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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 장 하나님을 대표하는 그리스도인들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생애와 품성에서 이런 원칙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상의 습관, 습성 및 행습으로부터 분리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저들로 당신께 가까이 나오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저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성취하고자 하시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때에 저들을 통하여 성취하시고자 하셨던 그 목적과 동일한 것이다.
교회에 나타난 바 양선과 자비와 공의와 하나님의 사랑을 봄으로써 세상은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나심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이와 같이 생애 가운데서 예증될 때에 세상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섬기는 자들이 세상의 모든 다른 백성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된 각 사람을 눈여겨보고 계시며 각 사람에 대한 당신의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당신의 거룩한 교훈을 실천하는 자들이 뛰어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목적이시다. 영감의 영을 통하여 모세가 기록한 다음의 말씀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그리하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해당된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의 형성
기독교 신앙은 이를 받아들인 자의 품위를 결코 떨어뜨리거나 거칠고 난폭하게 하거나 무례하고 거만하며 성급하며 강퍅케 하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그것은 취미를 세련시키고 판단력을 성화시키며 생각을 순결하고 고상하게 하여 저들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이끌게 한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가장 고상한 인간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율법에서 당신의 품성의 사본을 주셨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끊임없는 향상의 길이 열려 있다. 우리에게는 획득해야 할 표적, 도달하여야 할 표준이 있는 바 이 표적과 표준은 선하고 순결하고 고상하고 고결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품성의 완전함을 향하여 계속적인 분투와 앞과 위로의 끊임없는 전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각각 우리의 현재의 습관에 따라 현세와 내세를 위한 품성을 형성할 것이다.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고 모든 의무 수행에 신실한 자들의 생활은 빛나는 광명과 같아서 다른 사람들의 길 위에 밝은 광채를 비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불신실한 습관에 빠지거나 방종하고 게으르고 태만한 습관을 허용하여 굳어버리게 한다면 밤중보다 더 어두운 구름이 금생에서의 전도에 드리울 것이요 그 사람의 미래의 생명에도 영원한 방해를 끼칠 것이다.
영생의 말씀에 유의하는 자는 복이 있다.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될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존경과 칭찬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보기에 귀중할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오늘을 용기 있게 살라
마음 속에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를 슬기롭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진리를 믿고 순종함으로 그대는 오늘의 의무와 시련을 넉넉히 감당할 만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대에게는 내일을 위한 은혜가 필요되지 않다. 그대는 다만 오늘에만 관계하고 있다고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을 위하여 이겨라. 오늘을 위하여 자기를 부정하라. 오늘을 위하여 깨어서 기도하라. 오늘을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 승리를 거두어라. 우리의 주위 환경 우리 주위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변화. 만물을 식별하고 증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런 것들은 우리의 의무와 또 날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에 넉넉하다. 그대가 아무런 유익도 받지 못할 생각의 통로에 그대의 마음을 달리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당장은 지긋지긋하나 어차피 어떤 사람이 하여야만 하는 일상 생애의 의무들을 행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주위에 있는 무서운 악, 도처에 있는 반역과 허약에 그들의 눈을 고정시킨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마침내 슬픔과 의심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이런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은 맨 먼저 대 기만자의 교묘한 역사를 마음으로 생각하며 그들의 경험에서 용기를 쉽게 하는 것들을 숙고하는 한편 하늘 아버지의 능력과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은 보지 않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의도하는 그대로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능력을 작게 생각하면서 의의 원수가 그처럼 큰 능력으로 옷 입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대하심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사단의 손아귀에서 우리 자신을 구출해 내기에 전혀 무력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정해 놓으셨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께서는 그 싸움을 우리를 위하여 싸울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우리의 연약함과 배교에 대하여 끊임없이 곰곰이 생각하고 사단의 능력을 한탄할 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영적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명시된 조건들과 일치되게 당신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고 또한 구원하신다는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하나의 산 원칙, 곧 우리를 위하여 행해진 희생 제사의 효력으로서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의 편에 두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속죄의 피를 통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보증을 갖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길을 이끄시는 곳으로 걸어간다. 그분은 사단이 우리의 길에 던지는 어두운 그림자를 제거해 버릴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흑암과 낙담 대신에 그분의 영광의 햇빛이 우리의 마음속에 비추게 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하게 된다. 하나님과 우리 구주의 사랑을 깊이 생각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의 완전함을 명상함으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주장함으로 우리는 동일한 형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갖 불쾌한 그림들-범죄와 타락과 실망, 사단의 세력에 대한 증거들을 함께 모아서 우리의 기억의 방에 걸어 두고 그것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탄식하기를 마침내 우리의 심령이 실망으로 충만해 질 때까지 해서는 안 된다. 낙담한 한 영혼은 흑암의 사람이며 그 자신 스스로 하나님의 빛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빛이 비취지 못하도록 막아 버린다. 사단은 그의 승리의 그림들의 효과를 보기 좋아하고 사람들을 믿음 없고 낙담되게 만든다.
