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땅과 생명 없는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계획들과 뜻들도 하나님의 섭리(攝理)로 다스려져 그것에 의해 곧바로 지정(指定)된 목표(目標)를 향해 이끌리게 된다. 어떤 것도 우연히, 우유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따져가며 다툴 마음이 없으나
'숙명(宿命)'이라는 말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울이 피하라고 가르친
"망령되고 헛된 말"(딤전 6:20) 중의 하나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야기(惹起)하는 혐오(嫌惡)를 가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眞理)를
억압(抑壓)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설(巧說)로 말미암아
거짓되고 사악한 비난이 우리에게 돌려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기가 하고자 하신 일을
자신의 지혜(智慧)에 따라
궁극적인 영원에서부터 작정하시고
이제 자기가 작정하신 것을
자기의 권능으로 수행하시는 모든 것의
감독자(監督者)와 조정자(調整者)로 확고히 삼는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늘과 땅과 생명 없는 피조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계획들과 뜻들도
하나님의 섭리(攝理)로 다스려져
그것에 의해 곧바로 지정(指定)된 목표(目標)를 향해
이끌리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무엇인가?
당신은 물을 것이다.
어떤 것도 우연히, 우유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없는가?
나는 이에 답한다.
대(大)바실리우스는
“운명”이나 “우연”은 이방인(異邦人)들의 말로서,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의미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고 올바로 말했다.
왜냐하면
만약 성공이 하나님의 복(福)이고
재난과 역경이 그가 주시는 저주(咀呪)라고 한다면
이제 사람의 일들 중에
어떤 것도 우연(偶然)에 돌려질 여지가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약 어떤 것이 운명(運命)에 내버려진다면
세계는 우연(偶然)히 돌아갈 것이라고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있다.
비록
그는 어느 곳에서
모든 것이 일부(一部)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로
일부(一部)는 하나님의 섭리(攝理)로 되어간다고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곧 이어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섭리(攝理) 아래 존재하고
그것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고 충분히 논증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定)하심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
우연히 발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 무엇도 이보다 더 불합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자기의 원리로 삼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또한 사람의 뜻에 의지하고 있는
우발성(偶發性)을 배제(排除)한 후,
곧 이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의 원인(原因)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를 더욱 분명하게 천명한다.
확실히 그는
한가로운 망대에서 쉬면서
무엇을 허용(許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공상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듯이,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이른바 실제적(實際的)인 뜻으로 개입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뜻은 만물의 원인이라고 여겨질 수 없을 것이다.
- 존 칼빈의 섭리론(攝理論)(기독교 강요 제1권 16장 8, 1559년 라틴어 최종판 직역,문병호 옮김)에서...