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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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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작품 1 | 수채화 같은 만남 |
대표 작품 2 | |
수상연도 | 2009년 |
수상횟수 | 제28회 |
출생지 | 충북 진천 |
[수상 작품]
수채화 같은 만남 / 손상희
며칠 전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자기를 모를 거라며 이름을 댔는데 역시나 전혀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나를 사실은 모른다며 친구 O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우리 동창 중에서 최고 엘리트였고 학교운영위원회 회장이었는데 그를 모른다고 하면 동창이 아니거나, 간첩이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그가 껄껄 웃으며 당신들은 서로 그런 말을 하니 동창들임에 틀림없는데 자기만 미미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고 했다.
모르는 동창이었지만 O와 함께 만나자는 제의를 받고 당황스러우면서도 무언가 청량한 충격이 일면서 선뜻 수락을 하였다.
애년의 이 나이에도 학창시절의 청순함이 남아있었던지 동창을 만나러 나가는 일이 몹시 가슴 설레었다. 만나서 할 이야기도, 회상할 추억거리도 별로 없는 동창들이 반세기 만에 만나는 것이니 그때의 풋풋한 모습을 찾을 수도 없을 테고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면 얼마나 낭패일까 걱정을 하며 조금 일찍 만남의 장소에 도착하였다.
그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순간 아! 홍안의 천진했던 옛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중후한 연륜 속에서 읽어낼 수가 있었다. O의 인상적인 진한 눈썹과 소년티는 없어졌어도 희끗희끗한 머리칼 밑에 주름이 생겼는데도 그때의 모습이 남아있었다. 수줍어서 서로 말도 못하고 복도를 스칠 때에도 외면을 하며 지나쳤고 교정에서나 통학로에서 마주 칠 때에도 서로 아는 체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던 50년대의 쑥스러운 동창들이었지만 추억 속에서는 존재해 있었던 것 같다.
반갑다며 옛날의 내외하던 수줍음을 떨어버리고 손을 덥석덥석 잡으며 흔들어댔다. 참으로 오랜만에 빛바랜 도화지 위에 맑게 그린 투명한 수채화처럼 우리들의 만남은 아름답게 이루어졌다. 반세기가 되도록 각자의 삶에 충실했고 이제 은퇴를 하여 황혼에 선 우리들의 극적인 만남은 우연이라기보다 축복인 것 같았다. 이 만남은 아름다운 인연의 끈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한 친구가 은퇴 후 무료한 나날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청계천 헌 책방과 서점가를 돌면서 좋은 책을 구해서 독서로 소일을 하던 어느 날 서점의 서가에서 제목에 이끌려 뽑아든 수필집이 바로 98년에 상재한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 내 수필집이었다고 했다.
작가의 프로필에서 출신학교가 같았고 책을 읽으며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같은 세대라는 생각에 동창회 명부를 꺼내 이름을 확인하니 바로 동창이어서 너무나 반가웠다고 했다. 자기는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었지만 O가 들려주는 나의 학창시절의 모습을 그리며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지척에 살면서 문화 활동을 공유할 수 있는 동창들의 만남이 참으로 아쉬웠는데 이 기회에 그런 만남을 주선하고 싶었다고 했다.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우리는 만나서 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식사를 하면서 차를 마시면서 끊임없이 학창시절의 추억담이며 현재의 인생이야기며 지난 스승님들의 촌극이며 주변에 있는 동창들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무궁무진한 대화를 이끌 수 있었다. 더구나 O와 나는 학생회 간부로서 겪었던 공유한 사건이 너무나 많아서 이야기가 누에고치처럼 풀려나왔다.
우리 세 사람은 문단에서 적으나마 활동을 하고 있어 더욱 친밀함을 느끼며 주변 동창들 중 문화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과도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다음 달에는 동창 한 사람이 인사동 갤러리에서 문인화 개인전을 열어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헤어질 때 그 친구가 넌지시 동창 S의 소식을 물어왔다. 그녀는 성악을 하던 친구로 학교 행사 때나 예술제에서 늘 독창을 부르던 성악가이다. 그의 우람찬 메조소프라노로 김천애의 가곡을 부르던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았다며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한다. 그 말은 다음 만남에는 그를 꼭 데리고 나오라는 주문처럼 들려 왔다.