이기심 없는 생활로써 하나님을 나타내라
최대한도로 방종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여 그렇게도 많이 전염하는 영적 질병을 낳게 하는 죄는 곧 이기심이다. 자기 부정 이외의 방법으로 주께 돌아갈 수 있는 길이란 없다. 우리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힘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남에게 선행을 하는 생애를 살 수 있고 이런 방법으로 이기심이라는 악에서 피하게 된다. 우리는 유용하고 이기심 없는 생애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자 하는 욕망을 표시하기 위하여 구태어 이방 땅에까지 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교회에서, 또는 우리가 교제하는 사람들이나 사업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이것을 행하여야 한다. 자아를 부인하고 순종시켜야 하는 곳은 바로 일상의 평범한 생애 가운데서 있어야 한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하는 것은 생활의 작은 사건에 있어서 날마다 자신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선행하기를 원할진대 자기를 잊어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타인에 대한 사랑이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저들은 저희 의무를 신실히 수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하늘나라에서는 자기를 생각하거나 자신의 쾌락을 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직 깨끗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모두 저들 주위에 있는 하늘 거민들의 행복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가 만일 새로 지음을 받은 땅에 있는 하늘 사회에서 즐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의 원칙으로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나는 우리에게 확실하고 실수가 없는 모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넘어지기 쉬운 사람들을 모본으로 삼아 우리들 상호간에 비교하는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이나, 사람들의 의견이나, 우리가 진리를 받아들이기 전의 우리의 상태에 의하여 헤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의 우리의 믿음과 위치는 현상태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한 후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향상했다면 도달되었을 그 상태와 비교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할 유일하고 안전한 비교이다. 그 외의 모든 다른 비교는 자아 기만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덕적 특성과 영적 상태가 그들에게 주어진 축복과 특권과 빛에 상응하지 않으면, 그들은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천사들의 보고를 듣게 될 것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무엇이 성령을 거역하는 죄가 되는가? 그것은 고의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역사를 목격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그 일이 성경과 일치된다는 것과, 성령께서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그의 마음에 증거해 주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유혹을 받아 타락한다. 교만, 자부심, 그밖의 다른 악한 특성이 그를 지배한다. 그리하여 그 역사의 거룩한 특성에 대한 모든 증거를 거절하고, 그는 그가 이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했던 것이 사단의 능력이였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의 매개를 통해서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성령을 거역하고 그것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주장하면 하나님과의 교통의 통로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즐겨 저들에게 주신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비취고 있던 빛을 꺼 버린다. 그 결과로 그들은 어둠에 묻히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말씀, 곧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라고 하신 말씀이 입증된다. 이 죄를 범해 온 사람들이 한동안은 하나님의 자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품성을 나타낼 환경을 만나서 그들이 어떤 형태의 정신에 속한 사람인지를 보이게 될 때, 그들이 원수의 땅에 있다는 것, 검은 깃발 아래 서 있다는 것이 발견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시인하는 것과 부인하는 것
