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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들 중에서 갈혁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문과의 인연을 끊고 살았
다 시피 했기에 사도명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갈혁천의 전갈
을 받고 본문으로 달려왔을 때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들의 앞
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사도명을 처음부터 안 좋게 보아
왔던 그들이었고 강운에게 손을 쓸 때 사용한 사악한 기운이 결정적
으로 원로들의 비위를 건드렸었다.
내공이 실리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이미 심각한 내상을 입고 전혀 치
료다운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던 사도명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본문 제자의 썩어 있는 정신을 개조시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던 원로들이었지만 그의 내상이 생각보다 심하다는 생각에
모두들 조금씩 힘을 빼고 사도명의 전신을 격타해 나갔던 것이다.
원로들의 손이 멈추게 된 것은 사도명이 단발마의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축 늘어뜨린 채 혼절을 했을 때였다.
“그만! 할아버지들 죽이면 안 돼. 그놈은 내가 좀 더 연구를 해봐야 된
단 말이야. “
강운의 외침과 동시에 원로들은 손을 멈추었고 바닥에는 혼절한 상태
임에도 연신 피를 쏟아내고 있는 사도명이 있었다.
“저놈 데리고 가서 치료해 줘. 아직은 죽으면 안 되니까.. “
힘 없이 축 늘어져 들것에 실려 나가는 사도명의 모습을 무심한 눈길
로 바라보던 강운은 고개를 돌려 아직까지도 오체투지 하고 있는 화
운문의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이제 그만 해산! “
“조사령주님 무슨..? “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원로들에게 강운은 짤막하게 대답
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저 사람들 이제 그만 돌려보내라고요. 나 이제 할일 있으니까.“
원로들에게 짤막하게 대답을 한 강운은 몸을 돌려 아직도 상춘곡의
배위에서 개거품을 물고 있는 백호를 안아 들었다.
“백호야! 백호야! 그만 정신 차려! “
[으응? ]
“정신 차리라고! “
자신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는 강운의 손길에 백호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던 백호는 이내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영감탱이.. 크큭! ]
“그만하고! 백호 너한테 부탁할 거 있어. “
사뭇 진진해 보이는 강운의 태도에 백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았다. 특별히 강운이 신경 써야할 일은 없는 듯 보
였지만 그의 태도는 평소와 조금 틀렸다.
[백호 너 저기 지붕위에 까만 새 보이지? ]
강운이 따로 방향을 지시하지 않았지만 백호는 직감적으로 방향을 잡
아 그곳을 바라보았다.
[응. 까마귀잖아? ]
[그래. 근데 저놈 보통 놈이 아니거든.. 아까부터 나를 유심히 관찰하
고 있던 놈이야.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지만 뭔가 꺼림칙 하니까
백호 너가 좀 나서줘야겠어. ]
강운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까마귀를 관찰하던 백호는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영물은 영물을 알아보는 법이니
까 말이다.
[정말.. 이상한데.. 운아 내가 가서 잡아올까? ]
[아니야! 내 말 뜻은 혹시 저 새 하고 암흑계 놈하고 무슨 관계가 있
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백호가 미행을 좀 해줬으면 해서 말이야. 괜
찮겠어?]
약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운에게 백호는 가볍
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침 까마귀가 지붕에서 날아오르자 강운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보통의 새하고는 틀리다고 생각했지만 그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하늘을 날아올랐을 때 이미 까만 점으로 변해 멀어져 가고 있는 까마
귀의 모습이었지만 백호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강운의 손등을 핥아주
었다.
[운아 걱정하지 마. 저런 까마귀 따위를 놓칠 이 백호님이 아니거든.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봐야겠군. 운아 갔다올 게! ]
백호 역시 강운에게서 빠져 나와 까마귀가 날아간 방향으로 하얀 빛
무리를 남기며 사라져 버렸다. 강운은 이제 하얀 점으로 변해버린 백
호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했다.
[백호야! 혹시 해서 하는 말인데 만약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돌아와야
돼. ]
아직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던 화운문의 제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백호의 엄청난 신위를 목격한바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엄청난 빠르기
에는 또 한 번 입을 크게 벌린채 경악을 해야 했다.
멍한 표정으로 백호가 달려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은 그들 뿐
만이 아니라 추남과 화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 운아! “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추남에게 강운은 고개를 돌려 의문을 표했다.
“혹시 저 강아지 운이 네 것은 아니겠지? “
“백호? 물론 아니지. 내 친구야. “
더욱 기가 막힌 대답이 아닐 수 없었지만 추남은 더 이상 강운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아니 던 질 수 없었다.
‘세, 세상에.. 어떻게 저 따위 강아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