“아 가을인가”, “산들바람” 등 그의 노래가 귓전에 울리는 듯 추억 속으로 달려간다. 순진한 소년의 가슴에 S의 모습이 각인되어 첫 짝사랑으로 곰삭히며 반세기를 살아온 그의 순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금은 그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다고 한다. 그의 젊은 날의 청순한 첫사랑의 감정이 생경스럽게 생각되었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며 그들의 만남을 주선해주고 싶어 이리 저리 수소문해 보았다. 그러나 S라는 친구는 같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것 외에 그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 졸업 후에 그를 보지 못했으며 동창회에서조차 그를 보지 못해 반세기 동안 철저히 차단된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녀를 수소문하여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다가 망설여지는 부분이 하나 더 떠올랐다. 2~3년 전 딱 한 번 우연한 기회에 잠시 만난 기억이 난다. 그녀가 결혼 후 시집살이로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젊은 날 그리도 풋풋하고 싱싱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피골이 상접한 폭삭 삭은 듯한 병약한 모습에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 가곡을 부르던 메조소프라노 성악가 그 모습을 조금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추억에 잠긴 그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 실망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첫사랑의 아름다움으로 간직한 채 그의 꿈을 깨뜨리지 않는 일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아니면 실망하더라도 망가진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은 일일까? 고민에 빠졌다.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S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자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고 있는 중이다.
피천득씨의 인연에서도 첫사랑의 여인을 만나고 나서 아니 만났어야 할 사람이었다고 후회를 한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수채화 같은 만남은 빛바래지 않도록 다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 / 손상희
남 회장님의 주선으로 알베리오네회 가을피정은 법원리에 있는 테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열기로 하였다. 가장 엄격한 봉쇄수도회로 갈멜 수도회와 테라피스트 수도회를 꼽는데 그 중의 테라피스트 수도회가 법원리에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봉쇄수도회를 들어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의정부와 장흥을 지나 북 경기지방을 한참 달려서 법원리 수도회에 도착하였을 때는 오후가 한참 기운 시각이었다. 입구에 들어섰을 때 장원 속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키 큰 잡초 속에서 갖가지 풀꽃들이 아양을 떠는 듯 바람에 나불대고 있었다. 손길이 못 미친 자연의 모습 그대로 방치한 넓은 뜰은 가족들이 없어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과연 수사님이 한 분도 없는 원장님 혼자뿐인 수도회라고 했다. 초입에 있는 작은 피정 집에 짐을 풀고 저녁식사 전 여가를 이용하여 처음 온 회원들은 잠잠히 총무님을 따라 수도회 본채로 올라가고 몇 번 와 본 회원들은 약삭빠르게 비닐봉지를 챙겨 산 속으로 사라졌다. 뚝뚝 소리를 지르며 뛰어내리는 알밤을 주우러 가는 모양이었다.
본채로 오르는 길 둑 아래에 맑은 물을 담은 작은 해자가 있어 속세의 때를 깨끗이 씻고 들라는 듯 저녁놀이 그 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인공으로 만든 연못이 아닌 계곡에서 흐르는 물을 담은 아주 자연스러운 작은 호수였다.
해가 서산에 걸려 서쪽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이 호수 속에도 노을이 살포시 내려앉아 맑은 물속에 산영과 함께 붉고 투명하게 잠겨있다.
빽빽한 숲을 안은 앞산을 바라보고 호수 속을 다시 들여다보니 앞산이 그대로 잠겨있다. 거기에 저녁노을도 내려앉아 너무 아름다웠다.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아쉬움에 가던 길을 멈추고 호수가로 내려가 물속을 들여다본다. 수선화가 되었다는 나르시스는 자기 자신이 비친 물속의 자기 모습에 취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이 호수에 잠긴 앞산의 산영이 너무 아름다워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마치 내 심장에서 고동치는 박동 소리처럼 물속에 잠긴 맑고 투명한 산영의 숲속에서 일어나는 내밀한 기척과 소리가 다 들리는 것 같다. 잎에서 이는 바람소리와 미세한 떨림도 숲속에서 둥지를 튼 산새들의 은밀한 통교의 미세한 울림과 비상의 날갯짓도 그리고 다람쥐들의 빠른 몸놀림과 알알이 익어가고 있는 열매들의 충실함도 마치 물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 또 다른 자연이 호수 속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노을이 잠시 내려앉아 쉬어가는 호숫가에 나도 잠시 앉아 내 삶의 지난 영상들을 호수에 잠긴 산영을 바라보듯 내 안에서 바라보며 저렇게 아름다움으로만 느껴지지 않음을 유추해본다. 아름다웠던 일들도 지우고 싶은 일들도 버리고 싶은 일들도 하나하나 꺼내보며 돌아보는 이 시간이 호수의 물속에 잠긴 산영을 바라보는 것처럼 신비롭고 경이적일 수는 없지만 앞으로만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을 거슬러 다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보람되게 느껴진다.