사회나 가족이나 혹은 우리가 당면하는 어떤 생활 관계에서 제약을 받거나 혹은 제약받음이 없이 자유로이 사귈 때에는 우리가 우리의 주님을 시인하든지 부인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 곧 남을 욕하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나 익살이나 농담을 함으로써, 혹은 쓸데없고 불친절한 말로써 혹은 거짓말을 하여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말로써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고백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성격 면에서 안일을 사랑한다든가 혹은 우리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가 감당해야만 되는 생애의 의무와 부담을 피함으로써 또는 죄된 쾌락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의복의 자랑과 세상을 따라감으로써 혹은 무례한 행동으로써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사랑하거나 자기를 주장하고 정당화시킴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의 통로에 마음을 두게 허용하거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어려운 처지와 시험을 당한다고 생각함으로써 주님을 부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이 자기 속에 살아 있지 아니하다면 아무도 세상 앞에서 그리스도를 참되게 시인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을 전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말과 행동은 마음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에 대한 실제적이고도 눈에 보이는 표현이라야 한다. 만일 마음이 성화되고 유순하며 겸손하다면 그 열매가 외관에 나타날 것이요 그 열매야말로 그리스도를 매우 효과적으로 시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 12 장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님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지 아니하고 세상을 닮아 가는 우리의 위험을 보았다. 우리는 지금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 위에 와 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시대의 종말을 지연시키도록 하는 것이 영혼의 원수의 목적하는 바이다. 사단은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임을 공언하면서 우리 구주께서 권세와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시고 두번째 나타나시는 것을 기다리는 자들을 공격할 것이다. 사단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악한 날을 연장시키게 하고 세상과 같은 정신이 되어 그 습관을 모방하게 할 것이다.
나는 진리를 믿노라고 크게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세상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에 놀랐다. 저들은 이기심과 자아 방종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으나 참된 경건과 진정한 성실성을 계발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성실성
모든 사업상 거래에 있어서 엄격하게 정직하라. 아무리 유혹을 받을지라도 가장 작은 일에서까지 결코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때때로 본성적인 충동이 똑바르고 정직한 길에서 돌이키게 하는 시험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말라. 만일 그대가 어떤 일에 대하여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한 후에 자신은 손해를 보고 남에게 이익을 주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라. 그대가 약속한 것을 이행하라.
성경은 가장 강경한 말투로 모든 거짓, 거짓된 거래, 부정직 등을 규탄하고 있다. 거기에는 옳고 그른 것이 분명히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들을 원수의 땅에 두는 것을 보았다. 저들은 원수의 유혹에 넘어가서 저희 감각이 두려울 정도로 무디어지기까지 요구를 조금 변경시키는 것은 결국 그다지 죄된 일로 생각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기백만을 가지고 있는 재산가가 범하든 혹은 거리의 거지가 범하든 간에 죄는 죄이다. 거짓 주장을 가지고 재산을 얻은 자들은 저희 영혼에 정죄함을 받게 하고 있다. 기만과 사기로 얻은 모든 것은 다만 이를 받는 자에게 저주가 될 것이다.
거짓을 말하거나 속임을 쓰면 그는 스스로의 자존심을 잃어버린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모든 사업상 거래를 알고 계신다는 것과, 거룩한 천사들이 그의 동기를 헤아리고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과, 그의 상급은 그의 행위에 따라 정해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잘못된 행동을 인간과 하나님이 살펴보지 못하도록 감출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과 품성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행동이 품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다음 번의 유혹을 더욱 쉽게 받아들이게 해주고, 마침내 사업에 있어서의 거짓말과 부정직이 형성되어 그 사람을 신임할 수 없는 데 까지 이르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깃발 아래서 당신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강직하며 그 품성이 탓할 수 없으리만큼 되어 저희 혀는 진리가 아닌 것은 모양이라도 말하지 않기를 원하신다. 혀는 진실하여야 하며 눈도 진실하여야 하며 행동은 아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칭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내가 네 행위를 안다고 엄숙히 선언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목전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의 눈이 항상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 우리는 한 가지 불의한 거래의 행위라도 하나님 앞에서 가리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위를 목도하신다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깨닫는 사실이다.
