. 특히 포르투갈과의 3, 4위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괴력을 과시하며 3-1 승리를 이끌었다.
독일은 유로 2008 본선에서도 승승장구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스페인에게 0-1로 패해 아쉽게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으나 독일은 유로 2008을 통해 지난 월드컵 3위의 성적이 자국 개최에 의한 홈 어드밴티지에 의한 것이 아닌 순수 실력으로 올린 성과라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비록 조별 리그에선 다소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포르투갈과의 8강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3-2 승리를 이끈 데 이어 터키와의 준결승전에서도 동점골을 넣으며 결승행(3-2 승)을 견인했다.
# 독일 황금기의 리더 역할을 담당하다
독일은 유로 2008을 끝으로 세대 교체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칸과 옌스 레만은 물론 토어스텐 프링스와 크리스토프 메첼더 같은 암흑기를 지탱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대표팀을 떠났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주장 발락이 부상을 당해 대회 참가가 불가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와 함께 독일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고전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독일엔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측면 미드필더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변경한 슈바인슈타이거는 든든하게 독일의 중원을 지탱하며 발락의 공백을 최소화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4도움을 기록하며 도움왕에 등극했다. 당연히 남아공 월드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슈바인슈타이거의 성공적인 수비형 미드필더 변신은 전세계 축구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독일은 슈바인슈타이거와 람, 포돌스키, 그리고 미로슬라브 클로제 같은 중견급 선수들이 중심축을 잡은 가운데 2009년 21세 이하 유럽 선수권 우승 주역인 메수트 외질과 마누엘 노이어, 사미 케디라, 제롬 보아텡, 마르코 마린을 비롯해 토마스 뮐러와 홀거 바드슈투버, 토니 크로스 같은 10대에서 20대 초반 신예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 덕에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3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릴 수 있었다. 당연히 많은 전문가들은 세대 교체에 성공한 독일이 스페인의 뒤를 이어 황금기를 구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월드컵 우승과 쓸쓸한 퇴장
유로 2012에서 독일은 또 다시 준결승에 진출하며 메이저 대회 4연속 준결승 이상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에게 1-2로 패해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자 독일 현지에선 현 독일 대표팀이 과거 선배들과는 달리 우승 멘탈리티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람과 슈바인슈타이거의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독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며 비판 여론을 잠재웠다. 그 중심엔 바로 슈바인슈타이거가 있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부상을 당해 대회 참가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바인슈타이거는 브라질행 비행기에 올랐다. 부상 여파로 인해 조별 리그 첫 경기에 결장한 슈바인슈타이거는 가나와의 2차전에 69분경 교체 투입되어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다.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전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우승의 주역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무엇보다도 결승전에 슈바인슈타이거가 없었다면 독일은 우승이 불가했을 것이다. 독일은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7-1 대승을 거두었으나 결승전을 앞두고 슈바인슈타이거의 중원 파트너인 케디라가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케디라 대신 선발 출전한 크리스토프 크라머가 경기 초반 뇌진탕 부상을 당해 측면 공격수 안드레 쉬얼레로 조기 교체되는 불운마저 발생했다. 심지어 슈바인슈타이거마저 얼굴을 다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슈바인슈타이거가 부상 투혼을 펼치며 든든히 중원을 지탱해주었다. 다리 경련을 일으키면서도 연장 포함 120분 풀타임을 소화한 슈바인슈타이거였다. 슈바인슈타이거 덕에 독일은 아르헨티나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결국 독일은 연장전에서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에 힘입어 4전 5기 끝에 우승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브라질 월드컵을 끝으로 람과 클로제, 그리고 페어 메르테자커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대표팀에 남았고, 람에 이어 주장직에 올랐다.