피 끓는 가슴으로 돌진해야 했고 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온통 경쟁의식으로 팽팽한 긴장감으로 살아왔지만 되돌아보니 별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이루어 놓은 것도 쌓아놓은 것도 없이 헛되고 헛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무엇인가 공허함을 느끼고 채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 피정에 임하지 않았던가. 삶의 내 위치를 다시 정비하고 보람된 길 올바른 길을 찾아 바르게 살려고 이곳을 찾았다. 무엇인가 채울 수 없는 허허로움의 정체를 알아내고 더 비울 수 있는 여지를 찾고자 왔다.
성당에서 잠시 신부님을 뵙고 피정 일정표를 받아들고 저녁 식사 후부터 시작되는 강의에 기대를 걸며 성당을 나왔다.
서쪽 산허리에 붉은 노을이 아직도 아름답다. 호수에 내려앉아 쉬고 있던 노을도 아직은 떠나지 않았으리라. 성당 뜰에 내려서니 꽃보다 클로버가 무성한 화단에서 네잎클로버를 찾는 회원들이 바쁘게 손을 움직인다. 행운을 찾기보다 나는 항상 행복하기를 꿈꾸며 세 잎 클로버 하나를 땄다. 나폴레옹이 전쟁터에서 네잎클로버를 따려고 허리를 굽히는 순간 총알이 그의 머리 위로 지나가 생명을 건졌다고 하여 이를 행운의 상징이라 한다지만 나는 항상 행복한 세 잎 클로버가 더 좋다고 생각하며 변종된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접고 피정 집으로 내려온다.
호수 속의 산영이 어둠속에서 더 진해지다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밤이 되면 모두가 흔적도 없이 지워지리라. 내 삶의 지점도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이기에 아름다움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맘껏 사랑하고 맘껏 누리고 맘껏 봉사하며 남김없이 투신하리라 마음에 새겨본다.
어둠 속에서 산영이 사라지듯이 내 삶도 그렇게 사라질 것이다.
[작가 프로필]
- 수상 경력 및 등단년도
국민 훈장 목련장 수상
교원 실기 대회 입상
- 주요 활동 사항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수필가 협회 이사
한국 수필 작가회 이사
중앙 수문회 회원
초등 교감으로 명퇴
대표작 :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 수채화 같은 만남
저서: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수필집>, 수채화 같은 만남<수필집/2009. 선우미디어>
[작품 심사평]
손상희 수필집 수채화 같은 만남』
몽테뉴는 ‘내가 바라는 글은 그저 부드럽고 기교도 부리지 않으며 애쓰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수식 없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그려내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손상희 수필가의 수필을 읽어보면 몽테뉴가 바라는 글이 바로 이런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모든 문장이 주제를 향하여 눈이 맞아 있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그 위에 삶에 대한 성찰이 예사롭지 않다. 오랫동안 축적된 교사의 경력과, 살아온 연조(年條)와, 뿌리 깊은 신앙의 체로 걸러졌기 때문인가 싶었다.
손상희 수필가의 작품 중에서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의 일부를 본다.
‘노을이 잠시 내려앉아 쉬어가는 호숫가에 나도 잠시 앉아 내 삶의 지난 영상들을 호수에 잠긴 산영(山影)을 바라보듯 내 안에서 바라본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호수에 잠긴 산영을 통하여 내밀한 기척과 온갖 자연의 소리까지를 듣는 우주를 향한 귀가 열려있었다. 나뭇잎에서 이는 바람소리, 산새들의 은밀한 통교(通交)의 미세한 울림과 비상의 날갯짓, 그리고 다람쥐들의 발자국 소리까지도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성이 돋보인다. 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하고 예리한 여성스러움을 무리 없이 형상화하여 잔잔한 감동을 독자에게 안겨주고 있는 점이 좋았다. 게다가 문장 속에 흐르는 정(情)이 고요한 파도처럼 행간(行間)에 남실대고 있는 것처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손상희 수필가는 등단 후 3년만인 1999년에 『노을이 내려앉은 호수』를 상재하고 10년 만에 제2집 『수채화 같은 만남』을 상재했다. 조급하게 서둘지 않는 조심스런 행보가 오히려 돋보인다.
본인이 늦깎이라고 자처하고 있지만, 늦깎이답지 않게 문장이 부드러워 독자가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어딘지 모르게 겸손이 작품 전체에 깔려있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역시 몽테뉴가 말했던 것처럼 손상희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바로 손상희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심사위원장 김우종
심사위원 유혜자, 정목일, 고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