신자-사업상의 보다 훌륭한 사람
그리스도의 판단에 의하면 정직한 사람이란 굽히지 않는 성실성을 나타내는 사람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저희의 이익을 올리기 위하여 중량을 속이고 저울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의 가증히 여기시는 바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속이는 무게와 속이는 저울로 거래를 하고 있다. 사람이 하나님과 진정으로 교제하고 당신의 율법을 진실로 지킨다면 그의 생애가 그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그의 모든 행동이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익을 위하여 그의 명예를 팔지 않을 것이다. 그의 원칙은 확실한 터 위에 세워졌으므로 세상 사물에 대한 그의 처신은 곧 그의 원칙을 그대로 옮긴 사본이다. 굳건한 성실성이 세상의 찌끼와 쓰레기 가운데서 금과 같이 빛난다.
기만과 속임과 불신실함이 사람의 눈에는 광택이 있어 보이고 가리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렇지 아니하다. 품성의 계발을 감찰하고 도덕적 가치를 달아보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품성을 드러내는 이런 작은 거래들을 하늘 책에 기록한다. 노동자가 일상 생활의 직업에서 신실하지 못하고 그의 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고 가정할 때에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사업상의 표준을 따라 그의 신앙상의 표준을 평가한다면 그를 잘못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곧 임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일상 생활의 사업을 등한히 하거나 부주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으로서는 사업에 게을리하지 못 할 것이요 부지런하여질 것이다. 저들은 사업을 부주의하고 부정직하게 하지 않을 것이요 충실하고 신속하며 철저하게 행할 것이다. 이생의 사물에 대해서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것이 바로 저희의 영성과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라고 내심으로 생각하는 자들은 큰 기만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저희의 성실, 충성 및 신의는 세속적인 사물에서 시험을 받고 드러나게 된다. 저들이 만일 가장 적은 일에 충성된다면 많은 일에도 충성할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시험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것을 보았다. 저들은 저희의 참된 품성을 현세적인 사물을 취급함으로써 계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저희 동료 인간들과의 거래에 있어서 불신실함과 음모와 부정직을 드러낸다. 저들은 장래의 영생을 붙잡는 길이 저들이 이생의 사물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과 가장 엄격한 성실성은 의로운 품성을 형성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정직은 …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뜨뜻미지근한 원인이 되고 있다. 저들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다.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 가운데도 놀랄 정도로 정직이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말하기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업상 세상과의 결함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사업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기량이 없다. 그들이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하므로, 사단이 그들을 이용한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그런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 있어서 무지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에 믿을 만한 판단력을 가진 형제들과 의논할 만큼 겸비해져야 한다. 나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성경절을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판단력이 있는 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계획을 세워 주도록 허용할 만큼 겸손하지 않으므로, 마침내 그들 자신의 계획을 따르고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형제들의 권면과 판단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때는 짐이 처음보다 훨씬 더 무거워진다. 형제들은 피할 수만 있으면 법정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원수가 그들을 얽어매고 어렵게 만드는 데 더욱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손해를 보더라도 상호간에 합의하는 것이 더욱 낫다.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불신자들을 위하여 보증서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을 보았다. 나는 다음의 성경절들을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이 되지 말라,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하여도 보증이 되기를 싫어하는 자는 평안하니라. 불성실한 청지기!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 곧 그들의 하나님 아버지께 속한 것들로 보증을 선다. 사단은 그의 백성들이 보증을 서는 자들의 손에서 재산을 빼앗는 일을 돕고자 준비하고 있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불신자들과 동업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외인들의 말을 지나치게 많이 신뢰하고 요청하지 않아야 할 때도 그들의 충고와 권면을 요청한다. 원수는 그들을 그의 대리자로 삼아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어렵게 만들고 그 백성들의 것을 약탈한다.