문제는 슈바인슈타이거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해 무리하게 경기 출전을 감행했다는 데에 있다. 결국 슈바인슈타이거는 월드컵 이후 다시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자연스럽게 슈바인슈타이거의 팀내 입지는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슈바인슈타이거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지 않았다. 더 이상 요아힘 뢰브 독일 대표팀 감독이 슈바인슈타이거에게 주전 자리를 보장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난 3월에 부상을 당해 유로 2016 본선 참가가 불투명했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와의 유로 2016 조별 리그 첫 경기에 슈바인슈타이거는 단 1분이라는 짧은 출전 시간 동안 쐐기골을 넣으며 2-0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슈바인슈타이거는 교체 선수로 출전해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특히 슈바인슈타이거는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케디라가 경기 시작 16분 만에 부상을 당하자 대신 교체 투입되어 연장 포함 104분을 소화했다. 급작스럽게 출전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안정적인 볼배급과 수비 속에서 독일은 이탈리아를 상대로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었고, 결국 독일은 승부차기 접전 끝에 이탈리아를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이탈리아전에 경미한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슈바인슈타이거는 프랑스와의 준결승전 출전을 감행했다. 전반만 하더라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자주 수비 라인까지 내려와 상대 공격을 저지하고 패스를 푸는 실질적인 '리베로' 역할을 수행하며 팀의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반 종료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경기의 최우수 선수는 슈바인슈타이거였다.
하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인저리 타임에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핸드볼 반칙을 저지르는 우를 범했다. 베테랑인 슈바인슈타이거답지 않은 실수였다. 결국 페널티 킥을 내준 독일은 프랑스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했다. 이후 독일은 흔들렸고, 72분경 추가 골마저 헌납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79분경 르로이 사네로 교체됐고, 이대로 그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막을 내렸다.
# '독일의 혼' 슈바인슈타이거
슈바인슈타이거는 지난 7월 29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애하는 독일 대표팀 팬들에게. 방금 대표팀 코치가 내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요청했으나 난 지금이 은퇴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팬들과 대표팀, 독일 축구협회, 그리고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내 조국을 위해 120경기를 뛰면서 난 정말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성공적인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유로 1996 이후 유로 2016에서 우승을 하고 싶었으나 우리는 할 수 없었고, 난 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2014 월드컵 우승은 내 선수 경력을 통틀어 더 이상 재연할 수 없는 역사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2018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최고의 성과를 올리길 소원한다. 난 이제 대표팀을 떠나지만, 언제나 중요한 가족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들을 대표해 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당신들과 함께 한 모든 일들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라며 은퇴 의사를 밝혔다.
독일 대표팀의 애칭은 '팀(Die Mannschaft)'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보다 하나의 팀으로 가동하는 게 바로 독일 대표팀의 강점이다. 이 힘을 바탕으로 독일이 월드컵 4회 우승과 유로 3회 우승을 비롯해 숱한 메이저 대회에서 매번 호성적을 올리며 유럽 팀들 중 가장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가장 많은 메이저 대회 우승과 최다 승이 모두 독일의 차지다.
분명 독일 축구사를 통틀어 개인 기량에서 슈바인슈타이거보다 앞선 인물들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슈바인슈타이거만큼 독일의 팀 컬러 'Die Mannschaft'를 대변하는 선수는 찾기 드물다. 이것이 바로 슈바인슈타이거가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로타르 마테우스 같은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유이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팀이 원하는 역할을 기꺼이 수행한 인물이다. 측면 미드필더에서 출발했으나 2000년대 중반 팀 사정상 왼쪽 측면 수비수도 소화한 적이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신에도 성공했다. 부상을 안고서도 2014 월드컵과 유로 2016 본선 출전을 감행했다.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음에도 대표팀 주장으로 벤치에서 어린 선수들에게 기를 복 돋우어 주었다. 희생의 아이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하기에 슈바인슈타이거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자 팬들과 동료들은 물론 많은 축구계 인사들이 그의 은퇴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공로를 치하했다.
8월 1일은 슈바인슈타이거의 32번째 생일이다. 마지막으로 슈바인슈타이거와 대표팀에서 함께 데뷔했던 절친 포돌스키의 작별 인사를 남기도록 하겠다.
"형제이자 최고의 친구, 동료, 룸메이트, 그리고 월드컵 챔피언에게. 우리는 (대표팀에서) 적어도 100경기 이상을 함께 했을 것이다.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 건 엄청난 영광이었다. 우리는 이를 입고 4번의 유로 본선과 3번의 월드컵 본선을 함께 했다. 나에겐 너와 함께 하는 매순간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우리의 가장 위대했던 순간은 바로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을 때였다. 우리는 이 우승과 함께 4번째 별을 달 수 있었다(주: 월드컵 우승 1회마다 대표팀 유니폼 엠블럼 위에 별이 달린다). 항상 리더로 있어줘서 고맙다. 조국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줘서 감사하다. 이 전설적인 셀카(하단 사진)의 일부분이 되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김현민 기자
골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