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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동쪽 모든 산에는 소나무가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산이 클수록, 그러니까 대관령의 깊은 산 속일수록 소나무가 더 많은 줄 아는데 실제 소나무는 깊은 산보다 아트막한 야산에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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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포대 소나무 숲속으로 이어지는 신사임당길.
- 어, 하실지 모르지만 이유는 간단합니다. 산이 깊으면 사람이 관리하기 힘듭니다. 소나무 숲을 침범해 들어오는 잡목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착같이 소나무 숲을 침범해 들어오는 나무가 신갈나무입니다. 아마 사람이 편을 들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100년 내 대관령 동쪽 산들이 대부분 신갈나무에 절반쯤 점령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계곡이 깊은 대관령 옛길 주변엔 소나무 외에도 신갈나무, 떡갈나무, 오리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등 온갖 활엽수의 잡목들이 함께 서 있지만, 대관령 아래쪽 야산에는 오직 소나무들만 서 있습니다.
신사임당길이 시작되는 위촌리 마을은 대관령 자락의 가장 아래쪽에 있는, 강릉에서는 시골동네의 대명사와 같은 마을입니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교 학생수가 20명쯤 되나마나 해서 면소재지의 학교에 곧 흡수돼 없어질 학교처럼 여겨지던 이 학교에 지난해에 40명쯤의 전학생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동안 학생수가 적어 두 학년이 합반 수업을 해왔는데, 어느 날 전교생의 두 배가 전학을 온 것이지요.
이 마을에 금광이라도 발견되었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이유는 우리나라의 이상한 영어열풍 때문이었습니다. 예전에 학생수가 자꾸 줄어들자 이 학교의 졸업생들이 이러다가 학교가 아주 없어질까봐 후배들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원어민 선생 한 명을 배치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방과후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해가 질 때까지 늘 이 원어민 선생과 함께 놀았고, 그게 몇 년이 지나자 시골학교 아이들이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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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경포호수에서 허균 허난설헌 생가터로 가는 길. 아래) 경포호수 옆 습지의 연꽃 군락지.
- 이 학교의 어떤 저학년 아이는 영어책을 읽지는 못하는데 영어로 온갖 말을 다하는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게 소문이 나고 텔레비전에 나오고 하자 강릉시내에서 엄마들이 이 학교에만 보내면 저절로 영어가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우르르 전학시킨 것입니다. 외지에서 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맹모도 있습니다. 조금은 씁쓸한 모습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 엄마들 모두 오늘날 교육열에 있어서는 자신을 또다른 사임당으로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아침마다 시내에서 이곳 시골학교로 아이를 등교시키는 엄마들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강릉시내에서 시골마을로 사람들이 들어오는 모습은 꼭 지금만이 아닙니다. 아주 예전에는 가을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강릉시내에서 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이긴 한데 어떤 날엔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이 수백 명이 되기도 했는데, 등에는 하나같이 지게를 지고 있었습니다.
40년쯤 전, 강릉시내조차 70%의 아궁이가 아직 연탄보다 화목을 때던 시절, 강릉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국유림이 바로 이 마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있는 산엔 주인이 지키니까 주인없는 국유림으로 산골의 나무꾼이 아니라 ‘시내의 나무꾼’들이 모여들였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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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찻길이지만 그윽한 멋이 있는 경포호수 길. 아래) 경포대의 신사임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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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이 율곡 손잡고 걸었던 길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E.H 카가 즐겨쓰던 농담인데,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 폭풍이 불어 도버해협이 막히면 영국이 대륙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륙이 영국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말이죠. 지난날 영국의 영화를 나타내는 말이겠지만, 제 어린 날 위촌리 마을과 강릉시 사이에 그 비슷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림서(지금의 산림청)의 산림간수가 위촌리 마을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목을 며칠만 지키면 당장 화목이 아쉬워 강릉시내에 생쌀을 씹는 집이 나왔다는 겁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그때 1,000명의 지게꾼들처럼 하루에도 수십 명의 배낭꾼들이 위촌리 마을에서 냇물을 따라 오죽헌과 선교장을 지나 경포대와 허균 허난설헌 유적지가 있는 초당마을로 나갑니다. 점심시간을 포함해 길을 걷는 여섯 시간 동안 오로지 푸르고 붉은(몸통이 붉어 금강송이라고 부르는) 소나무숲 사이로, 아름드리 소나무만 보고 걷는 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오죽헌에서 강릉시내로 길이 뻥 뚫리고, 또 강릉시내에서 대관령으로 자동차 도로가 이어지니까 옛날에도 강릉북촌 사람들이 이 길로 사람들이 대관령을 넘었거니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율곡이 태어나고 또 신사임당이 오래도록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오죽헌에서부터 대관령으로 가자면 지금의 강릉시내가 아니라 오죽헌 앞으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위촌리 마을과 금산마을을 지나 대관령 옛길을 올랐던 거지요. 여러분이 걷는 길을 사임당과 어린 율곡이 손을 잡고 걸었던 거지요. -
- 아버지가 태어난 집에서 아들이 태어나는 건 예전 일로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오죽헌은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어머니가 태어난 집에서 다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사람들은 오죽헌이 국가 보물(165호)로 지정된 것이 율곡 선생처럼 훌륭한 분이 태어난 집이라 그리 된 줄 아는데, 원래 이 집은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최치운이 지었습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 앞면 3칸 옆면 2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지붕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에 겹처마집으로 한 시대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배어 있는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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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죽헌 가는 길을 걷고 있는 강릉 바우길 탐방객들.