제 13 장 성 경
성경 가운데는 수많은 진리의 보석이 피상적인 탐구자에게서부터 숨겨져 있다. 진리의 광산은 결코 고갈됨이 없다. 그대가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면 할수록 그대의 흥미는 더하여 질 것이요, 바울처럼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하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하여 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은 완전히 일치된다. 받아들이고 순종할 것 같으면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빛 안에 거하시는 것처럼 빛 안에서 행하기를 즐겨하는 모든 사람의 발을 인도하는 확실한 길을 열어 준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이 곳 지상에 있는 교회 안에 천국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위하여 열심을 내고 주린 것처럼 갈급할 것이다. 저들은 성경의 이 말씀과 저 말씀을 비교하고 그 말씀에 대해서 명상하기 위한 시간을 갈망할 것이다. 저들은 조간신문이나 잡지나 소설을 구하기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구하는 데 더 열심을 낼 것이다. 저희의 최대의 욕망은 하나님의 아들의 살을 먹는 것이요, 그 피를 마시는 일일 것이다. 그 결과로 저희의 생애는 성경 말씀의 원칙과 허락에 일치하게 될 것이다. 성경의 교훈은 저들에게 마치 생명 나무의 잎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소생시키는 은혜의 우로는 영혼을 소생시키고 회복시켜서 저들로 모든 수고와 피로를 잊어버리게 할 것이다. 저들은 영감의 말씀으로 힘과 용기를 얻을 것이다.
성경은 광범위한 문체와 논제를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끌며 각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성경의 페이지들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 가장 진실한 생애를 산 사람들의 전기,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고 가족을 다스리는 원칙들, 곧 사람의 지혜로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탁월한 원칙들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가장 심오한 철학, 가장 아름답고 숭고하고 감격적이며 참으로 감상적인 시가 담겨 있다. 이것만 생각해도 성경의 내용들이 어떤 인간의 저서보다도 탁월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숭고한 중심 사상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성경은 더 넓고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으로 성경을 대할 때, 성경의 모든 주제들은 새로운 의미를 제시해 준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여진 진리 가운데, 하늘처럼 높고 영원한 사물을 깨닫게 하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매일 그대들은 성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성경을 탐구하라.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글을 깨닫기 위한 지혜와 명철을 구하라. 만일 그대들이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미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들은 진리와 관련된 주제에 관하여 새롭고 귀중한 빛을 받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성경은 그대들의 평가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얻게 될 것이다.
받아들여진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세속과 타락에서부터 돌이켜 고양(高揚)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본연의 모습대로 인식한다면 노유를 막론하고 유혹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내적인 청렴함과 원칙에 대한 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부지런하고 계통적으로 연구하라
부모들이여, 만일 그대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에서 선행을 하도록 교육하기를 원한다면 성경을 그대의 교과서로 삼으라. 성경은 사단의 궤계를 폭로시킨다. 성경은 인류의 위대한 도덕적 승강기요, 사악함을 견책하는 자이며 시정하는 자요, 우리들로 참 것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게 하는 파숫꾼이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다른 어떠한 것을 가르칠지라도 성경은 크신 교사로서 첫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성경을 이러한 위치에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그대를 위하여 자녀들을 회개하게 하는 일에 역사하실 것이다. 이 거룩한 책 속에는 진리와 아름다움의 값진 광물이 있으므로 만일 부모들이 성경을 자녀들에게 매우 흥미롭게 하여 주지 아니한다면 그 책임은 부모들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시험하는 자가 속임수로 접근하여 왔을때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셨던 유일한 무기는 기록하였으되라는 말씀이었다. 성경의 진리의 가르침은 모든 부모들이 착수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명랑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아이들 앞에 제시하라. 아버지, 어머니로서 그대는 인내와 친절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고 자녀들이 그대를 따르게 함으로써 일상 생애에 있어서 자녀들에게 실물 교훈이 될 수 있다. 저희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행하도록 허락하지 말고 그대의 할 일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임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어라.
그대의 가족들이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규칙을 준수하라. 속세적인 성질의 것을 게을리 하는 일은 있을지언정, … 반드시 영혼은 생명의 떡을 먹도록 하라. 매일 명랑하고 사교적인 방법으로 한 시간이나 반 시간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하여 바치는 결과가 얼마나 유익한지를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상이한 시간에 여러 가지 환경 밑에서 그 해당되는 주제에 관하여 언급된 모든 말씀을 한데 종합함으로써 성경을 자기 자신의 해석자로 삼으라. 손님이나 방문객 때문에 그대의 가정 수업을 중단하지 말라. 만일 그들이 공부하는 도중에 오면 공부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라. 세상의 이익이나 쾌락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얻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나타내게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매일 부지런히, 경건하게 연구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어떤 아름다운 진리를 새롭고, 분명하고, 강력한 빛 속에서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고 싶으면 성경을 그대의 안내자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은 저희가 따라야 할 모형으로서 제시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과오를 범하면 주님께서 그와 유사한 죄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를 그들에게 읽어 주라. 이 사업에는 끊임없는 보호와 근면이 필요하다. 부모들이 묵인하거나 교사들이 시정하지 아니한 한 가지 그릇된 특징이 온 품성을 저락시키고 불안정하게 할는지도 모른다.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곧 새로운 취미가 조성되고 새로운 동기가 고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라. 저희는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을 잘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을 읽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계발하심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저자의 성품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자들이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신비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창조주에게로 우리의 마음을 이끈다. 그것은 인간 역사를 다 포함하고, 오직 끝없는 영원의 주기에서 성취될 그분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정부와 인간의 운명에 관련된 무한히 깊고 주요한 주제들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 그리스도의 성육신, 중생, 부활, 그외에 성경에 제시된 많은 주제들은 너무 심오해서 인간의 마음으로 설명하거나 완전히 깨달을 수 없는 오묘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하나님의 특성에 속한 것이라는 충분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섭리에 속한 모든 오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만일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업적들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고, 그 경지에까지 이른다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 찾아낼 진리가 없고 지식 안에 자라나지 않고, 정신과 마음이 더 이상 계발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더 이상 최고의 분이 되지 못하시고 사람들은 지식과 달성의 한계점에 이르러 향상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께 감사하자.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그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영원 무궁토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배울지라도, 그들은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결코 고갈시킬 수는 없다.
성령의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을 왜곡하거나 잘못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 성경을 많이 읽지만 유익이 없고 많은 경우에 분명한 손해가 되는 수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과 기도 없이 펼 때, 사상과 애정이 하나님께 집중되지 않거나 그분의 뜻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마음은 의심으로 흐려지고, 바로 성경 연구 자체가 회의론을 강화시킨다. 원수가 사상을 사로잡고, 옳지 않은 해석을 하도록 시사한다.
성경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노유를 물론하고 모두 성경을 소홀히 여긴다. 성경을 저희의 학문 곧 저희 생애의 규칙으로 삼지 아니한다. 특히 청소년들이 이 태만의 죄를 범한다. 대부분이 다른 책들을 읽는 데는 시간을 내지마는 영생의 길을 지시하여 주는 책은 날마다 연구하지 않는다. 성경을 등한히 하면서도 쓸데없는 이야기 책은 정성을 들여서 읽는다. 성경책은 보다 더 높고 거룩한 생애로 이끌어주는 우리의 안내자이다. 만일 청년들의 상상력이 가공적인 이야기책을 읽음으로써 왜곡되지 아니하였다면 저희가 일찌기 읽었던 책 중에서 성경을 가장 흥미 있는 책이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우리는 큰 빛을 받은 백성으로서 우리의 습관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가정 생활과 사교에 있어서 고결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정의 안내자로서 첫째 자리에 모시라. 모든 고난을 만날 때의 상의자와 모든 행동의 표준으로 여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곧 의의 지혜가 주관하지 아니한다면 가족 사회의 어느 영혼에게도 참된 번영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형제 자매들은 얼마나 확신하고 있을까? 부모들은 마치 하나님의 사업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것 같은 게으른 습관으로부터 저희의 마음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다. 진리의 능력이 가정에서 성결하게 하는 힘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죄의 오점에서 정결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구속주로 믿는 믿음을 교훈받아야 한다. 이 믿음은 교훈과 믿음을 통하여 날마다 가르쳐야 한다.