- 오죽헌 다음 들르는 곳이 강릉 선교장인데, 이곳은 사실 긴 설명이 필요없는 곳이죠. 조선시대 사대부의 저택으로 왕이 아닌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최대 규모의 99칸짜리 집인데, 규모야 둘러보면 아는 것이고 한 가지 재미있는 것 알려드리지요.
옛날의 이런 큰집엔 손님이 늘 들기 마련이고, 그러면 손님 신분과 친소관계에 따라 상중하로 분류해서 하급 손님은 행랑에 재워 보내고, 고급 손님은 당연히 사랑채(열화당)에 모시지요. 지금은 사람들마다 저마다 하는 일이 있으니 어딜 가도 그리 오래 있지 않지만, 예전에 이런 집들은 계절을 넘기는 손님들이 많았습니다. 금강산 유람을 가도 반년, 일년씩 걸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집이나 오래 묵다 보면 그만 갔으면 싶은 손님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점잖은 체면에 “이제 떠나시오”하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고, 이때 손님을 내보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상을 들여갈 때 상 위에도 법도가 있어 밥을 놓을 자리, 국을 놓을 자리, 반찬을 올리는 자리가 다 정해져 있는데, 어느 날 반찬 자리를 서로 바꾸어 올리는 것이죠. 그러면 나그네도 눈치를 알고 그만 일어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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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경포대와 경포호수. 아래) 죽헌저수지 옆 카페 구름 위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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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간 동안 소나무 사이로만 걸어
또 하나 지나가며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선교장의 상징이자 얼굴 같은 정자, 활래정입니다. 마루가 연못 안쪽으로 들어가게 지은 정자인데 이곳은 이 집을 찾은 최고의 손님과 주인이 함께 차를 마시던 곳입니다. 그런데 손님과 함께 차를 마시기 위해 이렇게 누마루까지 두고 있다면, 또 그런 공간이 이 정도 규모라면 부속 찻간이 있을 법한데, 우리나라는 어떤 정자도 따로 찻간이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반드시 손님이 보는 앞에서 차를 끓이지만 우리는 부엌이나 찻간에서 끓인 차를 손님이 있는 정자로 내왔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차를 가지고는 서로 의심할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옛집의 건물을 하나 보는 것도 이런 저런 사정을 살펴보면 그 속내가 더욱 깊고 재미있습니다.
사임당길의 마지막 종착지는 허균 허난설헌 유적공원이 있는 초당마을인데 조선 중기에 강릉에 큰 인재들이 많이 태어났습니다. 오죽헌에서 신사임당과 율곡이 태어나고, 호수 건너에서 허난설헌과 허균이 태어났는데, 사임당과 허난설헌을 비교하면 사임당이 60년 정도 빠르고, 율곡과 허균을 비교하면 율곡이 30년 정도 빠릅니다. 인생도 참 정반대로 살았던 사람들이지요.
이 사임당길은 이 길의 마지막까지도 온통 소나무뿐입니다. 허균 허난설헌 유적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을 강릉사람들은 예부터 ‘초당솔밭’이라고 불렀습니다. 경포팔경 중의 하나로 ‘초당취연’이라는 게 있는데, 경포대 누각에 올라 멀리 이곳을 바라볼 때 초당마을에서 저녁 밥짓는 연기가 이 솔숲 사이에 구름처럼 낮게 깔려 퍼지는 모습이 한 절경을 이루었다는 것인데, 이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사람들은 늘 이 솔숲에 감탄합니다.
대체 여섯 시간 소나무 숲 사이로만 지나는 길은 어떤 길일까? 만약 오신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생애에 그 하룻동안 가장 많은 소나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날 밤 꿈에서도 소나무가 그대를 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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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길 (16.4km 소요시간 6시간)
■ 구간정보
· 출발지-송양초등학교
위촌리 송양초등학교-좌측 산길-구름 위의 산책- 죽헌 저수지-오죽헌-선교장-시루봉-경포대-허균 허난설헌 유적지
교통
■ 자가용·전세버스
· 서울방향- 영동고속도로 - 강릉 톨게이트 - 톨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10m 앞 우측 도로공사 사무실로 가는 길로 위촌리 송양초등학교 방향
· 강릉방향- 강릉 시내에서 강릉문화원- 문화원 앞에서 위촌리 굴다리 통과 -송양초등학교 방향
위촌리-송암-즈므-한밭-오죽헌-강일여고 입구-제일고 앞-용강동-신영극장-강여고-월드컵교-강농고-입암 4, 5주공-공단
버스번호 : 512-1(하행)-평일시간표 : 15:40 17:40 19:40
버스번호 : 512-2(시외·고속터미널 경유)- 평일시간표 : 06:20 08:35 13:40
/글 이순원 바우길 탐사단장 | 사진 이기호 바우길 탐사대장 - 출처 : 월간 산 9월호 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5/201009150173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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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운영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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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돌님...이 글은 바우길 완전한 홍보자료용 같습니다.*^^*
월간산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면 바우길 내부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을듯 합니다.
제블로르에 스크랩합니다요.^^*
참돌님...제 개인블러그로 옮겨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