성경 연구는 지력을 강화시킨다
만일 성경을 마땅히 연구하리만큼 연구한다면 사람들은 지적으로 풍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취급된 주제들, 단순하면서도 위엄 있는 어조, 마음에 새겨지는 고상한 논제들은 다른 것으로는 함양될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을 계발시킨다. 성경 안에는 명상을 위한 무한한 분야가 전개되어 있다. 이를 연구하는 자는 그 광대한 주제들을 명상하고, 그 고상한 표현과 접촉함으로써 인간이 만든 작품, 비록 그것이 인간을 경박하게 하는 주제의 내용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런 것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사상과 감정에 있어서 더욱 순결하고 고상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청소년들이 무시할 때 그들의 지력은 가장 고상한 성장을 이룩할 수가 없다. 착한 마음을 가지며, 안정성과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도 적은 까닭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신앙의 원칙을 마땅히 실천하리만큼 실천하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지적 능력을 계발시키고 튼튼하게 하여 주는 온갖 방법을 이용하기를 원하신다. … 우리가 만일 성경을 더 많이 읽고 그 진리를 더욱 잘 깨닫는 다면 우리는 훨씬 더 계발되고 총명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성경의 페이지들을 탐구함으로써 영혼의 힘이 공급된다.
성경의 가르침은 현세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인류의 번영에 필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국가 번영의 초석이 되는 원칙들, 곧 사회의 안녕과 가정의 방벽이 되는 원칙들을 제시한다. 이 원칙들을 도외시하고는 아무도 현세에서 유용함과 행복과 영예를 얻을 수 없고 장래에 불멸의 생명도 얻을 수 없다. 성경의 가르침이 필수적인 준비가 되지 않는, 인생에서의 지위나 인간의 경험 분야는 철학을 면밀히 연구한 것보다 더 뛰어난 강력하고 활동적인 지성인들을 배출할 것이다.
성경 각 책에 계시된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의 능력이 사람들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약 성경이 공개된 능력의 복음인 것처럼 구약 성경도 바로 표상과 그림자로 나타난 복음인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신약 성경은 새로운 신앙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구약 성경이 신약으로 말미암아 대치된 신앙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신약 성경은 오직 구약의 전진이요 설명인 것뿐이다.
아벨은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이었고 베드로나 사울이 구원함을 받은 것처럼 바로 예수의 능력으로 구원함을 받았다. 에녹은 바로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이 그리하였던 것처럼 분명히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대표자였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기별이 위탁되었었다.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 … 하려 하심이라. 에녹이 전파한 기별과 그가 하늘로 올라간 사실은 그 당시에 살던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한 논증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므두셀라와 노아가 의인은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하여 힘있게 사용할 수 있었던 논증이었다.
에녹과 동행하신 그 하나님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였다. 예수께서 오늘날 세상의 빛이신 것과 똑같이 그 당시에도 세상의 빛이셨다. 그 당시에 살고 있던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칠 교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노아와 에녹은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복음은 레위기에 교훈으로 주어졌다. 그 당시도 그리하였지만 오늘날에도 전적인 순종이 요구된다. 우리가 이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요긴한 일인가!
교회의 부족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그 대답은 이러하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성경의 말씀에서 떠나도록 허용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는다면, 그리고 그 말씀을 존경과 공경함으로 대한다면 그 많은 반복된 증언이 전하여질 필요가 없을 것이요 성경의 단순한 선언은 받아들여지고 실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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